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전 8.13 Book's Day에 이어령 선생님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분은 저서 뿐만 아니라 어록, 100년 서재 등 온갖 발자취를 인쇄물, 동영상, 실물로 남기고 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A4 한 장만으로는 부족한 수많은 직함까지 포함하면 이어령 선생은 기네스북에 오르실 만하다. 보통 사람은 그의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도 남기지 못할 것 같다.
며칠 전 교수로 정년 퇴직한 친구가 단톡방에 올린 글을 보았다. 같은 아파트에 사셨던 어느 老교수님이 돌아가신 후 그분의 흔적이 재활용 쓰레기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대학 재직 시절의 기념사진부터 하드바운드 책 수십 권, 브라운 톤의 고급 오크 가구 집기까지 나와 있더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그와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경종을 울리는 것 같았다.
김 훈 작가는 매일 아침 집필실로 가서 필통 속의 여러 자루 연필을 정성껏 깎은 다음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은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게끔 날마다 자기가 쓰던 물건을 한아름씩 내다 버린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정년 퇴직한 지 6년이 되었음에도 교수 시절의 각종 책자, 저널, 특히 이것 저것 모아둔 자료 등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이 방 저 방 쌓아놓고 있는 터라 그 老교수님의 사정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김 훈 작가처럼 하기에는 애착이 가는 유형ㆍ무형의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맨처음 머리를 스친 생각은 욕심을 부리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어령 선생 따라갈 만한 업적을 남기지도 못한지라 그분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주변 사람들의 예에 비추어 내가 떠난 다음에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를 생각하며 신변을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미 관 속에 들어가 있고 가족과 친지, 지인들이 내 빈소를 찾아 와서 무엇을 떠올릴 것인지 리스트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여기에 미흡한 것이 있거나 입증 자료가 필요하다면 이런 것을 집중적으로 정리해 놓으면 될 테니 말이다.
물론 내 생각과 기준, 이를 기술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나 자금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그때그때 수정하거나 업데이트하면 될 것이다.
A: 당장 준비해 놓을 것
- 영정사진, 예금ㆍ유가증권ㆍ귀중품 등 재산목록
- 저서, 용역보고서, 그 밖에 기념할 만한 논문, 친필 노트와 메모
- 소품: 손때가 묻은 아끼던 물건만 남기고 나머지는 수시로 버림
B: 시간을 두고 정리할 것
- 사진: 앨범에 들어 있는 것은 물려줄 사람을 지정하고, 디지털 형태의 것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분류하고 정리 또는 폐기
- PC나 인터넷 상의 디지털 기록: 디지털 유산(digital inheritance)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관리자를 정하여 인계
- 웹사이트: KoreanLII 같은 백과사전류는 책임지고 관리할 후계자를 정하고 학교 홈페이지는 관리자에게 연락하여 폐쇄
- 블로그: 제3자가 보기에 유익하고 내용이 알찬 것만 따로 남기고 단계적으로 정리
- 전자적 형태의 일지나 발간물 등: 제3자 특히 후세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만 선별하여 접근 용이한(easily accessible) 형태로 전환
C: 기회 있는 대로 처분할 것
- 서가의 책, 저널
- 스크랩해 놓은 신문ㆍ잡지
- 와인, 녹차, 문구류: 속히 소비하거나 쓸 만한 것은 주변에 증여
현재 이용 가능한 첨단기술을 적극 활용하려면?
- 인공지능(AI)의 적극 활용: 패턴이 일정한 일지, 스크랩 자료
- 편집ㆍ출판 대행사에 의뢰하여 프린트 저서로 발간
- 오디오 북으로 제작: 블로그 콘텐트 중 대담 형식으로 되어 있는 기사
과거 숙달된 조교에게 작업을 지시하듯 최신 첨단기술의 힘을 빌려 이러한 당면과제를 처리하기로 했다.
내게 필요한 최신 기술은 YouTube에 나와 있으므로 하나씩 배워가며 일을 처리하고 있다.
Assignment 1. 신문 스크랩 등을 KoreanLII, Blog 등에 인용하기
신문 스크랩 철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성공이란 ~" 시를 최영미 시인이 소개한 글을 읽게 되었다.
시 원문을 인터넷에서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원문과 번역문을 번갈아가며 읽다가 KoreanLII에는 '성공'이란 항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KoreanLII의 Life 항목에 에머슨의 시 "What is Success?"를 소개한 바 있으므로 KoreanLII에 Success 항목을 새로 만들어 에밀리와 에머슨의 시를 나란히 올리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본문 중에 Success의 개념이나 기준은 영문 Wikipedia를 참조하면 되었으나 KoreanLII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서는 한국 아니 한국인만의 독특한 성공사례를 소개할 필요가 있었다. Wikipedia 원칙 중에는 '주관적 의견 금지'(No original research)가 있지만 KoreanLII야 강의교재용으로 만든 것이니 만큼 상관 없었다.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자랑할 만한 한국의 성공 사례로 드는 다섯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기간에 달성한 것, 산업화는 늦었으나 정보화는 제일 빨랐고,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발전한 것, 중진국 함정을 극복한 것, 민둥산에 산림녹화를 실현한 것 등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었다.
영어로 된 상세한 설명은, 유능한 조교에게 일을 시키듯, AI 검색기에다 맡겼다.
따로 사전을 찾을 필요 없이 중진국 함정을 the middle income trap으로 번역하는 등 그 결과물을 몇 군데만 손질하면 그대로 KoreanLII에 올려도 좋을 것 같았다. 본문의 설명에 필요한 주석은 생각나는 대로 추가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색적으로 미국 유수의 로스쿨에서 두 차례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댈러스의 SMU에서 은행 실무경험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할 수 있었고 복직한 다음에 〈국제거래법〉(1996) 저서를 발간하여 대학교수로 전직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 미국 SMU 로스쿨에서의 1년 (1993-94)
두 번째는 경희대학교에서 처음 연구년을 맞아 UCLA 로스쿨에 방문학자로 가서 연구과제와 관련 있는 강의도 듣고 패컬티 세미나에 참석한 일이다. 그때는 미국 곳곳을 여행 다니면서 현지 사회를 좀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 UCLA 로스쿨 및 미국 사회 견문기 (2007)
Assignment 2. 휴대폰 안의 사진 및 데이터 백업하기
지난 5월의 이탈리아 여행 때 찍은 1천장이 넘는 사진, 작년의 프랑스 여행 때 찍었던 그만한 분량의 사진을 정리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와이프는 잘 된 사진 몇 장 빼놓고는 다 삭제해버렸다고 했으나 나중에 슬라이드 비디오로 만든다면 하찮은 사진이라도 필요할지 몰랐다.
What if my smartphone is lost?
내가 아는 분은 휴대폰에 사진 찍은 것은 물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단상을 적어두는데 외출하는 길에 휴대폰을 잃어버려 몇 시간 지옥을 체험했다고 하셨다. 다행히 집에서 아파트 옥외 주차장에 가는 길목에 빠트린 것이어서 아파트 경비원에게 연락해 찾으셨지만 휴대폰에 들어 있는 각종 사진과 자료, 원고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공포심마저 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도 큰 고민거리였으므로 PC든 클라우드든 휴대폰 안의 모든 데이터를 백업해 두어야 했다.
스마트폰과 PC를 케이블로 연결하거나 삼성 앱을 써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으나 각기 장단점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Send Anywhere란 앱이 WiFi만 되는 곳이면 편리하게 쓸 수 있음을 알았다. WiFi 속도가 느려 다소 시간을 걸렸지만 마침내 작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휴대폰 사진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왜냐하면 어떤 주제어를 놓고 검색하는 게 신기하고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Assignment 3. 블로그 안의 대담 기사를 오디오 파일/동영상으로 변환하기
매달 13일 Book's Day에 Tistory에 올리는 글은 Guest와 Professor의 대담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동안 읽은 서가의 책들을 P가 G에게 설명하면서 주요 대목은 원문 그대로 인용하는 식이다. 벌써 수십 편에 이르렀으므로 지난 것을 다시 보고 싶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신문의 칼럼을 눈으로 읽지 않고 귀로 듣게 해주는 서비스가 있는 것처럼 나도 오디오 파일로 듣고 싶어졌다. 눈을 피로하게 만들기보다 마치 자장가를 듣는 것처럼 듣다가 잠이 들어도 좋을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텍스트를 읽어주는 T2S 앱을 여러 가지 테스트하는 중이다. 이미 성경 통독은 고 하용조 목사님의 음성으로 듣는 것도 실현되었거니와 빅테크들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접근성이 개선된 소프트웨어와 주변기기를 선보이고 있다.
만일 좀더 쉽게 변환할 수 있는 내 손에 맞는 앱을 찾는다면 동영상으로 만드는 일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Assignment 4. 가상세계에 Poets' Corner 만들기
KoreanLII에 법 개념과 관련이 있는 국내외 시를 찾아서 우리말과 영어로 올리다 보니 지난 5년 동안 영어로 번역된 한국의 시, 고전시가 300편이 넘었다. 외국 시를 한글로 번역한 것도 70여 편, 번역은 마쳤으나 그와 연관된 법률 항목이 없어 대기상태에 있는 시도 100편 가까이 된다.
이 정도면 메타버스에 '시인의 코너'(Poets' Corner)를 만들어 남 녀 아바타가 고객의 요청에 따라 주제나 분위기, 상대방에 어울리는 시를 골라서 우리말과 영어로 낭송해주는 것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아직은 구상단계에 있으므로 조만간 웹디자이너, 웹투니스트, 관련 전문가와 협업으로 멋진 메타버스에 시 세계를 열어보고 싶다.
Assignment 5. 테스트
위의 기사를 시험삼아 오디오 파일로 만들어 보았다. 동영상을 만든다면 새로 배워야 할 게 엄청 많아 보였다.
To be supplemented and continue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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