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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글] 경희대 정완용 교수 화갑기념

Onepark 2017. 12. 18. 16:00

[주] 아래 글은 필자의 스승(박사학위논문 지도교수)이기도 한 동료 정완용 교수의 화갑(2017.12. 6)을 축하하여 2017년 12월에 발간된 경희법학 제52권 4호에 필자가 기고한 하서(賀書)이다.

 

한국인이라면 평생 몇 번씩은 보았을 토정비결에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은 “귀인(貴人)을 만난다”는 것이다. 반면 듣기 싫은 말은 “관재수(官災數)와 구설수(口舌數)를 조심하라”일 것이다. 요즘과 같이 시국이 하수상할 적에 관재수는 곧 수사기관의 소환통보이고 구설수는 SNS의 악플일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귀인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

 

* 학술세미나 장에서 사회를 보는 정완용 교수와 필자

貴  人

 

필자에게는 정완용 교수가 바로 ‘귀인’이셨다. 은행에 재직하면서 미국 로스쿨 유학을 다녀와 국제거래법에 관한 전문서를 한 권 펴냈을 뿐임에도 갓 출범한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학부장이던 정 교수님은 필자에게 야간수업 강의를 맡겨주셨다. 뿐만 아니라 필자가 나중에 박사과정에 등록했을 때에는 선뜻 논문지도교수를 맡아주셨다.

그리고 1999년 가을에는 그 이듬해에 안식년이니 학위논문을 서둘러 끝내든가 아니면 1년 늦추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TNT급 독려가 아닐 수 없었다. 직장 일로 논문작성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즉각 불철주야로 학위논문에 매달려 가까스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고 마침내 대학 강단에 설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은혜를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전공이 같은 패컬티 동료로서 정 교수님은 필자에게 학계․실무계 네트워킹에 있어서도 여러 차례 기회를 만들어 주셨고 적절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이 필자가 학교로 옮기기 직전 전자거래기본법을 영역하는 작업이었다. 대학원에서 정 교수님으로부터 이 법이 유엔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의 전자상거래 모델법을 참고해서 만든 것이라고 배웠으므로 1999년 초에 제정된 이 법률을 영역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주무관청이던 산업자원부에서 전자거래기본법의 영문 번역을 정 교수님에게 급히 의뢰했는데 필자가 그 영역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전자거래기본법(현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에는 UNCITRAL 모델법과는 달리 새로 번역해야 할 조문이 아주 많았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다소 걸리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법률의 구조와 체계에 대해 생생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지나고 보면 지금까지도 개인정보보호 법제에 관하여 그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으니 정 교수님의 지도와 제안을 주저 않고 받아들였던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경험이었는지 모른다.

 

*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연구실이 있는 제2법학관

Peacemaker

 

필자도 같은 학교에 적을 두고 정 교수님과 워킹그룹은 다르지만 UNCITRAL의 각종 회의에 참석하면서 경희대에서 두 사람이나 UNCITRAL 회의에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슴 뿌듯하였다. 정 교수님은 석․박사 학위논문이 모두 해상법에 관한 것이었고 교외 경력도 선하증권․EDI 관련 전자상거래, 해사법, 상법 해상편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대부분 기술적으로나 법리적으로 첨단을 가는 분야라서 이론적인 대립과 이해관계의 갈등이 심한 쟁점이 수두룩함에도 정 교수님은 가는 곳마다 피스-메이커로서 거중조정을 아주 잘 하셨다. 실제로 2008년부터 2년간 한국해법회장, 2015년에는 한국기업법학회장을 역임하셨다.

 

동료 교수로서 가장 놀라운 점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 교수님이야 말로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라는 사실이다. 어느 보직이든 쉬운 일이 없음에도 2006년부터 3년간 담당하셨던 경희대 입학관리처장은 정말 영일이 없이 할 일이 산적한 보직이었다. 그럼에도 경희대가 앞장서서 여러 가지 입시 쇄신안을 마련하였고 다른 대학교 입학관리처장들이 정 교수님을 대표로 추대하여 교육부와 여러 가지 사업을 수행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TV 뉴스를 보다가 “저기 정완용 교수가 나오셨네” 하고 식구들에게 소리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 교수님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법학전문대학원장 시절이었다. 로스쿨 출범 초기에 학교 운영을 둘러싸고 수시로 마찰음이 터져 나와 본부에서도 법전원 교수회의는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정 교수님이 3년간 그것도 법과대학장을 겸직하시는 동안 언제 잡음이 있었느냐는 듯이 학교가 정상궤도에 올랐고 법전원 졸업생들이 처음으로 변호사시험을 치렀을 때 경희대는 “100% 전원 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고층건물의 기초공사

 

학교 측으로서도 정 교수님의 역량을 놀릴 수 없었기에 2013년 7월부터 1년간 감사행정원장 임무를 떠맡기다시피 하였는데 놀라우리만치 그 기간 중에는 학교에서 외부에 알려질 정도의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9) 하고 설파하셨다.실제로 정 교수님은 경희 기독인교수회 회장을 하시면서 전국 기독인교수회 회장까지 맡아 하셨다. 이렇게 공사다망한 중에서도 전자상거래법 저서의 개정판을 펴냈고, 크고 작은 정부의 용역과제와 각종 위원회 일을 성심껏 수행하셨다.

 

정 교수님이 전자상거래법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96년 11월 한국전산원이 「전자거래 및 EDI관련 법제도 정비방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마련한 전자거래의 활성화를 위한 워크샵에서 EDI 및 전자거래에 관한 해외 법제동향”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 인터넷 이용자 수는 70여만 명 정도였으니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를 갖고 있는 4천만 국민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오늘날에 비하면 금석지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IT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정 교수님 같은 전문가가 기초공사를 착실히 해놓았기에 그 위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라 믿는다.

 

* 경희대 국제학술회의에 초청한 외국 학자들과 정완용 원장(횐쪽 세번째), 이상정 교수(오른쪽 끝)

The Best is yet to be

 

이제 정 교수님은 60 화갑을 맞으셨다.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어느 지혜로운 유대인 노인을 보고 다음과 같은 詩를 남겼다.

 

   나와 함께 나이를 드십시다.

   최고의 시절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인생의 후반부를 위해 전반부를 사셨던 겁니다.

   우리의 시간은 그분의 손에 달렸으니,

   누가 말했지요 "내가 계획한 모든 것,

   젊음이란 반쪽일 뿐; 하나님을 믿으세요:

   두려워말고 똑바로 보세요." - (후략)

 

(원문) Rabbi Ben Ezra by Robert Browning(1812-1889)

   Grow old along with me!

   The best is yet to be,

   The last of life, for which the first was made:

   Our times are in His hand

   Who saith "A whole I planned,

   Youth shows but half; trust God:

   see all, nor be afraid!"

 

위와 같이 정 교수님을 ‘화평케 하는 자’로 만드셨던 하나님은 그를 위해 특별한 인생의 후반부를 계획해 놓으셨을 것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한 가지는 필자가 증명할 수 있다.

그것은 에머슨이 “What is Success?”라는 詩에서 읊은 다음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열정적으로 놀고 웃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편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정 교수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음으로 해서 한 생명이 편하게 호흡할 수 있게 된 여러 인생 중의 한 사람이 필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