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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현승의 역설적인 詩 몇 편

Onepark 2023. 5. 24. 10:00

Naver 블로그에서 '한사람 시와 마음'을 운영하는 친구 김상문이 "가을의 기도"로 유명한 김현승(金顯承, 1913~1975)의 시 여러 편을 소개해 줬다.

나로서도 지난 4월 프랑스 여행을 할 때 가로수 플라타너스[1]가 제대로 가지를 뻗은 것보다 심하게 가지치기를 한 모습[2]을 많이 보았기에 "플라타너스"라는 시부터 눈길이 갔다.

 

* 자연상태로 하늘높이 가지를 뻗은 프랑스 쉬농소 성 진입로의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 인위적으로 가지치기를 한 파리 시내의 가로수길

 

플라타너스   - 김현승

Platanus   by Kim Hyun-seung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When I ask you if you know a dream,
Platanus,
your head is already wet with the blue sky.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You have no idea how to love.
Platanus,
you take what you have already to make a shade.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When I came a long way
I was lonesome as a single.
Platanus,
you walked along the way beside me.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Now, deep into your roots,
May I breathe in my soul and go?
Platanus,
I am not a god with you!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One day, when our toilsome paths are done,
Platanus,

Is there black soil far away to welcome thee?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窓)이 열린 길이다.

I only wish to keep thee and to become thy neighbor. 
It is the path where the beautiful stars and my dear window are open to each other.

 

플라타너스는 매연과 토양의 공해가 심한 도로변에서도 잘 자라고 여름엔 넓은 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며 미관상으로도 좋으므로 특히 프랑스에서 가로수로 많이 심었다.[2] 비록 요즘은 봄철 꽃가루에 가을철 낙엽 양산으로 인해 그 인기가 예전만 같지 못하다고 하지만.

그 동안 시인은 가로수 길을 걸으면서 또는 차로 다니면서 플라타너스와 많은 대화를 나눴던 모양이다.

시인이 말을 많이 했음에도 플라타너스는 그가 기대한 만큼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시인은 가로수 뿌리 깊이 영혼을 울리는 하소연을 했으나 나무는 묵묵부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한 발 물러서서 삶을 다하는 날 나무를 지켜주는 이웃으로 남겠다고 말한다.[3] 

 

이제 5월도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수많은 행사를 치루고 끝나가고 있다.

신록이 짙어가는 5월에 시인은 "나무 그늘도 밝다"고 기뻐하며 말한다.

시인이 마음 속으로 과연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는지 궁금해졌다. 

 

* 5월의 신록으로 덮힌 산과 들

 

5월의 그늘

Shade of May

 

그늘,
밝음을 너는 이렇게도 말하는구나 
나도 기쁠 때는 눈물에 젖는다.

Shade,
You call brightness like this. 
When I'm happy, my eyes are filled with tears.

그늘,
밝음에 너는 옷을 입혔구나 
우리도 일일이 형상을 들어 
때로는 진리를 이야기 한다.

Shade,
You have brightness clothed. 
We, too, take the form one by one, 
and sometimes tell the truth.

이 밝음, 이 빛은
채울 대로 가득히 채우고도 오히려
남음이 있구나
그늘 ― 너에게서. . . . . .

This brightness has made it
filled to the brim
but there's still more.
A shade ― comes from you. . . .

내 아버지의 집
풍성한 대지의 원탁마다
그늘,
오월의 새 술을 가득 부어라!

My father's house is
at every round table of the bountiful earth.

Shade,
Pour out the new wine of May!

이팝나무 ― 네 이름 아래
나의 고단한 꿈을 
한때나마 쉬어 가리니. . . . . .

Under your name of Epop trees,
for a time my toilful dreams,
I will have a rest. . . .

 

김현승은 목사였던 부친의 영향이랄까 그의 시에서는 채우고도 남는 여유 같은 청교도적인 윤리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이팝나무 아래의 고단한 꿈처럼 한국 전통의 선비정신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여기 "감사"에 관한 연작 시를 차례로 읽어 본다.

시인은 행복할 때든 불행할 때듯 감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누구든지 행복함을 느낄 때 그 누구에겐가 감사를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시인은 불행할 때에도 더 큰 불행이 닥치지 않아서, 또는 전에 행복했거나 지금의 불행이 조만간 끝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해야[4] 하고 행복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사는 동안 호흡하는 들숨, 날숨 같다고 하면서 말이다. 

 

 

감사 1

Gratitude 1

 

나는 행복할 때
감사한다
나는 행복을 원하기 때문이다.

When I am happy
I am grateful
because I want to be happy.

그러나 나는
불행할 때도 감사한다
감사하는 내 마음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But I am
grateful even when I am unhappy
because my grateful heart
is happy.

한 행복은 밖에서 오고
한 행복은 안에서 온다
마치 숨은 밖에서도 들여 쉬고
안에서도 내어 쉬는 것 같이

One happiness comes from outside, and
one happiness comes from within.
It's like breathing in from the outside, and
breathing out from within.

이와 같이 우리의 생명은
행복과 불행으로
내쉬는 숨 들이쉬는 숨으로 
언제나 감사를 드리도록 
만들어졌다.

In this way, our life is made
with happiness and unhappiness
by means of breathing-in and breathing-out.
We were made to give thanks 
at any time.

이처럼 신비로운 조화 속에서. . .

In this mysterious harmony. . .

 

* 밀레, 만종(晩鐘, L'Angelus), 1860, 오르세 미술관.

 

시인이 삶 속에 행 · 불행을 느낄 때마다 갖게 되는 감사하는 마음은 종교적 믿음과도 상통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줄 모른다면 이러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은 감사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과 직결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는 마음은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주고 바치는 사랑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기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주는 것이기에 시인은 자기의 서툰 시를 기꺼이 바치겠다고 말한다.

그가 인용하는 사랑의 본보기는 과부가 성전에 바치는 두 렙돈이 부자가 하는 거액의 헌금보다 귀하다는 예수님의 말씀(마가복음 12:41~44)에서 유래한다.

다시 말해서 시인은 자기가 감사의 마음으로 써내려 가는 시[4]는 자기가 가진 최상의 것, 최선의 것이기에 유명 시인의 걸작 (傑作詩) 못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감사 2

Gratitude 2

 

감사는

믿음이다.

Gratitude is
just like
faith.

감사할 줄 모르면
이 뜻도 모른다.

If you can't be grateful,
you don't know what it means.

감사는
반드시 얻은 후에 하지 않는다.
감사는
잃었을 때에도 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Gratitude must not be
given after something is obtained.
Gratitude may be
given even when you lose it.
It's because your grateful heart
was not lost.

감사는

사랑이다.

Gratitude is
just like
love.

감사할 줄 모르면
이  뜻도 알지 못한다.

If you don't know how to be grateful,
you don't know what it means.

사랑은 받는 것만이 아닌 
사랑은 오히려 드리고 바친다.

Love does not only receive 
but rather gives and sacrifices.

몸에 지니인
가장 소중한 것으로 . . .
과부는
과부의 엽전 한 푼으로,
부자는
부자의 많은 보석(寶石)으로

Love is willing to give 
the most precious thing at hand. . .
As the widow who was ready
to give her last penny,
As the rich man who was ready
to donate his many jewels.

그리고 나는 나의
서툴고 무딘 눌변(訥辯)의 시로. . .

And I'm also ready to give
my clumsy, dull and rambling poetry. . .

 

* 프랑수아 나베, 가난한 과부의 헌금, 1840.

 

이상과 같이 김현승 시인의 여러 시에서는 매번 역설(逆說, paradox)을 보게 된다.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할 수록 그 안에 일말의 진실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플라타너스 가로수에 대한 응답 없는 일방적인 고백, 5월 신록의 그늘에서 발견하는 일종의 밝음, 불행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사랑과 상통하는 감사의 마음으로 쓴 서툰 시도 다른 이의 걸작 시 못지 않다는 생각은 모두 역설적이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그것을 반박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기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 우리의 아름다운 시와 노랫말을 영어로 옮긴 것을 더 많이 보려면 이곳을 탭하세요.

 

Note

1] 우리나라에서는 플라타너스(platanus)가 나무껍질(樹皮)이 비늘처럼 벗겨지는 것을 보고 버즘나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같은 종류의 나무를  sycamore라고도 한다.

2022년 초 인사동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김소연 화백은 만학으로 그림 공부하러 간 필라델피아에서 집 앞의 시카모어를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해마다 가지를 잘라내서 미처 아름답게 뻗어나가지 못하는 한국의 플라타너스가 아닌 시카모어가 되어 자아를 멋지게 펼쳐보자" 매일같이 다짐했다고 한다.

 

* 김소연, 필라델피아 시카모어의 봄 여름 가을 겨울.

 

2]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많이 심어놓은 나라는 프랑스이다. 프랑스에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대대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였는데, 이때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많이 식재했다. 그 이유는 플라타너스가 생장이 빠르고 수명이 길어 경제적이고, 거대한 나무 껍질이 화재 예방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일본도 근대화 과정에서 프랑스의 것을 많이 본받았는데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받아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미류나무 길 이상으로 흔하게 되었다.

 

3] 플라타너스를 미국에서는 시카모어라고 부르는데 New Bing은 다음과 같은 특별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시카모어는 미국의 동부와 중부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키가 30m까지 자라는 큰 나무이다. 겨울철에 낙엽이 모두 지고 난 다음에는 하얀 가지가 마치 유령처럼 보인다고 하여 '유령나무(ghost tree)'로 불리기도 한다.

미국 독립전쟁 때는 많은 생명을 구하기도 했는데 1777년 9월 펜실베니아주 차드포드 부근에서 영국군이 많은 병력과 화력을 가지고 조지 워싱턴 휘하의 대륙시민군(독립군)을 공격해 왔다. 브랜디와인 전투(Battle of Brandywine)에서 세 불리해진 독립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밤이 되자 아름들이 플라타나스 나무가 영국군의 총탄세례를 막아주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펜실베니아 주의 시카모어는 미국 시민들에게 희망과 보호의 상징이 되었다.

 

4] 불행에 처해서도 감사해야 한다는 말은 일응 궤변 같아 보인다. 영국 웨일스에는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을 때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라"는 속담이 있다.

실제로 성경주석학자 매튜 헨리(Matthew Henry, 1662-1714)는 그가 강도를 당했을 때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첫째, 지금까지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없었고,
둘째, 돈만 빼앗겼지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지 않았으며,
셋째, 가진 것을 모두 잃었지만, 잃은 것이 많지 않은 것이 감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아니라 그가 강도였음을 감사 드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