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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흙수저의 성공방정식과 전자 레인지

Onepark 2022. 1. 31. 06:30

G: 지난번 소개해주신 패션 사진작가 헬무트 뉴튼 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P: 아, 그래요? 헬무트 뉴튼은 자기가 처한 불리한 여건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길(survival)을 모색한 사람이었지요. 오늘 말씀드릴 인물은 그야말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남다른 노력을 해서 개인적으로도 성공하고 인류에게 큰 유익을 안겨준 사례라 하겠습니다. 

 

G: 역경을 딛고서 성공했다니 요즘처럼 삼포자, 오포자가 속출하는 세태에 본받을 점이 많겠군요. 동양사람인가요, 서양사람인가요? 

P: 퍼시 스펜서(Percy Spencer 1894~1970)라는 미국의 엔지니어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군사과학 분야에서는 '제2의 에디슨'이라 불릴 만큼 유명한 인사입니다. 호기심 많은 발명가일 뿐만 아니라 가정형편상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음에도 나중에 명예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향학열이 높은 분이었기에 어린 학생들이 읽는 위인전에는 꼭 들어간다고 합니다.

 

 

G: 에디슨이라면 전구, 축음기로 유명하지만 스펜서는 무슨 발명을 했나요?

P: 일반 가정의 주방, 편의점, 기숙사에 없어서는 안될 조리기구라면 아시겠지요? 간편식, 냉동식품 등을 데워서 먹을 때 필수적인 전자 레인지(microwave oven)를 만들었습니다.  

 

G: 에디슨처럼 무슨 목적을 가지고 연구하고 발명한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하다가 우연찮게 발견한 건가요?

P: 네, 그렇습니다. 스펜서는 2차대전 당시 미국의 방산업체 레이시온(Raytheon) 사에서 레이다를 개발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지요. 전자파동을 발생시키는 핵심부품 마그네트론(magnetron)을 좀더 효율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과제를 수행하던 중 호주머니에 넣은 캔디가 녹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호기심 많은 그는 짜증을 내기는커녕 마그네트론의 전자파 발생과 캔디가 녹은것에 무슨 관련이 있나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연구실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마음에 팝콘용 옥수수, 계란 등을 준비해서 실험을 했고 결론은 '뭔가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졌습니다. 

 

G: 네, 우리도 전자 레인지를 쓸 적에 "금속용기는 절대 안된다", "환경호르몬이 나올 수 있으니 플라스틱 용기는 삼가라", "계란도 통째로 넣지 말라"는 등의 주의사항을 잘 알고 있어요. 음식물 속의 물 분자가 전자 레인지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에 의해 회전하면서 서로 충돌하여 열이 발생한다는 원리도 알고 있습니다.

P: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가 위인전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온갖 역경을 물리치고 호기심을 살려 개인의 발전을 이룩하고 국가에 공헌했다는 그의 인생역정 때문이라고 해요. 태어난지 18개월만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엄마는 삼촌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삼촌 내외가 그를 키웠지만 삼촌마저 7살에 돌아가시자 소년가장이 되어 초등학교도 그만두고 돈을 벌어야 했어요. 남들은 중학교를 다닐 때 스펜서는 꼭두새벽부터 밤까지 동네 제분소에서 일을 해야 했답니다. 그가 16살 때 메인 주의 시골 마을에도 전기가 들어오자 그가 일하던 제지공장에서 전기모터를 도입하면서 그는 독학(獨學)으로 전력과 전기를 쓰는 기계에 대해 공부를 하여 공장의 전기기사 노릇을 하게 됩니다.

   

* 레이시온 사의 스펜서 수석부사장과 최초로 상용화된 전자레인지 모델

 

G: 마치 1980년대 초 우리나라 직장마다 사무용 PC를 도입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8인치 디스켓을 쓰던 PC의 사용법을 PC 제조업체에 가서 배우고 간단한 베이식 프로그램은 스스로 만들어 쓰기도 했지요.

P: 스펜서는 18세가 되자 미 해군에 자원입대를 합니다. 유럽에서는 1차대전의 전운이 감돌면서 군비경쟁을 벌일 때였지요. 1914년 타이타닉 호가 빙산에 충돌할 때 무선통신으로 구조요청을 했다는 뉴스를 듣고 그는 무선통신 병과를 선택했어요. 그때 비로소 군대 학교에서 체계적인 과학 기술을 배우는 한편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독학으로 미적분과 삼각법, 물리, 화학, 금속공학 등으로 지식을 넓혀갔다고 해요. 

 

G: 네~ 無학력자가 군대 가서 제대로 교육 받고 성공한 케이스군요. 우리나라에도 기술 병과에 그런 사례가 적지 않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젊은 군인들이 IT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군대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P: 스펜서는 그런 면에서도 독보적이었지요. 1939년 MIT의 연구소와 협력하여 전쟁수행에 필수적인 초고주파 대출력 발진용 특수 진공관인 마그네트론을 개량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가 레이시온의 연구책임자가 되어 매사추세츠 주 워번(Woburn)에 공장을 새로 지을 때에도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현장 감독을 했다지요. 그 결과 처음에 하루 100개에 그쳤던 마그네트론 생산량을 2600개까지 늘림으로써 미국과 연합군이 독일 잠수함과 일본 함정을 격퇴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고 합니다.

 

G: 실험실에서 연구진들과 함께 과제를 놓고 씨름하면서 전자 레인지 원리를 발견한 것이군요.

P: 네, 그렇습니다. 그는 레이시온의 수석부사장까지 승진했는데 부하 연구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면서 특허도 300건이 넘게 등록을 했다지요. 그럼에도 그것을 개인 소유로 하지 않고, 연구 → 개발 → 상용화의 프로세스에서 사익보다는 대의(大義 Great cause)를 우선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레이시온의 전자 레인지도 냉장고 제조사로 유명했던 아마나에 기술을 이전했고 지금까지 아마나를 인수한 월풀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물어봅시다. 정부 용역과제를 수행하던 중 연구목적과는 다른 부산물 결과가 나왔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스펜서처럼 일을 한다면 과연 상찬을 받을 수 있을까요?

 

* 레이시온의 전자레인지 특허기술은 아마나를 거쳐 가전 메이커 훨풀이 이어받았다.

 

G: 아마 연구목적을 벗어난 일을 했다며 연구비 유용에 대한 시말서를 쓰게 하고 그 상당액은 반납하라고 했을 겁니다. 이를 우려해서 연구자는 그런 사실을 감추고 한참 후에 개인적인 연구결과라며 따로 특허 출원하지 않을까요? 

P: 네, 그럴 겁니다. 허나 미국에서는 연구분위기가 보다 자유롭고 실용주의(pragmatism) 정신이 강하므로 오히려 권장한다고 해요. 그래서 근무시간 중에 다른 연구자들과 갖가지 음식을 가지고 정부 돈으로 산 기계장치를 이용해 장난 비슷한 실험을 하지 않았겠어요?

더 재미 있는 것은 미제 전자 레인지를 개량한 것은 일본의 샤프 사였다고 해요. 샤프는 특허기간이 종료된 후 성능개량에 힘써 음식물이 골고루 가열되게끔 회전판을 추가했으며 소정 조리시간이 끝나면 '띵' 소리를 내서 음식물이 그 안에서 식지 않도록 했습니다. 지금은 신제품이 나왔습니다. 바닥에서 극초단파를 발생하여 회전판을 없애고 내부를 청소하기 좋게 만들었어요. 주방 조리기에서 열이 나지 않는 전기 인덕션도 인기를 끌고 있지요.

 

G: 앞으로는 전자 레인지를 쓸 때마다 스펜서의 일화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비록 소년가장이 되어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호기심 많고 향학열에 불탔던 그는 군대에 들어가서도 공부할 기회를 찾았으며, 열심히 연구하여 전문가가 되었고 동료들과도 항상 재미있게 일을 하였다는 것은 우리도 본받을 점이 많군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할까요.  

P: 미 해군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려 최고 공로상(Distinguished Public Service Award)을 수여했고, 레이시온 사는 그를 이사회 멤버로 추대하고 회사의 주요 연구시설에 그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매사추세츠 대학(University of Massachusetts)에서는 무학력인 그에게 명예 공학박사 학위를 수여했어요. 

 

* LG 트롬 트윈워시 옆에서 포즈를 취한 조성진 부회장(왼쪽 서있는 이)

 

G: 우리나라에도 그와 비슷한 분이 있지요.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조성진 부회장은 공업고등학교 출신으로 줄곧 창원의 세탁기 공장에서 일했는데 처음엔 일제 부품을 조립하던 수준에서 세계 최고성능의 세탁기를 생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실적을 인정 받아  LG그룹의 가전 부문 수장이 된 후에는 LG 가전제품을 세계 초일류 상품으로 등극시키고 그룹 부회장까지 승진하였지요. 

P: 그런 분들에게 출발선부터 불리했다는 말은 통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도 주어진 여건에서 기회를 찾아 독학을 해서라도 최고 일류가 될 수 있는 분야는 얼마든지 있거든요.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인공지능(AI), 메타버스 같은 첨단 분야는 기술 자체가 새로 출현한 것이므로 독학 하듯이 남보다 먼저 그 원리를 이해하고 기술을 연마하면 최고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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