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People

People

[Book's Day] 연어, 나목(裸木), 탐조(探鳥)

Onepark 2022. 2. 13. 08:50

G: 2월 13일 Book's Day에는 무슨 책을 소개해 주실 건가요?

P: 벌써 제주와 남부 지방에서는 화신(花信)이 당도했다고 들었습니다. 새봄에 맞는 꽃은 동백꽃, 매화, 수선화, 유채꽃, 산수유 등 많이 있습니다. 집안에 프리지아와 안개꽃 한두 다발 꽂아두면 봄을 미리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은 이러한 견지에서 자연을 관조하는 글을 몇 편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G: 관조(觀照)라면 옛 선비들이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美)을 느끼기 위해 조용히 바라보고 비추어본다는 말인데, 이것을 소재로 한 책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P: 지금도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안도현 시인의 《연어》, 박완서 씨의 《나목(裸木)》의 몇 구절이 생각이 납니다.  잘 아시다시피 《연어》는 모천회귀 본능이 있는 이 물고기가 알에서 부화되어 무리를 이루어 큰 바다로 나갔다가 성어(成魚)가 되어 산란을 위해 만난을 무릅쓰고 고향산천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지요.

이 조그만 책은 1996년 처음 출간된 이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아 100만부 이상 팔렸어요. 시인은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라는 암수 한 쌍의 연어를 의인화(擬人化)하여 자연을 보고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우리 연어들이 알을 낳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나도 알아. 하지만 알을 낳고 못 낳고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고 좋은 알을 낳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우리가 쉬운 길을 택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새끼들도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할 것이고, 곧 거기에 익숙해지고 말 거야. 그러나 우리가 폭포를 뛰어넘는다면, 그 뛰어넘는 순간의 고통과 환희를 훗날 알을 깨고 나올 우리 새끼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게 되지 않을까? 우리들이 지금, 여기서 보내고 있는 한순간 한순간이 멋 훗날 우리 새끼들의 뼈와 살이 되고 옹골진 삶이 되는 건 아닐까? 우리가 쉬운 길 대신에 폭포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뿐이야.” (106-107쪽)

 

은빛연어는 깊은 물속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어떤 충만감이 그의 몸을 감싸는 것을 느낀다.

“나는 여태 강물과 땅을 두 개로 나누어 생각했다. 강물 속에 연어가 살고 땅 위에는 연어의 적인 인간이 산다고 생각했다. 그건 너무 경솔한 생각이었다. 나를 감고 흐르는 이 시냇물은 높은 산 위에서부터 수천, 수억 개의 물방울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 시냇물이 더 큰 강이 되고 나아가 바다가 되는 것을 나는 왜 모르고 있었던가!

은빛연어는 그의 눈앞에서 시냇물의 밑바닥이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것을 본다. 땅과 땅이 손을 맞잡고 물 밑에서 하나고 되어 있다.

그는 또 끊임없이 출렁이는 시퍼런 바다를 생각해본다. 바다는 지구 위의 모든 대륙과 손을 맞잡고 완전한 하나가 되어 있다. 땅은 물을 떠받쳐주고, 물은 땅을 적셔주면서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120-121쪽)

 

은빛연어는 눈맑은연어와 함께 알 낳을 자리(産卵터)를 파다가 생각한다.

그는 알을 낳는 일보다 더 소중한 삶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그가 찾으려고 헤맸던 삶의 의미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다른 연어들처럼 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강하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폭포를 뛰어넘었고, 이제 상류의 끝에 다다랐을 뿐이다.

“삶의 특별한 의미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야. 희망이란 것도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 나는 희망을 찾지 못했어도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한 오라기의 희망도 마음속에 품지 않고 사는 연어들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연어였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어.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연어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눈맑은연어는 은빛연어가 그 동안 어느 먼 곳을 여행하다가 이제 막 고향으로 돌아온 연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구름과 무지개를 잡으러 떠났다가 이제 한 마리 연어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눈맑은연어는 그의 마음의 방황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눈곱만한 희망도 호기심도 없이 살아가는 연어들에 비하면, 은빛연어는 훨씬 아름다운 연어다. 은빛연어가 왜 강물 밖을 자꾸 보고 싶어 했는지, 왜 마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고자 했는지,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다. (124-125쪽)

 

G: 그렇다면 박완서 씨의 《나목》을 읽고나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알겠습니다.

P: 네, 바로 '나목'은 40세에 문단에 데뷔한 박완서(1931~2011) 씨의 1970년 여성동아 공모소설 당선작이자 작가의 대표작이지요. 또한 박수근 화백의 그림 "나무와 두 여인"을 가득 채운 소재이기도 합니다. 6.25 전화(戰禍)가 휩쓸고 지나간 서울 한복판의 미군 PX에서 스카프 같은 데 미군 고객의 의뢰로 초상화를 그려주던 화가(처음에 여주인공은 '환쟁이'란 말로 그들의 직업을 낮추어 표현하였음) 가운데 한 사람 옥희도 씨의 유작전이 열립니다. 화자인 여주인공은 전시회에서 '나목' 그림을 보면서 그와의 인연을 떠올린다는 내용이지요.[1] 상당 부분이 작가가 겪었던 실화라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가슴 뭉클한 연민(憐憫, pathos)을 안겨주었습니다.

 

*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1962)

 

S회관 화랑은 3층이었다. 숨차게 계단을 오르자마자 화랑 입구였고 나는 미처 화랑을 들어서기도 전에 입구를 통해 한 그루의 커다란 나목을 보았다.

나무 좌우에 걸린 그림들을 제쳐놓고 빨려들듯이 곧장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이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한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 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 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나무와 여인> 그 그림은 벌써 한 외국인의 소장으로 돼 있었다.
(284~285쪽)

 

G: 위의 두 작품은 우리가 일상으로 대하는 사물이지만 작가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았느냐, 그와 관련된 경험이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가, 이러한 인상(impression)을 어떻게 표현하였느냐가 포인트라 할 수 있겠군요. 

P: 그렇습니다. 사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익숙하였었지요. 그런데 안도현의 '연어'를 읽다가 보면 우리도 연어가 되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연어가 식용 생선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연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으로 여겨집니다. 박수근의 '나목' 또한 여주인공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잎을 모두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보여주고 있지만 새봄을 기다리는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G: 그렇다면 자연을 관조한다는 것이 단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게 아니라 자연을 스승 삼아 뭔가 배운다는 의도적 표현이 될 수 있겠군요.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자산어보>가 생각납니다. 흑산도에 유배되어 간 정약전은 '창대'라고 하는 젊은 어부를 통해 흑산도 주변에 서식하는 해양생물에 대해 배우고, 그 모습과 생태, 용도 등을 상세히 기록하기 시작하지요. 조선 시대 성리학을 공부한 유학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P: 네, 정약전이나 정약용은 모두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몸소 실천한 분들이었어요. 우리 민족이 세계 일등국이 될 자질이 있음을 보여준 선각자들이었다고 할까요. 전에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대해 조사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서양 근대화를 촉진한 백과전서파 같은 '실용주의' 박물학자가 있었구나 얼마나 마음 뿌듯했는지요![2]

이러한 견지에서 네루다의 <탐조(探鳥)를 기리는 노래>에 나오는 한 구절은 시인의 관점과 그의 시각적 표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숲속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이 폭포수와 연결이 되다니 놀랍지 않은가요? 다음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Ode To Bird-Watching"의 일부인데, 시 전문은 KoreanLII의 "Symbol"에 수록되어 있어요.

 

Above,
a wild song,
a waterfall,
it's a bird.
How
from a throat
smaller than a finger
can the waters
of this song fall?

머리 위에는
미친 듯한 노래,
폭포,
아, 그건 새 한 마리.
어떻게
손가락보다 크지 않은
목구멍에서
그런 물이
노래로 떨어질까?

 

G: 숲속에서 새 한 마리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어떻게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이라고 상상했을까요? 시 구절 역시 폭포수가 지면 위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네요.

P: 네, 정현종 시인은 《사유 깃든 네루다 시 여행》(문학판, 2015)에서 "네루다의 시는 언어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생동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네루다는 어린 시절부터 칠레의 원시적인 정글을 드나들며 살았던 시인이지요. 그때의 경험을 살려 정글의 생물들이 시의 소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온몸에 배어든 원시림은 그의 시인됨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네루다의 시는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고 합니다. 정현종 시인이 지적했던 것처럼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시 속에서 우리는 찬란한 감각과 생명이 숨쉬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아가 네루다가 파시즘에 맞선 공산당원으로서 오랜 망명 생활을 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개개인의 정치적인 반대 의견표시가 새소리처럼 작게 들릴지라도 그 목소리가 합쳐지면 혁명을 부르는 폭포수의 굉음처럼 들리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내포하고 있지요.[3]

 

Note

1] 박수근(1914~1965)의 1962년작 '나무와 두 여인'은 원래 대상그룹 소유였다가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2010년 115억원을 주고 사들여 서울의 한 화랑에 145억원에 팔았다. 그후 또 다른 소장자에게 기록적인 금액으로 팔렸는데 훗날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작품은 박 화백의 다른 그림과 함께 이건희 회장 사후 유가족이 정부에 기증하였다. 고 이건희 회장은 좋은 그림이 나오면 값을 묻지 않고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그림이 유명세를 탄 것은 박완서 씨의 대표작 ‘나목(裸木)’이 이 그림을 모티브로 하였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의 힘이 그림의 가치를 치솟게 만들었던 것이다. 유럽에서 '제2의 모나리자'로 알려진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진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동명의 소설 덕분에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게 되었다. 곽아람, "화가 박수근, 소설가 박완서 만나 한국 최고가 145억원 그림을 남기다", 조선일보 2014.2.13.

 

2] 필자는 여러 책을 읽고나서 조선조 실학자 서유구(1764~1845)와 그의 방대한 저작에 대해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2021년 1월 한글 <위기백과>의 '서유구' 항목에 임원경제지 16부문 113권의 주요 내용과 현대적 평가를 대폭 추가하였다. 그리고 영문 <Wikipedia>에도 같은 내용을 번역해서 게재하였다.

 

3] 이미 13세 때부터 시를 발표한 파블로 네루다(1904~1973)는 20대부터 칠레의 직업외교관으로서 세계 각처를 돌아다녔는데 스페인의 파시스트에 맞서 공산당원이 되었다. 1945년 상원의원이 되어 정부를 비판하다가 해외로 망명하기도 했으며 1952년 칠레에 돌아온 뒤에는 왕성하게 시 창작에 전념하였다. 그의 시 세계는 정치적 색채를 띈 시를 비롯해 남미 역사를 소재로 한 서사시,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 초현실주의 시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이고 다양했다. 네루다의 시는 상징적인 요소를 빈번히 사용하면서도 현실의 친근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NAVERcast, "Pablo Neruda"

 

사람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더 보시려면 이곳을 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