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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아프로시압 - 이식쿨 호수

Onepark 2014. 7. 31. 13:00

마침내 그 사람을 찾았다.

바로 사마르칸트의 아프로시압(Afrosiyob) 박물관에서였다.

 

 

머리에는 두 가닥 깃털을 꽂은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허리에는 '환두대도(環頭大刀)'를 찬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다. 이 둘은 돌궐과 티베트에서 파견된 사신들과 함께 소그디아 왕국의 행사에 참석한 것이다. 7세기 중엽 동아시아의 고구려가 사신을 파견할 정도로 두 나라의 관계가 돈독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연개소문이 당나라 침공에 대비하여 소구드 국과 군사동맹을 맺기 위해 사신을 파견하지 않았을까? 사신 일행은 파미르고원을 넘어 무려 5천여km 떨어진 사마르칸드를 다녀간 셈이다.

이 벽화는 7세기 당시 이 지역을 다스렸던 소그디아 왕국의 바르후만 왕이 서기 650년경 궁전 안에 그린 것이다. 소그디아 아프로시압 궁전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폐허가 된 채 오랜 기간 땅속에 묻혀 있다가 구소련 시절이던 1965년 발견됐다.

소그디아 왕국은 2013년 초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지배선 명예교수가 이색 논물을 발표하면서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고구려의 온달(溫達) 장군과 신라 김춘추의 호위무사 온군해(溫君解)가 이 왕국의 왕족과 혈연관계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지 교수는 두 온씨가 소그디아 왕족이라는 근거로 중국 사서인 '전당문(全唐文)'과 '북사(北史)'의 "소그디아는 강국(康國)이라 불렸으며 그 왕족은 온씨"라는 기록을 들었다. 소그디아는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5~8세기에 융성했던 나라였다.

 

 

이 지역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성채 유적지와 페르시아 제국의 대재상 다니엘의 정강이뼈를 가져다 조성한 다니엘 묘가 있다 한다. 티무르 대왕이 성경의 다니엘서로 유명한 다니엘의 영적 파워를 얻기 위해 약탈해 왔다고 전한다.

 

 

2014년 12월 동북아역사재단은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프로시압 궁전 서쪽 벽화의 모사 복원도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에서 공개했다. 고구려에서 먼길을 떠나 실크로드 왕국까지 간 고구려 사신들의 옷매무새와 얼굴 표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2013년 사마르칸트에 파견된 연구팀이 초고해상도 디지털카메라로 벽화를 촬영한 뒤 현미경으로 들려다보면서 그림의 선을 복원했다고 한다.

경상북도와 경주에서는 조우관을 쓴 것은 신라 사람도 마찬가지라며 실크로드의 한반도 출발지는 경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크로드 우호렵력을 강조하며 사마르칸트는 물론 이스탄불과 자매결연을 맺고 대대적인 행사를 벌였다.

 

 

우리 일행은 5시 발 고속열차 아프로시압 2호차를 타고 2시간 반만에 타슈켄트로 돌아갔다.

저녁식사는 에미르 레스토랑에서 양갈비 샤슬릭을 먹으며 무희들의 벨리 댄스를 구경하였다.

무희들이 반라의 몸을 흔들 때마다 우리들의 지갑에서는 달러 지폐가 계속 빠져나갔다.

 

 

7월 22일 타슈켄트에서 처음 묵었던 그랜드 플라자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숙소 주변을 산책하였다.

시내에는 일찍이 대우자동차가 생산공장을 건설한 까닭에 대우 차종이 많이 보였다. 대우그룹이 해체가 된 후에는 국영회사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시내관광 일정을 변경하여 타슈켄트 근교의 유명 휴양지인 산과 호수를 보러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장시간 이동하는 동안 주변의 산과 들은 나무도 숲도 별로 없고 험해 보였다. 휴양지에 가까이 가면서 로드 트레이닝을 하는 사이클링 팀을 만나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는 참석자들의 전공분야 주제발표와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마침 카자흐스탄에서 KOICA 활동을 하고 있는 윤계환 형제가 중앙아시아 3국의 간략한 역사와 카자흐스탄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해줬다. 현지에서 활동하다가 현지 아가씨와 결혼하여 아이도 낳고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멀리 달려 온 보람이 있게 높은 침간산과 아름다운 차르박 호수는 우리의 피곤한 심신을 회복시켜 주었다. 이곳에서는 보기드물게 리프트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갈 수 있었으며, 말도 타고 사륜차도 탈 수 있는 종합관광단지였다. 이곳 꿀이 명품이라는 말에 서둘러 주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차르박 호수는 바다가 없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특히 타슈켄트 주민들에게는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유명한 휴양지라고 했다. 우리 일행이 다시 리프트를 타고 내려와 점심식사를 하러 버스로 이동한 호반 호텔은 러시아 지배 시절에 건설되었고 지금도 러시아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호숫가로 내려가는 계단은 뻬테르부르그 여름궁전의 정원을 보는 것처럼 경치가 아름다웠다.

우리 일행은 차르박 호수물에 발을 담그고 한때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 일행은 타슈켄트 시내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한 후(이곳 식당에서 조금 전 차르박 호숫가에서 주문한 꿀단지를 픽업) 다음 목적지인 키르기즈스탄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세관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달러 등 외국통화 사용액을 상세히 적도록 요구했다.

그리고 얼마 후 키르기스탄의 마나스 공항에 도착했다. 까다로운 입국심사, 세관검사 없이 공창청사 밖으로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올랐다.

 

 

키르기즈 사람들은 대부분 몽골족이었다. 국명도 ‘40인의 딸' (모계사회의 부족의 땅)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7월 23일 아침 6시의 모닝콜은 호텔 각층의 복무원이 객실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갈음했다.

도스톡(Dostuk) 호텔의 조식이 매우 부실했다. 조금 이르게 8시 40분 호텔을 출발하여 텐산산맥 아래의 이식쿨(Issyk Kul) 호수로 향했다.

바닥에서 뜨거운 물이 나와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는 호수로 남미의 티티카카 호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산상호수라 했다.

 

 

일행 중에 설사를 한다는 사람이 있어 화장실을 찾는 것이 가는 곳마다 큰 일이었다.

호반의 식당에서 송어 요리로 점심식사를 한 후 제토 리조트로 이동하여 제비뽑기로 방을 배정 받았다. 객실이 전통식, 현대식 여러 종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큰 방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주방기구도 현대식이었다.

창 밖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행글라이더를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누워 있었다.

 

 

오후 4시쯤 버스를 타고 조금 나가 키르기즈 현지인의 매사냥을 구경했다. 실제로 토끼를 풀어놓고 매사냥 광경을 보여주었으나 너무 잔인해 보여 바로 자리를 떴다.

인근 카라오 마을의 노천 암각화 공원을 찾아갔다. 알타미라 동굴벽화 같은 짐승의 그림이 검은색 바위에 여기저기 새겨져 있었다. 그 생성과정이 여러 가지로 신기했다.

 

 

멀리 톈산산맥 연봉을 바라보며 이식쿨 호수에서 한 시간 가량 선유를 즐겼다. 때마침 호수 상공에 구름 사이로 무지개 빛이 보였다. 비가 온 뒤에 무지개가 뜬 것은 아니었고, 대기 중의 수증기가 석양 빛을 받아 무지개 띠를 이루고 우리에게만 살짝 보여준 것이었다. 우리는 남북통일의 소원을 빌며 상서로운 현상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저녁 8시부터 우리가 묵고 있는 리조트 럭스동 3층 홀에서 만찬을 가졌다. 맥주와 보드카가 계속 공급되었다.

제일 연장자이신 박경부 회장의 “사랑해” 노래 열창에 노래 못한다고 빼시던 사모님은 “찔레꼿 사랑”으로 화답하셨다. 유 욱 변호사는 건배사로 “당신을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라고 말했다. 오랜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자못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만찬장에서 보드카를 들고 나와 호숫가 백사장에 둘러 앉아 별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고 환담을 나누었다.

이국 땅에서의 한여름 밤이 이렇게 깊어갔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5시 40분 어김없이 아침 해가 호수 위로 떠올랐다. 

 

 

To be continued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