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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Day] 강만수의 소설 〈최후진술〉: 고백 혹은 참회?

Onepark 2025. 11. 13. 07:00

G : 오랜만입니다. 매달 책 소개를 해주시던 13일을 기다리기도 했는데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P :  소개해드릴 책은 많았지만 제가 공사가 다망해서요. 이번에는 꼭 나눠보고 싶은 책이 있어서 들고 나왔습니다. 재무관료로서 우리나라에 부가가치세제를 처음 도입한 실무자였고 IMF 사태의 뒷수습을 담당했으며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극복을 진두지휘했던 강만수 전 경제부총리가 쓴 〈최후진술〉이란 소설입니다.

 

 

G : 저도 신문에 난 서평을 읽어보았어요. 강만수 씨가 고시 공부할 때의 첫사랑 이야기부터 연대기적으로 쓴 소설 여러 편을 하나로 묶어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나 알 수 있다고 평했더군요.

P : 저 역시 그 분의 삶의 궤적과 상당 부분 비슷한 길을 걸었기에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뉴욕재무관 시절의 일화, 리만 브라더즈의 도산과 글로벌 금융위기, K 은행의 D 조선 부실 경영감독, 대출(벤처투자) 외압 사건은 한두 사람만 거치면 팩트 체크가 가능했거든요.

여기서는 소설집의 맨 마지막 중편소설 '최후진술'에 나오는, 저자(소설이니까 작가라고 하지요)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썼다는 항소심 재판 때의 최후진술서 전문(全文)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진술서 3부를 작성하기 위해 흐려진 눈을 부벼가며 먹지를 사이에 끼우고 볼펜으로 꾹꾹 눌러 썼다고 하니 이것이 예의일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판사님,
의로운 재판관은 정의롭지 않게 매를 맞은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고 한을 풀어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피고인은 일제시대 끝자락에 태어나 전쟁의 폐허 속에서 어린 시절 산골에서 자랐고 도시에 유학 와서 고교와 대학을 다녔습니다.
한일회담을 반대하고 유신체제에 도전하는 데모를 하고, 그 데모를 막는 최루탄 속에서 대학을 마치고는, 아프리카보다 가난했던 조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드는 대열에 참여하여 평생을 살았습니다.
우리 경제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풍전등화같이 위험할 때 온몸 부딪쳐 싸웠습니다. 강자 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되는 위기였습니다.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한 엄혹한 위기였습니다.
우리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회로 삼아 선진국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플러스 성장을 했고, 수출은 위기 전 세계 12위에서 위기 후 7위로 5단계를 뛰었으며, 국가 신용등급은 유사 이래 처음 일본을 추월했습니다. 해외언론은 우리의 위기 대응 정책을 "교과서적 사례"라 했고, 우리의 노력에 대해 "서울 관료들에게 경의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피고인은 공직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청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공직에서 은퇴한 후 조용히 살다가, 4대강 정비 사업에 참여한 건설회사의 비자금과 정치자금에 관한 자금 추적조사에서부터 시작하여,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국책과제 선정 과정과, K 은행에서 다룬 대출 등 지난 정부 5년간에 행한 모든 일과 퇴직 후 있었던 골프 와 해외여행까지 글자 그대로 먼지 털기 식의 검찰 수사를 받고 두 번에 걸친 구속영장 청구 끝에 배임과 직권남용 등 12개의 혐의로 구속기소 되었습니다.
밤낮도 없이 주말도 없이 일하며 아파트 한 채에 눌러앉아 평생을 일했습니다. 돈을 받은 것도 없고, 득을 본 것도 없으며, 감옥을 각오하고 범죄를 저질러야 할 동기도 없었습니다. 혐의들은 모두 중요한 일이 아니거나 너무 작은 일이라 기억에 없거나 잘 모르는 일 들이었습니다. 지금 법정에 서고 보니 땅한 평, 주식 한 장, 회원권 한 개 없이 살아온 한평생이 허무했습니다.

국가권력이 개인을 표적으로 삼아, 구속 사유가 나올 때까지 압수수색을 하고, 구속될 때까지 동료와 친구와 친지와 종친을 무한정 불러 조사하는 경우가 어느 문명국가에 있을까요? 재판도 하기 전에 두 차례나 포토 라인에 세워 사진을 찍히게 하여 인격 살인을 하는 검찰이 어느 선진국에 있을까요? 수첩을 압수하여 기록된 행적과 사람들을 모조리 조사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닐까요? 피의자와 관련된 친지들까지 금융거래를 광범위하게 추적 조사하는 것은 금융실명거래법의 취지 를 위반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사건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행적과 금융거래를 샅샅이 조사하는 것이 문명국 검찰의 수사라 할 수 있을까요?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검찰은 누가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요? 12개의 혐의가 있다는 것은 한 개도 확실한 혐의가 없다는 게 아닐까요? 조선인을 압제하던 일제 식민통치와 반대자를 제압하던 권위주의 통치의 슬픈 유산을 보는 것 같아 한없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G : 제가 그 입장이 되었다면 정말 억울하고 비통한 심정이었을 거예요.

P : 네, 저도 그럴 겁니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장으로서, 그 후 경제부총리로서 취한 행동 특히 정책에 대해선 논란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적(敵)이 많았던 거지요. 그의 환율정책에 관한 한 인터넷 토론방 아고라 논객 미네르바가 대표적이었어요.

정치적으로 해석하자면 4대강 사업에 대한 속죄양(Scapegoat)의 숙명을 짊어진 것이었다고나 할까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검찰의 기소 사실을 정면으로 반박할 필요가 없었어요. 역사적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에게 패해서 파직이 되고 죄인으로 몰렸던 게 아니잖아요? 작가가 애타게 부르짖었던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은 어땠습니까? 아무 죄도 없이 로마 제국의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거예요. 그럼 작가의 최후진술을 좀더 들어 보겠습니다. 

 

* 작가가 공직 은퇴 후 몸담았던 K 은행의 직책이 '호사다마' 유죄 판결을 받는 빌미를 제공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판사님.
배임과 직권남용 등 12개 혐의에 대해 법정에서 모두 다투었지만 여기서 다시 하고 싶은 말만 간단히 드리겠습니다.
먼저 D 조선의 경영부실과 관련된 본건 4개 혐의는 원심에서 모두 무죄가 되었는데도 검찰이 항소하였기 때문에 두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피고인은 K 금융그룹 회장 겸 K 은행 은행장으로 근무할 때, 해조류로 휘발유를 뽑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영위하는 B 벤처 기업의 대표를, K 은행이 채권은행으로 관리하던 D 조선 사장에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B 벤처기업의 대표는 피고인이 정부에서 일할 때 출입 기자였던 사람이며, 해조류로 휘발유를 뽑는 기술은 원유가격이 배럴당 100달러가 넘을 때 정부 지원 자금으로 정부 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이었고, D 조선은 당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투자 대상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 벤처 사업에 50억 원을 투자하게 되었고, 그 후 원유가격이 배럴당 50달러 이하로 하락함으로써 사업이 중단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이 시기에 D 조선 사장의 방만 경영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되어 국회의 요청에 따라 경영 컨설팅을 하였고 이를 통해 경영 부실을 발견하여 D 조선 사장을 다음 주주총회에서 해임 조치를 하였습니다. 검찰은 이것을 B 벤처기업에 대한 50억 원 투자를 압박하기 위해 경영감사를 하였고 이를 통해 발견한 사장의 비리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고 연결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장을 배임과 횡령으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이 부당하게 투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진술하게 함으로써 배임으로 기소된 것입니다.

둘째, 피고인은 지난 국회의원 총선거 때 법률의 범위 안에서 여야 국회의원 7명에게 각각 300만 원의 후원금을 주도록 새로 선임 된 D 조선의 후임 사장에게 권유한 바가 있습니다. 당시 국회에서 항상 D 조선의 경영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다른 금융그룹도 관행 적으로 후원금을 납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도 D 조선과 업무 관계가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며,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이 후임 사장에게 사장 선임의 대가로 2,100만 원 상당을 뇌물로 받아 후원금으로 지급한 것과 같다고 보고 뇌물죄로 기소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D 조선과 관계없이 추가로 수사한 별건 8개의 혐의 중 원심에서 유죄판결이 난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피고인은 국회의원의 부탁으로 그의 지역구 기업인 W 산업의 K 은행 470억 원 대출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감정 가격이 520억 원인 공장부지를 담보로 잡고 부행장이 위원장인 대출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출이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3년 후 W 기업이 부도가 나고 법정관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검찰은 대출 당시 공장부지의 청산가치(가격이 아닌 회사 청산 때의 추상적 평가액)가 270억 원이었다는 이유로 은행에 200억 원의 손실을 발생시켰다고 기소하였고 원심에서 유죄가 되었습니다. 피고인은 그 대출을 직접 결정하지 않았고, 그 국회의원과 지연도 학연도 없으며 그때 처음 만난 사람이었고, 대출 당시 감정가격이 대출금액을 상회하였으므로 배임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피고인이 고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기업에 대한 K 은행의 대출을 챙겨본 일이 있었습니다. 친구의 기업은 피고인 이 K 은행에 가기 전부터 거래하고 있었고, 요즘은 과거와 달리 은행 자금이 남아돌아 우량기업이나 담보대출의 경우는 금리를 입찰 할 정도로 대출 경쟁을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고객지원 차원에서 챙겨본 것이며 또한 선박을 담보로 잡았고 연체도 없었습니 다. 피고인은 K 은행을 물러난 후 그 회사에 고문이 되었는데, 이때 고문료 대신 회사로부터 신용카드를 받아 사용하였고, 회사 골프 회원권으로 회원 대우를 받았고, 해외사업 때문에 그 친구와 함께 3번 해외에 출장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선교, 의료, 교육 활동에 헌신하다가 선종한 피고인의 고교 후배 이태석 신부의 동상 건립을 추진하면서 약속한 300만 원의 기부금을 당시 동창회장이었던 그 친구가 나의 부탁 없이 대납한 적이 있었습니다. 검찰은 K 은행의 선박 대출을 할 때 담보 비율을 통상 적용하는 선박 가액의 70%보다 높은 80%를 적용하여 특혜를 주고, 퇴직 후 3년간 회사 카드 사용, 골프 회원권 이용, 해외지사 방문, 기부금 대납 등으로 총 3,000만 원 상당의 사후 뇌물을 받았다고 기소하였고 법원은 유죄로 판결했습니다.

끝으로 피고인은 고향의 종친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고향에서 토건업을 하는 부회장이 종친회 기부금을 매년 50만 원씩 6년에 걸쳐 300만 원을 내 이름으로 납부하였는데, 이것을 그 부회장이 그 지방에 있는 D 조선 계열건설회사의 하도급 공사를 한 것과 연결해 뇌물로 걸었습니다.

 

G : 이것이야말로 검찰 수사의 악폐라고 지탄 받는 '별건 수사'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그려.

P :  맞습니다. 특수부 검사들은 이런 식의 짜맞추기 기획수사를 잘 해야 유능하다는 평판을 받은 적이 있었지요. 검사가 이렇게 죄상을 나열하고 구형을 하는데 판사가 이를 도외시하고 죄가 안 된다고 판결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시 K 은행에 있었던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까 작가가 온유하고 너그러운 상사가 아니라 로마자 표기법에 이의를 제기할 정도로 '독불장군' 스타일이어서 정말 모시기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분 밑에서 '신의 직장'을 그만 둔 임직원도 많았다지요. 딱 한 가지 칭송을 받은 것은 K 은행 1층에 맞벌이 직원을 위한 어린이집을 설치한 것이었다고 해요. 소설집에도 나오지만 작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딸을 생각하고 외손녀딸 키울 때의 애로 사항을 절감한 결과였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법은 보통 사람들의 보통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요? 보통 시민의 생각과 너무 거리가 먼 검사들의 법 해석과 적용은 식 민지와 권위주의 시대의 청산되어야 할 유산이 아닌가요?
검찰이 두 번에 걸쳐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혐의가 12개나 된다는 것은 한 개도 확실하게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게 아닌가요? 6개월여에 걸쳐 30여 곳을 수색하고 300여 사람을 수사한 것은 하명에 의한 표적 수사를 증거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를 기소한 것이 너무 과도하고 상식을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살인죄가 5년 이상의 징역인데 검찰은 7년을 구형하였으니 저의 죄가 살인한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입니까? 피고인의 사건과 관련된 기업인과 국회의원과 친구와 종친은 모두 집행유해나 불기소처분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피고인에게 적용된 혐의의 핵심인 배임죄는 문명국에는 없는 범죄이며 우리 국회에 이미 폐지 법률안이 제출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피고인이 가난한 조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드는 대열에서 평생 일했던 대가가 살인죄보다 더 무거운 감옥살이입니까?
땅을 밟고 하늘을 보는 것을 감사하며 감옥살이한 지 1년이 흘렀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는, 진실로 정의로운 판결을 기도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꿇어 엎드려 진술 올립니다.

 

* K 은행이 관리하던 D 조선은 우여곡절 끝에 민영화되어 K조선의 중요 역할을 맡고 있다.

 

간절한 최후진술에도 불구하고 원심에서 무죄가 된 D 조선의 배임까지 유죄가 되어 5년 징역에 벌금 5천만 원과 추징금 7천만 원을 선고받았다. 나의 최후진술은 오히려 반성 없는 변명으로 받아들여지고 말았다. 그 재판장은 항소심에서 형이 경감되는 통례와 달리 고위층 사건에 대해서는 형을 높이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그 판사를 만난 것 또한 불운이었다.
나는 대법원에 상고하였는데 담당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재판장을 잘못 만나 그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대법원에서는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만약 파기환송 되지 않고 기각된다면 대법원 청사를 폭파 하겠다고까지 장담하였다. 결과는 변호사 의 예상과 달리 기각되었고 폭파도 없었다.

 

G : 저도 이 대목이 의아합니다. 법학을 전공하셨고 또 같은 학교를 나오신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P : 저도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 예수님도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서, 또한 사도 바울도 네로 황제의 법정에서 침묵을 하셨어요. 이미 결론은 정해졌는데 따져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한 법리 주장은 변호사에게 맡기고 웅변보다 더 크게 울리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나았을 거예요. 이런 유형의 재판은 정치권력자가 바뀌고 시대정신이 변하면 그 때 역사가 심판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써놓고 기록을 남기는 것이 본인의 억울하고 비통한 심정을 치유(healing)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반대로 작가의 비판을 받았던 사람들은 비록 픽션인 소설일 망정 가슴이 뜨끔했을 것입니다.

 

한평생 못사는 조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주말도 밤낮도 없이 일하며 아파트 한 채에 눌러앉아 살다가 돈을 챙긴 것도 득 본 것도 없는데 인격과 돈과 자유를 다 빼앗겼다. 검사와 판사는 5년의 자유와 함께 벌금과 추징금으로 1억 2천만 원을 뺏어갔고, 대검 부장 출신 변호사는 영장심사 단판에 1억을 챙겼고, 고법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지법과 고법 재판 두 판에 두 번만 직접 출석하고 3억을 챙겼고,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최종심에 서류 한 번 제출하고 1억을 챙겨갔고, 법조기자는 수없는 판에 걸쳐 부정확한 보도로 인격을 살해했다. 경제는 선진국이 되었고, 한류는 세계가 열광하는데, 법조는 억울함이 클수록 시장이 커지는 문명 이전의 카르텔을 강고하게 지키고 있었다. 이승에서 지은 죄를 저승에서 어찌 하려는지 저들이 차라리 측은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살던 아파트와 타던 자동차는 남긴 것에 감사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돈이라도 조금 남았을 텐데.

 

상고가 기각되고 서울남부교도소로 이감되어 징역을 3년째 살던 중 W 산업은 법정관리를 거쳐 다른 기업에 1,400억 원에 매각되었고, 별도로 470억 원에 담보된 공장 부지는 528억 원에 매각되어 K 은행은 전체 대출금 1,100억 원을 모두 회수하고도 828억 원을 남겨 '대박이 터졌다'라는 신문 보도를 감옥에서 보았다.
징역 5년의 두 핵심 배임죄 중 D 조선의 배임은 무죄와 유죄를 오갔고 W 산업의 배임은 손실은커녕 대박이 터졌다. 나는 '대박이 터진 배임죄'에 대해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는데 그들은 판결을 미루며 2년이 지나 기각시켰다. 배임 행위를 할 때 손실 발생 가능성 이 있으면 범죄는 기수가 된다는 판례가 근거였다.
그렇게 4년 8개월 감옥살이하고 출옥하였다.

 

G :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Unhappy Ending 이네요!

P : 심판을 역사에 맡겼다면 이 소설의 대미는 아주 씁쓸해요. 작가가 생각한 것처럼 그를 유죄로 본 것은 그와 대척점에 있던 사람들 뿐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공적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을 텐데요. 역설적으로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침묵처럼  최후진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재판부가 그의 억울한 사정을 감안해 작량감경(酌量減輕)을 통해 집행유예로 풀어줬을지도 몰라요.

소설의 마지막에 그가 자랑스럽고 영광으로 여겼던 청조근정훈장을 한강물에 던졌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기부정이었어요. 지나친 결벽증이라고나 할까요? 작가가 '멸사봉공'하였던 국가에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요? 

작가가 L 대통령의 하수인이 아니라 강남의 유명한 교회에 직분을 가진 존경 받는 분이었던 만큼 "원수를 사랑하고 옥고(獄苦)를 비롯한 범사(凡事)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이 소설이, 아니 작가의 곡절 많은 삶이 훨씬 더 감동을 안겨줬을 텐데 이 점이 아쉬웠습니다. 

 

* 팔당대교의 저녁노을. 사진출처: Naver 자전거 여행작가 호미숙의 블로그

 

노을이 팔당대교에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의 사각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열심히 살고도 왜 그렇게 되었을까? 돈 챙긴 것도 득 본 것 도 없고 양심에 걸리는 것도 없었는데. 그런데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4년 넘게?
누구나 열심히 살고도 당할 수 있음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슬픈 유산이 토속화시킨 [대한민국 검사라는 이름의] '조물주'의 가혹에 대한 무관심! '비가 올 때까지' 지내는 기우제의 제물로 잡혀가는 형제를 보고 환호하는 비정! 한 명의 도둑을 잡으려고 열 명의 시민을 잡는 반문명에 민중은 침묵하고 있다.

법의 정의는 무엇일까? 복수할 수 없을까? 배상받을 수 없을까? 구속 수사 앞에 무력화된 방어권은 언제 살아날까? 재판도 하기 전에 인격부터 살인하는 검언유착은 누가 깰 수 있을까?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면 '조물주'의 힘을 뺄 수 있을까? 상식이 통하지 않고 억 울함이 클수록 시장은 커지는 비정의 카르텔을 누가 깰 수 없을까? '조물주'에게 나처럼 그렇게 잡혀갈 내일의 시민을 생각하니 국민은 박복하다.
강변을 그와 함께 걸었다. 체념의 대못으로 차가운 바닥에 못 박혔던 그곳에서 그만이 친구였다. 아흔아홉 양을 두고 길 잃은 나를 찾은 친구!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그가, 지금까지 내가 잘된 것은 모두 내가 잘한 것으로 여긴 것이 교만이라고 했다. 그 교만의 대가가 이것이라고!
그리고 말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노을이 한강에 깔리고 강물은 유유했다.
내 삶의 최고 상급이었던 청조근정훈장을 한강에 던졌다.
어둠이 내리는 잔잔한 윤슬 속으로 풍덩 사라졌다.
일제와 전제(專制)가 남긴 슬픈 유산은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이렇게 끝났다.
아! 사랑했던 나의 조국이여!

 

G : 선생님 설명을 듣고 보니 이 소설에는 뭔가 2%가 빠진 것 같네요. 

P : 그 2%가 더 커질 수 있는 사건이 또 있었어요. 저도 팩트 체크를 못한 사항이지만 작가는 같은 날(2023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B 그룹의 회장 고문이 되었다고 합니다. B 그룹이 메세나(Mecenat)와 '두 번째 노벨 문학상'을 외치며 인수한 某 문학잡지가 2024년 가을 재창간 작업을 벌이고 있었는데 회장님 고문인 작가가 개입함으로써 재창간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었다고 해요. 그가 꺼려하는 모 유명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싣기로 되어 있어서 그랬다는데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한 사람들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혔음에도 그의 에고(Ego)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수군거렸답니다.

 

G : 하지만 작가는 우리나라의 사법 시스템을 지탱하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 그리고 법조 기사를 다루는 기자들이 법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게 아니라 일종의 카르텔을 구축하고 자기 멋대로 이용하고 있다며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부총리까지 역임한 자기가 이렇게 당했다면 돈 없고 힘 없는 일반 서민은 오죽하겠느냐면서요.   

P : 작가의 관점을 빌린다면 정의의 여신인 디케가 한 손엔 죄의 경중을 재는 저울을, 다른 손엔 칼을 들고서 상대방이 누군지 알 수없게 눈을 가리고 공정한 심판을 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정의의 여신이 엉뚱한 모습을 하고 있어요. 같은 저울과 칼을 들었어도 눈을 뜨고서 심판하는 모습을 하고 있지요. 더욱이 그를 유혹하는 뱀이 다리를 감고 올라가고 있어요. 강릉 하슬라 뮤지엄에서는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가식적인 정의의 여신을 전시해 놓았답니다.

 

* 왼쪽은 하슬라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는 정의의 여신. 오른쪽은 정의의 여신 본래의 이미지

 

⇒ Book's Day (시즌 1)에 소개되었던 도서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