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보는 TV 프로 중에 EBS 다큐 〈건축탐구 - 집 〉이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가정 집들의 건축 비화를 김영옥 탤런트의 구수한 나레이션으로 보여주는 프로이다. 나는 지금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도시 안의 단독주택, 전원주택에 건축주의 희망 사항이 어떻게 실현되어 있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비 건축주들한테는 부지를 고르는 법, 설계 시에 반영할 것, 시공사에 일을 시키는 법, 집을 지을 때 주의할 점 등 참고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나 역시 왕년에 건축가를 희망한 적이 있었기에 "If I were . . ." 생각하면서 이 프로를 아주 흥미롭게 시청하곤 한다.
그런데 산문시를 즐겨 발표하는 정진규 시인이 늘그막에 시도했던 전원주택 이야기를 시로 썼다.
아내에게 원하는 걸 그려보라고 했더니 "빈 하늘에 빨랫줄 하나와 원추리랑 채송화가 피 는 장독대가 있는 집이면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SNS를 통해 '있어 보이는 것'을 자랑하는 세태(世態)와는 달리 '남들이 탐하지 않도록 눈에 뜨이지 않게' 지으라고 당부했다는 말을 전했다.
빈 하늘에 걸린 빨랫줄 하나 - 정진규
남들도 다 그런다하기 새 집 한 채를 고향에 마련할 요량으로 그림을 그려가다가 늙은 아내도 동참시켜 원하는 걸 그려보라 했더니 빈 하늘에 빨랫줄 하나와 원추리랑 채송화가 피 는 장독대가 있는 집이면 되었다고 했다 남들이 탐하지 않도록 눈에 뜨이지 않게만 하라고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실용(實用)도 끝이 있구나! 나는 놀랐다 내 텅빈 실용 때문에 텅 빈을 채우려고 육십 평생을 소진했구나 아내의 실용이 바뀌었구나 눈물이 한참 났다 이제 야 사람 노릇 좀 한번 하려고 실용 한번 하려고 나는 실용의 그림들을 잔뜩 그려 넣었는데 없는 실용의 실용을 아내가 터득했구나 눈에 뜨이지 않게까지 알아버리다니 다 지웠구나 나는 아직 그냥 그탕인데 마침내 일자무식(一字無識)으로 빈 하늘에 걸린 아내의 빨랫줄이여! 구름도 탁탁 물기 털어 제 몸 내다 말리는구나 염치 없음이여, 조금 짐작하기 시작한 나의 일자무식도 거기 잠시 끼어들었다 염치 없음이여, 또 다시 끼어드는 나의 일생(一生)이여 원추리 핀다 채송화 핀다
막상 이 시를 번역하려고 보니 마치 머리 속으로는 쉽게 그려지는 것도 실제로 식구들의 방을 배치하는 것이나 창문을 내는 일도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원시에는 구둣점이 없지만 영어시에서는 의미 전달을 위해 빠짐없이 구둣점을 붙였디.
'실용(實用)의 끝'은 무엇이고, '실용의 실용을 터득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번역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이러한 의미가 손상없이 전달되려면 무슨 어휘를 써서 영어로 옮겨야 할까?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실용주의(Pragmatism)에 관한 서적을 찾아서 읽어보기도 했다.
A Single Clothesline Hanging in the Empty Sky by Chung Jin-kyu
As everyone else did ti, I was drawing a picture of a new house to be built at my hometown. I invited my old wife to join me and draw what she wanted. She said it was just a simple house with a single clothesline in the empty sky, in addition to jangdokdae to preserve food with daylilies and rose mosses blooming beside it. She added one more word, “Keep it out of sight, lest others covet it.” So much for practical use! I was surprised. I've wasted sixty years of my life trying to fill the void practical mind. My wife's practical thinking has changed. So I was in tears. Now I was about to try to act like a human being for the sake of practical use. I painted a lot of pictures of practicality. She's mastered the practicality of pragmatism unnoticed until now. She's learned it so well that she has erased it from her eyes. I'm still just in an empty box. I'm just a know-nothing like a clothesline of my wife hanging in the sky! The clouds are drying themselves by shaking off the water. I'm living foul. As I've begun to think I’m a know-nothing, I dare to be involved. But I know I’m living foul, I'm ready to be involved for my life. I can see day lilies and rose moss bloom.
시인이 말하는 집을 짓고 살 때의 '실용'(practicality)이란 무엇일까?
전에 미국 교수를 모시고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홍보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고속도로 양쪽으로 山 아래 고층 아파트들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연속 질문을 했다. 저런 아파트에는 누가 사느냐? 왜 땅값도 비싸지 않은 농촌 지역에 도시형 고층 아파트를 많이 짓느냐? 잔디 마당이 있는 단층집이 더 살기 좋은 것 아니냐? 등등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쩔쩔 맸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분이 수긍할 만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것은 삼성전자 홍보관에 전시되어 있는 생활가전, 주방기기들이 정답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한국의 농촌 주부들도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TV, 냉장고, 최신식 주방기기가 갖춰진 집에서 살고 싶고, 자잘한 수리와 관리(domestic chore)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할 정도로 나이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실용의 끝'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와 같은 생활의 편리함도 좋지만 이를 추구한 댓가 또한 적지 않다. 가격도 비쌀 뿐더러 매달 내야 하는 전기요금도 만만치 않다. 또 고장이 나면 수리를 맡겨야 하고, 몇 년을 쓰다보면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그러니 이런 일에 신경 쓸 필요 없는 옛날 방식으로 다시 돌어가고 싶어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모처럼 전원주택을 지은 김에 보란듯이 실용적인 첨단 가전제품을 들여 놓고 싶었지만, 시인의 아내는 '실용의 실용'을 터득했다고 탄복한다.
실용을 추구한 결과를 알고 사소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실용 그 너머'(beyond practicality)에 가 있다고 본 것이다.
사실 시골에 가서 맑은 하늘 아래 상쾌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 빨래를 말리고, 돈 써가면서 냉장고를 찬장처럼 쓰느니 장독대에 음식을 저장해 놓고 먹는 것이 훨씬 좋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왜냐하면 실용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것이 우리의 생활을 얼마나 편리하고 유익하게 하며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높이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철학사조에는 일자무식일지라도 그들이 모르는 생활의 지혜를 알고 있다면 시골에 흔한 원추리와 채송화 피는 꽃밭일 망정 남 부럽지 않다고 보았다. 실용주의만 가지고는 얻기 힘든 낭만(Romanticism)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자꾸만 '염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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