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풀리자 온누리교회에서도 올여름에는 3년만에 재개된 아웃리치를 어디로 갈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졌다.
해외 선교든 농어촌 선교든, 이주노동자 위로봉사 등 각 공동체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양재 온누리교회 서초B 공동체에서는 6개의 다락방이 적정 인원을 모아 공동 추진하도록 했다. 다만, 코로나 거리두기로 소원해졌던 공동체 구성원들의 교제에 역점을 두고, 이주노동자 200만 시대를 맞아 해외로 나가는 선교 못지않게 국내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 선교와 봉사활동도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였다.
그 결과 내가 속한 다락방에서는 여성회원들로 구성된 이웃 다락방과 연합하여 부여에 있는 개척교회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상준 다락방장이 그곳 홍산은혜교회 김요한 목사와 연락을 취하고, 두 차례 현지답사까지 다녀온 후 농촌봉사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바자회와 콘서트 중심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련과 인내
그 다음은 날씨가 문제였다. 바자회는 진열대에 물건을 올려놓아야 하므로 계속된 폭염과 때마침 진로를 변경하여 한반도를 관통할 예정인 태풍 카눈의 향방에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비바람이 몰아닥친다면 바자회는 취소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태풍은 충청지역에 큰 피해를 주지 않았고, 행사 당일에는 약간의 구름만 끼어 옥외 바자회를 열기에 적당하였다.
마침 준비부족으로 말이 많았던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도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K팝 콘서트를 끝으로 아웃리치 행사 전날 막을 내렸다. 예정에도 없는 잼버리 참가자들의 새만금 야영장 조기 철수와 각종 문화행사 참가에 1천여 대의 관광버스가 동원되는 바람에 우리 행사에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어찌 보면 아웃리치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일종의 이벤트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전말을 상세히 기술하는 이유는 모든 참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번 아웃리치 행사가 은혜로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몇 장의 사진과 행사보고서 외에 일반 참가자의 관점에서 살펴본 기록이 훗날 더 진솔하고 유익한 참고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인내와 연단
이러한 견지에서 아웃리치 참가자들의 호응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정상 아웃리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공동체 구성원도 바자회에 적당한 물품을 내놓도록 호소하였다. 그 다음은 회비 선납을 조건으로 참가자 명단을 확정하는 문제였다. 참가자들의 성향에 맞춰 음악회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연습하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이 분야의 경험 많은 권사님들이 적극 나서서 의외로 쉽게 풀렸다.
다른 의미에서는 우리 공동체에 달란트 많은 인적 자원이 풍부하므로 이러한 강점을 살려서 현지 교회에서 좀처럼 체험할 수 없는 클래식 음악회를 개최하는 것이 아주 적절해 보였다. 나는 아웃리치 봉사 목적으로 배웠던 수기치료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현지에서 치료를 요하는 대상자가 몇 분이나 될 지 모르고 적어도 3~4명의 수기치료 전문가가 참여해야 하는 터에 다른 공동체에서도 국내외 의료봉사 계획을 갖고 있으므로 인력확보가 어려워 일찌감치 계획표에서 삭제했다.
8월 12일(토) 태풍 카눈이 수도권을 스치고 북상하여 평양 부근에서 소멸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아웃리치 참가자들은 집합장소에서 관광버스에 올랐다. 행사를 주관하는 다락방장과 방모, 순장이 아침 식사에 갈음하는 떡과 간식, 시원한 음료수를 나눠주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이번 행사를 무사히 잘 마칠 수 있도록 함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이번 행사의 어른이신 백승웅 장로님이 아웃리치의 취지와 우리 참가자들의 마음자세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중간에 한 번 휴게소에서 쉰 후 목적지인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부여현 관아 유적지 주차장에 당도했다.
현지 교회의 목사님과 사모, 교인들과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역할을 미리 분담한 대로 바자회 물품 진열, 합창 리허설을 했다. 그리고 약간 이른 점심식사를 했다. 2시부터 바자회와 지역주민들을 초청한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6년 전 콘테이너에서 김요한 목사님 가족들만으로 예배를 시작했으나, 목사님의 교회 건축자금 마련을 위한 기상천외의 발상과 노력에 힘입어 아담하고 예쁜 예배당이 세워졌음을 알았다. 목사님이 1년 동안 멸치 1만 상자를 승합차에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감리교 목사와 교회 관계자들에게 팔아서 재원을 마련했다고 한다.
회중이 찬송을 부를 때 키보드 반주를 맡은 목사님의 따님은 우리 일행의 합창 소리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고 했다. 언젠가는 이 작은 교회에도 성가대가 조직되어 하나님께 아름다운 찬송으로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콘서트가 시작되어 정혜숙 권사의 오카리나 연주로 존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가 함께 불렀던 "Perhaps Love", 영화 Mission에 삽입되었던 "Gabriel's Oboe"가 예배당에 울려 퍼졌다.
그 다음에는 독일에서 바이올린을 수학하고 연주생활을 했던 신선이 집사와 현재 독일 드레스덴에서 첼로 유학 중인 이지연 자매, 그리고 이현주 권사의 피아노 트리오가 하이든의 첼로 콘체르토, 찬송가 여러 곡, "고향의 봄" 같은 귀에 익은 동요를 차례로 연주했다. 내 옆자리의 할머니는 자기는 절에 다니는데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며 돈 주고도 들을 수 없는 음악회 같다고 수줍게 말씀하셨다. 이어서 6ㆍ7 다락방 참가자 전원이 무대에 올라 "주가 일하시네" 찬양과 윤복희의 "우리"라는 노래를 불렀다.
콘서트가 끝나고 등단한 김요한 목사는 인천의 큰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아무 연고가 없는 홍산면에 부지를 마련하고 교회를 짓기 시작한 일화를 말씀하셨다. 1억원이 넘게 부족한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해 전국 각지로 멸치를 팔러다닌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면서도 거절 당했을 때의 목사님 심정이 오죽했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시지만 그 당시에는 문전박대도 당하고 고초가 얼마나 심하였을까!
연단과 소망
우리가 묵게 된 펜션은 이번 장마로 만(滿)수위에 이른 호수를 끼고 있어 주변 경치가 아름다웠다. 잘 가꿔진 잔디 정원 가장자리에는 하얀 배롱나무 꽃과 나리꽃, 맥문동 보라색 꽃이 좀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들어간 우리 일행을 반겨 주었다.
8월의 막바지라 서울에서 열린 다른 다락방의 아웃리치 행사를 참관 격려하고 오신 이병국 공동체 대표장로님을 맞아 소감을 나누었다. 또 홍산은혜교회를 소개해 준 인근 청양 제일교회의 부목사님이 오셔서 김요한 목사님과의 관계 및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셨다.
30명이 넘는 인원이라서 어차피 큰 방에서 여럿이 묵어야 했는데 그 조합이 실로 절묘해서 일찍 잠자리에 든 방, 인생 이야기를 서로 나눈 방, 장시간 열띤 토론이 벌어진 방, 내밀한 신앙상담을 나눈 방 등 제각각이었다. 내가 배정된 방의 욕실에서는 샤워를 하려고 온수를 틀어도 밖에서 히터 돌아가는 소리는 나는데 계속 찬물만 나와서 '희망고문'이라고 불평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넌방 입구의 조절기로 우리 방 욕실까지 온수를 쓸 수 있음을 알게 되어 뒤늦게 샤워를 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튿날 11시 우리는 홍산은혜교회 교인들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렸다.
김요한 목사님은 창세기 8장 1~12절 말씀을 놓고 "나는 하나님만으로 충분한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요지의 설교를 하였다.
노아 방주는 대홍수를 피해서 들어간 곳이지 홍수가 끝나면 땅으로 살아 돌아오는 게 목적이다. 여러 사정으로 불시착한 비행기가 정상 경로를 찾아 목적지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첫째, 노아의 방주는 구원의 관점에서 그 안에 들어가야만 살 수 있다. 노아의 가족 외에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했듯이 밖에서 떠돌고 들어가지 않으면 죽음이 기다릴 뿐이다.
둘째, 방주 안은 복받은 장소이지만 그 안의 생명체의 배변활동까지 막을 수는 없다. 방주 안에서 살아가는데 야고보서는 일종의 행동지침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구원의 삶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그 안에 들이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셨다. 즉, 하나 하나 돌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 덕에 방주 안에서는 모두 평온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내 생각에 몰입하여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잊을 때기 있다. 그러나 하나님믄 우리를 기억하고 돌보고 계신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무심하시다고 생각하고 원망하는 감정에 빠질 때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며, 하나님의 때에 맞춰 하나님의 방법으로 지켜주심을 알아야 한다.
끝으로 방주 안의 노아는 몰랐지만 밖에서 하나님은 땅위에 바람을 불게 하여 물이 줄어들게 하셨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천국에 가는 것이다. 그곳에 믿음의 선배들이, 거룩한 성자들은 어떻게 살고 계실까 알고 싶다.
인디안의 강한 아들 단련법은 성년이 된 아들을 맹수가 우글거리는 숲속에 던져놓고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숲을 떠나는 게 아니라 멀리서 아들이 위험에 처하지나 않을지 지켜본다. 아침이 되었을 때 무사히 밤을 보낸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를 줄곧 지켜보고 있었음을 깨닫고 용기와 인내심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시는 속도에 맞춰 참고 기다려야 한다. 이때 기다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이다.
성경 말씀을 보면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고 있을 때 옆으로 난 창이 없는 방주 안에서 노아는 까마귀와 비둘기를 하늘로 날려보낸 후 기다렸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따라가는 신앙생활은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이다.
만일 우리의 기도가 즉각적으로 반응이 일어난다면 이 세상은 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하니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주실 것임을 믿어야 한다.
창세기 7장과 8장 노아의 방주 생존기를 보면 7 - 7 - 40 - 150이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지상의 온갖 짐승 암수 7쌍이 방주에 들어간지 7일 후에 큰비가 40일간 주야로 퍼부어 150일 동안 지상에는 물이 범람했다. 반대로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질 때에도 그 역순으로 진행되었다.
물이 줄면서 150일 만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고 그로부터 40일을 기다려 노아는 창을 열고 까마귀와 비둘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비둘기가 마른 땅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자 7일 후에 다시 날려보내 올리브 나뭇잎을 물고 왔을 때 다시 7일을 더 기다렸다가 마침내 방주 문을 열고 지상으로 나왔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때에 맞춰 정확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안해 하거나 외로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시련과 환난에 부딪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의지하여 방주 안에 거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렵게 보이던 문제가 절로 해결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블레싱의 시간
이날 예배 시간 중에는 온누리교회의 백승웅 장로님이 대표기도를 하시고, 아웃리치 참가 남성 성도들이 등단하여 "주가 일하시네" 특별찬송을 불러 감동을 더하였다.
예배가 끝난 후 아웃리치 참가자들은 김요한 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해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분에게 화관을 씌워드리고 통성기도에 이어 김지학 피택장로가 대표로 축복기도를 하고 백 장로님이 마무리 격려와 다짐의 기도를 하신 후 특별헌금을 전달하는 것으로 이날 행사를 마쳤다.
백 장로님은 기도를 통해 김요한 목사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비전과 열정을 갖고 이만큼 교회를 개척해온 노고를 치하하신 후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때에 맞춰 목사님의 비전을 차근차근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자고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 목사님이 지역주민들과의 접촉을 늘리고 차세대 양육을 위해 예배당 옆에 마련한 부지에 교육관을 건축하는 계획이 순조롭게 이뤄지기를 기원하였다.
내 경우 아무 맡은 일 없이 행사에 참여했을 뿐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모두 은혜롭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바자회 물품 수합, 합창 준비, 행사비용과 물품의 조달, 심지어 날씨까지도 어느 하나 순탄한 일은 없었지만 기도로써 준비하는 가운데 어느 새 모든 일이 원만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아웃리치 공식일정이 끝나고 우리들끼리 부소산성과 낙화암, 백마강 황포돛배 선유 등 애프터 행사를 가질 때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백 장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상준 다락방장과 이현주 방모를 비롯해 각자 맡은 역할을 다하고 팀워크가 훌륭했기에 준비한 것의 110% 이상 성과를 올렸다. 평소에 얼굴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던 6ㆍ7다락방의 순원들이 서로 교제하고 은혜로운 시간을 가진 것은 더욱 감사한 일이었다. 우리에게 모두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으며, 농촌 개척교회의 어려움과 희망사항을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는 부여에 와서 잠시 농어촌 교회의 현실을 살펴보았을 뿐이었다. 교회 주변 반경 1km 이내에 여러 교회가 자리잡고 있고 더욱이 보수적인 성향의 주민들 속에서 농촌교회가 활로를 개척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마치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홍수로 무너진 땅을 개척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힘들 것이다. 도시의 큰 교회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협력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라고 여겨졌다.
'Holines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찬양] 애타는 요게벳의 노래 (2) | 2023.12.03 |
---|---|
[Off-line] 남산 한양교회에서의 예배 모임 (2) | 2023.09.04 |
[감사] Thank you so much (0) | 2023.06.27 |
[다문화] 캄보디아 젊은이들과 함께 (0) | 2023.06.11 |
[설교] 인공지능(AI) 시대의 믿음의 자세 (0) | 2023.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