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고향이 있으므로 고향을 떠난 사람은 고향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5월 말이면 꽃도 다 지고 산에는 신록이 우거지며, 들판에서는 모내기도 끝날 무렵이니 고향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고향과 관련된 것이면, 그것이 꽃나무이건, 어깨동무 친구들이건, 산과 들 아니면 물레방앗간이건 아련한 추억과 함께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4자성어로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한다.
이와 같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러 가지 노래로 불려지고 있다. 대중가요(Korean pop song)도 있지만 유행을 타지 않는 가곡(Korean lyric song)이 훨씬 많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 때 외국에 유학하여 근대음악을 공부한 선각자들에게 고향은 애향심에서 나아가 조국애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20~30년대에 홍난파, 현제명, 김동진, 채봉선 같은 음악가들은 고향을 노래한 시에 다투어 곡을 붙였던 것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고향을 그리는 노래를 영어로 번역 소개한다면 외국인들도 우리와 비슷한 감정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태껏 제대로 영역된 것이 없음을 알고 놀랐기에 아래 몇 편의 고향을 그리는 노래를 영어로도 번역하여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1]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학교 종"과 함께 맨처음 배우는 노래 "고향의 봄"이 먼저 떠오른다.
아동문학가 이원수의 동시에 우리나라 근대음악의 선구자 홍난파가 곡을 붙였다.
설령 고향에 대한 추억이 그 노랫말과 다를지라도 누구나 "고향의 봄"을 부를 때면 추억에 잠기게 만드는 동요이다.
고향의 봄 Spring of My Hometown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My hometown is the mountain valley of flowers.
Being decorated by flowers of peach and apricot, and azalea.
My village looked like a floral palace of beautiful colors.
I miss those days when I played around the village.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My old hometown was the village of flowers and birds.
When a wind blew over the green field from south,
eeping willows beside the creek were dancing.
I miss those days when I played around the village.
두 번째는 "가고파"이다. 한국판 "I want to go Home"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노산 이은상이 지은 4연으로 된 시조가 동아일보 1932년 신년호에 실렸는데 1년 후 일본에서 바이올린 공부를 하고 있던 약관 20세의 김동진이 이 시조시에 감동한 나머지 곡을 붙인 것이다.
가고파 Gagopa
이은상 작시, 김동진 작곡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My hometown at the South Sea, I see the blue waters.
I'll never forget the quiet sea even in my dreams.
At this time when the seagulls are flying, I want to go home again.
I miss those friends whom I played with when I was young.
Wherever I go, I'll never forget those playmates.
These days I wonder what they are doing, and miss them so much.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어울려 옛날같이 살고 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I think the seagulls and those friend still remain at hometown.
How come I left hometown and live away from home?
I want to return home throwing away everything.
Upon returning and united with them, I want to live along.
With my heart wearing childlike clothes, I'll stay with them.
At that time, we didn't know tears and I want to go back.
현제명이 작사 작곡한 "고향 생각"은 미국 유학 시절에 만들었다가 1932년 귀국한 다음에 발표하였다.
행간에 고향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일제 말에 친일행각을 벌였다고 비판을 받았지만, 그가 서울대학교에 음악대학을 설치하고 특히 국악 교육에 힘을 쏟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향 생각 Thinking of Hometown
현재명 작사ㆍ작곡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After sunset, it’s getting dark, and there is no visitor.
I feel lonesome when I look at the bright moon.
Where are my friends? Sitting alone,
I still shed tears while thinking of one thing and another.
고향 하늘 쳐다보니 별 떨기만 반짝거려
마음 없는 별을 보고 말 전해 무엇 하랴
저 달도 서쪽 산을 다 넘어 가건만
단잠 못 이뤄 애를 쓰니 이 밤을 어이해
When I look up toward the hometown sky, plenty of stars are twinkling.
It is no use talking to those stars with no heart.
The moon is flying to the mountains in the west.
What shall I do as I cannot sleep any more?
그 다음으로는 정지용 시인의 "고향"과 "향수(鄕愁)"를 꼽을 수 있다.
고향이 옥천인 정지용은 17세에 고향을 떠나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와 일본 교토에 있는 도지샤(同志社) 대학을 다녔다. 휘문고 시절부터 시문학 동인지에 여러 시를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과 귀국 후에도 시작(詩作)과 「문장」지(文章誌)를 통한 신인 발굴에 힘썼다. 해방 후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경향신문의 주간과 여화여대 교수를 역임하였는데 6.25 당시 납북되었다가 전란 중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지용의 시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다듬고 절제된 표현미가 뛰어남에도 그가 해방 후 잠시 사회주의 계열의 조선문학가동맹(朝鮮文學家同盟)에 관여하고 납북되었다는 이력으로 인해 한동안 출판이 금지되었다. 이에 따라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채동선이 그의 시 여러 편에 곡을 붙여 예술가곡으로 발표하였음에도 1932년의 첫 가곡인 "고향"은 같은 멜로디에 이은상이 새로 작시한 "그리워"로 불려지기도 했다. 1988년 월북 예술가에 대한 금지가 풀림에 따라 그의 시는 다시 "고향"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고 향 My Hometown
정지용 작시, 채동선 작곡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려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이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Even though I’ve returned home,
I’m afraid it’s not my hometown.
As I know a mountain bird holds eggs this time
and a cuckoo is singing its seasonal song,
My mind cannot stay at home.
It’s like a cloud loitering over a distant harbor.
Today I climb up alone to the top of a mountain.
A while flower greets me warmly,
but the grass reed which I used to blow
in old days doesn’t sound any more
with bitter taste left on my dry lips.
Tho’ I came back home again,
the long-cherished sky looks remote and blue.
정지용의 시가 해금되자 또 다른 시 "향수"가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정지용의 시를 읽고 감동한 가수 이동진이 대중가요 작곡가 김희갑 씨에게 의뢰한 곡을 성악가 서울대 박인수 교수와 듀엣으로 불러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처음에 김희갑 씨는 시가 너무 길고 곡조를 붙이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동진은 그 무렵 존 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가 함께 불러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Perhaps Love"를 들려주며 끈질기게 간청하여 6개월 만에 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 성악계의 몰이해로 국립오페라단에 가기로 내정되었던 신진 성악가 박인수 교수가 대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엄청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 듀엣곡은 아름다운 시에 걸맞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음이라는 격찬을 받고 이내 '국민가곡'이 되었다. 이 시의 영역은 미국에서 교수를 지낸 고 송재평 교수가 앤 라시드(Anne Rashid)와 공동 번역하여 그의 홈페이지 시선집에 올려놓은 것이다.
향수(鄕愁) Nostalgia
정지용 작시, 김희갑 작곡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This is the place where, toward the eastern end of that vast field,
the small brook that babbles old stories turns around,
and the brindled cow
cries sadly and slowly in golden glow.
How could you forget this place even in a dream?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워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This is the place where, longing for the blue light of the sky,
my heart has grown in this soil–
it would drench itself in the grassy dew
in search of the arrows I shot at random.
How could you forget this place even in a dream?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This is the place where the young sister would run, her hair
flying behind her ears,
like the night waves that dance upon the legendary sea,
and the ordinary-looking wife,
with her feet bare in the field for all four seasons,
would glean through what remains with the hot sunlight on her back
How could you forget this place even in a dream?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This is the place where the stars sparsely dot the sky
and shuffle their footsteps toward the unknown sand castle,
the frosty crows pass by the poor rooftop, howling,
and family sits around the faint light to talk together softly.
How could you forget this place even in a dream?
고향을 노래한 가곡과 가요는 수도 없이 많지만 윤용하의 "보리밭"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곡은 본래 황해도가 고향인 윤용하 음악가가 1951년 부산에 피난 와 있던 같은 20대 후반의 고향친구 박화목 시인에게 고향에 관한 시를 지어달라고 부탁하여 그 이듬해 발표하였다. 그러한 연유로 가사를 보면 고향친구를 그리워하고 함께 부르던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다. 이 정도가 되면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한 나머지 향수병(Homesickness)에 걸렸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노랫말이 시골풍경을 연상케 하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별로 인기를 못 얻었다. 그러다가 작곡자가 타계한 지 6년이 되던 1971년 문정선이라는 가수가 대중가요 풍으로 불러 공전의 히트를 하였다. 이후 대표적인 고향노래로 해마다 4월 하순 고창 청보리 축제가 열릴 때면 경향각지에서 널리 애창되고 있다.
보리밭 Barley Field
박화목 작시, 윤용하 작곡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노을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When walking through the path in barley fields,
I stop to hear who's calling.
Then I feel lonely with old thoughts and blow a whistle.
I can hear the gentle voice of a song.
Tho' turning around, I can see nobody.
Only an evening glow fills my eyes.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노을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Then I feel lonely with old thoughts and blow a whistle.
I can hear the gentle voice of a song.
Tho' turning around, I can see nobody.
Only an evening glow fills my eyes.
Note
1] 위의 詩들은 필자가 운영하는 KoreanLII.kr의 "Korean lyric songs"(이원수 "고향의 봄", 이은상 "가고파"), "Regional development" (정지용 "향수", 현제명 "고향 생각"), "Homesickness" (정지용 "고향", 박화목 "보리밭") 항목에 각각 한영 대역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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