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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path] 꽃길만 걷는다고요?

Onepark 2023. 3. 29. 13:10

3월 29일 내가 관계하는 상장법인의 정기주주총회가 끝나고 모처럼 한가롭게 벚꽃 구경에 나서기로 했다.

회의장에서 가깝기로는 여의도 벚꽃길이 있지만 이곳은 워낙 유명해져서 꽃구경 인파가 몰린다고 뉴스에 날 정도였다.

오히려 작년 가을에 거닐었던 양재동 매헌 시민의 숲길이 한적하고 좋을 듯 싶었다. 서울 시민들이 즐겨 찾는 양재천, 안양천변의 산책로는 벚꽃길로도 잘 가꾸어져 있기 때문이다.

 

* 양재천 시민의 숲 산책

 

모처럼 화창한 날씨에 미세먼지도 거의 없고 꽃구경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평일 오전 시간이라서 가족단위 상춘객은 거의 없고 꽃 사진 찍으러 나온 여고생들과 중년부인들 몇개 그룹이 눈에 띌 뿐이었다.

 

양재천변을 따라서 천천히 걸었다. 산책로 옆에는 개나리가 무리지어 피었는데 이처럼 이른 시기에 벚꽃까지 만개한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뉴스에서도 예년보다 2주일 이상 개화시기가 앞당겨졌다고 했다.

내가 20년 가까이 다녔던 경희대 캠퍼스만 해도 맨 처음 봄의 전령인 목련화가 피기 시작했고 한 주 간격으로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었다. 그리고 4월 중순이 되어서야 벚꽃이 피는 게 봄꽃의 개화순서였다.

경희대생들의 본관놀이[1] 행사란 본관 앞 분수대 옆 잔디밭에서 과 단위로 학생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랑 게임도 하면서 인근 중국음식점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것을 미니 축제처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벚꽃이 꽃비가 되어 내릴 때쯤에는 중간고사 기간이어서 학생들은 낭만 대신에 긴장감이 한창 고조되곤 하였다.

물론 경희대 캠퍼스에는 개화시기가 늦은 왕벚꽃이 늦게 피므로 학생들이 다소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 1988년 서울 올림픽 직전에 발생한 대한항공 여객기 폭발사고 희생자 위령탑

 

양재동 시민의 숲에는 나무와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는 덕분에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비롯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희생자 추모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사건 피해자 위령탑, KL8240 백마부대 용사 충혼탑 등 기념비가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양재 숲길을 거닐 때에는 문득 사람의 일생을 떠올리게 된다.

 

이곳 기념비에 이름이 새겨져 있던 그렇지 않던 간에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무엇인가 추구하는 삶을 살고 떠나게 마련이다. 그들이 늘 염원하듯이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꽃길만 걷다 보면 힘들기도 하고 꽃만 보는 게 지겨울 수도 있다.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낸 후 모처럼의 휴식을 맞아 꽃길을 걸으며 재충전을 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축복할 때 "늘 꽃길만 걸으소서"란 말은 진정 그를 위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열심히 살되 간혹 꽃길에서도 호사를 누리소서"가 진정으로 그를 축복하는 말이라고 하겠다.

 

*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동네에서 만개한 벚꽃

 

이날도 한 시간 이상 만개한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 그리고 푸릇푸릇 돋기 시작한 새싹을 보면서 걷는 동안 시장기를 느꼈다.

그렇다! 세상에서 사노라면 꽃길만 걸어서는 아니되고 시장(市場) 속으로 저잣거리로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과 부대끼며 삶의 목표와 의욕을 찾아야 한다.[2] 이와같이 오르막 내리막 길이 있는 삶이 익사이팅하고 또 의미가 있기도 한 것이다.[3]

 

꽃길만 걷는다고?
오르막 내리막 길에서
참기쁨을 찾을 수 있다오.

You only walk on flower paths? 
On the road ups and downs,
You’ll be happy.

 

Note

1] 해마다 벚꽃 필 때면 경희대 본관 분수대 앞에서는 학생들의 '본관놀이' 행사가 벌어지고 인근 중식당에서는 대형 깔개를 빌려주며 음식 주문을 받았다. 학생들이 "Carpe diem"하고 외치며 1년에 한 번뿐인 미니 축제를 즐기곤 했는데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에는 강의도 비대면 수업으로 대체되는 바람에 본관놀이고 뭐고 일체 중단되고 말았다.

 

* 2017년 봄 벚꽃이 만개한 경희대 서울 캠퍼스의 본관 앞 풍경

 

2] 벚꽃이 필 때면 이내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울려퍼지곤 했다. 그만큼 벚꽃은 개화기간이 너무 짧기 때문에 누구나 꽃샘바람이 불거나 비라도 내릴라 치면벚꽃이 곧 질까봐 조바심 치게 된다.

그런데 바리톤 고성현이 구성지게 부른 "벚꽃나무 아래"를 여러 번 듣다 보면 전혀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3] 마지막 단락을 17음절의 국ㆍ영문 단시(haiku)로 압축해 보려고 했다. 우리말로는 오르막 내리막 길을 함축적인 표현으로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해야 하나?

영어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아서 지난번엔 AI번역기에 독일 시(詩)의 번역을 맡긴 데 이어 이번에는 마지막 단락의 문장을 AI 번역에 맡겨 보았다. '시장기를 느끼다'를 엉뚱하게 번역한 것을 빼놓고는 조금 손을 보니 그럴듯 해졌다.

 

After nearly an hour or so, while walking through cherry blossoms, forsythia, azaleas, and green shoots, I felt starved.

Yes! If you come to live in this world, you should not only walk on flower roads, but enter the marketplace, where you have to find your purpose and motivation for better life by interacting with other people. As such, life filled with ups and downs is so exciting and meaning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