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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언] '삼밭의 쑥'이 전하는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

Onepark 2025. 9. 1. 07:00

[Editor's Note] 오래 전 은행에 재직할 때 상사로 모셨던 김기성 박사님을 만났다. 내가 학교에서 은퇴한 후에도 종종 뵙고 좋은 말씀을 청해 듣곤 한다. 금년 윤달을 맞아 부모님 산소를 개장(改葬)하였다는 말씀을 드리자 윤달에 고운 삼베로 수의(壽衣)를 만들어 놓으면 장수한다는 말이 있다면서 중국 고전에 나오는 '삼대와 쑥' (마중지봉/麻中之蓬) 이야기를 해주셨다.

 

 

K : "蓬生麻中 不扶自直" (삼밭에 나는 쑥은 붙들어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 쑥이 삼밭에서 자라면 삼대처럼 곧아진다)

이 말은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순자(荀子)가 쓴 책《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篇)에 나옵니다. 사람이 처한 환경이 그의 품성이나 인생행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어요.

P : 언젠가 TV에서 '극한직업'의 한 사례로 보았어요. 사람 키보다 높게 자란 삼대를 베어내 그 줄기의 가닥을 하나씩 찢어서 삼베를 짜는 과정을 보여주더라고요. 

 

K : 그래요. 쑥은 땅위에 깔리듯이 자라지만 삼대는 곧게 자라므로 삼밭에서는 쑥도 누가 붙잡아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는 뜻입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반대의 상황에서 같은 의미를 전달하는 사자성어도 있어요. 우리 속담에도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는데 다 교육과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P : 구체적인 사례를 동양이나 서양에서 들어주시면 더 좋겠는데요.

 

 

K : 동양의 대표적인 인물로 맹자(孟子)가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고사로 유명하지요. 처음엔 공동묘지 근방에서 살았는데 맹자가 장례 놀이를 하자 시장 근처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는 장사 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서당 옆으로 이사를 갔더니 그제서야 글 공부에 흥미를 갖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정착했다는 이야기입니다.

P :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례는 부지기수로 많을 것 같습니다. 공부를 더 많이 하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대처(大處)로, 해외로 유학 길을 떠났으니까요. 당장 손꼽아 보아도 이승만 박사, 안창호 선생이 그 길을 걷지 않았습니까!

서양에서는, 제가 전에 이 블로그에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만, 프랑스의 평민 출신으로 대혁명 당시 나폴레옹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면서 그와 여러 관계를 맺었다가 나중에는 스웨덴 국왕이 된 베르나도트 (Jean-Baptiste Jules Bernadotte,1763-1844) 란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는 말 그대로 흙수저 출신이었지만 큰 야심가가 아니었음에도 젊어서부터 주어진 기회를 충실히 수행했고  나폴레옹과 인연을 맺은 다음부터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 유명한 나폴레옹의 18원수 중 한 명이 되었어요. 그는 품성이 워낙 젠틀하여 부하들로부터 신망을 얻고 심지어는 적대국이었던 스웨덴 사람들이 그를 국왕으로 모셔갔다고 해요.  

 

프랑스의 서남부 스페인 국경에 가까운 농촌 포(Pau)에서 시골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 베르나도트는아버지가 돌아가시자 17세가 되던 1780년 프랑스 군대에 이등병(private)으로 들어갔다. 코르시카 등지에서 복무한 그는 8년 후 상사(sergeant)가 되었는데 혁명이 일어나자 대부분 장교를 차지하고 있던 귀족들이 처벌 받거나 쫓겨나는 바람에 그도 장교로 임관되었다. 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주변국에서 프랑스를 침공해오자 군 지휘부에 공백이 생긴 혁명정부는 평민 출신이더라도 군인으로서 유능하기만 하면 장교로 승진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1791년 11월 중위(lieutenant)가 된 그는 1794년 플뢰루스 전투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고 그 전공을 인정받아 1794년 10월 사단을 지휘하는 장군(general of division)이 되었다.

라인 방면 후방에 주둔해 있던 베르나도트는 1797년 타이닝엔 전투에서 패배한 프랑스 군이 라인강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지원하였으며 1797년에는 나폴레옹을 도와 이탈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군을 격퇴하고 1798년 2월에는 駐비엔나 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었다.

베르나도트 장군은 특히 보병전술(infantry tactics)과 효율적인 용병술(efficient maneuvering of troops)에 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1800년에 벌어진 호헨린덴 전투(Battle of Hohenlinden)를 예로 들면, 그는 포병의 맹렬한 포사격 하에 보병부대를 투입하여 오스트리아 군의 측면을 공격하는 척했다. 오스트리아 군이 그 방어에 나서면서 중앙부의 수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서 프랑스 주력부대로 하여금 기습공격(surprise attack)을 감행하게 했다. 그 결과는 프랑스 군의 대승이었으며 오스트리아 군이 참패하는 바람에 영국과 오스트리아가 주축이 된 제2차 대불 동맹(Second Coalition, 1799~1802)은 크게 흔들렸다.

그는 군 행정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군기를 엄격히 세우면서도 휘하 장병들과 동고동락을 자처하여 군 내부에서 신망이 아주 두터웠다.

⇒ 스웨덴 왕이 된 프랑스 전쟁영웅 읽어보기

 

 

K : 나도 생각이 납니다. 그의 아내 데지레 (Désirée Clary, 1777~1860)는 전에 나폴레옹과 약혼을 한 사이였는데 나폴레옹이 조세핀과 사랑에 빠지면서 그녀를 멀리 하자 나폴레옹 휘하의 청년장교와 결혼을 하여 그들 사이의 로맨스가 영화로도 만들어졌잖아요? 말론 브란도가 나폴레옹 역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P : 쑥이 삼밭에서 자랄 때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오히려 성공의 발판으로 삼은 케이스라서 그 블로그 기사를 인용하겠습니다.

 

데지레 클라리는 마르세이유에서 부유한 비단 상인 프랑수와 클라리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첫 부인이 요절하자 재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둘째 딸이었다. 아일랜드계 이민자로서 신분상승의 욕구가 컸던 아버지는 재력을 바탕으로 마르세이유에서 유력 인사들과 교분을 나누었고 딸들도 귀족들이 하는 것처럼 수녀원 학교에 보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수녀원 학교가 문을 닫자 데지레는 집으로 돌아왔다. 비록 아버지의 사업 또한 혁명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아버지도 그 충격으로 사망했다. 이러한 집안 문제로 큰 언니 줄리 클라리는 관청에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러던 중 혁명정부가 마르세이유에 파견한 정부위원인 코르시카 출신 조세프 보나파르트를 자주 만나게 되면서 두 사람은 1794년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언니와 각별한 사이였던 데지레는 마침 툴롱 포위전 승리 후 마르세이유에 와 있던 나폴레옹을 소개 받고 약혼을 하였다. 언니 집에서 기거하던 데지레는 형부와 친형제 간이었던 나폴레옹과도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혁명정부로부터 중책을 부여받고 파리로 떠나면서 둘 사이는 소원해졌다. 급기야 나폴레옹이 파리 사교계의 여왕 죠세핀과 열애에 빠지면서 그는 1795년 데지레와 파혼을 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언니와 형부는 나폴레옹에 견줄만한 장군이라며 베르나도트를 소개하여 14살 나이 차에 일견 어울리지 않아 보이던 두 사람은 1798년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임에도 베르나도트는 전선을 따라 임지를 옮겨다녀야 했고, 데지레는 조세프가 주 로마 대사로 부임할 때 언니와 형부를 따라가느라 서로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브뤼메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으로서도 베르나도트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가 마음의 빚을 진 전 약혼녀와 형님, 형수가 구명 요청을 하는 것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베르나도트는 군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이나 프랑스 군대에 대한 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폴레옹은 1804년 5월 황제로 즉위할 때 베르나도트를 다른 17명의 장군과 함께 원수로 임명하였다.

 

 

K : 보잘 것 없던 쑥 한 뿌리가 삼밭의 걸출한 삼대 사이에서 곧게 자란 이야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P : 베르나도트 원수가 프랑스와 사이가 안 좋았던 스웨덴의 칼14세 요한 국왕이 되었던 것은 우연 아닌 필연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이야기는 여기선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쑥이 삼대처럼 곧게 자라기 위해선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째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둘째, 경쟁적이고 非우호적인 환경에서도 회복탄력성(resiliency)이 좋아야 하며, 셋째로 때(時運)를 잘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베르나도트는 신분질서가 무너지는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때를 잘 타고 나기도 했지만 그의 출세 과정에서 누구를 헐뜯거나 해친 적이 없었다고 해요. 그가 프로이센 군을 격파했을 때도 그 성에 남아 있던 스웨덴 장병 2,000명을 신사적으로 대우하고 무사 귀국을 보장했는데 이 점이 그를 공석이었던 스웨덴 국왕으로 옹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지요. 

 

K : 우리 모두 산업은행 출신이지만, 산업은행이 1970년대와 80년대 맹아(萌芽) 단계에 있던 중화학 공업에 아낌없이 금융지원을 하였기에 한 때 부실산업으로 낙인 찍힐 뻔했던 조선산업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탐을 내는 조선ㆍ방산(造船防産) 강국의 바탕이 되었어요.

P : 네, 저도 조사부에 있을 때 산업조사를 위해 울산과 창원, 거제도를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공장장이 브리핑을 할 때 선진국 조선소와의 격차를 이야기하면서 은행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게 생각납니다.

 

 

K : 오늘날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 열풍'이 K드라마, K팝에서 K뷰티, K푸드로 이어지고 K조선, K방산으로 연결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P : 지금의 MZ세대는 우리나라 산업이 지금처럼 발전한 게 절도 이루어진 것처럼 여길까봐 걱정이 돼요. 저도 한 때 그 현장에 있었지만 파독 광부간호사를 비롯해 우리의 선배들이 중동의 열사(熱沙),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피와 땀을 흘린 덕분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기는 지금의 정치 현실도 바닥에서 죽을 쑤지 말고 세계 수준으로 발전한 국내 산업처럼 쑥쑥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K : 나도 그러리라고 믿어요. 한류 열풍을 이룩한 세대들이 정치에 있어서도 유권자이고 후보자가 될 테니까요. K조선, K방산을 성공시킨 사람들도 정치권이 나라를 망쳐서 국위(國威)가 손상되고 국내 산업의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P : 오늘도 제가 처음 들어본 '마중지봉(麻中之蓬)'이란 말씀 감사합니다.

 

 

⇒ 김기성 박사의 고전 요담(古典要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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