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Tistory에 무슨 기사를 올릴까 고민[1]하다가 무릎을 탁 쳤다.
내 경우 인생을 바꾼 책 한 권을 들라면 서슴치 않고 "Liar's Poker"라고 말할 수 있다. 언뜻 도박에 관한 책인가 싶지만 표지에 굿프로인드 살로몬 브라더스 회장의 초상이 들어간 것이나 부제 "월가의 잔해에서 일어서다 (Rising Through the Wreckage on Wall Street)"를 보면 투자금융에 관한 책임을 쉬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언제 이 책을 샀는지, 무슨 경위로 통독을 했는지, 또 여기저기서 책 내용을 단편적으로 소개하였지만 내가 무슨 영향을 받았고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제대로 밝힌 적은 없었다.
이 책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 1960 - )가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 살로몬 브라더스에 입사하여 트레이딩 룸에서 근무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재치있게 때로는 전문가적 식견을 담아 논픽션으로 구성한 것이다.[2]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에 〈라이어스 포커 - 월가 최고 두뇌들의 숨막히는 머니게임〉(정명수 옮김, 위즈덤 하우스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나는 이 책을 산업은행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하던 1989년 말 맨해튼의 더블데이 북숍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18.95달러를 주고 샀다. 당시 미국의 금융자본시장 조사 업무를 맡고 있었기에 부제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던 중 공교롭게도 미국 병원에 2주 가까이 입원하게 되었는데 그때 성경책과 이 책을 들고 가서 병상에 누워 통독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집중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던 중년의 미국인 환자가 책 표지를 보고 친절하게도 1달러 지폐를 꺼내들고 Liar's Poker를 어떻게 하는지 시연을 해 준 기억도 난다.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원서 16-17쪽
[살라몬 브라더스의 채권 트레이더]들은 다른 리스크 테이커들보다 투자위험을 더 잘 처리함으로써 날마다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했다. 돈은 [채권부장] 메리웨더와 같은 리스크 테이커들에게서 나왔는데 그 돈이 나올지 안 나올지는 굿프로인드 회장의 통제 밖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비트리지(차익거래) 보스를 상대로 한 손에 백만 달러를 들고 도전하는 행동이 굿프로인드 회장이 자신도 선수임을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이것을 과시하고 싶다면 라이어스 포커가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게임은 트레이더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컸다. 메이웨더 부장 같은 사람은 라이어스 포커가 채권 거래와 공통점이 많다고 여겼다. 트레이더의 성격을 테스트하는 게임이었다. 트레이더의 본능을 연마했으니 좋은 플레이어는 좋은 트레이더가 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모두 그 점을 이해했다.
라이어스 포커에서는 적게는 2명, 많게는 10명까지 둥글게 원을 만든다. 각 플레이어는 1달러 지폐를 가슴 가까이 든다. 이 게임은 '난 의심해(I Doubt It)'으로 알려진 카드 게임과 비슷하다. 각 플레이어는 달러 지폐 앞면의 일련번호 숫자를 보고 다른 플레이어를 속이는 게 요령이다. 한 트레이더가 “비드(입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그가 “쓰리 식스”라고 말하면 자신을 포함한 모든 플레이어가 들고 있는 달러 지폐의 일련번호에 적어도 6이란 숫자가 3개 이상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첫 번째 비드가 이루어지면 게임은 원 안에서 시계 방향으로 진행된다. 입찰가가 '쓰리 식스'라면 입찰자의 왼쪽에 있는 플레이어는 둘 중 하나를 택한다. 더 높은 숫자, 세븐이나 에잇이 3개라 하거나 식스가 4개 또는 5개라며 "챌린지(도전)”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난 의심해' 카드게임과 비슷하다.
다른 모든 플레이어가 한 플레이어의 비드에 챌린지하는 데 동의할 때까지 비드가 올라가게 된다. 그 다음에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일련 번호를 공개하고 누가 누구에게 블러핑(허세)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유능한 플레이어의 머릿속은 확률에 따라 움직인다. 예컨대 무작위로 생성된 40개의 일련 번호 중에 6이 3개가 들어갈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뛰어난 플레이어에게 수학은 쉬운 게임이다. 어려운 부분은 다른 플레이어의 얼굴 표정을 읽는 것이다. 모든 플레이어가 블러핑과 더블 블러핑의을 잘 한다면 매우 복잡해진다.
마상 창(馬上槍) 시합에 전쟁 같은 느낌이 드는 것처럼 라이어스 포커 게임에는 채권 트레이딩의 감(感)이 있다. 라이어스 포커 플레이어가 스스로 던지는 질문은 어느 정도 채권 트레이더가 자문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게 과연 스마트한 리스크인가? 내가 운이 좋은가? 상대는 얼마나 교활한가? 상대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만약 모른다면 어떻게 상대의 무지를 이용할 수 있는가? 그가 높은 입찰가를 제시한다면 블러핑을 하는 건가, 아니면 실제로 강한 카드를 들고 있는가? 내가 어리석은 입찰을 하도록 유도하는 건가, 아니면 실제로 같은 숫자 4개를 가지고 있는 건가? 각 플레이어는 상대방의 약점, 예측가능성, 패턴을 찾아내고 자신은 이를 피하려고 한다. 골드만 삭스, 퍼스트 보스턴, 모건 스탠리, 메릴린치 등 월스트리트의 채권 트레이더들은 모두 라이어스 포커의 어느 버전을 플레이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존 메리웨더 채권부장 덕분에 가장 큰 판돈이 걸린 곳은 바로 살로몬 브라더스의 채권 트레이딩 룸이었다.
다소 장황하게 라이어스 포커 요령을 설명했는데 바로 이 점이 살로몬 브라더스의 채권 트레이딩 룸에서 일했던 저자의 기발한 착안점[2]이었다. 바로 이와 같이 속임수를 써서라도 수익을 올려야 많은 보너스를 받는 기업문화로 인해 살로몬 브라더스는 월가의 채권 트레이더 사관학교로 불렸다.
그러나 이게 화근이 되어 1990년대 초 대규모 국채입찰 부정 사건으로 인해 회사는 중징계를 받고 1억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했으며, '월가의 제왕'이라 불리던 굿프로인드 회장도 책임을 지고 회장 직에서 물러났다. 결국 1997년에는 Salomon 이름 하나만 남긴 채 보험회사인 Travelers Group에 인수되었다가 그 이듬해 Citigroup으로 합병되고 말았다. 2022년 초 살로몬 브라더스의 전직 임직원들이 Salomon Brothers라는 브랜드 네임을 사들여 투자회사로 부활시키려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책은 크게 나누어 전반은 살로몬 브라더스의 주택모기지 담보부 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 MBS)에 대하여, 그리고 1987년 블랙먼데이 직전 까지 다룬 후반에서는 드렉셀 번햄 램버트의 채권본부장 마이클 밀켄이 히트시킨 정크 본드(high-risk high-yield bond를 이르는 말)를 인사이더의 관점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어찌 보면 MBS나 정크본드 같이 상식을 초월한 채권들이 어떤 배경에서 탄생하였고 성공과 쇠퇴(기관으로서는 몰락)의 길을 걸었는지 저자는 아주 흥미롭게 그 막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서 정크 본드까지 다루기로 하면 S&Ls 대규모 도산 사태, 정리신탁공사(RTC)의 활약까지 이야기해야 하므로 MBS를 중심으로 소개하도록 한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 감명을 받고 나름대로 정리하여 논문을 쓰고 책도 저술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교수로 전직하게 되었는지 밝힐 것이다.
Note
1] Tistory 오블완 챌린지에 참여하면 캘린다에 체크 표시를 해서 보여주고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면 미션 완수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댓글로 보내온다. 이럴 때면 블로그에 올릴 만한 글감이나 이야깃거리가 없나 하고 자신을, 또 하루 일과를 되돌아보게 된다.
평소에는 글 쓸 소재가 무진장하다고 자신했는데 막상 쓰려니 글이 써지지 않을 때가 있다. 친구들과 몇 시간씩 수다를 떨다가도 글로 남기려고 정리를 하면 한두 줄도 안되는 것과 흡사한 심정이 되곤 한다. Tistory에서도 이런 사람을 위해 "뭘 쓸지 모르겠다면?"하고 몇 가지 토픽을 제안하고, 참고가 될 만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2] 마이클 루이스(사진)는 런던정경대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월가의 투자은행에서 근무했던 학력과 경력을 십분 활용해 남다른 분야에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다수 저술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Liar's Poker (1989) 외에도 오클라호마 야구팀이 유명 선수가 없음에도 데이터 야구를 펼침으로써 우승을 하게 된 이야기를 다룬 Moneyball (2003), 흑인 소년이 백인 가정에 입양되어 미식 축구 선수로서 대성하게 된 실화를 소개한 The Blind Side (2006)는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에도 성공하였다. 또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하기 전, 부동산 시장의 몰락을 예측하고 공매도를 시도한 천재적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The Big Short (2010) 역시 영화로도 제작되어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The Undoing Project (2017, 한국에서는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라는 번역서로 출간) 는 이스라엘의 두 천재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의 우정과 파트너십이 어떻게 행동경제학으로 태어나게 되었는지, 이것이 대니얼 카너먼 교수(2002)와 리처드 세일러 교수(2017)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는지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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