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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누군가와의 오랜 인연

Onepark 2022. 12. 22. 11:13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되면서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사물)과 멀리 해도 아무렇지 않는 사람(사물)이 자연스럽게 구분이 되었다. 그동안 코로나 핑계대고 멀리 했던 사람과 포스트 코로나 후의 관계설정에 고심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

 

여기 한 편의 그림 같은 시가 있다. 

하루 농사일을 마친 시골 노인이 소를 외양간에 넣고 물을 먹는 소의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있다.

어스름이 깔린 저녁 적막에 쌓인 농가에서 시인은 평생 농사일을 해온 할머니와 그의 반려가 되어 묵묵히 일을 거들어온 소 사이에 따뜻한 정(情)이 오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록 화려한 색채는 없을지라도 정갈한 수묵화처럼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묵화(墨畫) - 김종삼[1]

Picture in Black and White    by Kim Chong-sam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의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On the neck of a cow drinking water

Grandma’s hand is put graciously.

Well, today is over

Together with them.

They console each other for hard work.

They console each other for loneliness.

 

* 김재현, "美소". 한우협회 주관 제5회 한우문화공모전 사진부문 수상작. 출처: 농업인신문 2011.11.11.

 

위의 시는 문득 다큐영화 <워낭소리>(2008)를 떠올리게 한다. 경북 봉화군 시골마을에서 농사짓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농사일에 쓰려고 키우는 늙은 소 누렁이의 마직막 1년간을 이충렬 감독이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였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트랙터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도 이 할아버지만 유일하게 소를 부리며 농사를 짓기에 다큐멘타리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누렁이는 평균수명 15~20년에 불과한 보통의 소와 달리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40년을 넘게 살았기에 관객들의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2] 독립다큐 영화로서는 기록적인 295만 관객이 이 영화를 보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봉화군의 촬영지에는 워낭소리 공원이 조성되기도 했다.

 

* Edwin H. Landseer (1802-1873)가 그린 어린 견주를 지키는 뉴펀들랜드 개.

 

Epitaph to a Dog - by Lord Byron

어느 뉴펀들랜드 개의 묘비명  - 조지 고든 바이런

 

Near this Spot

are deposited the Remains of one

who possessed Beauty without Vanity,

Strength without Insolence,

Courage without Ferosity,

and all the virtues of Man without his Vices.

This praise, which would be unmeaning Flattery

if inscribed over human Ashes,

is but a just tribute to the Memory of

BOATSWAIN, a DOG

who was born in Newfoundland May 1803

and died at Newstead November 18th 1808.

이 자리에
그의 유해가 묻혔다

그는 아름다움을 가졌으되 허영심이 없고

힘을 가졌으되 무례하지 않고

용기를 가졌으되 잔인하지 않고

인간의 모든 덕목을 가졌으되 악덕을 갖지 않았다

이러한 찬사가 인간의 무덤 위에 새겨진다면

의미 없는 아부가 되겠지만

충견 보우슨을 추억하며
그에게 바치는 헌사로는 정당하리라

그는 1803년 5월 뉴펀들랜드에서 태어나

1808년 11월 18일 뉴스테드 애비에서 죽었다

 

역시 낭만파 시인은 그의 반려견을 위해서도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3] 보우슨은 공교롭게도 광견병에 걸렸는데 바이런은 개에 물리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데도 정성껏 간호를 하며 마지막을 돌보았다고 한다.

얼핏 보면 충견에 보내는 찬사같지만 인간에 대한 풍자임을 알 수 있다.

묘비에는 이 시 밑에 각운(rhyme)을 맞춘 장문의 시가 적혀 있다. 개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본 것이기에 마음이 뜨끔하지 않을 수 없다.

 

<앞 부분 생략>

Oh man! thou feeble tenant of an hour,

Debas'd by slavery, or corrupt by power,

Who knows thee well, must quit thee with disgust,

Degraded mass of animated dust!

Thy love is lust, thy friendship all a cheat,

Thy tongue hypocrisy, thy heart deceit,

오, 인간이여, 노역으로 타락하고 권력으로 부패한

연약한 그대, 시간을 빌려쓰는 자여,

그대를 잘 아는 사람마다 욕을 하며 그대를 떠날 것이요.

움직이는 먼지덩이 같으니라고!

당신의 사랑은 탐욕이고, 당신의 우정은 속임수일 뿐이요.

당신의 혀는 위선, 당신의 심장은 기만이라니!

<중간 부분 생략>

I never knew but one — and here he lies.

나의 충직한 친구는 단 하나 — 여기에 그가 누워 있도다.

 

* 영국 노팅엄셔의 뉴스테드 애비 옛날 바이런의 영지에 서 있는 충견 기념비(1808)

 

우리는 옛날 학창 시절에 조침문(弔針文)을 공부한 세대여서 그런지 아끼던 물건을 하나 떠나 보낼 때에도 숙연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 동안 PC나 노트북, 휴대폰을 여러 차례 바꾸었거니와 지난 몇 년을 함께 했던 기계/도구일 망정 떠나 보낼 때는 한편으론 (아직 쓸만한데도 해체시켜 버린다니) 미안하고 안쓰럽기조차 했다. 나의 궂은 일을 처리한 것은 물론 온갖 비밀스러운 이야기와 사진 · 그림 · 동영상을 우격다짐으로 입력시키곤 했으니 말이다.

 

정년퇴직하는 학자로서 손때 묻은 책과 헤어질 때도 그러했다.

퇴직 교수가 학교를 떠날 때 부딪히는 제일 큰 문제는 연구실 서가를 가득 채웠던 각종 서적과 자료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이다. 학교 도서관에서는 공간부족으로 진즉부터 사절이고, 개도국의 대학도서관에서도 통관비 문제를 들어 도서기증을 반기지 않고 있다. 집에 갖다놓을 일부 귀중한 도서와 자료, 중고도서로 팔릴 만한 책 몇 권 외에는 모두 쓰레기처럼 버려야 한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연말에도 그 몇 배의 책을 버린다는 약속과 다짐을 하고서야 신간 서적 몇 권을 살 수 있었다.

 

* 강남 교보빌딩 로비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뭐니뭐니 해도 연말이 되니 예전처럼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진 않더라도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하물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연인이라면 더 말해서 무엇하랴!

1967년 어느 중학교 교무실에서 지루한 교사회의에 지쳐 있던 젊은 교사 둘이서[4] 즉석에서  두고두고 불리는 가곡을 탄생시켰다.

 

 

얼굴 - 심봉석 시, 신귀복 곡, 강혜정 노래

The Face   written by Shim Bong-seok and composed by Shin Gui-bok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A face was drawn unconsciously
When I intended to draw a circle.

It’s like a White Dream at that time
Dreamt in my mind

Your eyes were shining
Like dewdrops on a grass.

Your face disappeared
While lingering round and round in a circle.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갔던 오색빛 하늘나래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나르던 지난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곤 하는 얼굴

A face was drawn unconsciously
When I intended to draw a circle.

The sky was beautiful with five colors
As we were lifted by a rainbow.

At that time, we were flying
Like butterflies in the cloud.

Your face remained still
While lingering round and round in a circle.

 

Note

1] 김종삼(金宗三, 1921-1984) 황해도 은율 출신으로 평양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시마 상업학교를 졸업했다. 광복 후 극예술협회 연출부에서 음악 효과를 맡아보았으며, 6·25 때 피난지인 대구에서 시를 발표했고, 서울 환도 후에는 국방부 정훈국에서 10여 년간 PD로 근무했다. 1963년부터 동아방송국 음악부에서 일하면서 밤을 새워 음악을 감상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1951년 「돌각담」을 발표한 뒤 시작에 전념하여 1957년에는 전봉건, 김광림과 3인 공동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발간하였다. 그의 시들은 늘상 음악과 연결이 되어 독자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며, '선택과 배제를 거듭하여 살아남은 몇 줄의 문장'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특색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권영민 교수에 의하면, 김종삼은 위의 시를 불교의 심우도를 보고 쓴 것이라고 한다. 심우도는 불교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하는 불성(佛性)을 소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를 구도하는 자세를 다룬 선시(禪詩)의 맥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출처: 권영민, "묵화",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2.

 

2] 노동력도 떨어지고 갈수록 건사하기가 힘들어진 늙은소를 팔고 젊은소를 들이라고 자식들이 성화를 부리자 할아버지는 누렁이를 우시장에 데려간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늙고 고생만 하여 뼈가 앙상해진 누렁이 가격을 500만 원이라고 고집한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타박하는 우시장 상인들에게 할아버지는 절규하듯 외친다. “안 팔아!”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버린 노인과 늙은소의 우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사진출처: 영화 <워낭소리>.

 

3] 반려견을 사랑하는 바이런의 모습은 프로이센의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대왕을 연상케 한다. 프리드리히 2세는 상수시 궁에서 그레이하운드 여러 마리를 데리고 사냥도 하고 산책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상수시 가든 대왕의 묘소(독일인 방문객들은 감자를 보급함으로써 백성들을 기근에서 구해준 대왕의 묘에 감자를 바친다) 옆에는 왕비가 아니라 그의 유언에 따라 반려견들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4] 1967년 3월 서울 서강대학교 부근 동도중학교 교무실에서 교사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회의가 길어지며 따분해지자 젊은 음악교사 신귀복은 옆자리의 생물교사 심봉석에게 엉뚱한 제안을 했다. 제목을 '얼굴'로 정했으니 보고 싶은 ‘첫사랑’을 떠올리며 시를 지어보라고 했다. 심봉석 시인이 공책에 동그란 얼굴을 그리고 즉흥시를 짓자 신귀복이 즉석에서 멜로디를 입혀 곡을 완성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이라 불리는 '동무생각(思友)'과 그 탄생 과정이 아주 흡사하다.

'얼굴'은 처음엔 비공식적으로 라디오 방송 전파를 탔다가 1970년 신귀복이 가곡집 앨범을 낼 때 소프라노 홍수미가 처음으로 불렀다. 그 후 1974년 대학생 가수 윤연선이 포크 창법으로 불러 대중의 인기를 끌었고 임재범, 양희은, 테너 신동호 등이 다양한 버전으로 불러 중학교 음악교과서에 오르는 등 국민가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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