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도가 아니더라도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보면 뭔가 상념에 젖게 만든다.
연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보 두 점을 전시할 때에도 사유의 방 앞에 그렇게 써놓았다.
누가 보더라도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Time to lose yourself deep in
wandering thought'
불가(佛家)에는 그 못지 않은 그림이 있다. 바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이다.
관세음보살이 물 위에 비친 달처럼 일체중생의 온갖 소리를 모두 듣고 살펴보며 천 개의 눈과 손으로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해 주는 보살을 그린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불교회화(탱화/幀畵)이다.
화엄경에 따르면 선재동자(善財童子: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마음을 가진 구도자)가 여러 스승들을 찾아 순례를 한다. 선재동자가 찾아가는 선지식(스승) 중에 관세음보살도 있는데, 관세음보살은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의 연못가 바위 위에 앉아 선재동자를 맞이하였다. 수월관음도는 화엄경에서 선재동자를 맞이하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기본 구성으로 한다. 중국 당말(唐末) 오대(五代) 돈황(敦煌)에서 제작된 수월관음도들이 현존하는 수월관음도 중 가장 오래 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제작된 관세음보살화 대부분이 수월관음도이다. 나무위키 [수월관음도]
관세음보살의 형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나 연꽃을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단독 형상으로 조성되기도 하지만 아마타불의 협시보살로 나타나기도 하고 지장보살, 대세지보살과 함께 있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문 외우듯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아미타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을 진심으로 믿어서 극락에 가고자 한다는 의미이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 정진규
Goddess of Mercy like the Moon on Water by Chung Jin-kyu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佛畫 水月觀音圖)를 보러 갔다 다른 건 보이지 않고 그분의 맨발 하나만 보였다 도톰한 맨발이셨다 그런 맨발을 나는 처음 보았다 연꽃 한 송이 위에 놓이 신 그분의 맨발, 요즈음 말로 섹시했다 열려 있었다 들어가 살고 싶었다 버릇없이 나는 만 지작거렸다 1310년, 687년 전에도 섹시가 있었다 419.5×245.2! 장대하셨으나 장대하시지 않음이 거기 있었다 당신을 뵈오려고 전생부터 제가 여기까지 맨발로 걸어왔어요 제 맨발은 많이 상해 있어요 말하려 하자 그분의 손이 내 입술 위에 가만히 얹히었다 무슨 뜻이셨을까 돌아오는 길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함께 갔던 미스 김과 차를 마시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당신을 뵈오려고 전생부터 제가 여기까지 맨발로 걸어왔어요 그게 화근이었다 순간! 미스 김이 관음보살이 되고 말았다 지울 수 없었다 미스 김은 나를 굳게 믿었다 그 날 이후 나는 관음보살 한 분을 모시고 살게 되었다 내 사는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말았다 맨발로 나를 마음대로 걸어다니시는 감옥 하나 지어드렸다 실은 관음보살께서 미스 김이 되셨다 정진규 시집〈도둑이 다녀가셨다〉 (2000)
When I went to see the Buddhist painting
called "Goddess of Mercy like the Moon
on Water" (Avalokitesvara Bodhisattva)
in Goryeo, I couldn't see anything else,
only Her bare feet.
I could see Her thick bare feet, and
I had never seen such bare feet before.
Her bare feet resting on a single
lotus flower looked sexy in today's terms.
It was open. I wanted to go in and
live in it. Spoiled, I only fiddled with it.
In the year of 1310, 687 years ago,
it was sexy. Size of 419.5cm × 245.2cm!
It was grand, but I found there
it wasn't grand. I've been walking barefoot
all the way here from my previous life
to see you. My bare feet are very injured.
When I tried to speak, Her hand rested still
on my lips. I wonder what She meant.
On the way back, I felt tight in my chest.
Sipping tea with Miss Kim,
who had gone with me, I muttered alone.
I've been walking barefoot all the way
here from my previous life to see you.
It was the start of unhappiness!
That moment, Miss Kim became Goddess of
Mercy. I couldn't erase it. Miss Kim believed
in me. From that day on, I have been living
in the service of Goddess of Mercy.
My life has become this way.
I have built a prison for Goddess of Mercy
to walk around barefoot on me and do
as she pleases. Actually, the Goddess of
Mercy has become Miss Kim.
관세음보살은 산스크리트어 '아발로키테슈바라'의 한자 의역이다.
중생의 소리를 듣고 어디든지 손과 몸을 나누어 고통과 어려움에서 구제해준다는 보살로서, 부처님의 제자인 보살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따르고 의존하는 보살이다.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과 함께 불교의 4대 보살이라고 일컫는다.
시인은 썸을 타던 미스 김과 1997년 호암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대고려 국보전을 보러 갔다. 전시되어 있는 불화 수월관음도에서도 관음보살의 맨발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관람 후 찻집에서 수월관음도의 맨발을 보고 느낌 소감을 독백처럼 중엉거렸다. "당신을 뵈오려고 전생부터 제가 여기까지 맨발로 걸어왔어요."
그런데 미스 김이 시인의 사랑 고백으로 들었다는 것이다.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고려 시대의 국보 여러 점을 관람하고 나왔을 터이니 시대의 무게와 아름다움을 가슴 깊이 느끼던 참이었다. 그러니 이 말을 듣고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시인은 자기가 중얼거린 말이 화근이 되어 둘이 맺어지고 미스 김이라는 여자의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뵈었던 수월관음도의 보살이 미스 김이 되어 자기와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참으로 익살스럽과 마음 따뜻해지는 산문시(散文詩)라고 하겠다.
불교를 소재로 남녀간의 애정을 노래한 점에서 우리나라 근대시의 효시를 이룬 주요한의 '불놀이'와 여러 모로 비교가 된다.
이 같은 인연을 일깨워주는 국제결혼한 커플의 사례를 YouTube에서 본 적이 있다.
세계 여행을 떠난 한 청년이 이스탄불에 갔다가 버스를 타고 트로이로 갔다. 트로이 전쟁의 유적지를 보러 간 게 아니라 한국 기업이 성공적으로 건설하여 개통시킨 세계 최장의 현수교 차나칼레 대교 (1915 Çanakkale Bridge, 공식명칭에서 1915는 케말 파샤가 지휘하는 오스만 투르크 군대가 영불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저지한 1915년 갈리폴리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붙인 것임) 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곳 패스트푸드 점에서 여행기 동영상 편집을 하다가 옆 자리의 현지 여성에게 말을 걸었는데 이런 우연이! 바로 대교 공사현장에서 통번역사로 일했던, 충남대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적이 있는 튀르키예 여성이었다. 그녀의 안내로 차나칼레 대교도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고나서 이즈미르 고향 집으로 돌아간다는 그녀를 따라 야간 버스여행까지 같이 하게 되었다.
청년은 슬비와 한국에서 여행을 다니다가 슬비 양에게 청혼을 했다.
그 청년은 "당신을 만나려고 멀리서 힘들게 트로이까지 왔다가 한국인의 자랑거리 차나칼레 대교를 벅찬 가슴으로 보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게다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어여쁜 여성을 만났으니 이런 인연을 어찌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으랴!
그 청년이 낯선 이국 땅의 햄버거 가게에서 중얼거린 말을 관세음보살 같은 튀르키예 여성이 알아듣고 그의 튀르키예 남은 여정(journey)을, 아니 그의 평생(whole life)의 동반자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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