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People

People

[인문학] 중국 고전에서 배울 수 있는 것

Onepark 2026. 5. 13. 22:30

[Editor's Note] 전 직장에서 상사로 모셨던 김기성 박사를 여러 달 만에 만나뵈었다. 지난달 필자가 Forum에서 발표했던 백두음(白頭吟)과 춘망사(春望詞)에 대해 몇 가지 코멘트를 해주셨다. 아울러 70이 넘어서까지도 인문학(人文學)에 관심을 갖기 쉽지 않은데 고등학교 동창들의 열성이 놀랍다고 치하하셨다. 그동안 중국 고전에 관하여 좋은 말씀을 해주셨거니와 이날은 사마천의 기록 정신에 대해 말문을 여셨다. 

 

* 왼쪽부터 K: 김기성 박사, P: 필자

 

P :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겠다는 정신을 가진 사마천이 2000여 년 전에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사기》 (史記)에 올렸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K : 사마천은 동시대의 뛰어난 문장가인 사마상여의 글(주로 賦)을 높이 평가하고 여러 편 수록했어요.[1]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일화를 잘 알기에 '봉구황'(鳳求凰)이란 시와 '문군당로'(文君當壚: 생활고에 시달린 탁문군이 화덕 앞에서 술을 판다는 뜻) 같은 고사성어를 올린 것이라 짐작돼요. 그러나 내 기억에 '백두음'이란 詩가 《사기》 에는 없어요.[2]  그럼에도 후세 사람들은 《사기》를 통해서 사마상여와 탁문군이 어떻게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했는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해로한다는 표현이 생겼는지 알게 되었지요.

 

P : 네, 그렇기 때문에 사마천의 《사기》가 그에게 치욕을 안겨준 한무제를 비롯한 여러 황제와 제후들에 대한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내리면서도 인간적 체취가 느껴지는 기록도 남겼다고 여겨집니다.

K : 사마천이 쓴 역사서는 본래 《태사공서》(太史公書)라 했어요.[2] 총 130권 52만 6500자에 달합니다. 역사를 연대순으로 기록한 편년체(編年體)가 아니라 역사상의 사건과 인물을 따로따로 서술하는 기전체(紀傳體)로 가록한 점이 특기할 만합니다. 역대 왕조 천자의 치적을 다룬 〈본기〉(本紀), 연표인 〈표〉(表), 생활상이나 법령·제도·풍속 등을 기록한 〈서〉(書), 제후들과 고위 관리장군들을 활동상을 다룬 〈세가〉(世家), 그밖의 주요 인물을 소개한 〈열전〉(列傳)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K : 그리고 사마천이 《사기》를 기록하게 된 동기와 장기간에 걸친 집필 취지와 목적, 이러한 역사서를 남김으로써 기대한 성과는 임소경(任少卿, 소경은 직함이고 이름은 任安)에게 쓴 편지(報任少卿書)에 잘 나타나 있어요. 이로(理路)가 정연하고 함축적인 내용은 가히 천하의 명문(天下名文)이라 할 만합니다.

예컨대 《사기》 를 쓴 목표를 "인간과 하늘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관하여, 일가의 주장을 이루려는 것"(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라고 밝혀놓았어요.[3] 비록 역사책이지만 여기에는 전문(天文), 지리(地理), 인간관계의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사마상여 열전」을 보면 사마상여의 화려한 문장도 접할 수 있지만, 한무제 시대의 인재등용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또 당대의 부부관계와 풍습에 대해서도 보여주는 '문사철(文史哲)의 종합 세트'라 할 수 있어요. 

 

P : 옛날엔 나관중/박종화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만 읽어도 중국 역사에 대해 아는 척할 수 있었어요. 이문열의 삼국지 전집은 논술 시험의 텍스트(?)였고요.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를 읽었다면 '중국 고전의 박사'라 할 수 있겠네요. 소설가 이병주 씨도 자기가 신문 논설(이른바 '大說')을 쓰다가 소설가가 된 것은 사마천의 《사기》 덕분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K : 그렇다면 정치사상에 관하여 금언(金言)을 많이 남긴 맹자의 말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요.

 

"愛人不親 反其仁, 治人不治反其智, 禮人不答 反其敬, 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 。" (孟子, 離婁 上)

(사람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이 어진 사람인가 돌이켜 보고, 사람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이 지혜로운지 돌이켜보고, 사람에게 예(禮)를 다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신이 공경(恭敬)하였는지 돌이켜보아야 한다. 행하였음에도 얻고자 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아라.)

 

P : 이 맹자의 말씀은 더 이상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지금의 시류(時流)에  딱 부합하는 말씀이네요. 사람들이 온통 소셜 미디어에 매달려 있다 보니 모두가 자극적이고 찰나적인 것만 찾고 지혜를 구하는 일에는 손을 놓고 있거든요. 이 말씀을 저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우므로 제 블로그[4]에도 올리겠습니다.  

 

Note

1] 사마천은 그의 부친 사마담(司馬談)의 대를 이어 한나라 조정의 사관(太史公)을 지냈다. 한무제 때 흉노족이 침범해 오자 한나라의 이릉 장군이 이들을 격퇴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중과부적으로 투항하고 말았다. 사마천은 그를 변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한무제에 의해 궁형(宮刑) 처분을 받았다. 사마천은 역사 앞에서 그 치욕을 벗고 명예를 되찾고자 역대 왕조의 엄벌주의를 비판하는 등 기라성 같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다. 

사마천은 그가 쓴 역사책을 《태사공서》(太史公書)라 칭했다. 그러나 후한 말에 《태사공기》(太史公記)로 바꿔 부르다가 후세 사람들은 《사기》라 줄여서 부르고 있다. 영어로는 'Records of the Great Historian'이라 일컫는다. 

 

2] 사마천의 《사기》 권117 「사마상여 열전(司馬相如列傳)」에는 사마상여의 삶과 그가 지은 부(賦)는 여러 편 실려 있고, 그가 탁문군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하고, 한때 매우 곤궁하여 술집을 운영했다는 일화는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마상여가 벼슬길에 오른 후 변심하여 첩을 들이려 하자 탁문군이 이를 원망하며 지었다는 「백두음」은 이 열전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탁문군이 이별을 고하는 시「백두음」이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나는 것은 사마천 사후 약 600년이 지난 뒤인 남조(南朝) 시대 송(宋)나라 범엽(范曄)의 《 후한서(後漢書) 》「열녀전(列女傳)」이다.

 

3] 「報任少卿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출처: 고문관지(古文觀止) - 문선(文選)

著者: 司馬遷 西漢 《古文觀止》卷五 《文選》卷第四十一
출처: Naver swings81님의블로그

 

夫人情莫不貪生惡死,念親戚,顧妻子,至激於義理者不然,乃有所不得已也。今僕不幸,蚤失二親,無兄弟之親,獨身孤立,少卿視僕於妻子何如哉?且勇者不必死節,怯夫慕義,何處不勉焉!僕雖怯懦耎欲苟活,亦頗識去就之分矣,何至自湛溺累紲之辱哉!且夫臧獲婢妾猶能引決,況若僕之不得已乎!所以隱忍苟活,函糞土之中而不辭者,恨私心有所不盡,鄙沒世而文采不表於後也。

무릇 인간의 감정이란 모두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싫어하며, 부모를 생각하고 처자를 돌보려 하나, 의리에 격분한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 이는 부득이한 정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불행하게도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가까운 형제도 없이 홀로 외롭게 있으니, 소경께서 보시기에 제가 처자를 대하는 것이 어떻다고 여기십니까? 또 용기 있는 자라고 해서 반드시 절개를 지켜 죽는 것도 아니며, 비겁한 사내라도 의(義)를 사모하면 어디서라도 자신을 격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비록 겁이 많고 나약하여 구차하게 살고자 하나 또한 생사의 한계도 잘 이해하고 있으니 어찌 감옥 안에 갇힌 채 치욕을 당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저 천한 노비나 하녀조차도 능히 자결할 수 있는데 하물며 저와 같은 사람이 어째서 자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고통을 감내하고 구차하게 살면서도 더러운 감옥 속에서 사양하지 않는 까닭은 제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드러내지 못한 채 비루하게 세상을 떠나면 후대에 문채(文彩)가 드러나지 않을 것을 한스럽게 여겨서입니다.

 

古者富貴而名摩滅,不可勝記,唯俶儻非常之人稱焉。蓋西伯拘而演周易;仲尼厄而作春秋;屈原放逐,乃賦離騷;左丘失明,厥有國語;孫子髕腳,兵法修列;不韋遷蜀,世傳呂覽;韓非囚秦,説難、孤憤。詩三百篇,大氐聖賢發憤之所爲作也。此人皆意有鬱結,不得通其道,故述往事,思來者。及如左丘明無目,孫子斷足,終不可用,退論書策以舒其憤,思垂空文以自見。

예전에 부귀하면서도 이름이 소멸된 인물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이 많았지만 오로지 뜻이 크고 기개 있는 비상한 인물만이 칭송을 받았습니다. 주 문왕(周 文王)은 구금된 뒤에 <주역(周易)>을 풀이하셨고 공자(孔子)는 곤경에 빠지셨을 때 <춘추(春秋)>를 지었습니다. 굴원(屈原)은 쫓겨나서 이소(離騷)를 지었고, 좌구명(左丘明)은 실명하고 나서 <국어(國語)>를 저술했으며, 손빈(孫臏)은 무릎 뼈를 도려내는 형벌을 당하고도 병법을 논했으며, 여불위(呂不韋)는 촉으로 쫓겨났지만 세상에 <여람(呂覽)>을 전했습니다. 한비(韓非)는 진(秦)나라의 옥에 갇혀서 〈세난(說難)〉과 〈고분(孤憤)〉을 지었습니다. <시경(詩經)> 300편의 시들도 대체로 성현의 발분하여 지은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마음속에 맺힌 바가 있었으나 그 뜻을 밝힐 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알아줄 것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좌구명과 같이 눈이 멀고 손빈과 같이 무릎 뼈가 잘린 사람은 끝내 세상에서 쓰이지 않자 물러나 책을 써서 꾀하는 바를 논하여 울분을 토로하면서 저작에 종사하여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僕竊不遜,近自託於無能之辭,網羅天下放失舊聞,考之行事,綜其終始,稽其成敗興壞之理,上計軒轅,下至于茲,爲十表,本紀十二,書八章,世家三十,列傳七十,凡百三十篇,亦欲以究天人之際,通古今之變,成一家之言。草創未就,適會此禍,惜其不成,是以就極刑而無慍色。僕誠已著此書,藏諸名山,傳之其人通邑大都,則僕償前辱之責,雖萬被戮,豈有悔哉!然此可爲智者道,難爲俗人言也。

저는 몰래 불손하게도 쓸 줄 모르는 문장에 스스로를 기탁하려고 예부터 세상에 전해 내려오는 없어진 이야기를 망라하여 행해진 일을 대략 고증하고 시작과 결말을 종합하여 성공과 실패, 흥성함과 쇠망함의 이치를 살펴보고자 하여, 위로는 헌원(軒轅)에서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표〉 10편, 〈본기〉 12편, 〈서〉 8장,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총 130편을 지어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一家)의 학설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초고가 아직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런 재난을 당했는데 애석하게도 이 일을 다 완성하지 못했으므로 비록 극형을 당했으나 화를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여러 명산(名山)에 보관했다가 내 뜻을 알아줄 사람들에게 전해 고을과 도시에 알리고자 하기 때문이며, 그렇게 되면 제가 이전에 받았던 모욕에 대한 질책을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니 비록 몇 만 번 모욕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함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말할 수 있지만 일반 사람에게는 말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且負下未易居,下流多謗議,僕以口語遇遭此禍,重爲鄉黨戮笑,汙辱先人,亦何面目復上父母丘墓乎?雖累百世,垢彌甚耳!是以腸一日而九回,居則忽忽若有所亡,出則不知所如往。每念斯恥,汗未嘗不發背霑衣也。身直爲閨閤之臣,寧得自引深臧於巖穴邪?故且從俗浮湛,與時俯仰,以通其狂惑。今少卿乃教以推賢進士,無乃與僕之私指剌謬乎。今雖欲自彫瑑,曼辭以自解,無益,於俗不信,祗取辱耳。要之,死日然後是非乃定。書不能盡意,故略陳固陋,謹再拜。

또한 죄를 지은 자는 처신하기가 쉽지 않고 하류층들은 비방의 말이 많은 것이니 제가 말을 삼가지 못하여 이러한 화를 입고 거듭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어 선조를 욕되게 했으니 또 무슨 면목으로 부모님의 산소 앞을 다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저의 수치만 더욱 심해질 뿐입니다! 이로 인해 하루에도 수없이 애간장이 타고, 집에 있으면 망연자실하여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하며 문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매번 이러한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려내려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으며 몸이 환관과 같이 되었으니 어찌 스스로 깊은 바위굴 속에 숨어 은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잠시 세상의 부침에 따르고 시대와 더불어 행동함으로써 미치고 미혹된 사람들과 교유하고 있습니다. 지금 비록 소경께서 저에게 현인을 추천해 달라는 가르침을 주셨는데 이는 저의 개인적인 속뜻과 어긋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비록 제가 스스로를 치장하여 미사여구로 제 자신을 꾸미려 한다고 해도 아무런 유익함이 없고 사람들도 믿지 않을 것이니 오직 모욕을 받을 뿐일 것입니다. 요컨대 죽을 날을 기다린 연후에야 옳고 그름이 판명될 것입니다. 글로써는 능히 진심을 다 쓸 수 없어 저의 고루한 생각을 간략하게 적는 바이며, 삼가 재배합니다.

 

 

4] 김기성 박사의 고전 요담(古典要談) 

  2008.01.       [저서] 기업경영사 - 산업기술, 기업제도, 생산 및 관리시스템

  2022.01.25   고요할 '靜'자에 얽힌 사연

  2022.06.04   이제야 알았네 (Hindsight)

  2024.09.24   나이듦과 은둔, 천산둔(天山遯)

 

  2025.09.01   삼밭에서는 쑥도 곧게 자란다 (마중지봉/麻中之蓬)

  2025.09.11   큰 걸 원한다면 네 것부터 내려놓아라

  2026.05.13   중국 고전에서 배울 수 있는 것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