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3월 이후 중단되었던 대학 동기들의 월례모임을 가졌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 교대역 부근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함께 하므로 우리는 '마수회'라고 일컫는다.
이번 모임은 지난 5월 28일 서울법대 총동문회 2020년 정기총회에서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 상을 수상한 신희택 전 서울대교수가 동기들의 축하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신 교수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는 사정을 밝히고 일찍 자리를 떴다.
대신 서울법대 총동문회의 임원을 맡고 있는 대한상사중재원장 이호원 전 연세대교수가 서울법대인상의 수상 경위를 밝혔다.
신희택 교수야말로, 소시적에 '수재' 소리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는 우리 동기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 합격, 법대 수석졸업 및 대통령상 수상, 사법연수원(7기) 수석졸업, 미국 예일대 법학박사 학위(SJD)를 취득했다.
그런데 주위의 예상을 깨고 그는 법관의 길을 택하는 대신 김앤장에 들어가 우리나라 통상 및 국제투자거래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로스쿨 출범을 앞두고 2007년 모교 교수로 특채되었으며, 무역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정년퇴직 후에는 서울 국제중재센터(Seoul IDRC, KCAB International)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기고와 대입 예비고사 때부터 그와 1, 2위를 다투었으며, 서울가정법원장을 역임하고 연세대 법전원을 거쳐 대한상사중재원으로 옮긴 이호원 원장(위 사진의 맨 오른쪽) 역시 우리나라의 중재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 원장은 중재법 개정(2016) 작업을 주도하였고 그 동안 연구해 온 논문을 모아 최근 「중재법 연구」라는 책을 박영사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이 원장이 전해준 신희택 교수에 관한 희소식은, 올 들어 외국 두 나라가 관련된 ISD 사건이 국제중재로 가면서 신 교수가 의장 중재인(Chairman)을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안의 중대성이나 성격에 비추어 우리나라 중재전문가가 비중 있는 국제중재 사건의 의장 중재인에 선임된 것은 국내 최초일 뿐만 아니라 홍콩이나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와 경쟁하고 있는 서울 국제중재센터의 입장에서도 신기원을 이룩한 쾌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 국제중재센터 의장은 무보수로 봉사하는 자리이지만, 국제중재 사건의 의장 중재인은 보수가 억대이므로 우리가 이 자리에서 얼마든지 비싼 음식을 시켜 먹어도 된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신희택 교수가 떠난 후 우리끼리 식사를 하면서 자연히 학창 시절로 화제가 옮겨갔다.
서울법대 산악부에서 국내의 여러 산에 올랐던 박종식 동기(위 사진의 맨 오른쪽)가 여러 동기들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는 우리가 딱 한 나라만 여행할 수 있으면 터키를 추천한다고 말했는데,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으면 지난 봄 이란에 가서 우리나라의 몇 분의 1도 안 되는 적은 비용으로 하루 종일 스키를 탈 수 있었을 거라면서 아쉬워했다. 나는 다행히도 해외여행이 불가한 요즘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이란과 터키를 모두 가보았다.
나는 이란에 갔다 오면 나중에 미국에 갈 때 적지 않은 돈 내고 따로 영사 면접을 거쳐 미국 비자를 새로 받아야 한다는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필자의 이란(페르시아) 여행기는 여기를 클릭.
화제는 서울법대 산악부 동기들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이어졌다.
머리 좋고 집념이 남달랐던 B 변호사의 일화, 폭설이 내릴 때 하루에 100m도 전진할 수 없었던 대청봉 등정기, 또 다른 설악산 등반 때 길을 잃고 죽을 고비를 넘겼던, 지금은 유명을 달리 한 K 동기의 사건 등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자연히 환경부에서 지방환경청장을 역임한 후 키르키스탄에서 자문관을 지내고 돌아온 노부호 동기(위 사진 왼편에서 두 번째)가 그곳의 등산 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은퇴 후 KOICA 전문가로서 '중앙아시아의 알프스' 경관을 자랑하는 키르기스탄에서 2년 근무하는 동안 그를 찾아가지 않은 우리로서는 참으로 좋은 기회를 놓친 셈이었다.
나와 하헌표 동기(위 사진의 왼편)는 대학 4학년 때 서울대 간호학과 여학생들과 함께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이야기를 하면서 옛 추억에 잠겼다. 그때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모교 강단에 섰던 30대 중반의 송상현 교수가 우리의 인솔교수였다. 그리고 섬씽이 생길 뻔도 했던 꽃다운 여학생들이 지금은 환갑이 훌쩍 넘은 할머니가 되었겠다면서 서로 웃었다.
나는 이날 모임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목이나 어깨가 아픈 친구들에게 수기치료를 해주었다. 이제 우리 나이가 되면 오십견이나 노화현상으로 또는 손주를 돌봐주다가 어깨, 허리, 무릎이 성치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2년 전부터 교회 의료선교 봉사에 참여하려고 배웠던 수기치료를 금년 여름에는 아무데도 갈 수 없게 되었으니 가까운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도 뜻깊은 일인 것이다.
한 친구는 내가 잠깐 동안 목과 어깨 결리고 뭉친 곳을 풀어주었을 뿐인데도 여기저기서 도수치료 받은 것보다 시원하다고 연신 고맙다고 했다. 만일 우리 교회에서 코로나 사태로 중단된 수기치료 강습회가 재개되면 실습대상(maruta)으로라도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연부역강(年富力強)하며
은퇴를 모르는
대학동기들
평생 일군 분야에서
여전히
군계일학(群鷄一鶴)일세
SNU Law ‘71 classmates
Still cut conspicuous figures
After retir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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