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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내 고향의 시인, 신석정 선생

Onepark 2023. 7. 24. 23:00

마치 먼 이국 땅에서 오랜만에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시인 신석정(申夕汀. 본명 申錫正, 1907~1974)은 전북 부안 출신으로 동국대학교 전신인 불교전문강원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김제고교와 전주상고 국어교사를 지냈다.

내가 전주에서 살 때 그분을 전북이 자랑하는 시인이라고들 말했다.

나에게는 사촌형수의 친척이므로 사촌의 팔촌보다는 가까운 사이였던 셈이다.

 

엊그제 친구가 보내준 시 가운데 신석정 시인의 시가 여러 편 들어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오랜 마음 닦음 후에 나타나는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은 시어(詩語)들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중 몇 편을 읽고 또 읽으면서 영어로도 옮겨 보았다.

여기서 인공지능(AI) 번역기를 써 볼 생각을 하였지만 "그 마음" 첫 연에서 그만 막히고 말았다. 우선 AI는 주어와 객체를 혼동하기 쉽고, '사사로운 일'로 마음을 닦았다는 건지, 얼룩진 그림자가 생겼다는지 건지 분간을 못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도 시인의 마음이 되어 또 과거의 경험을 살려 여러 번 되풀이 읽어야 비로소 감이 잡히는데 말이다. 

 

구름이 떠가는 하늘 아래 대숲에 바람이 쏴~ 하고 불었다는 대목에서는 갑자기 고향 산천이 그리워졌다.

중턱에 절이 있는 승암산 정상에서 바위 타는 스릴을 즐기고, 그 아래 한벽당에서 물놀이를 즐기곤 했었지~.

추억에 잠길 때 쏜살 같이 날아가는 새가 아니라 꽃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한 마리의 나비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시인이 한 마리의 작은 나비도 쉬어가도록 했으니 옛날에 살았던 방천(防川)가 버드나무집의 꽃밭, 부속초등학교 운동장, 전주천 자갈밭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 전주 교동 한옥마을 뒤로 보이는 승암산(중바위), 천주교 성지 치명자산이다. 사진출처: jb포스트

 

그 마음에는   - 신석정

In That Heart  by Shin Seok-jeong

 

그 사사스러운 일로

정히 닦아온 마음에

얼룩진 그림자를 보내지 말라.

For that private matter,
don't send a stained shadow
to one's heart which has been cultivated.

그 마음에는

한 그루 나무를 심어

꽃을 피게 할 일이요

In that heart,
plant a tree, and
wait until it will bloom.

한 마리

학으로 하여

노래를 부르게 할 일이다.

Let
one crane
sing a song eventually.

대숲에

자취 없이

바람이 쉬어 가고

In a bamboo forest.
the wind has a rest
without any trace,

구름도

흔적 없이

하늘을 지나가듯

As if a cloud is
passing through the sky
with nothing left behind.

어둡고

흐린 날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받들어

On a dark and
cloudy day
hold it firmly lest it should sway.

그 마음에는

한 마리 작은 나비도

너그러게 쉬어 가게 하라.

In that heart.
let even a small butterfly
have a rest in peace generously.

 

*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 채석강의 저녁놀. 사진제공: 부안군청

 

정년퇴직 후에,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나의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 전에는 아유회나 술자리, 노래방에서 노래도 종종 부르곤 했는데, 심지어는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를 때에도 마스크를 쓰니까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면 '나의 인생 노래'는 무엇이었는가 곰곰 생각하게 된다.

 

 

나의 노래는   - 신석정

My Song is  by Shin Seok-jeong

 

나의 노래는

라일락꽃과 그 꽃잎에 사운대는

바람 속에 있다.

My song is
in the lilac blossoms and the wind
passing thru their petals.

나의 노래는

너의 타는 눈망울과

그 뜨거운 가슴속에 있다.

My song is
in your burning eyes
and your passionately heated heart.

나의 노래는

저어 빨간 장미의 산호 빛 웃음 속에 있다.

My song is
in the coral like laughter of those red roses.

나의 노래는

항상 별같이 살고파 하는 네 마음 속에 있다.

My song is
in your heart that always wants to live like a star.

나의 노래는

흰 나리꽃이 가쁘도록 내쉬는 짙은 향기 속에 있다.

My song is
in the thick scent inside the short breath of white lilies.

나의 노래는

꽃잎이 서로 부딪치며 이뤄지는 죄 없는 입맞춤 속에 있다.

My song is
in the innocent kiss of petals against each other.

나의 노래는

소쩍새 미치게 우는

어둔 밤엘랑 아예 찾지 말라.

My song is
out of reach in the dark night,
when a scops owl cries like a madman.

나의 노래는

태양의 꽃가루 쏟아지는

칠월 바다의 푸르른 수평선에 있다.

My song is
on the blue horizon of the July ocean,
where the sun rays pour into.

 

하지만 옛 생각에 잠겨 노래를 부를 때에는 자랑하듯 불러서는 안 된다. 소리 없이 추억의 상대방을 앞에 두고 속삭이듯 해야 한다.  목청을 높이는 순간 추억이 깨져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는 아무도 듣지 않아도 나의 노래는 소쩍새처럼 애닯고 바닷가의 햇살처럼 빛나고 장미꽃처럼 빨갛고 나리꽃처럼 향기가 진할 것임에 틀림없다.

 

* 범부채꽃. 사진제공: 김상문

 

눈맞춤  - 신석정

Eye Contact  by Shin Seok-jeong

 

바람은 연신 불고 있었다.

The wind was blowing steadily.

안개 같은 비 사이로

비 같은 안개 사이로

엷은 햇볕이 내다보는 동안

Through the misty rain,
through a mist like rain,
while the sun shines out,

문득

떠난 지 오랜 ‘생활’을 찾던 나의 눈은

아내의 눈을 붙잡았다.

아내의 눈도 나의 눈을 붙잡고 있었다.

All of a sudden,
My eyes looking for the ‘life’ since it left long time ago
Caught my wife's eyes.
Her eyes were also holding mine, too.

불현듯 마주친

아내와 나의 눈맞춤 속에

어쩜 그토록 긴 세월이 흘러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몰랐다.

Unexpectedly they encountered each other
In the eye contact between my wife and me
How can such a long time go by ……
I didn't know that.

치열(齒列) 한 모서리가 무너진 아내는

이내 원뢰(遠雷)처럼 조용히 웃고 있었다.

조용한 우리들의 눈맞춤 속에

원뢰가 아스라이 또 들려오고 있었다.

My wife whose teeth have partly collapsed
Soon, smiling quietly like a distant thunder.
In our quiet eye contact
Wu
Ru
Ru
Ru
A distant thunder was rolling in again.

 

위의 시에서는 반백 년을 해로한 아내와 말은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나누는 교감(交感)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떠난지 오랜 생활을 찾고 있었다니, 이 시인은 집안살림은 모조리 아내에게 맡겨 놓고 밖으로만 나돌아다닌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 -- 원뢰(遠雷)가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청마의 시 "바위"에서도 원뢰 소리가 울린다.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또 장마철에 님과 헤어질까 두려워하는 가녀린 여인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당신을 붙잡을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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