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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생각에 관한 생각의 오류 - 편향

Onepark 2022. 2. 18. 22:10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한다고 자부하면서도 종종 '우물안 개구리'(정중지와, 井中之蛙) 같은 사고와 행동을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애국심은 누구 못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국가적 중요 사항에 관한 여론조사는 요리조리 피하면서도 여론조사 결과는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자기가 조사한 바로는 틀림없이 A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대상 범위를 크게 넓혀보면 A가 아닌 B라는 결론에 도달한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것.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방대한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한 결과는 A가 맞는 듯 싶었으나 데이터로 처리하기 어려운 인간 심리나 예측 불가한 여러 요인을 고려해보니 A가 아닌 B를 택하는 합리화된 편향적(偏向的, biased)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경제면 신문기사를 보고나서였다. 중장기 주택담보 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금리상승이 거의 확실시됨에도 불구하고 변동금리 조건을 택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보도[1] 내용이었다.  지금 당장은 변동금리 조건이 고정금리 조건보다 유리해 보이지만 금리인상기에는 금리변동폭에 따른 이자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금리 선택 옵션부 은행대출을 받을 때 금리 인상기에도 변동금리를 택하는 사람이 80%나 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날 서점에서 <Liar's Poker>[2]를 쓴 마이클 루이스의 신저 <The Undoing Project>의 처음 몇 쪽을 읽자마자 흥미가 동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창신 번역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라는 조금 알쏭달쏭한 제목으로 2018년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다. 위트와 필력이 뛰어난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루이스가 다음과 같은 자기반성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노라고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2003년 <머니볼(Moneyball)>을 출간했다. 미국 프로야구팀 오클란드 애슬레틱스가 선수와 전략을 평가는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 지난 10여 년간 많은 사람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롤모델 삼아 더 나은 데이터, 더 나은 분석을 이용해 시장의 비효율성을 찾으려 했다.

내 책에 대한 요란한 반응이 잠잠해졌을 때도 한 가지 반응만큼은 유독 오래 살아남았다. 당시 시카고대학 교수 두 명의 평가였는데 한 사람은 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였고, 한 사람은 법학교수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이었다. 2003년 8월 31일자 <뉴리퍼블릭>에 실린 두 사람의 글은 관대하면서 매몰찼다. 프로선수 시장이 죄다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같은 가난한 구단은 시장의 비효율성을 잘 이용하기만 해도 부자 구단을 이길 수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에는 두 교수 모두 동의했다. 하지만 <머니볼> 저자는 야구선수 시장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더욱 근본적인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그 비효율성은 인간 정신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했다. 일부 야구 전문가가 야구선수를 오판하는 방식, 나아가 어떤 분야는 전문성 때문에 판단을 그르치는 방식은 여러 해 전에 이스라엘 심리학자 다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그러니까 <머니볼>은 새로운 책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회자되었지만 사람들이, 그리고 특히 내가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이스라엘의 탁월한 두 심리학자가 찾아낸] 개념을 자세히 소개한 책에 불과했던 것이다. (10~11쪽)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사람의 천재 심리학자가 세운 행동심리학(behavioral psychology)의 개념이 사람들의 일견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심리'와 '감정'에 치우친 경제행태를 취하는 것을 훨씬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앞서 소개한 두 교수 다니엘 카너먼[3]과 리처드 세일러는 2002년과 2017년에 각각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통계와 확률 이론 전문가도 일반적 모집단보다 소규모 표본이 얼마나 가변적인지, 그리고 표본이 작을수록 큰 모집단을 닮을 확률은 낮다는 것을 직관으로 감지하지 못했다. 이들은 표본이 애초의 모집단을 반영하는 한 그 표본은 옳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아주 큰 모집단에서 대수 법칙은 이런 결과를 보장한다. 즉, 동전을 천 번 던지면 동전을 열 번 던질 때보다 앞면과 뒷면이 대략 절반씩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인간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대니와 아모스는 이렇게 썼다. “무작위 표본추출에서 인간의 직관은 대수 법칙이 소수에도 적용된다는 소수 법칙을 믿는 듯하다.”

이 같은 직관의 오류는 인간이 세상을 헤쳐나가고 판단과 결정을 내릴 때 직관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가와 관련해 수많은 사실을 암시하지만 <심리학회보(Psychological Bulletin)>에 실린 대니와 아모스의 논문은 그 오류가 사회과학에 미치는 결과에 주목했다. 사회과학 실험에서는 대개 큰 모집단에서 작은 표본을 뽑아 관련 이론을 시험한다.

두 사람이 심리학자들에게 낸 문제는 그 짐작을 확인해주었다. 심리학자들은 자신이 들고 있는 가방에 빨간 칩이 많이 들었는지 결정해야 할 때 고작 몇 개의 칩을 보고 일반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성향을 보였다. 이들은 과학적 진실을 캘 때, 자기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우연에 의지했다. 게다가 작은 표본의 위력을 굳게 믿어 그 표본에서 발견한 것들을 무조건 합리화하려 했다. (177~181쪽)

 

이 책의 백미(白眉)는 오리건 연구소(Oregon Research Institute)에 관한 대목이다. 승진이 늦어 불만이고 강의보다 행동과학 기초연구에 관심이 많은 오리건 대학교의 폴 호프만 교수가 미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 연구소를 설립했다. 처음엔 이곳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지도 몰랐으나 뉴욕항만공사가 허드슨강 매립지에 건립할 고층 건물의 흔들림 방지 설계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더욱이 그간의 연구실적을 바탕으로 이 책의 주인공인 두 천재 심리학자가 1970년대 초에 이 연구소에 합류하면서 행동심리학 연구의 중요한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행동과학의 구체적인 연구방법론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전문가]의 판단이 [컴퓨터에 의한 의사결정의] 알고리즘보다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직은 인간 활동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판단을 대체할 알고리즘을 만들 정도로 데이터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삶에서 대단히 민감한 문제 대부분을 의사, 판사, 투자자문가, 정부 관리, 입학사정관, 영화사 임원, 야구 스카우트 담당자, 인사 관리자와 같은 인간의 전문적 판단에 의지하고 있었다. 폴 호프먼(Paul Hoffman)과 오리건 연구소에 합류한 심리학자들은 전문가들이 정확히 어떻게 판단을 내리는지 알고 싶었다. 폴 슬로빅이 말했다. "우리는 특별한 비전도 없었어요. 다만, 사람들이 정보를 어떻게 취급하고 어떻게 처리해서 결정이나 판단을 내리는지가 중요한 문제라고 느낄 뿐이었죠.."

1960년 말에 호프먼은 전문가가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물론 전문가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대단히 주관적인 접근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행동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을 때가 많다. 호프먼의 주장에 따르면, 전문가의 생각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결정을 내릴 때 쓰는 다양한 정보를 놓고 (호프먼은 이 정보를 '신호'라 불렀다), 그들의 결정에서 각 정보에 어느 정도의 가중치가 부여되었는지 추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일대 입학사정위원회가 어떤 식으로 학생의 입학을 결정하는지 알고 싶다면 먼저 그들에게 입학 사정에 고려하는 지원자 정보를 달라고 요청한다. 평균 성적, 교육위원회 점수, 운동 실력, 동문 관계, 다니던 고등학교 유형 등이다. 그런 다음 입학사정위원회가 어떤 학생을 합격시키는지 거듭 관찰한다. 위원회 결정을 여러 건 관찰하면, 이들이 지원자 평가와 관련이 있다고 여기는 여러 특징을 평가하는 과정을 뽑아낼 수 있다. 그리고 수학 실력이 된다면, 위원들의 머릿속에서 그 특징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모델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입학사정위원회는 이를테면 사람 학교 출신 동문 가족 학생의 교육위원회 점수보다 공립학교 출신 운동선수의 교육위원회 점수에 더 높은 비중을 둘 수도 있다).

호프먼은 수학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그는 <심리학회보>에 <임상 판단의 동질가상적 재현 The Paramorphic Representation of Clinical Judgment〉이라는 논문을 실었다. 호프먼이 논문 제목을 난해하게 붙인 이유 하나는 그 제목을 읽을 수 있을 정도면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려니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1968년에 이르러 <미국 심리학회지>에는 전문가의 판단이 알고리즘보다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작은 산처럼 쌓였다. 이러한 사정은 오리건대학의 방사선 전문의들을 대상으로한 실험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189~191쪽)

 

 

[대니얼과 아모스는] 여전히 학계에 농담을 던지듯 첫 번째 논문인 <소수 법칙에 대한 믿음>을 쓰면서, 통계상 정답이 있는 문제를 마주한 사람들이 통계 전문가처럼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통계 전문가도 통계 전문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통계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보고도 통계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논리적 사고를 하는 걸까? 살면서 마주하는 많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블랙잭의 카드 카운팅을 하듯 생각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두 사람은 다음 논문에서 이 질문에 부분적인 답을 제시했다. 그 논문의 제목을 말할 것 같으면… 아모스는 제목에 대해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그는 논문을 시작하기 전에 제목부터 정하는 성격이었다. 제목을 정해야 논문에 무엇을 쓸지 감이 잡혔기 때문이다. [······]

두 사람은 자기들의 첫 번째 시도에 '주관적 확률: 대표성 판단 (Subjective Probability: A Judgment of Representativeness)'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 두 사람은 이런 말로 시작했다. “주관적 확률은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 우리가 도달하는 결론, 우리가 제시하는 설명은 새 직장에서의 성공 여부, 선거 결과, 시장 상황 등 불확실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 판단에 기초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그리고 이 외에 많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간은 정확한 확률을 계산하도록 타고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 머리는 무엇을 한 걸까?

두 사람이 제시한 답은 이렇다. 우리 머리는 확률 법칙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짐작 법칙으로 대체한다. 대니와 아모스는 이를 ‘어림짐작(heuristic)’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들이 탐구하고 싶은 첫 번째 어림짐작에 '대표성(representativeness)'이란 이름을 붙였다. 사람들은 판단을 할 때, 판단 대상을 머릿속에 있는 어떤 모델과 비교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저 구름은 내 머릿속에 있는 다가올 폭풍 모델과 얼마나 닮았는가? 이 궤양은 내 머릿속에 있는 악성종양 모델과 얼마나 가까운가? [······] 세계는 단지 무대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는 카지노이며, 우리 삶은 확률 게임이다. 그리고 삶의 여러 상황에서 확률을 계산할 때면 곧잘 유사성, 즉 대표성을 판단한다. 사람들 머릿속에는 '먹구름', '위궤양', 'NBA 농구선수' 같은 모집단마다 그것과 관련한 대표적 이미지나 느낌 등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구체적 사례를 그런 모집단과 비교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모스와 대니는 그런 모델이 사람들 머릿속에 맨 처음 정확히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유사성 판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다루지 않았다. 그보다는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모델이 꽤 명확한 경우에 초점을 맞추자고 제안했다. 구체적 사례가 머릿속에 있는 대표적 이미지나 느낌과 유사할수록, 사람들은 해당 사례가 그 대표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두 사람은 이렇게 썼다. "많은 경우에, A사건이 B사건보다 대표성이 더 커 보이면, 사람들은 A가 B보다 발생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다는 게 우리 요지다." 어떤 농구선수가 리 머릿속에 있는 NBA 선수 모델과 많이 닮았을수록 우리는 그 선수가 NBA 선수가 될 확률을 높게 평가하게 될 것이다. (204~206쪽)

 

이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이 이른바 '데이터 야구'의 붐을 일으키면서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떠들썩했지만, 이스라엘의 두 심리학자는 이미 40년 전에 데이터 분석이 소용 없는 심리와 감정에 의해 합리적 판단이 지장을 받는다는 학설을 발표한 바 있다. 그렇다고 1970년대 초 미국 오리건 연구소에서 대니와 아모스가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결과는 사람들이 어리석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사람들이 판단할 때 사용하는 일련의 특별한 규칙들 – 기억에서 꺼내기 쉬울수록(availability) 그 사건이 발생할 확률을 높게 보거나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조정을 하느냐(anchoring and adjustment) 하는 어림짐작(conditionality heuristic)을 많이 하게 되므로 체계적 편향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금리인상기에는 변동금리 조건 대출이 불리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그 판단의 기준을 은행부채가 많은 현 시점에서는 낮은 금리 쪽에 닻(anchor)을 내리기 쉽고 거의 그대로 믿어버린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설마 금융당국이 코로나 재난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급속히 금리를 올리겠느냐 희망적인 사고를 한 까닭에 체계적 편향에 빠져들었다는 해석이 가능하였다. 

 

Note

1] 손진석 기자, "금리 상승기인데···변동 금리를 선택하는 ‘역주행’ 늘어난다", 조선일보, 2022.02.07.

 

2] <Liar's Poker>는 프린스턴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1980년대 미국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 살로몬 브라더스의 트레이딩 룸에서 직접 보고 들은 일련의 극적인 사건을 넌픽션으로 쓴 책이다.

주지하다시피 살로몬 브라더스는 1980년대 초 MBS(모기지 담보부 채권) 거래를 통해 업계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이었다. <Liar's Poker>에서 상세하게 기술한 대로 굿프렌드(Gutfreund) CEO 겸 이사회의장이 가혹하리만치 수익성 위주로 채권거래에 중점을 두고 운영한 결과였다. 그러나 드렉셀번햄 램버트의 마이클 밀켄 채권본부장이 정크본드 인수・판매를 통해 살로몬의 시장을 잠식하고, 결정적으로는 1991년 굿프렌드 회장의 불명예 퇴진을 몰고 온 국채입찰 부정 사건으로 금융시장에서의 신용이 추락하여 1998년 보험사인 트래블러스에 인수되었다. 같은 해 다시 시티그룹과 합병함에 따라 시티그룹 산하의 살로몬 스미스바니란 증권회사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3] 대니얼 카너먼은 경제학자라고 자처한 적이 한번도 없었음에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행하는 인간의 판단과 선택'을 설명한 혁신적 연구 성과인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으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6년 전인 1996년에 전이성 흑색종으로 세상을 뜬 트버스키와의 공동 수상인 점을 강조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전망 이론을 발표한 1979년은 '행동경제학의 원년'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