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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광화문 연가' 이영훈 스토리

Onepark 2025. 3. 6. 00:10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극장쪽으로 걷다보면 로타리의 정동교회 앞에 이영훈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마치 '광화문 연가'의 한 소절처럼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정동교회 구관) 건너편에 그의 노래비가 자리잡은 것이다.[1]

서울 도심에서 덕수궁 돌담길과 시립 미술관, 정동극장이 있는 낭만적인 거리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노래비를 만나다니 반가웠다.

 

* 미 감리교 선교사가 고딕 양식으로 세운 정동교회 구관

 

이 노래비는 가수 이문세의 음악 파트너로서 수많은 히트곡을 작사ㆍ작곡한 이영훈의 1주기를 맞아 2009년 2월 서울시 지원을 받아 건립되었다고 한다. 노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과 그의 대표곡 중의 하나인 '광화문 연가' 노랫말과 대표곡 목록이 새겨져 있다.

 

영훈 씨!

이제! 우리 인생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영훈씨의 음악들과
영훈씨를 기억하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당신의 노래비를 세웁니다.

영훈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2009.2.14.

 

얼마 전 라디오 방송에서 이영훈이 작사ㆍ작곡한 '옛 사랑' 노래를 합창곡으로 듣고 감동한 나머지 그 가사를 영어로 옮겨보았다

1980년대와 90년대 젊은이들에게 위로를 안겨주었던 만큼 나도 그의 노랫말을 여러 편 영어로 번역한 바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우리나라의 가요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그의 삶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었다.

 

옛 사랑  - 이영훈 작사ㆍ작곡

Old Love   Lyrics & Composition

by Lee Young-hoon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 빈 하늘밑 불빛들 켜져 가면

옛 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

찬 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난 눈물이 흐르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 걸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 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흰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 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

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넘쳐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 위엔

옛 사랑 그대 모습 영원 속에 있네

 

I cried while standing around without anyone knowing.

The things that have gone by are heavy on my heart.

When the lights under the empty sky are turned on,

That name of old love I call it sparingly.

A cold wind blows and I open my collar.

Regret and angry tears are flowing again.

Whoever asks, it doesn't seem like it hurts

All my past appearances were lies

Now, what I miss is what I miss

I'll keep it in my heart, if I think of you

I'll let it go as it comes to mind

When the white snow falls, I stand in the field

Thinking of my old love, I'll find the way

Gwanghwamun Street is covered in white snow

White snow keeps climbing higher and higher in the sky

Sometimes I get tired of love

My heart is overflowing with so much loneliness

Snow melts in the springtime on the green leaves

My old love, your figure is in eternity

 

 

Early Life

이영훈은 1960년 3월 6일 태어났다.[2]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었고 그의 형과 누나는 공부를 잘했다. 그러나 그는 공부보다도 음악을 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반대했지만 어머니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어려운 살림에 피아노를 집에 들여 놓았다.

뛸듯이 기뻐한 그는 거의 독학으로 바이엘, 체르니를 익혔고, 중학생 때에는 '소녀', '사랑이 지나가면'을 쓰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어머니는 그를 위해 항상 기도를 하였고, 그가 음악가의 길로 들어설 때에도 아버지는 물론 의사인 형과 교수인 누나가 반대를 했음에도 그의 어머니만큼은 그를 지지해주었다.

 

이 대목은 그리스의 New Age 뮤지션 Yanni와 아주 흡사하다. 1993년 그의 고향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아래의 극장에서 'Santorini'를 시작으로 그의 곡들로 채워진 공연을 열렸다. 그때 Yanni가 객석에 앉아 있는 그의 모친이 어려운 형편에 피아노를 사주신 덕분이라며 감사를 표하는 것을 보았다. 그 역시 미국 유학을 갔다가 음악에의 열정을 버리지 못하고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출발하여 세계적으로 흥행에도 성공한 인기 뮤지션이 되었던 것이다. 

 

Encounter with Lee Moon-sae

1985년 25세의 이영훈이 킹레코드 녹음실에서 아르바이트로 밴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을 때였다. '신촌 블루스' 곡을 만든 엄인호 씨가 어떤 가수가 작곡가를 구한다며 그를 소개시켜 주었다. 당시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 겸 라디오 DJ로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던 이문세였다.

이문세가 굉장히 수줍어하는 이영훈에게 한 곡 들려 달라고 말했다. 이영훈이 마지못해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첫 멜로디가 '쿵'하고 이문세의 심장을 쳤다. 그가 들려준 '소녀'라는 곡을 자기한테 달라고 조르자 이영훈은 "아마추어라서 히트도 안 될 텐데요"라고 하며 아주 겸연쩍어 했다.

이영훈과 그보다 한 살 위인 인기 가수 이문세는 곧 의기투합해 서울 수유리 자취방에서 밤을 새우며 작업했다. 6개월 동안 8곡을 완성했다. 하루는 이영훈이 부르기 쉬운 노래를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하더니 30분 만에 뚝딱 한 곡을 완성했다. 그 곡이 바로 이문세의 3집 앨범(1985)의 대표곡으로 큰 사랑을 받고 이영훈의 이름을 음악계에 처음 알린 '난 아직도 모르잖아요'였다

 

이영훈의 뛰어난 점은 멜로디도 아름답지만 그 이상으로 감동적인 노랫말에 있다. 그는 시적 감성이 풍부했고 가사에 엄청 공을 들였다. 그리고 ‘격’이 높은 가사를 썼다. 신파조의 감정을 걸러내고 담담하게 사랑과 이별, 상실과 그리움의 정서를 담아냈다.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은 가사가 시적이면서도 그림같다고 말했다. 노랫말을 따라 부르다 보면 한 폭의 그림 속에 풍덩 파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들 했다.

 

* 서로 상대방을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 스타 작곡가로 만든 놀라운 콜라보의 이영훈(왼쪽)과 이문세

Parade of Mega hits

이영훈의 수많은 히트곡은 NamuWiki의 이영훈 (작곡가) 편에 연도별ㆍ장르별ㆍ가수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므로 이것을 참조하면 된다.

 

한 가지 특기할 점은 이영훈이 이문세의 3집 앨범(1985)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필두로 '휘파람', '소녀'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팝 발라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선구자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인기는 이문세의 4집 앨범(1987)에서도 계속되었다.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 이야기',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이 히트하면서 무려 285만 장이나 팔린 4집 앨범은 사상 최다 음반판매기록을 세웠다. 그러니 그해 골든디스크 대상과 작곡가상은 따논 당상이었다. 무려 285만 장이나 팔린 4집 앨범은 그때까지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사상 최다 음반판매기록을 세웠다.

1988년에 나온 이문세의 5집 앨범은 선주문만 수십만 장에 달했다. 5집에 실린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등은 젊은이들의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리게 만들었이 음반으로 이문세는 골든디스크상 3연패를 이룩하였고, 이영훈이 추구했던 고품격의 팝 발라드는 대중가요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바꾸었다.

이영훈은 이문세의 6집 앨범(1989)과 7집 앨범(1991)의 작사ㆍ작곡에 참여했으나 둘 사이의 의견차이로 8집 앨범에는 다른 작곡가가 작업을 했고, 두 사람은 9집 앨범(1995)에서 재결합하였다.  

 

Inclination to Classical music

1990년대 들어 이영훈은 클래식에 경도되었다. 그는 3~7집을 함께 했던 이문세와 헤어져 그 동안 발표한 자작곡을 중심으로 클래식 소품집을 제작했다. 1992년 러시아 볼쇼이극장 오케스트라와 여러 차례 연주와 녹음 과정을 거쳐 '사랑이 지나가면' 소품집(1993)을 발표한 데 이어 이듬해 이문세의 히트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2집을 냈다.

나아가 이 앨범들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음악박람회인 MIDEM에 출품하여 이영훈의 음악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1994년에 세 번째 앨범을 완성하고 클래시컬한 소품집 작업을 마무리했다.

 

!995년과 1997년에는 TV드라마와 영화의 OST를 여러 곡 작곡하였으며, 2002 부산 아시안게임의 공식 주제가 '아시아의 꿈(Dream of Asia)'을 작곡하기도 했다.

 

 

Late Years

이영훈은 ABBA의 히트곡으로 구성된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고서 자기도 히트곡들로 구성한 '광화문 연가'라는 뮤지컬을 구상했다. 그의 사후에 그와 오랫동안 작업을 함께 했던 동료들이 애를 써서 마침내 2011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올렸다. 2017년에는 새로운 버전으로 공연됐고 2021년 세번째 시즌으로 그의 팬들의 성원을 받으며 꾸준히 공연중이다. 뮤지컬을 연출한 이지나는 "80년대 히트곡이 세월이 지나면서 명곡이 되고, 다시 고전이 되었다"고 말했다.

2003년 이영훈은 가족과 함께 호주 시드니로 이민을 떠났다. 그러나 귀국하여 작곡 및 음반제작에 몰두하던 중 대장암 판정을 받고[3] 투병을 하다가 2008년 2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아래 동영상은 그의 별세 한 달 후 KBS가 방영했던 고인을 추모하는 휴먼 다큐 필름이다.

 

 

Note

1]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게 되면 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바로 '광화문 연가'이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2] '옛 사랑'의 영역 가사를 이곳 T&P 블로그에 올리는 한편 KoreanLII에도 소개한다면 어느 항목이 적합할지 고심하였다. 이 노래도 추억 속의 옛 사랑을 떠올리며 눈내리는 들판과 광화문 거리를 걷는다는 내용이므로 Memory (기억, 추억) 항목이 썩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 항목에는 이미 이영훈이 작사ㆍ작곡하고 이문세가 노래했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 올려져 있었다.

우연찮게도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블로그 기사를 올린 날짜가 故 이영훈 작곡가 탄생 65주년이 되는 3월 6일이었다.

 

3] 이영훈은 완벽주의 작곡가로 유명했다. 작곡할 때 모티브 착상은 빨랐지만 수도 없이 고치고 또 고쳤다.

업라이트 피아노(아파트에서 살 때에는 전자 피아노와 헤드폰) 앞에 앉은 그는 수십 잔을 커피를 연거푸 마셨다고 한다.

또 가사를 쓸 때에는 시간을 들여가며 엄청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렇게 무리를 한 탓인지 그는 쉰을 넘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또 그랬던 만큼 그의 노래는 시간이 흘러도 누구나 부르기 좋아하고 그때마다 감동을 받게 되는 것 같다. 그의 곡들이 최다 음반판매 기록을 세운 것처럼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같은 곡은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여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