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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S급 인재는 거져 나오지 않는다

Onepark 2022. 3. 29. 12:10

※ 우연찮게 오프라인 세미나 장에서 만난 제자 Student와 대학 시절의 스승 Professor가 공통의 화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었다. '인재제일주의'를 부르짖던 고 이건희 회장은 삼성 계열사 사장들에게 1년의 절반 이상은 S급 인재, A급 인재를 찾는 데 쓰라고 엄명을 내렸다.[1] 그가 S(Super)급 인재가 20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는데 슈퍼S급 인재는 나라의 운명을 열어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복 받은 민족이다. S급 인재를 여러 명 두었고 지금도 그 혜택을 누리고 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온 국민이 존경하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그리고 피터 드러커 교수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체화한 인물로 극찬했던 정주영 회장, 이병철 회장 등. 그 역사는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

 

S :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지금도 여전히 법학 세미나에 나오시는군요. 오늘 주제발표를 들으면서 옛날에 선생님이 컴퓨터의 신시장을 개척한 티맥스 소프트의 박대연 교수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게 생각났습니다.

P :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컴퓨터 미들웨어(middleware) 시장을 개척한 박대연 교수, 망해가던 중앙아시아의 국영 구리회사를 살리고 세계 굴지의 갑부가 된 차용규 씨 같은 이야기를 많이 했었죠. 최근엔 그들을 능가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인물이 나타나 옛날 강의 시간의 연장선에서 말하고자 합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의 첨단 무기가 화제가 됐는데 그중에서도 극초음속 미사일이 눈길을 끌었지요.

 

S : 도저히 요격이 불가능하다는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말씀하시는가요? 우리 군(軍)이 그런 무기체계를 갖고 있다면 설령 북한이 핵무장을 하더라도 전략무기의 비대칭성을 줄이고 전쟁 억지력을 강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술은 러시아가 단연코 앞서 있다면서요!

P : 네, 그렇답니다. 최근 극초음속 미사일이 무엇인지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뜻밖에도 어느 한국인이 러시아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가며 명문 모스크바 물리기술대학(Moscow Institute of Physics and Technology: MIPT, PhysTech)에서 그 분야의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유튜브 동영상과 신문기사를 보았어요. 53세의 공근식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그는 영동에서 수박 농사를 짓다가 서른이 넘어 대학을 다녔고 검정고시 준비할 때 야학에서 만난 KAIST 대학원생들의 개인지도를 받아 물리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배제대학교 다닐 때에도 KAIST에서 청강을 하는 한편 러시아 교수의 권유로 모스크바로 유학을 갔으니 대단치 않나요?

 

 

S : 모스크바 유학이라고요? 당연히 강의도 러시아어, 교재도 러시아어였겠군요!

P : 공근식 씨는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고, 밑으로 동생들이 있어서 학교도 자퇴하고 아버지를 도와 수박 농사를 짓게 되었다고 해요. 그러니 그에게는 영어나 러시아어나 새로 배우는 것은 마찬가지였겠지요. 서른 넘어 대학에서 물리학에 흥미를 느끼고 때마침 고려인 교수가 그 분야에 깊이 있는 강의와 지도를 해주었으니 보통 인연이 아니었습니다.

 

S :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이도 적지 않은데 딴 생각 않고 어려운 공부에 그렇게 매진할 수 있었을까요?

P : 당연히 말 못할 고초가 많았겠지요. 첫 학기에 수식은 잘 풀었지만 언어장벽 때문에 낙제를 하자 고향 집에 돌아왔다고 해요. 그런데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러시아 학교 측에서 항공공학과로 옮기면 다시 받아주겠다고 하여 다시 모스크바로 떠났습니다. 태풍과 폭우로 가업이던 수박 농사는 전망이 없고, 그동안 뒷바라지해준 동생들이 이번엔 형님이 공부할 차례라고 격려해주어 미련없이 모스크바 행 비행기를 탔다는 것입니다.

 

S : 남다른 각오와 다짐이 있었겠네요.

P : 그렇겠죠. 지난 번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강의 내용을 전부 녹음하고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강의를 듣고 또 들었다고 해요. 나도 전에 유학 갔을 때 거의 속기 수준으로 강의를 듣는 학생의 노트를 빌려 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처음엔 고전을 면치 못했겠지만 물리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기초가 되어 있었기에 몇 학기만에 따라잡을 수 있었고 2016년 학부를 졸업할 때는 스트레이트 A로 과 수석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졸업논문인 "화학변화를 고려한 우주 발사체의 성능향상 계량화"라는 졸업논문도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고 해요.

 

* 러시아의 학술지 자유로운 비행 2016.5월호 표지에 나온 공근식 씨

 

S : 러시아에서도 수재급 학생들만 다니는 학교일 텐데 한국 유학생이 그것도 50 가까운 아저씨가 날고 기는 젊은 학생들을 물리쳤다면 현지에서도 화제가 되었겠어요.

P : 당연하죠. 그가 잠시 귀국했을 때 영동군에서는 온 군민(郡民)들이 그를 축하하고 격려해주었다고 합니다. 학업을 마칠 때까지 군민들이 향토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 신문에도 났어요.

 

S : 그분은 틀림없이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공부하느라 거진 대머리가 되었을 거예요.

P : 네, 이미 중년이 되었으니까요. 사진으로는 공부만 하는 분 같진 않아 보였어요. 공근식 예비박사의 삶은 이제 개화(開花) 일보 직전이지만 그의 인생은 참 특이한 점이 많아요. 인문학자 고미숙 씨의 말에 의하면 인간은 각자 운명의 사용설명서에 따라서 산다고 하잖아요. 공근식 씨는 30대 초반까지는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어요. 한마디로 '공부할 운'이 없었던 거죠. 그러나 일단 운이 들기 시작하자 그를 가르친 사람은 모두 '스승'이 되었어요. 고등학교를 중퇴하였기에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다닌 야학에서도 KAIST의 물리학 전공 대학원생을 그것도 셋씩이나 만나 그 분야에 눈을 뜨게 되었으니까요. 대전에 있는 배제대학에서 만난 교수도 고려인이고 러시아 출신 연구원도 러시아의 학문세계를 일깨워 주었고요.

 

S : 그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박세리, 김연아를 보고 수많은 꿈나무들이 골프와 피겨 스케이트의 꿈을 꾸게 되었으니까요.

P : 모스크바 유학시절에도 범상치 않았던 것 같아요. 나이 많은 외국인 학생이 별로였다면 학교 측에서 굳이 국제전화를 걸어서 과를 옮기면 다시 받아주겠다고 제의를 했겠습니까! 제가 학교에 오래 있어봐서 아는데 그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알아보고 끌어주고 지지해주는 교수들이 다수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S : 선생님도 학교 재직 중에 기억나는 학생들이 있으신가요?

P : 물론이죠. 수업시간에 뭔가 눈에 띄는 발언이나 싹수 있는 행동을 하는 학생이 꼭 있었고, 형편이 어려우면 장학금을 받도록 백방으로 알아보곤 했지요. 공근식 씨의 경우 주위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어요. 무엇보다도 극초음속 비행물체 연구는 그의 외골수 성격과도 맞아 떨어졌다고 봐요. 배우기도 전에 사물의 본질, 이치를 터득한 사람들이 갖는 특징이기도 하죠. 이순신 장군은 본래 만호(육군장교) 출신 아니었습니까! 임진왜란 때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자 누구보다도 바다를 잘 알고 함선의 운용과 해상작전에 통달했던 거지요. 이것은 인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하늘이 어느 시대 특정 민족에게 베푸는 시혜(施惠)라고 봐야 할 겁니다.

 

S :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마케도니아에서 출병하여 그리스와 바빌론, 페르시아를 단숨에 정복한 알렉산더, 라인강을 따라 북진하며 갈리아와 영국까지 영역을 확장한 카이사르, 프랑스의 변방 코르시카 섬 출신으로 유럽 대륙을 석권한 나폴레옹이 그런 인물이겠군요.

P : 공근식 씨의 경우 아직 박사과정 중에 있으니 두고봐야 하겠지만 그의 전공분야가 우리나라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극초음속 분야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러시아는 물론 전세계에서 그에게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그는 학위를 받는 대로 귀국하여 후진을 양성하고 우리나라의 관련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해요.

 

S :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게 종종 생각이 났습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은 하늘이 부여한 최고 최선의 기회다. 선생님이 은행에서 17년씩이나 행원ㆍ대리를 하였지만 그것이 학자가 된 후에 연구실적을 쌓는 원천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지요.

P : 박대연 교수의 예화를 소개하면서 그렇게 말한 기억이 납니다. 그는 고학을 하면서 광주상고를 졸업한 후 은행에 들어갔지만 그 당시 '3D' 업무에 속하던 EDPS 전산실에 배속되어 13년이나 근무했지요. 동료 직원들은 하루 속히 그 부서를 떠나고 싶어 했음에도 그는 국내 은행들의 대형컴퓨터(main frame) 운용실태를 속속들이 파악했다고 해요. 많은 돈을 들여 컴퓨터를 교체하기 전에 그 성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는 설루션을 찾는 게 급선무였죠. 이러한 목적의식을 갖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단기간에 석사박사학위를 따고 마흔 살에 귀국해 KAIST에서 후학을 양성했지요. 그러는 한편 그가 개발한 미들웨어 설루션을 가지고 KAIST 제1호 창업을 하여 승승장구했습니다.

 

S : 맞습니다. 미국의 오러클이 독점하고 있던 DB 미들웨어 시장에서 더 높은 성과를 내자 오러클이 자기네 소스코드를 도용했음에 틀림없다고 소송을 걸어 우리 법원에서 양측의 소스코드를 서로 비교해보는 전무후무한 사건도 있었지요. 그 결과 티맥스의 우수성을 국내 수요처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P : '한국의 빌 게이츠'라는 말을 듣던 박대연 교수는 욕심을 내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OS와 호환이 되는 국산 운영체제를 만들겠다고 나섰다가 회사가 한때 워크아웃에 들어간 적도 있었어요.[2] 지지자들은 그의 프로젝트를 "거북선을 만들어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요.

 

* 미국의 TIME 표지인물이 된 '미사일맨' 폰 브라운 박사

 

S : 공근식 씨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슈퍼S급 인재라면 학위를 받고 무사히 귀국해야 할 텐데요. 2차대전 말기에 미군 당국이 최우선시한 작전이 V2 로켓을 개발한 독일의 폰 브라운 박사와 그의 연구진을 미국에 데려오는 일이었다고 들었습니다.

P : 그러게요. 박대연 교수나 이순신 장군의 사례를 보면 공근식 씨가 박사학위를 따고 돌아온 다음에 그가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가 어려운 형편에 모스크바 유학을 결심하고 국내의 장학재단에 스칼라십을 신청했지만 모두 지원자의 나이가 많다고 거절을 했다고 해요. 정부가 못하면 민간기업이라도 그를 제대로 대우해야 할 겁니다.

 

S : 언론이야 센세이널한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지만 그처럼 사연 많은 분이 지방신문 말고 전국 규모의 매스컴에는 왜 소개되지 않았을까요?

P : 박대연 교수도 언론과 인터뷰하거나 여성을 만나 교제하는 것보다는 연구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해요. 공근식 씨도 아직 미혼입니다. 사람을 만나고 데이트하는 것보다는 연구하고 지식을 탐구하는 데 온힘을 다하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요컨대 공근식 예비박사가 슈퍼S급 인재가 분명하다면 우리 정부와 국민들은 다음 사항을 깊이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한테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프로젝트 같은 뼈아픈 경험이 있잖습니까!

첫째, 그가 마음껏 연구하고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둘째, 그와 함께 연구를 하고 그의 지도를 받아가며 공부를 하는 인력 풀을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그를 모델로 하여 러시아에는 음악이나 피겨스케이트 말고도 우주항공 공학 등 첨단과학을 배우러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좀더 늘어나야 하겠지요.

 

Note

1] Premium Chosun, 삼성을 바꾼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대장정⑤ : 이건희 회장, 인재 유치 부진한 사장에게 "전용기 띄워서라도 핵심 인력 데려와라", 2014. 3. 5.

 

* 최근 TMax를 진대제 사모펀드에 매각한 박대연 회장

 

2] 2022년 1월 박대연 회장은 그와 일가친척이 보유한 티맥스 소프트 주식 전량을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운영하는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 에쿼티 파트너스에 8000억원에 매각했다. 불과 2년여 전까지만 해도 티맥스 그룹사 전체 매출 100조원 달성을 목표로 세웠던 박 회장은 IT업계의 예상과는 달리 알짜기업을 매각하고 경쟁력이 없고 자본잠식 상태에 있는 DB 전문 티맥스 데이터와 OS 클라우드 플랫폼 개발사인 티맥스A&C의 회생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의 선택을 두고 의외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 1세대 IT벤처의 성공신화를 썼던 그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도 많다.  황정호, "1세대 IT 벤처 티맥스소프트 매각, 박대연 회장의 다음 행보는?", Tech42, 2022.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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