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집콕 하면서 소일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얼마 전 이 블로그에 기사를 올릴 때 그와 관련된 음악을 찾으려고 YouTube 검색창에 입력을 했다. 그랬더니 해당 음악의 공연장면 동영상과 함께 이상한 화면이 뜨는 것이었다. 검은 바탕에 큰 활자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는 말이 색색깔로 나와 있었다. 일반적인 YouTube 동영상 썸네일과는 달리 촌스럽게 보이는 PT용 슬라이드 화면이었다.
전에 모 라디오 방송에서 양희은이 진행하던 청취자의 '인생 사연' 프로그램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궁금한 나머지 뮤직 비디오를 찾는 일을 멈추고 클릭을 하니 진행자 혼자서 목소리를 바꿔가며 제보자의 기막힌 사연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마침 컴퓨터 모니터를 보느라 눈이 피곤해 있던 터라 눈을 감고 듣기로 했다. 아니 조금 후에는 해당 채널을 휴대폰에서 찾아 거의 눕다시피 앉아서 '청취 삼매경'에 빠진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다음은 불문가지다. 다들 경험했듯이 YouTube의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스마트폰 이용자의 취향을 파악하여 그와 유사한 채널을 계속 보여주는 것이었다. 비슷한 YouTube 채널이 너무 많아 '구독'을 누르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이를 계기로 YouTube, Pod Cast에는 책을 읽어주는 채널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았다. 스마트폰이 라디오 아닌 라디오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T2S 앱을 이용하면 텍스트 파일을 낭독해주기도 하니 이미 번역기로도 쓰이고 있는 스마트폰의 용도는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여 하루 일과 중 오후 시간은 이러한 사연을 청취하는 일(?)로 채워졌다. 한 두 편만 들어도 1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YouTube 방송에 나오는 기막힌 사연의 주제는 실로 다양했다.
몇 가지 키워드를 나열해 본다면 시댁, 시모, 상견례, 연애, 파혼, 결혼, 이혼과 같이 남녀의 사랑과 결혼, 시댁과의 갈등을 다룬 내용이 제일 많아 보였다. 불륜, 상간녀, 금지된 사랑 같은 막장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인연, 은혜 보답, 복수, 참교육, 사이다처럼 반전(反轉)의 드라마를 다룬 사연도 있었다. 감동적인 사연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 탓인지 고아, 보육원, 왕따, 우정, 성공 등 꿈을 실현한 주인공의 인생 스토리도 적지 않았다.
하도 드라마틱한 내용이 많아 처음엔 웹툰 같이 전문 작가가 지어내는 스토리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사연 많은 청취자가 제보한 내용을 약간 윤문(潤文)을 했을진 몰라도 처음부터 꾸며내긴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적인 사항을 언급할 때는 해당 분야 종사자가 아니면 모를 용어가 튀어나오는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역시 단기간에 조회수가 많거나 감동적인 사연부터 골라서 듣고, 그러다보니 내가 애청하는 채널도 생기게 되었다.
그동안 청취했던 몇 가지 사연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話] 사연제보자("나")는 어렸을 때 군인이던 아버지가 철도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다.[1] 사고 직후 아버지는 삶을 비관하고 술을 마시며 방황하셨다. 그러다가 외동딸이 크는 것을 보면서 미싱사로 새 삶을 시작하셨다. 몇년 후 옷 수선집을 차리신 아버지를 도와 나 역시 미싱 작업도 하고 원단과 부속자재를 구입하는 일을 거들었다. 그러다가 디자이너의 꿈을 품고 일류대학 디자인학과를 다녔다. 대기업에 취업면접을 볼 때 미싱 작업과 원단을 잘 안다는 게 돋보여 특채가 되었다. 디자인실의 막내로 들어가 거의 막노동 수준으로 일을 했다. 어느날 방송국 PD가 취재차 촬영하러 와서 나이가 비슷한 내게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가 일을 마치고 가면서 커피 담은 컵에 연락처를 적어 주었는데 얼음이 녹으면서 번호가 지워져버려 이것으로 그와의 인연도 끝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일속에 파묻힌 나머지 그를 잊어버렸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난다고 했던가. 그해 연말 행사 때 그 PD가 초청받은 하객으로 나타나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 후 그의 데이트 신청을 받고 사귀게 되면서 결혼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우리집에 처음 인사하러 왔을 때 거실에 걸려 있는 우리 가족사진에 관심을 보였다. 군복을 입은 젊었을 적 아버지 사진도 찍어갔다. 며칠 후 겨울비가 내리던 날 그의 모친(예비시모)이 우리집을 찾아와서 문을 마구 두드리시는 것이었다. 그가 찍어간 우리집 사진 속의 아버지가 철도사고로 다리를 잃은 게 자기네 탓이라며 통곡을 하셨다. 그의 어머니가 설명하시기를 당시 초등생이던 그가 철로가에서 탱탱볼을 가지고 놀다가 선로에 떨어진 공을 주우러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만 발이 선로에 빠져 오도가도 못할 때 열차가 달려왔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순간 어떤 군인이 달려와서 아들의 신발끈을 풀고 밀쳐내 겨우 목숨을 구했다. 그런데 화물열차가 지나간 후에 보니까 군인의 다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 부근에 있던 그의 아버지가 군인을 들쳐업고 마침 그 근처에 있는 국군 병원에 가서 결국 다리는 절단수술을 받아야 했다. 아이는 별로 다치진 않았으나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그 군인하고는 소식이 두절되고 말았다. 그의 아버지가 군복 명찰의 이름을 기억하고 국군 병원으로 찾아갔더니 의병제대하신 후였다 하고 연락처도 알 수 없었다. 양가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남은 사람들은 부부와 사돈지간으로 아름다운 인연을 새로 맺게 되었다. [출처: 썰을 사랑하는 남자]
[2話] 시골처녀(제보자)가 이웃마을 부자집 아들에게 시집 갔는데 시부모 사후 남편의 외도와 허황된 사업으로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나는 갓 태어난 아들만 데리고 빚쟁이에 쫓겨 집을 나와야 했다. 정처없이 타지로 가서 묵을 곳을 찾다가 길에 쓰러진 산모를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같이 갔다. 뒤늦게 달려온 그녀의 남편이 사례하고 싶다 해서 그가 정해준 숙소에서 며칠 지내다가 산모를 만나러 갔다. 그녀는 내 덕분에 자기 모녀가 목숨을 구했다며, 자기가 식당을 운영하는데 홀에 딸린 방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라며 호의를 베풀었다. 나는 몇 년 후 국밥집을 차려 자립할 수 있었다. 아들도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마침내 대기업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후 아들이 결혼할 여자가 있다고 해서 상견례 자리에 나갔더니 옛날의 은인 부부가 앉아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인연이! 그때 내가 도움을 주어 병원에서 무사히 태어난 딸아이가 내 며느리가 될 줄이야~! [출처: 썰사남]
[3話] 집안이 폭망하자 형제 단둘이 남아 숙식을 해결해준다는 공장을 찾아갔다. 광고전단지와는 달리 그곳은 다단계판매 업소였다. 안되겠다 싶어 형제는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다. 달리 찾아갈 곳도 없어 막다른 골목길에서 허름한 공장을 찾아가 "숙식만 해결해주시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매달렸다. 형제를 측은하게 여긴 사장 부인이 그집의 죽은 아들과 같은 학교를 다녔다고 반가워하며 그 공장에서 자판기 판매나 수리 일을 배워보라고 했다. 성실하고 진지한 형은 고객에 신뢰감을 주어 영업사원을 하기로 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은 기계수리가 적성에 맞는 듯하여 수리업무를 맡아서 했다. 형제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사업도 순조롭게 번창하였다. 몇 년 후 연락이 닿은 형제의 친부가 공사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산재보상금을 아들인 형제가 받게 되었다. 형제는 적잖은 돈을 "그동안 거두어주신 은혜를 갚겠다"며 사장 내외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감동이었다. 사업을 확장할 때 요긴하게 쓰고 나중에 갚기로 했다. 형은 몰래 사귀고 있던 그집 딸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모를 크게 상심시켰던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아들이 고향 친구를 자기 대신 인연을 맺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톡톡사연]
아직 청취한 지 서너 달 밖에 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 있다.
첫째, 세상엔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물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기에 그네들의 사연이 유독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2] 하지만 어떠한 역경에서도 긍정(肯定) 마인드를 가지고 주변사람들에게 고마워하며 무엇이든 베풀려고 하는 사람은 행복을 찾게 되는 것이 듣는이에게도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둘째, 대부분의 사연이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에 입각해 있다. 또한 의도한 것은 아니라 해도 반드시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결론을 맺고 있다. 심보가 나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벌을 받게 마련이다.
셋째,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인연(因緣)이 있으면 언젠가 만나게 되므로 악연은 피하고 좋은 인연을 맺고자 노력해야 함을 일깨워준다.[3]
그밖에 관심있는 사람은 기막힌 사연을 청취하면서 나름대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어느 아이돌 가수는 심야방송 프로에서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하다가 이것을 가사로 하는 노래를 작곡ㆍ발표하기도 했다 한다.[4]
만일 작가라면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이런 라디오 사연을 듣고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지어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경남 하동군 평사리에 가 본 저자가 역사의 격동기에 이러저러한 기막힌 사연[5]이 깃들어 있을 거라고 상상하여 지어낸 소설이라고 하지 않은가!
물론 어떤 사람의 편년체식 서술(narrative)만으로는 드라마가 될 수 없고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서사(epic)가 있고 독자의 감동(sympathetic emotion)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 아니 10%가 부족한 보통사람의 이야기로 그치고 말 것이다.
Note
1] 2014년 추락 사고로 인해 경추 아래 전신이 마비되었던 박위(35) 씨는 2019년 '위라클'(We+Miracle)이라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나올 수 있게 동기부여를 하고 비장애인들에겐 장애인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팔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성공적”이라는 말을 들었으나 지금은 어지간한 일상생활은 물론 두 손을 이용해 팔굽혀펴기를 하고 턱걸이도 하는 등 슈퍼맨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채널에서 전신 마비 환자가 혼자 옷 갈아입는 법부터 해서 심지어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법까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함으로써 장애인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뿐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중앙일보, "'쉬하는 법'까지 영상 담은 이유…전신마비 청년 8년간의 기적", 2022. 4. 5.
2] 짧은 시간에 어떤 사람의 인생역정을 듣고 있노라면 사람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八字)이란 게 있는 것 같다.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다 보면 누구나 일생에 한두 차례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는 귀인(貴人)을 만날 수 있다. 그를 선대(善待)하고 고마워한다면 언젠가는 그를 통해 행운을 누리게 되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3] 이런 믿음 때문인지 필자도 좋은 인연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1980년대 말 뉴욕 주재원 시절 파크 애브뉴 460의 사무실 한 쪽에는 뉴욕 재무관실이 있었다. 일간신문의 뉴욕특파원들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어느 경제지의 특파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정기적으로 본점에 조사 보고하는 미국 금융경제 동향에 대해서 한 부를 더 복사하여 그분에게도 드리곤 하였다. 내가 미국 로스쿨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지 얼마 안 되어 1995년 말 「국제거래법」 책을 상업 출판하였다. 그때 책도 증정할 겸 신문사의 요직에 계신 그분을 찾아갔더니 경제면의 책 섹션에 큼지막하게 서평을 실어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얼마 후 우연찮게 그 서평을 읽은 생면부지의 경희대 교수님이 출범 초의 국제법무대학원의 야간강좌 강사로 나를 불러주었다. 매주 출강을 해야 했으므로 아예 박사과정에도 등록을 했다. 몇 년 후 나는 그때의 경력과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의 실력을 인정받아 전례 없이 이 학교의 전임교원으로 임용될 수 있었다.
4] 어느 라디오 심야 방송인 푸른밤 코너를 진행하던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연은 2014년부터 '푸른밤' 청취자가 보내온 사연을 노래로 만들어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하여 2015년 9월엔 시즌 4까지 발표된 곡들을 재편곡하여 소품집<이야기 Op.1> 타이틀 곡 "하루의 끝"이라는 정식 음반과 음원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5] 통영에서 태어난 작가 박경리(1926~2008)는 여렸을 적에 거제 출신 외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땅부자로 잘 살던 집안이 쫄딱 망했는데 그 집 어린 딸이 타지에 나가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고향에 돌아온 후 옛 땅을 되찾자 마을 사람들이 그 당찬 여자에 놀랐다는 이야기였다. 소문난 문학소녀였던 작가가 집에서 멀지 않은 하동군 평사리 섬진강변의 악양평야를 본 후 전에 읽었던 펄벅의 「대지」,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에 착수했던 것 같다. 많은 평론가들이 좌익 인텔리였던 작가의 부군이 6.25 때 행방불명이 되고 아들마저 사고로 잃었을 뿐더러 하나 뿐인 딸도 남편(저항시인 김지하) 옥바라지를 하는 것을 보고 가슴에 맺힌 한(恨)이 승화되어 「토지」와 같은 파란만장의 대하소설(1969~1994 연재)로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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