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첫 월요일 남산 소파길에 있는 한양교회에서 대광고 23회 예배자 모임을 가졌다.
그동안 Zoom을 통해 미국에 사는 동기들도 함께 온라인 예배를 드려오다가 금년 말에 은퇴하는 최루톤 목사가 역사가 오래된 한양교회(1945.10.10 설립)에 고등학교 동기들을 초청한 것이다. 최 목사는 이 교회에서 19년째 시무하고 있다.
참석자가 모두 15명이었으므로 대예배당이 아니라 친교실에서 목사님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11시가 좀 지나서 같이 예배를 보았다.
이 모임에 참석할 수 없는 친구들을 위해 따로 Zoom을 통해 예배가 생중계되었다.
모교 이창로 교장선생님의 쌍둥이 아들로 영락교회에 나가는 이영문 집사가 사회를 보았다.
그리고 용인 새에덴교회에 다니는 김재일 장로가 "우리 대부분 현역에서는 은퇴하였으나 남은 생애 예수님의 푯대를 보고 달려가는 새로운 꿈을 꾸게 해주소서"하는 대표기도를 하였다.
오늘의 성경 요절은 민수기 6장 22-27절의 말씀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이어서 고교시절 대광고의 대표 성악가로 서울음대에 진학했던 강일모 국제예술대학교 총장이 성 프란치스코의 찬양시에 곡을 붙인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찬송을 불렀다.
그는 피렌체에서 로마로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그 도상에 있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을 본떠 건물을 지은 소크 연구소가 있는데 LA에서 샌디에고로 자주 다녔음에도 고속도로에서 가까운 해변에 있는 그 연구소에 들르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다고 했다.
소크(Jonas Salk, 1914-1995) 박사[1]는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고도 특허 등록을 하지 않아 어느 제약회사나 만들어 보급하도록 한 박애주의자였다. 그런 소크 박사가 유명 건축설계사인 루이스 칸(Louis Kahn)에게 건물의 외양만이 아니고 그 정신을 표현해 주기를 바랬었기 때문에 더욱 더 가보고 싶었노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런데 우리가 눈앞의 보물을 보고도 몰라서, 누가 귀띔을 해주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친 게 어디 한둘이겠는가!
다행히도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나를 비롯하여 태반은 대광에 입학한 후에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 크고 작은 곡절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등단한 최루톤 목사는 우리는 방금 성경말씀에서 읽은 세가지 삼위일체의 복을 청구할 권리(claim)가 있다며 설교를 시작했다.
여호와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 가지 복을 약속하셨으므로 즉 여호와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세 가지 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너를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평강을 주시겠다는 세 가지 복은 삼위일체의 축복이다. 즉,
첫째, 성부의 보호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는 울타리가 되신다는 믿음이다. 우리의 건강, 가정, 물질을 보호해 주신다.
둘째, 성자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가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이다. 우리를 구원하고 죄를 사하여 주시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자녀로서 기도응답과 동행하시는 주님을 믿고 바랄 수 있다.
셋째, 성령의 평강은 성령이 세상이 줄 수 없는평강과 행복을 우리가 누릴 수 있게 해주신다는 확신이다.
최루톤 목사는 대광고 23회 종교부장[2]으로서 루즈벨트-와싱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연세대학교 졸업 후 미국유학을 가서 어렵사리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후에는 외교부 공무원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아내의 권면으로 새로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것이 자랑스럽고 전혀 후회가 없다고 고백하였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3년간 신학을 공부하고 40세에 목사 안수를 받아 미국 8년간 이민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이 되면 그때마다 장로 선출을 둘러싸고 분열이 생기곤 하여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그 후 귀국하여 설교를 맡은 마산 창신대에서 1,600명이나 되는 교직원과 학생들 앞에서 설교를 하였던 감격에 창신대 교목실장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신앙촌 박대선 장로의 영향력 하에 있던 그 학교의 분란에 휘말려 떠날 수밖에 없었다. 1년 반여의 기다림 끝에 山기도에 응답을 주신 하나님은 미국에 돌아갈 필요없다며 기다리라고만 하셨다. 그리고 청빙을 받은 것이 일면식도 없었던 한양교회였으며, 금년 말까지 19년 6개월 동안 열성을 다해 시무하였노라고 회고하였다.
최 목사는 지금도 토요일이면 밤을 새워 설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에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 편에 서서 예배를 드리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으며, 해외선교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미얀마 등지로 아웃리치를 다니면서 귀신 쫓아내는 기도와 예배로 현지인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그렇기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지난 30년 간 복음 사역자로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노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셨다는 최 목사의 신앙고백에 이어 오늘 참석한 동기들이 각자 신앙생활의 일단을 피력하는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졌다.[3]
처음 대광23회 예배자의 모임(대예모)을 만들고 서울대 강신후 명예교수와 함께 대예모 온라인 모임을 주도해 온 오제명 교수가 어디서든지 요청만 있으면 달려가서 창조과학 강연을 하고 있으니 필요하면 연락 바란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퇴직 후 해외선교 쪽에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몽골 국제대학교와 에티오피아 아다마 과학기술대학교에서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친 바 있다.
특히 이 자리에는 가톨릭 신자인 최세영 전 연세대 교수가 독일에서 성당을 다녔던 이야기를 전해 이채로웠다. 몇 달 전부터 난청이 생겼는데 손녀딸이 "한 번 말할 때 잘 들으세요"라고 하는 품이 하느님이 노년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같다고 하여 우리는 웃으면서도 자못 숙연해졌다.
강박성 동기는 삼성 그룹에서 잘 나갈 때는 아주 교만했으나 퇴직 후 10여년 간 재능기부 형식으로 우간다, 과테말라, 베트남 등 개도국의 정책자문관 생활을 하면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님의 선교사명을 새삼 깨닫게 되었노라고 간증을 했다.
또한 신영욱 목사는 50세에 목사 안수를 받고 인천에서 이주노동자와 북한이탈 주민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소명(Calling)은 실제 나이나 전도의 형태에 아무 제한이 없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광고 시간에는 모교인 대광고 우수호 교목의 기도제목을 전달 받았다.
자율형 사립고교로서 대광고등학교의 신앙교육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과 졸업생들이 믿음의 선배로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이영문 사회자의 중보기도 제목을 듣고 각자 통성기도를 한 후 사회자의 마무리 기도에 '아멘'으로 호응하였다.
끝으로 최루톤 목사의 축복기도로 오프라인 예배 모임을 마쳤다. 모교를 졸업한지 52년 만에 당시 종교부장이던 최루톤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최 목사의 설교를 듣고 서로 간에 공통점이 많은 예배를 드리니 더욱 뜻깊은 것 같았다.
Note
1] 요나스 소크 박사는 "March of Dime"이라는 구호처럼 수많은 후원자와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그의 나이 41세이던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햇빛을 특허낸 사람이 있느냐?"며 당시 70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특허권 등록을 포기하고 모든 사람에게 백신 제조기술을 개방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소아마비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 수많은 영예와 포상, 감사를 받았던 반면 그의 사생활은 여지 없이 유명세를 치뤄야 했다. 대학원 시절 부유한 뉴욕 치과의사의 딸과 결혼했으나 1968년 이혼하고 2년 후 유명한 프랑스 출신 화가와 재혼하였다. 그녀는 그 못지 않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류명사였다. 1943년 61세의 피카소가 첫눈에 반해 40년 연하의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고, 동거생활 10년 동안 두 자녀를 낳았음에도 피카소가 바람을 피우자 그에게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하고 미국으로 떠났던 프랑스와즈 질로(Françoise Gilot, 1921-2023)였다.
2] 전통적으로 미션스쿨인 대광고의 종교부장은 아무나 원한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교회 학생부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신앙심도 어느 정도 입증이 되어야 맡을 수 있는 학생회 간부이다. 그럼에도 2004년 대광고의 종교부장이던 강의석 군이 교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달라며 1인 시위와 함께 단식투쟁을 하며 학교 측과 소송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 결과 대광고의 종교교육 실태가 낱낱히 밝혀졌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강의석 군은 서울대 법대에 수시입학으로 합격했다.
그 후 서울법대를 중퇴하고 철학과로 재입학하는 등 그의 인생이력은 간간히 매스컴에도 소개되었다. 그러나 그가 종국에 가서는 무신론자가 된 것이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닌 나의 입장에서 몹시 씁쓰름할 따름이다.
3] 이날 오프라인 예배모임에 참석한 동기들이 이구동성으로 밝힌 바 있지만 노년의 우리 삶을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영위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필자 역시 이제 13년을 맞는 온라인 한국법률 백과사전(KoreanLII: Korean Legal Information Institute)을 나 홀로 운영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다. 노아의 홍수 이래 살만해진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아올리자 하나님이 언어의 혼란을 주어 그들을 흩으셨던 성경의 사건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필자는 한국의 법률과 제도, 문화를 로스쿨에 유학온 외국학생(현재 LL.M.과정은 없음)과 해외의 외국인들에게 체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영문으로 작성하고 필요하면 AI 번역기까지 쓰고 있다. K-Pop의 인기에 힘입어 아름다운 우리의 시와 노래를 영어로 번역・소개하는 일도 한다. KoreanLII 사이트에서 과연 '하나님이 계실 자리'는 어디인가? Footnote에 관련된 성경 구절을 소개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최근 들어 싱가포르의 방문자들이 급증하였는데 그들로 하여금 한국 사회에 깃들어 있는 기독교 정신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 조회 수로 따지면 수만 명의 싱가포르 사람들을 컴퓨터 통신으로 만나는 셈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 나름대로 이런 고민을 하며 조석으로 KoreanLII 웹사이트를 돌아보며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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