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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Hard times come again no more

Onepark 2023. 2. 26. 00:30

2023년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교 산마테오에 사는 형님(박훤장/朴烜璋)의 건강상태가 안좋다는 소식이 들렸다.

7년 전 담도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담관 절제수술을 받은 후 항암치료까지 받으셨고 우리는 잘 회복하신 줄 알았다. 그 사이 일시 귀국하여 보훈병원에서는 고엽제 후유증 진단을 받으신 터였다. 2022년 9월에는 결혼 50주년 금혼식을 기념하여 부부동반으로 스페인 일주여행을 다녀오시기도 했다.

형님은 워낙 등산을 좋아하셔서 이곳저곳 캘리포니아 소재 국립공원에 가서 등산복을 입은 사진을 풍경 사진과 함께 보내오셨기에 건광관리를 잘 하고 계신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는 호스피스 홈케어를 받으실 것을 권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2007년 UCLA 로스쿨 방문교수 시절 형님의 신세를 많이 졌었고 또 형제 중에서도 형님네 식구와 같이 산 기간이 오래였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2월 중 중요한 선약이 없는 기간을 피해 2월 22일 샌프란시스코에 갔다가 1주일쯤 같이 지내고 돌아올 계획을 세웠다. 평소 형님은 우리집안의 전자족보나 가정사의 기록을 남기는 일에도 관심이 많으셨기에 둘이서 앉아 지나간 일을 회고하며 형님에게 수기치료를 해드리겠다고 미리 말씀드리고 항공편을 예약했다.

그런데 2월 20일 오래 전부터 약속이 잡혀 있었던 점심 회동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미국 조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그날 오전 9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갈이었다.

 

그래서 이튿날 바로 출발하는 것으로 항공편 일정을 변경하고 여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10시간여 만석인 샌프란시스코(SFO)행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만감(萬感)이 교차했다.

마침 신작 기내영화에서 미국의 문학청년이 오스카 와일드의 발자취를 따라 이탈리아 시칠리 섬에 갔다가 우연찮게 동향의 미국 여성 포크송 가수를 만나 예술적 교감을 나눈다는 영화 A Chance Encounter (2022)를 보았다. 이 영화의 OST "Hard times come again no more"가 미국에 당도할 때까지 귓전을 맴돌았다. 

 

* 3월 21일 산호세 천주교회 저녁미사 후에 열린 연도회

"힘든 날은 다시 오지 않겠지."

미국에 이주한 형님의 삶은 이 노래말 그대로였다. 장밋빛 꿈을 품고 떠났으나 처음엔 경제적으로 힘든 날을 겪다가, 이젠 살 만해지니까 건강에 힘든 날이 닥쳤던 것이다.

형님은 1986년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한국에서 들고 간 돈으로 사업을 벌였고 잘 나갈 때에는 부동산중개업으로 상당한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수입은 미국의 부동산경기에 따라 부침이 심했다.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으나, 아들 딸이 공부를 잘 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시킨 것밖엔 남지 않았다. 7년 전에는 아주 힘든 항암치료를 견뎌내고 한때 완치가 된 줄 알았으나 두 번이나 재발하여 마침내 유명(幽明)을 달리 하신 것이다.

 

두 자녀는 기대 이상으로 공부를 잘했다. 아들은 서부의 명문 로스쿨에 진학하여 유수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되었고, 딸은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형님도 미국에 이민 와서 제일 잘 한 것은 자녀를 한국의 입시지옥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기 하고 싶은 공부 마음껏 하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자녀의 혼사도 그에 맞는 짝을 찾아 모범적인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하셨다.

 

내가 미국에 여러 해 살아보니 국적기 직항편이 닿는 도시마다 이민자의 직업에 어떤 공통점이 있었다.

이를테면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뉴욕 같은 동부에서는 그로서리와 세탁소, 댈러스에서는 청소부와 봉제공, LA에서는 가드너와 풀장 클리너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이민자의 직업은 공항에 마중나온 사람이 누구냐에 달려 있다는 우스개 말도 있었다.

이제 한국인의 미국 이민사도 100년이 훌쩍 었으니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챗GPT에 질문을 던졌다.  또 한국인 이민자로서 미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람은 누가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 3월 21일 고인을 추도하는 연도회를 마치고

우리 집안에서도 형님 부부는 유독 일심동체라는 말 그대로 늘 한 몸처럼 사셨다. 이러한 가족 중심주의는 일찍부터 자녀들에게 좋은 본이 되었다. 형님 내외를 생각하면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소네트 못지 않은 절절한 부부 사이였던 것 같다.

형님 장례식 때 고인의 관을 열고 작별인사를 고하는 뷰잉(viewing) 행사에서 시크릿 가든의 연주곡 "파사칼리아"[1]의 멜로디가 잔잔히 흘러나왔다.

 

형님 집에 가서 보니 고인에게는 죽음을 앞두고 일반적인 고민거리가 있었음을 알았다. 재산 말고 남기고 가는 책이나 자료, 사진, 기타 디지털 형태의 유품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인은 마지막 날까지 평소에 찍은 사진을 카카오 스토리에 정리하셨다는데 이러한 디지털 유산(digital inheritance)은 어떻게 뒤처리를 할 것인가? 형님의 블로그에 자손 말고 다른 사람들도 들어와 보고서 과연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많은 경우에 유가족마저도 고인의 소중했던 유품을 허접한 쓰레기로 내다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더 늦어지기 전에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젊은이들 말을 듣고 그네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최상은 아닐지라도 차선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3월 1일 장례미사 때 대통령 조기를 걸고 태극기를 덮어 직접 운구해 주신 월남전 참전전우회 회원들

Note

1] 본래 Passacaglia란 바로크 시대의 빠른 춤곡이었다. 헨델이 작곡하고 할보르센이 편곡한 피아노곡이 제일 유명하다. 그런데 노르웨이와 아일랜드의 혼성 듀오 Secret Garden이 절절한 내용의 가사에 애조띤 아름다운 선율을 붙여 만든 곡이 연주곡으로 더 많이 유명해졌다. 그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If Came The Hour (Passacaglia) - Tommy Korberg, Secret Garden

그 시간이 오면 - 토미 코어베르그 노래, 시크릿 가든 연주

 

If came the hour, if came the day.
If came the year, when you went away;
How could I live, I'd surely die,
What would I be if you say goodbye?
How could I laugh, how could I love,
Could I believe in a God above?
How could I hope, how could I pray.
If came the hour, if came the day.
[Chorus]

그 시간이 오고 그 날이 오면

그대가 떠나신 그 해가 오면

난 어찌 살 수 있나요, 죽고 말 거예요

작별을 고하시면 나는 뭐가 되지요?

어떻게 웃음 짓고 어떻게 사랑을 하고

하늘 위의 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희망을 품고 기도를 하나요

그 시간이 오고 그 날이 오면

But you are here, lying beside me.
I watch you breath, each raise and fall,
Without you here, then there would be,
Nothing at all.
If in this world, all things must pass
And we must raise, the parting glass,

No words would ever come, what could I say.
If came the hour, if came the day.
Nothing at all.

그러나 그대는 여기 내 곁에 누워 있어요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숨 쉬는 것을 봐요

그대가 여기 아니계시면  여기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이 세상 모든 것은 떠나가지요

우리는 이별의 술잔을 들어

말 없이, 아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 시간이 오고 그 날이 오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거예요

If in this world, all things must pass
And we must raise, the parting glass,
No words would ever come, what could I say.
If came the hour, if came the day.
There will be no music in my soul,
How could I dance - you to hold.
How could I bear the violin
There'd be no song I could ever sing.
[Chorus]

이 세상 모든 것은 떠나가지요

우리는 이별의 술잔을 들어

말 없이, 아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 시간이 오고 그 날이 오면

내 가슴 속엔 아무런 노랫가락도 없고

어떻게 춤을 추어 그대를 붙잡을 수 있나요

어떻게 바이올린을 들 수 있어요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도 없는데

I touch your mouth, I touch your skin;
Now you awake, the dawns sweeps in.

How would I live, if you should go away
If came the hour, if came the day.
How could I live, if you should go away
If came the hour, if came the day.
If came the hour, if came the day?

그대의 입술을, 살결을 만져봐요

새벽이 밀려오니 그대가 깨어나네요

그대가 떠나면 난 어찌 살아요

그 시간이 오고 그 날이 오면

그 시간이 오고 그 날이 오는데요?

 

* 고인이 생전에 기록한 장례준비 메모, 고인의 유언처럼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