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들어 계절이 바뀔 때 부고(訃告)를 많이 받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조문을 다니기도 어려워 좌불안석이었는데 대부분 아흔이 넘어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아 한편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하기야 상주의 나이가 칠십이 넘었으니 세상을 떠나시는 부모님은 대부분 장수의 복을 누리신 호상(好喪)이었다.
며칠 전 이메일로 받은 동창회의 부고도 마찬가지였다.
저희 어머니 윤재순 님이 미국시간 4월 16일 오전 9시 10분 10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미국 뉴저지 주 맏아들 댁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사랑과 지혜의 삶으로 가족은 물론 지인들의 사랑을 받으시며 행복한 일생을 사셨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억하시는 분들께 소식을 전합니다.
송혜순, 송철순, 송보순, 송경순, 송웅순
추신: 장례는 미국 현지에서 진행되며, 부의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비록 내가 고인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었지만 그 자손의 모습을 보면 고인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자녀를 낳고 키우셨을지 짐작이 가고 남았다. 부군은 사회적으로 출세하여 큰 명성을 얻으셨음에도 정작 본인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적으로 자녀를 키우고 가정을 돌보셨던 것이다.
내 주변에서도 그런 사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2002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고 희생을 하셨는데 이대로 보내드릴 수는 없다며 장례식 때 어머니를 기리는 조사를 낭독했었다.
친구의 경우 빈소가 미국에 있어 조문도 할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하자 생각하고 단시를 지어 친구에게 전달했다. 몇 년 전 중국 강남의 무이구곡에 가서 17음절의 단시(haiku)를 네 줄씩 지어 여행을 같이 간 일행들에게 읊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국ㆍ영문으로 4연(聯)의 단시를 지어보기로 했다.
무엇을 주제로 삼을 것인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 친구 뿐만 아니라 형님들이 모두 서울고와 서울대를 나온 'SS' 동문인 데다 국내외 최고의 직장에서 일가를 이루고 종종 매스콤에도 이름을 올리신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재벌가를 빼고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문가이기에, 이렇게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고 뒷받침하신 고인이야말로 진정 애국자(patriotism)라는 생각이 들었다.[1]
故人의 영전에
우리가 잘살게 된 건
수많은 애국자들 덕분
Thanks to a number of patriots,
we’ve become well off at present.
나라의 보배 여러 자녀를
낳고 키우셨으니
You raised five precious treasures for life
not only at home but abroad.
백세 넘어 장수하신
고인은 진정한 애국자
You’ve lived for one hundred years
to become a remarkable patriot.
천국에서 받게 되실
大훈장보다 큰 면류관
You'll deserve a heavenly crown
bigger than any other medal.
Note
1] 사실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우리는 크게 성공하여 주위의 상찬(賞讚)을 받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 보다"하고 말한다. 내심 부러워하는 마음도 있지만, 애국자가 이생에서 누리지 못한 것을 다음 생에서라도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심리가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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