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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AI 번역기를 이용한 한국 시의 영역례

Onepark 2023. 3. 22. 11:40

춘분 날 월별로 토속적인 시를 많이 발표해 온 목필균 시인의 "3월"이란 시를 접하게 되었다.

 

햇살 한짐 지어다가
고향밭에 콩이라도 심어볼까
죽어도 팔지 말라는 아버지 목소리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매지 구름 한 조각 끌어다가
고운 채로 쳐서 비 내림 할까
황토밭 뿌리번진 냉이꽃
저 혼자 피다 질텐데

 

늘어지는 한나절
고향에 머물다 돌아가는
어느날 연두빛 꿈

 

* 강원도 정선의 연두빛 봄. 사진 출처: 숲과 사람(www.intoforest.com)

 

이미 "먼 길", "채송화꽃 그녀" 같은 불교적 색채가 짙은 그녀의 시를 여러 편 번역한 터라 AI 번역기를 써보면 어떻게 번역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시에는 '햇살 한짐', '매지 구름', '늘어지는 한나절' 같은 한국인이라 해도 머리속에 그려지는 사상(事象)이나 마음에 느껴지는 정서가 다소 복잡했기에 AI 번역기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금년 들어 챗GPT 등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자연어 검색, 리포트 작성 및 요약, 주제어 기반의 그림 그리기 등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신기술 개발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AI 번역기의 실력을 애써 평가절하했던 나로서도 챗GPT를 이용하면서 신기술의 발전속도가 기대 이상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11부터 KoreanLII 콘텐츠의 번역을 일부 Papago와 Google, DeepL에 맡기기로 한 바 있다. 나아가 한국 시의 번역도 AI 번역기를 써보기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우리의 시어(詩語)는 아무래도 한국어 말뭉치를 제일 많이 수집해 놓은 Papago가 번역하기에 적임일 것 같았다.

"3월" 시를 조금도 주저함이나 막 없이 영어로 옮겨놓은 Papago의 결과물은 다음과 같았다.

 

By Papago

I was in the sun

Should I plant beans in my hometown
My father's voice is telling me not to sell it even if I die
It's not dry yet

 

Drag a piece of Madge's cloud
Will it rain if I hit it with a fine state
a cherry blossom with a red clay field
I'm going to bleed by myself

 

A slackening day
going back from one's hometown
One day, a light green dream

 

그런데 첫 행부터 실망스러웠다. '매기(묶기) 힘든 구름'이란 뜻의 매지 구름이야 어렵다 해도 '고향밭', '마르지 않은 목소리', '저 혼자 피다 진 꽃'을 영어로 옮긴 게 영 못마땅했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며 DeepL과 Google을 소환했다.

 

By DeepL

A little bit of sunshine
I think I'll plant some beans in my old field
My father's voice telling me not to sell even if I die
It's not dry yet

 

I wonder if I could take a piece of Madge's cloud
I'll hit it hard and make it rain
Rooted in the loess field I alone will bloom and die

 

A sagging day
Staying in my hometown and going back
One day a light green dream

 

By Google Translate

I made a bundle of sunshine
Should I plant beans in my hometown field?
My father's voice telling me not to sell even if I die
not yet dry

 

I dragged a piece of magic cloud
Should I hit it finely and make it rain?
Shepherd flower with roots spread in loess field
I would bleed alone

 

Half a day hanging out
stay at home
One day, a light green dream

 

역시 시의 번역을 인공지능에 맡기기엔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Papago가 우리의 어휘나 정서에 밝을 것이라는 것도 일종의 선입견(prejudice)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AI 번역기를 불신(不信)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Machine learning을 할 수 있게끔 그에 적합한 데이터를 입력하고 그 결과물을 고쳐주는 Fine Tuning 작업은 여전히 사람 몫이기 때문이다. 또 인공지능을 위한 학습자료의 준비, 정확한 피드백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체계적이고 정확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해야 하는 것이다.

 

* 아틀리에 스톰프에서 가곡 "마중"을 열창하는 소프라노 손지수. 출처: YouTube

 

3종의 AI 번역기를 이용해 영어로 옮겨놓은 "3월" 시는 오역도 적잖이 있고 원시(原詩)의 감흥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나 역시 아직은 설 땅(立地)을 잃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우리의 서정시는 물론 "산토끼" 같은 동시와 이은상・김동진의 "가고파"을 포함한 가곡, 유행가의 가사에 이르기까지 3백 편 가까이 영어로 번역하였던 게 헛수고는 아니었구나 다소 안심[1]이 되었다.

여기서 허림 작시 "마중"의 영역 가사를 소프라노 손지수의 노래를 들으며 순 우리말 시와 함께 읽어보면 어느 정도 오리지널의 감동이 느껴진다.

 

물론 페르시아의 4행시 Rubaiyat의 의미와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영어의 4행시(quatrain) 규칙에 따라 훌륭하게 번역해 놓은 영국의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처럼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KoreanLII에 소개한 설도(薛涛)의 "춘망사(春望詞)"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김안서가 원래의 한시(漢詩)를 한국적인 시 "동심초(同心草)"로 옮기고 김성태가 다시 애조 띤 가곡으로 탈바꿈시켜 놓은 것이 항상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동안 중국의 한시를 영어로 번역한 것도 축자역(逐字譯)에서 의역(意譯)까지 여러 가지 버전이 있음을 알았기에 AI 번역기의 수준이 크게 향상되더라도 사람이 하는 번역 역시 최종 파인 튜닝을 위해서는 반드시 참조해야 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2]

 

아무리 잘해도 AI 번역기는 전기안마의자 같은 기계가 아닌가? 아무렴 환자가 아픈 자리 반응을 살펴가며 누르고 풀어주는 수기치료 마사지 같을까?

내가 용기를 내어 파인튜닝으로 손질한 목필균 시인의 정감(情感) 넘치는 "3월(March)"의 영역시는 다음과 같다.

 

By Prof. Whon-il Park

Moving a bundle of sunbeam,
Should I plant some beans at my hometown field?
My father's voice telling me not to sell even if I die
Couldn't get dried yet.

 

Dragging a piece of unbundled cloud,
Should I hit it finely and make it rain?
Shepherd flowers with roots spreading in loess field
Would bloom alone and die.

 

While half a day hanging out,
I could stay at hometown.
One day, it's a light green dream.

 

위의 시 각 연의 첫 행은 본문의 주어와 일치하는 범위에서 분사구문으로 처리했으며, 1~2연의 둘째 행은 의문형으로 했다.

1~2연의 마지막 행은 봄철의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가정법 사고를 반영했다.

3연이야말로 AI 번역기가 도저히 옮기기 어려운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은 고향 산천의 초목이 연두빛을 띠기 시작하는 3월의 어느날 춘분 날부터 낮이 길어지는 만큼 깜박 고향집 터밭의 꿈을 꾸었던 것이다. 

비록 내가 번역한 것일망정 Papago, DeepL, Google 번역기가 영어로 옮긴 것보다 훨씬 머리와 가슴으로 이해하기 쉬웠다.

 

Note

1] 2022년 말 초거대 언어 모델(LLM)에 기반을 둔 챗GPT의 등장, 슈퍼컴퓨터와 엄청난 규모의 말뭉치(corpus)를 이용한 다국어 번역기 DeepL이 한국어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에 따라 우리말을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해온 필자로서는 존재론적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KoreanLII의 접속자 수가 급증하고 그것이 미국, 싱가포르 등 봇을 이용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활동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체계적이고 잘 정리된 한국법과 시문학에 관한 데이터 세트로서 KoreanLII가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2] 최근 AI의 번역 능력이 괄목상대할 만큼 발전함에 따라 AI가 인간 번역가를 대체하는 분야와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마치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밀어냈던(Video killed the Radio Star) 것처럼 번역가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전문 번역가들도 시(詩)라든가 현실 지식에 기반하지 않은 ‘판타지’ 등 일부 영역을 제외하면, AI가 인간 번역가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특히 과학서는 정형화된 서술 방식이 있어 AI 번역 친화적인 텍스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보전달보다 작품 특유의 문체, 저자의 에너지와 호흡 전달, 문맥이 중요한 문학작품에서는 AI번역에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간단한 번역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많지만  AI를 압도하는 ‘고품질’ 결과물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인간 번역가의 희소가치가 생겨 오히려 전보다 더 대접받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조선일보, "AI는 번역가를 대체할까?", 2023.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