음악이 없는 나의 삶은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과 같다.
What my life would be without music is like a desert without an oasis.
학창 시절 영작 시간에 배웠던 What이 들어가는 숙어적 표현만이 아니다. 나의 실제 생활이 그러하다.
집에 있을 때나, 차를 탈 때나 습관적으로 진행자의 멘트가 거의 없는 음악 방송을 틀어 놓곤 한다.
음악은 나에게 BGM (background music)이다.
그래서 집에서는 KBS 1FM 클래식 채널을 항상 틀어놓고 종종 YouTube Music 채널도 즐겨 듣는다.
늦여름 같은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던 어느날 무심코 'Yanni November Sky'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나무는 단풍 든 잎을 거의 다 떨구고 잿빛 하늘은 겨울이 곧 닥칠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연상되는 곡이다.
그리스의 세계적인 뮤지션 야니가 올린 뮤직 비디오(M/V) 'November Sky'에서는 연속적으로 가을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YouTube Music에서 자동 선곡해준 음악 목록을 보니 내 심중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두 번째 곡이 Rodrigo Leão의 'Alma Mater'('모교'라는 뜻)였기 때문이다.
점심 때 대학 동창을 만나 추억어린 정담을 나누고, 인근 서울교대 캠퍼스를 거닐며 가을 경치를 구경한 것을 어찌 알았을까?
서울교육대학 캠퍼스의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길 바닥에는 낙엽이 수북한 것이 벌써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도 많았다.
생각해보니 YouTube Music에서 내가 즐겨듣는 음악 스타일을 파악하여 자동선곡해주는 것 같았다.
YouTube의 알고리즘이 공개된 적은 없지만 내 취향을 알아서 선곡을 하고 다음 곡들을 순서대로 보여주니 여간 편리한 게 아니었다. 그 다음은 내가 좋아할 만한 제품과 서비스를 광고하는 데 써먹을 테니 한편으로는 섬찟하기도 했다.
며칠 전 읽었던 AI 2025 책에서 저자가 강조했던 AI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통해 잠재적인 패턴을 찾아내는 데 아주 능하다고 설명한 대목이 생각났다.
내가 음악을 듣는 패턴을 파악하고 그 날 음악 채널의 청취자들이 많이 듣는 곡 등 몇 가지 요소를 추가하여 선곡을 하는 것이라 짐작되었다.
그리고나서 스크린 오른쪽 선곡표 목록을 보니 더욱 기가 막혔다.
'Alma Mater' 다음 곡목은 캐나다에서 음악 활동을 하는 한국계 뮤지션 Calude Choe의 'Love is Just a Dream'이었다.
반세기 전 학창시절에 이렇게 낙엽진 길을 걸으며 스쿨버스에서 만났던 같은 1학년 여대생과 데이트를 했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아마도 2학기의 마지막 주간이었고, 기말시험이 끝난 후엔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터이니 'Perhaps' 없는 용기를 내어 데이트 신청을 했던 것 같다.
71학번으로서 청량리 역 앞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태릉에 있는 삭막한 교양과정부 건물에 가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주변 환경 때문만은 아니고 Freshman의 1년간은 학생시위로 인해 휴업령이 내린 적이 많았기에 마치 사막과도 같았다.
그런데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던 그 일이 학창 시절의 한낱 꿈에 불과한 사랑이었다니 . . . !
YouTube Music이 들려준 다음 곡은 이문세의 노래가 아닌, 작사・작곡을 한 故 이영훈 씨가 직접 편곡을 하여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려주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이었다.전에 그 가사를 영어로 번역해 두었었기에 영어 가사와 함께 음악을 들으니 가슴이 더욱 아려오는 것 같았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 이영훈
Standing in the Shade of Street Trees by Lee Young-hun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The fragrance of lilac flowers
Revives the unforgettable memory, and
Makes me cry leaning on the bus window
Filled with sorrow bleached by the sunshine.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우 ∼
여위어 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
우 ∼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우 ∼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밑
그 향기 더 하는데
Standing in the shade of street trees,
I see your face floating in consciousness.
Come to the autumn scattered with cold rain,
It will fade away with chilly morning wind.
I’ll not forget this brightly beautiful world
And my love story.
Woo ∼
In the shade of withering street trees,
The fragrance is added up.
Woo ∼
In this beautiful world
You must know the beloved appearance of mine.
Woo ∼
Under the street trees with stars setting in the sky
The fragrance is added up.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그 향기 더 하는데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Standing in the shade of street trees,
The fragrance is added up.
Do you know what I loved you?
YouTube Music이 추천한 다음 선곡은 캉타루브가 고향의 민요를 채집하여 고음의 소프라노 성악곡으로 만든 'Bailero'였다. 오베르뉴 지방에서 양을 치는 목동에게 "계곡 물이 불어서 넘을 수 없으니 조심하라"는 마을 처녀의 노래였다.
내가 꿈속에서 가보고 싶어 했던 Auvergne의 풍경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했다.
이젠 음악 감상을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다.
전에 여러 번 들었던 Carl Orff의 인생 서사시 Carmina Burana 중에 나오는 아주 서정적인 멜로디 'In Trutina'가 흘러나왔다.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이 밤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사랑과 순결 사이에서 저울 추처럼 갈등을 벌인다는 노랫말이다.
칼 오르프의 한편으론 처절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인간의 삶을 노래한 웅장한 서사적 음악 가운데 서정적 멜로디라서 진짜 꿈속에서라도 들으면 좋을 멜로디라 생각하고 늦은밤 잠을 청하기로 했다.
이젠 정말로 YouTube Music 음악을 마감해야 할 시간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Cats'에 나오는 늙은 고양이의 아리아 가사가 떠올랐다.
기왕이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부르는 노래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Daylight,
I must wait for the sunrise,
I must think of a new life
And I musn't give in.
When the dawn comes,
Tonight will be a memory too
And a new day will begin.
햇살이 비치네요.
난 해 뜨기를 기다리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해요.
난 물러설 수 없어요.
새벽이 오면
지난밤은 추억으로 남고
새 날이 시작되겠지요.
그렇다! 오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법원 주변을 에워쌌던 경찰 버스도 철수할 것이다.
세상 어느 곳에선가는 하늘에 휘황한 오로라가 떠서 장관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지난 일은 추억으로 남고 동이 트는 대로 새 날이 시작될 것이다!
'Show&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Gladiator II의 역사적 진위 여부 (3) | 2024.11.25 |
---|---|
[그림] 혜원의 풍속화 감상하기 (2) | 2024.11.20 |
[계절] 가을의 노래 (10) | 2024.09.05 |
[공연] KBS음악실 신년음악회 'Joy' (0) | 2024.01.02 |
[Book's Day] 하루 동안 일어난 일 (0) | 2023.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