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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이제야 알았네 (20/20 Hindsight)

Onepark 2022. 6. 4. 18:55

P : 선생님,[2]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코로나 핑계 대고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했네요.

T : 난 크게 걱정 안해요. 코로나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백신과 마스크, 치료제 덕분에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사이에 뭘하고 지냈어요? 

 

P : 네, 학교에 있을 때부터 운영하던 온라인 법률백과사전(KoreanLII)을 업데이트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집콕'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1주일에 한 편 이상 Daum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고요. 쓸거리를 만들기 위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학교 홈페이지에 방치되어 있던 100편 가까운 옛날 영화평을 찾기 쉽고 읽기 편한 Tistory에 옮겨놓고 새로운 영화, 공연, 전시회 이야기를 계속 추가하고 있습니다.

T : 생각과는 달리 참 바삐 지내는군요. 그런데 들어와보는 사람은 얼마나 돼요? 요즘 언변 좋은 사람들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놓고 "좋아요", "구독(subscribe)" "팔로우"(follow)를 호소하던데 고정 독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

 

* 비행기를 타면 높아보이던 구름 위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알게 된다. Source: TikTok.

P : 아직 자랑할 만한 수준은 못됩니다. KoreanLII를 혼자 하기에 벅차 동역자 겸 후계자를 구하고 있음에도 아직 손드는 사람이 없네요. (웃음)

T : 왜 그럴까요? 콘텐츠가 법률 이슈이고 또 영어로 써야 하니까 그런가요? 이 분야 전문가와 상담은 해보았어요?

 

P : 아직 상담할 단계는 못되고, 혼자서 고민하고 있지요. KoreanLII에 최근 들어 싱가포르 등 동남아에서 뭐에 관심이 있어서 많이 늘어났는지, 또 Daum 블로그는 '친구맺기' 하지 않고도 방문자 수의 기복(起伏)이 심한 것을 꾸준히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Tistory 콘텐츠는 어떻게 하면 Naver나 Google 검색에 많이 노출되게 할 수 있는지 고민 중입니다.

T : 기술적인 문제야 조만간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쉬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고, 콘텐츠의 퀄리티만 좋다면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될 것입니다.

 

P : 제 소신을 여러 차례 밝혔지만, KoreanLII 기사는 한국법에 대해 로스쿨 영어강의용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외국 독자들에게 한국의 법제와 문화를 알기 쉽게 해설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Daum 블로그는 우리 일상주변의 키워드를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는 데 역점을 두고 있지요. 제가 그동안 보고 들은 것, 공부한 것을 마치 박물관의 큐레이터처럼 여행기, 인물 등으로 분류하고 정리하여 인터넷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에게 체계적으로 제공하자는 게 모토입니다.

T : 아~ 그래서 시나 노랫말을 그렇게 열심히 영어로 번역하고 있는 거로군요.

 

P : 네, 온 국민이 즐겨부르는 '학교종', '산토끼', '반달' 같은 "우리 동요를 외국인들에게는 어떻게 소개하지?" 저부터 이런 의문이 들었거든요. 아무리 인터넷에서 검색해봐도 영어로 번역해 놓은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만이라도 번역해 놓으면 그 다음 사람이 좀더 세련되게 번역하겠지 하고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Share Alike (BY-SA) 조건으로 KoreanLII와 제 블로그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T : 취지는 참으로 가상합니다. 이것을 좀더 사람들 눈에 띄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겠네요?

 

* 이른봄 예쁜 꽃을 보여준 매화가 튼실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사진: 유양수.

P : 그렇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묘안(妙案)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T : 옛 선인들도 이 문제를 고민하였고, 다행히 그 해결책을 이미 찾아 놓았어요. 바로 논어(태백/泰伯 편)에 그 말씀이 나옵니다.

"子曰 :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우리말로 옮기면,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마음이 감동하여 분발하게 하려면 시(詩)가 좋고 사람의 뜻을 세우려면 예법(규범/規範, 철학/哲學 등)이 필요하며, 이것을 모두 성취하려면 재미와 즐거움(樂, amusement)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어요.[3]

 

P : 앗!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제가 열심히 한다고는 했는데 결과물을 놓고 보면 2%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T : 정년퇴직한 지 거의 4년이 되어 가지요? 한 주에 한 편씩 블로그를 썼다면 1년 50주로 잡고 약 200편은 되겠네요?[4]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는 분량이 되려면 적어도 4-500편은 되어야 할 테니 앞으론 이런 방향으로 노력해 보세요.

 

P :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말씀인가요? 이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T : 그거야 본인이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터득할 사항이지요. 이런 비유를 들 수 있을 겁니다. '누에의 우화(羽化)'라고 할까요? 누에가 뽕잎을 먹고 네 잠을 자고나면 몸집이 불어나 나방이 될 차비를 합니다. 이를 알아차리고 마른 솔가지를 얼기설기 세워놓으면 누에가 거기 올라가 실을 토하기 시작하지요. 그 길이가 1000m에 달한다고 해요. 나방이 되기 전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고치를 만드는 것입니다.[5]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써온 블로그 기사를 재료로 하여 어떤 철학적 깊이가 있는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요소를 이리저리 운율을 가진 시문(詩文)으로 엮어 보세요. 그리함으로써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작품세계를 구축한다면 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틀림없이 나올 겁니다.

 

* 논어의 구절을 직접 종이에 써서 설명하시는 사부(Teacher) 김기성 박사님

P : 교회 목사님들도 그런 말씀을 하시거든요. 성경에서 가장 많이 감동을 주고 읽히는 것이 시편(Psalms)이라고요. 어느 목사님의 스테디셀러 저서의 제목이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입니다. 저도 새벽기도하러 교회에 갈 때면 다윗이 광야로 쫒겨다니면서 동트는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던 그 심정이 되곤 하였어요. 

T : 다윗은 신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지도자였는데 당시 왕의 시기를 받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습니다. 신의 단련을 받은 것이지요.

 

P : 시편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제23편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다윗의 시인데요, 우리의 찬송가는 6.25 피란 중에 만들어졌다고 들었어요. 작곡가 나운영 씨가 시편 23편을 읽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하룻밤 사이에 곡을 붙였다고 합니다. 진해 피난교회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여러 정부요인들과 함께 예배를 볼 때 이 찬송을 부르면서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해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았던 당시 전황에 비추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이 땅에 임하셨던 거죠.

T : 아, 그래요? 공자님의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말씀이 순서대로 이루어진 셈이네요.

 

P :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의 인물 가운데 고효율 내연기관과 제빙기를 발명한 독일의 디젤(Rudolf Diesel, 1858~1913)이 있었어요. 그의 좌우명이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라. 그것은 네 의지의 결과물이기도 하다"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디젤과 공자님의 말씀을 빌린다면, "Create your World of Poetry with a set of Philosophy and Amusement."가 되지 않을까요?

T : 그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일관되게 노력을 기울인다면 언젠가는 그러한 노력이 결실을 보고 사람들이 다투어 찾게 될 것입니다.

 

P : 늦지 않게 공자님의 말씀을 거울 삼아 제가 하는 일의 방향과 추동력을 찾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성패는 제가 얼마나 끈기 있게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는 셈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 칠순 선물로 받은 신형 갤럭시폰으로 그냥 찍었을 뿐인데 놀랍게도 이런 작품이 나왔다.

어둠 내린 강 위로
환한 불 밝힌 배 올라가네.

저 배는 곧 돌아오리,
동틀 때 이 밤이 끝나듯.

When night falls on the river,
a ship with all lights on
flows quietly.

That ship will come
again because at dawn
this night will come to an end.

Note

1] 제목의 '20/20 Hindsight'는 영어의 관용적 표현으로 처음엔 몰랐다가 사후에야 완전히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2] 필자가 오래 전에 봉직했던 산업은행에서 상사로 모셨던 김기성 박사를 이 글에서는 '선생님'(Teacher: T)으로 지칭하였다.

 

3] "子曰 :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이 구절을 다산 정약용은 "마음을 감발(感發)하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고, 단속하기 때문에 몸을 세울 수 있고, 온화하고 전일하기 때문에 덕을 이룰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를 Charles Muller은 다음과 같이 영어로 옮겼다. The Master said, "Be aroused by poetry; structure yourself with propriety, refine yourself with music."

 

4] 이 글을 쓰면서 정확히 계수해 보니 이 기사 포함하여 모두 217편(Tistory에 올린 것은 제외)에 달했다.

 

5] 권오길 강원대 교수, “누에도 잠을 자야 허물을 벗는다”, 김영택 블로그, 2021.1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