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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6] 페르시아의 고도 페르세폴리스

Onepark 2016. 7. 21. 17:44

시라즈(Shiraz)는 꽃과 정원의 도시라고 한다. 이란 사람들이 사랑하는 시인 하페즈의 고향이고 그의 묘가 이곳에 있어 문학의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다. 

어제 밤에 도착하여 도시의 진면목을 자세히 구경할 수는 없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저녁에는 야즈드로 이동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곳을 찾은 이유는 60여km 떨어져 있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를 보기 위함이다. UNESCO는 이 유적지를 일찍이 197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본래 "잠시드 대관식(Throne of Jamshid) 궁"이었는데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의 군대가 '페르시아의 도시(Persian city)'라고 이름을 붙여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 우리 일행은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페르세폴리스를 관람하기로 했다.

 

*호텔방에서 내려다 본 시라즈 시가지
* 호텔의 벽 장식이 페르세폴리스를 휩쌌던 불길처럼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 배낭이나 가방 같은 소지품을 일체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 유적지 내부 진입로

BCE (아랍권에서는 Before Christ가 아니라 Before Common Era를 쓴다) 518년 다리우스 왕은 아케메네 왕조의 수도를 페르세폴리스로 옮기고 새로운 궁성의 건설에 착수했다. 아파다나(Apadana) 왕궁은 그의 뒤를 이은 크세르크세스 왕과 아타크세르크세스 1세에 의해 거의 반세기 만에 완성되었다.

높은 산을 뒤로 드넓은 평원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높이 13m의 기단을 축조하고 왕궁과 왕비가 머무는 내전, 보물창고, 왕실도서관이 가로 세로 300*500m의 규모로 세워졌다. 

궁성의 정문은 높이 18m의 레바논 백향목으로 만든 문이 달렸고 알현실에서는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방문객은 왕의 시종이 안내하여야 왕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더 왕비도 아하수헤로(Xerxes) 왕을 마음대로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왕궁의 대문은 레바논 백향목을 가지고 18m 높이로 만들었다.

페르세폴리스는 이 지역을 제패한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였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덧붙여 고대의 태양거석 문화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건설 배경을 설명했다. 상당 부분이 에스더서, 다니엘서 등 구약성경에도 들어 있는 내용이라서 아는 범위에서 통역 이상의 해설을 했다.  

사막기후임에도 뒷산의 퇴적암층에 고여있는 지하수와 지하수로 및 인접한 강을 이용하여 물도 풍족하게 썼을 것이다.

나는 성경지식을 총동원하여 마치 중계방송 하듯이 페르시아 군주들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주변 국가를 복속시키고 백성들을 다스렸던 이야기를 풀어서 말했다.

 

* Chipiez는 위와 같이 기둥머리에 백향목 대들모를 얹고 지붕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출처: Wikipedia)

벽면에 새겨진 부조는 속국의 외교사절이 춘분절(이곳의 새해)을 맞아 조공을 받치던 모습이었다. 

마치 오늘날 올림픽 같은 행사에서 각국 대표단이 입장하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

여기의 상상화는 아파다나 궁전 석벽에 새겨져 있는 부조(Relief)의 장면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이 그림들은 고고학자들의 고증을 토대로 Farzin Rezaeian 출판사가 캐나다의 Surnrise Visual Innovations사의 도움을 받아서 만든 [Persepolis Recreated (2004)] 라는 책에서 인용하였다.

 

왕의 행차는 장엄했을 것이고, 왕비가 있는 내전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게 경비병들이 지켰다.

부조에 새겨진 세밀한 그림을 상상으로나마 재현해 보니 구약성경 다니엘 서의 시대배경이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다윈의 진화설에 사로잡혀 2-3천년 전의 사람들은 미개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보다 뛰어난 건축기술과 전쟁수행능력, 생존능력을 갖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아파다나 왕궁에는 아름드리 기둥이 100개가 넘었는데괴수 모양의 기둥머리(Capital)를 수십 개씩 똑같이 만들 수 있었을 까. 크레인도 없이 20m 높이로 올렸을까 상상을 불허하였다.  

 

BCE 330년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왕국의 수도를 정복했을 때 그리스 군대는 우선 진귀한 보물을 약탈했다. 플루타르크에 의하면 그리스 인들은 왕궁의 보물을 노새 2만 마리, 낙타 5천마리에 실어 날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의 도시가 페르시아 군대에 분탕질 당한 것을 복수하기 위해 불을 질렀다. 

사흘 동안 밤낮 없이 타오른 불길은 이곳을 폐허로 만들었지만 그 잔재만으로도 페르세폴리스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마지막 코스는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 신상이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페르세폴리스가 종교의식을 행하는 장소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조로아스터교의 새 해가 시작하는 춘분절에 28개 속국으로부터 외교사절이 찾아와 공물을 바쳤다. 이들을 알현한 페르시아 왕이 그들과 함께 아후라 마즈다 앞에서 성대한 종교의식을 거행하였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 지혜의 신은 선한 생각과 말, 행동이 그 반대의 악한 생각과 말, 행동을 물리쳐야 함을 보여주었다.

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은 그 상징이었다.

이동 중 정원 식당에서 뷔페식 점심을 먹고 나서 사후의 도시(Naqsh-e Rostam)를 둘러보았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왕과 크세르크세스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왕의 암벽 무덤이 있는 네크 폴리스였다.

우리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현지 가이드 아민으로부터 암벽 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암굴 묘 아래에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조상들에게 무용담을 자랑하고 싶은 사산조 페르시아 샤푸르 왕의 기마승전도가 새겨져 있다. AD 260년에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푸르 1세는 에데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동로마제국의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포로로 잡고 대승을 거두었다. 그 때 동로마제국 황제가 마상의 페르시아 왕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장면을 스틸 사진 처럼 암벽에 새겨놓은 것이다.

 

내친 김에 우리 일행은 당초 예정에 없었던 파사가르드의 키루스(성경에서는 고레스) 왕 돌무덤을 찾아갔다.

파사가르드는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첫번째 수도였다. 역시 UNESCO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BCE 550년 키루스 왕이 동방원정에서 사망했을 때 이곳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구려의 장군총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와 비슷하게 6층의 계단형 기단 위에 직사각형 모양의 석실에 키루스 왕의 관을 부장품과 함께 안치했다고 전한다.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야즈드로 향했다.

조로아스터 교가 처음 창시되었고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신도들이 찾아오는 배화교 신전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 어디엔가 오아시스가 숨어 있기 때문[어린 왕자]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현대판 오아시스라 할 수 있는 작고 아담한 아르그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