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여행 첫 날 수도 테헤란은 마지막에 총정리삼아 보기로 하고 고도(古都)와 신도시가 병존하는 하마단으로 갔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고속도로는 유료인 곳이 많았는데 대부분 2차선이었다. 특히 버스인 경우에는 1-2시간이면 고속도로 경찰서에 들러 적산 거리계를 보여주고 과속운행을 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하마단은 이란 여행을 워밍업하기에 좋은 도시이다. 도로에는 일반 승용차와 노란 택시가 넘쳐났다.
이곳에서 볼 것은 시장 한복판에 있는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묘가 있는 유대교 시나고그, 그리고 에스더의 남편인 크세르크세스(Xerxes I, 성경에서는 아하수에로) 왕의 치적비이다.
크세르크세스의 왕비 에스더는 구약성경에 에스더서가 따로 편철되어 있을 정도로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에게는 구속사적(救贖史的)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에스더는 누구인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키루스(성경에서는 고레스) 왕의 해방령에 따라 일부는 스룹바벨과 느헤미야의 지도 하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대부분은 당시의 최강국인 페르시아에 정착하였다.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에서 기반을 잡게 되자 이들을 시기한 하만이라는 실력자가 유대인들을 모함하여 제거(인종청소)할 궁리를 하였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크세르크세스 왕의 두번째 왕비인 에스더에게 삼촌인 모르드개가 이 소식을 전한다. 그러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하고* 아하수에로 왕을 찾아가 이 사실을 고하고 탄원한다.
* 이 대목에서는 페르세폴리스 궁전을 보기까지는 "설마 . . ."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영화 <300>에서 보았듯이 절대권력자인 아하수에로 왕은 성격이 괴퍅하고 전 왕비를 폐위시킨 전력이 있다. 게다가 왕이 여름철에 거처하는 수산궁은 페르세폴리스 궁전만 못하다 해도 높이 10m가 넘는 육중한 백향목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적막이 감돌고 왕이 규(왕홀/王笏)를 내밀어 시종이 안내하기 전에는 한 발짝이라도 떼었다간 호위무사의 칼을 맞을 수도 있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절대권력자도 모르게 음모를 꾸민 하만에게 아하수에로 왕이 진노하여 일대반전이 벌어진다.
왕을 암살하려는 모의를 고발하였음에도 아무런 포상이 없었던 모르드개가 그 공적을 새로 인정받게 되고 모르드개를 처형하기로 한 형틀에 하만의 일당이 매달린다. 그리고 모르드개가 정권을 잡는다.
그리하여 전편에 '여호와'란 말이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지만 에스더서는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대민족은 이방에서 구원을 받은 이 사건을 기려 12월 14일을 '부림절'(Purim)로 지키고 있다.
⇒ 이에 관한 필자의 칼럼 "에스더 이야기: 결단의 순간에 필요한 것" 참조.
우리 일행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들어가는 입구가 좁아 누구나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두 위인의 관은 인도산 흑단으로 만들어 홀 안에 모셔 놓았다.
크리스천인 한 일행이 이것이 진짜 묘라면 세계의 유대인 단체에서 이렇게 방치해두지 않았을 것이라며 관리인 랍비가 헌금(donation)을 요구하는 등 아무래도 가짜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와 관계없이 링컨 대통령 초상이 들어 있는 미화 지폐를 헌금함에 넣었다.
이날 점심은 현지식 케밥으로 양고기나 닭고기에 이란산 작은 레몬즙을 뿌리고 콜라, 환타 같은 음료수와 함께 먹었다. 일행 중의 한 분이 김치를 꺼내 입맛을 다실 수 있었다.
호메이니 혁명 후 이란에서는 금주정책이 엄격히 시행되고 있어 맥주도 노 알콜로 풍미만 비슷할 뿐이었다.
우리도 한낮에는 시에스터(낮잠과 휴식)를 갖기 위해 호텔에 들어가 잠시 쉬기로 했다.
해가 질 무렵이 이곳 사람들은 활동을 재개하는 시간이었다.
버스를 타고 하마단 대학교 캠퍼스와 전쟁박물관을 지나쳐 갔다. 우리 일행은 에스더 묘를 보았으니 크세르크세스 왕의 치적비를 볼 차례였다.
현지 주민들이 가족 연인과 함께 놀러오는 폭포 아래로 가까이 다가갔다.
산 아래 폭포가 있고 그 아래 시민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화강암 돌판으로 만든 길 가운데 수로로 물이 흐르고 주민들이 가족, 연인과 함께 와서 휴일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구운 옥수수, 호도를 파는 잡상인들도 많았고, 극동의 한국에서 온 우리 일행을 미소로써 맞아주었다.
산 중턱에는 크세르크세스 왕의 치적비가 3개 언어의 문자로 절벽의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치적비에는 지혜의 신 아후라 마즈다(배화교의 신)가 천지를 창조한 후 2500년 전 고대 바사왕국의 고레스 왕이 나오고 다리오 왕이 왕권을 잡기까지의 과정을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벨로니아어 세 문자로 적어놓았다
크세르크세스 왕은 이 비문을 많은 사람들이 폭포 물가에서 쉬면서 감상할 수 있게, 또 아무도 훼손하지 못하도록 절벽으로 된 암벽 위에 써놓았다고 한다.
다시 산 위에 작은 호수가 있고 주민들이 쉴 수 있는 파빌론을 만들어 놓은 시민공원으로 가서 아래 펼쳐진 하마단 시가지를 구경했다. 시민들이 우리에게 매우 호의적이어서 함게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젊은 여성은 K-Pop 팬이라며 김현중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날이 어둑해져서 미리 예약해 놓은 현지 케밥 식당으로 이동하여. 란과 야채 샐러드(마요네즈), 음료수(콜라, 환타, 무알콜 맥주)와 함께 케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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