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항공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비록 형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한 Sad 모드의 여행이었지만 비행기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마음 설레기도 하고 무척 경이로웠다.
샌프란시스코로 갈 때에는 갑자기 일정을 변경한 터라 가운데 낀 좌석이었으나 귀국편은 비록 꽁무니 좌석일 망정 창가인 데다 2열 좌석이고 화장실에서 가까워 별 불편이 없었다. 다만 SFO 오전 출발이고 ICN 오후 도착이라서 밖은 계속 대낮이고 눈이 부셔 시종 창 덮개를 내려놓아야 했다.
항공편 여행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이륙과 착륙 시의 2~3분이다.
요즘은 동영상 쇼츠나 기내 비디오를 통해 이착륙 시 전방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지만 승객으로서 이 무거운 비행기가 과연 뜰 수 있을까, 또 무사히 내릴 수 있을까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우리가 탄 보잉787 여객기의 기장은 가장 위험한 시간에 아주 노련한 솜씨로 조종을 하여 우리는 언제 이륙했나, 또 착지했나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Boarding
출국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에 들러 필요한 선물을 구입한 뒤 지정된 게이트 앞에서 탑승순서를 기다렸다. 이럴 때면 옛날 생각을 하며 헛된 상상을 하곤 한다. 전에 몇 차례 현실로 바뀌었던 좌석 업그레이드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만석이어서 미리 좌석을 얻지 못한 승객은 다음 항공편까지 게이트 앞에서 혹시 무슨 급한 사정이 생겨 못타는 승객이 있을까봐 초조하게 기다린다. 거의 매시간 출발하는 셔틀 비행기 게이트 앞에서 종종 벌어지는 풍경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 언젠가 게이트 앞에 앉아 있는데 아나운스먼트로 호출을 해서 갔더니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해 주는 것이었다. 이런 행운이~ 내게도?! 어차피 빈자리로 가느니 항공회사의 마케팅 차원에서 선심을 쓰는 것이지만 일단 고마웠다.
그러나 지금은 언감생심! 은퇴한 老교수를 누가 가외로 대접을 해주겠는가.
더욱이 하늘길이 다시 열린 요즘은 비즈니스 클래스가 거의 만석이어서 나와 같이 미국에 조문을 가기로 한 누님 부부는 한참을 기다리셔야 했다. 가족 마일리지로 LAX행 항공편의 비즈니스 석에 나란히 두 자리를 예약하기 어려웠으며 요금을 지불하자면 천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Take-off
비행기가 게이트 앞 계류장을 떠나 유도로로 진행할 때 언제부터가 항공기운항 시점인지 법정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에서 검찰과 1심에서는 비행기가 출입문을 닫고 움직일 때부터 운항이 개시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첫 전원합의체 판결로 항로(航路)를 말 그대로 '하늘길'로 보아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넓게 해석할 근거가 없다며 항공보안법상의 항로변경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갑질을 한 C부사장에 대해 항공기 내 폭행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민사상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서울과 뉴욕에서 별도로 진행되었다.
이 무거운 비행기를 무엇이 후진을 시키고 활주로로 나갈 수 있게 하는지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또 많은 승객과 짐을 실은 비행기가 활주로를 전속력으로 달려 양력을 얻어 이륙하는 원리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가장 황홀한 순간은 비행장을 뒤덮은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창공으로 비상할 때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광경을 마음에 아로새겨 놓고 비록 현실 속에서는 마음에 먹구름이 덮여 우울할 때에도 이렇게 상상을 하는 것이다.
The Sun is shining
Above the dark clouds.
먹구름 위에 태양이 빛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그 난국을 타개할 방도를 찾는 일에 골몰하게 된다.
Cruise
비행기가 순항고도에 올라 좌석벨트 등이 꺼지면 승무원들이 부산해진다. 음료와 기내식을 나눠주는 시간이 된 것이다.
우선 탑승 전에 특별식(할랄, 비건 등 채식)을 주문했던 승객들에게 개별적으로 배식이 된다. 그 다음은 음료와 식판을 가득 실은 카트가 통로에 등장할 차례이다.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는 미리 메뉴표를 나눠주지만 이코노미 석에서는 승무원이 불러주는 몇 가지의 선택지 중에서 골라야 한다. 이때 국적기의 경우 빠트릴 수 없는 게 고추장 튜브를 챙기는 일이다. 역시 한국 사람은 한식과 양식 어느 음식에나 고추장을 비벼 먹어야 입안이 개운해진다.
신작 기내영화를 고르거나 장르별로 음악을 청취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나도 이번에는 전에 못 보았던 한국 드라마를 몇 회분 시청했다. 화장실 오갈 때 보면 요즘에는 태블릿에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저장해 놓고 기내에서 계속 틀어놓고 보는 사람도 많다.
장시간 비행이 지루해질 즈음 간식으로 라면을 먹는 것도 항공여행의 별미 중 하나이다.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는 라면을 사기 그릇에 담아 트레이에 받쳐 제공하지만 이코노미 클래스 승객은 컵에 뜨거운 물만 부어서 건네준다. 스프도 자기 기호에 따라 부어넣고 몇 분 더 기다렸다가 젓가락으로 휘져어가며 먹어야 한다. 그래도 국물까지 다 비울 정도로 맛있었다.
Landing
해외 여행을 할 때 도착지 주변 상공에서 지상을 내려다 보는 것도 짜릿한 흥분을 안겨준다.
그러나 귀국 길에 내게 익숙한 지명을 한반도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지리에 관한 상식을 입체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인천공항 도착 30여분을 앞두고 창 밖으로 눈에 익은 산천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 인천공항에 접근하면서 지상에 보이는 광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를테면:
- 왜 이곳에는 골프장이 많을까.
- 저렇게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으면 산도 들도 잘 안보이고 시골에 사는 기분이 날까.
- 자동차 주행시험장이 갯펄 바로 옆에 조성되었구나.
- 시화 방조제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크구나.
- 해상 송전탑이 이렇게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화물선도 항구에 들어가기 위해 이렇게 줄을 지어 기다리네.
- 이런 곳에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자면 비용이 꽤 많이 들겠구나.
마침내 전방에 인천공항 활주로의 착륙지점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착륙 지점은 타이어 자국이 선명했다. 말하자면 조종간을 잡은 파일롯들에게는 그곳이 랜딩 타겟인 셈이었다.
비행기 동체의 여러 개 타이어가 동시에 착지하는 순간 어느 정도의 압력이 작용하는 걸까.
아무리 안전한 비행을 하였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무사해야 할 텐데 걱정아닌 걱정을 하는 동안 비행기가 게이트 앞에 스르륵 멈춰서고 좌석벨트등이 꺼졌다. 여기저기서 휴대폰 비행기탑승 모드를 해제하고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 위의 캐빈 문을 열고 짐을 내렸다.
어차피 나는 맨 나중에 내릴 터이므로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그런데 환승을 하는 중국인 승객들과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승객이 적지 않아서 그네들을 헤치고 걸어나와야 했다.
백년 전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하늘 여행길
또 다른 백년 후엔
어떤 여행이 가능할까?
One hundred years ago,
it was impossible
to make a trip by flight.
What's next one hundred years later
so as to travel to other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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