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 코비드19가 막 퍼지기 시작했을 때 신문에 난 롯데관광의 '프랑스 일주여행' 광고를 보고 곧바로 신청했다.
1980년대 중반 암스테르담 대학원에서 유학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유럽 곳곳을 여행한 바 있었다. 또 정년퇴직 기념으로 부부동반의 독일 일주여행도 알차게 했었다. 그러나 파리 이외의 지역 여행은 프로방스에서 겪었던 일 때문에 계속 보류해 온 터였다. 언론인 신용석 씨가 진행하는 상미회의 프랑스 고성 탐방, 와이너리 투어에 참여하면 그의 모친 이성자 화백의 아틀리에도 가볼 수 있었으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미루어온 터였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여행사의 모든 해외여행 프로그램이 취소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2023년 롯데관광의 "고흐가 들려주는 프로방스 이야기: 프랑스 완전일주"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했을 때 반갑기 그지 없었다. 유럽에서 살아본 경험을 살려 꽃들이 만발하고 난방을 걱정할 필요 없는 4월 하순에 떠나는 일정을 관광사의 모객이 시작되자마자 1번으로 신청하고 출발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10박 11일의 장기여행인데다 나이 탓에 혹여 민폐가 되지 않을까 헬스에 다니면서 체력관리(?)에도 힘썼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챗GPT에 10일 안팎의 기간에 외국인으로서 프랑스를 속속들이 알기 위한 여행일정을 짜달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조건은 2023년의 꽃피는 시기에 5,500~6,000달러의 예산범위에서 20명 내외가 그룹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라 했다.
챗GPT가 불과 수 초만에 내놓은 제안은 롯데관광의 일정과 90% 이상 비슷했다. 관광여행 전문가들의 체험담이 챗GTP의 학습자료였을 테니까 당연한 결과이지만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프랑스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려면 Mont-Saint-Michel, Loire Valley, French Riviera, lavender fields of Provence 같은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가도록 하고;
- 프랑스인의 일상을 경험하려면 대도시보다 작은 마을에 가서 그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마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겠고;
- 프랑스의 아름다운 고성를 보려면 Chateau de Chambord, Chateau de Versailles, and Chateau de Chenonceau 등을 추천할 수 있는데 적어도 하룻밤은 그곳에서 지내야 옛날 귀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 그리고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면 Gardens of Monet's house in Giverny, Vincent Van Gogh trail in Arles는 꼭 가보라고 당부했다.
- 프랑스에서 꽃들이 만발하는 시기는 대체로 3월에서 5월 사이인데 파리 근교의 벚꽃, 노르망디 지방의 튤립, 프랑스 농촌의 유채꽃 단지가 볼만하다고 했다.
그밖에도 롯데관광 측에서는 프랑스 요리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음을 강조했다(음식 명칭은 된소리[硬音]를 피하는 외래어 표기법을 따름).
-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생테밀리옹 와이너리에서의 와인 테이스팅
- 전통 조리법으로 만드는 몽생미셸의 거품 계란 오믈렛(Omelet)
- 프랑스의 대표적인 전식(前食)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Escargot)
- 프랑스 대표적인 가정식 카술레(Cassoulet)
- 닭고기에 포도주를 부어 졸인 전통 요리 코코뱅(Coq au vin)
- 프로방스 지방에서 즐겨먹는 전통 가정식 라타투이(Ratatouille)
- 생선, 해산물과 채소, 허브, 마늘 등을 넣고 끓인 스튜 부야베스(Bouillabaisse) 등.
이 말은 전부 사실이었는데 여행참가자들의 반응은 음식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지만, 이번 여행이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진기한 체험이었다.
이와 같이 대망의 프랑스 일주여행을 마치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을 때 이번 여행기는 어떻게 쓸까 다소 고민이 되었다.
마침 아를로 반고흐의 발자취를 보러 가던 날 인솔자가 틀어준 DVD 영화 <Loving Vincent>에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너무나 허구적(이를 'Artistic License'라 일컬음)이라서 반감이 들었다. 그 당시 반고흐가 죽은 것에 의심을 품거나 슬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전보를 받고 파리에서 현장에 달려온 동생 테호 뿐이었다. 오늘날 시내 곳곳에 'Van Gogh Trail' 동판을 붙여 놓은 아를 주민들의 관심의 1/100 아니 1/1000이라도 그때 그에게 베풀었던들 경치 좋은 아를을 떠나 인심이 더욱 적대적이었던 오베르쉬르와즈로 가진 않았을 텐데 ······.
그래서 인솔자에게 빈센트 반고흐에 관한 그릇된 정보를 시정하고자 한다면서 마이크를 10분만 빌려 달라고 했으나 손님에게는 마이크를 드리지 않는 게 회사방침이라고 일언지하에 거절 당했다.
그렇다! 차라리 잘 됐다.
미술평론가 이주헌 씨가 동행하는 모 여행사의 유럽 미술관 기행은 참가비가 1천 수백만원 아닌가! 고급정보를 원하는 독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마련이다. 내가 비록 서울대 주경철 교수만큼 서양사 전문지식은 부족할지 몰라도 유럽에서 몇 해 살았고 나름 여행도 많이 다녔으며 특정 분야에 관한 한 '덕후'급 지식을 쌓았으므로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페르시아 여행할 때는 미리 준비한 것은 아니었어도 전문가급 해설로 동행한 학회 회원들의 찬사를 들은 바 있었다.
그때 못했던 이야기를 버스에 동승한 일행에게, 아니 여행 블로그 <Travel & People>의 독자들에게 해주는 '컨셉'을 잡기로 했다. 강단에서의 주된 관심사였던 '영화 속의 법률 이야기'가 아닌 화제 영화의 현지 로케이션 중심으로 풀어놓아도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겠는가!
아를에서 멸시천대를 받고 쫓겨나다시피 한 반고흐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웠고, 영화 <French Kiss>와 <Rebecca>의 리비에라 해변 호텔, <Da Vinci Code>의 유리 피라밋과 프리메이슨 등 내가 아는 이야깃거리만 해도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이제 가상(VR)으로나마 마이크를 잡고 열흘 간의 여행담을 풀어놓고자 한다.
⇒ 2. 몽생미셸과 생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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