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일과 오늘의 온누리 교회의 설교 메시지가 계속 마음 속에 메아리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평소 신앙상담을 해온 존경하는 B장로님께 견해를 여쭤보았다.
1월 22일에는 온누리교회의 이재훈 담임목사가 "그리스도인과 국가"(로마서 13:1~13)라는 제목으로, 또 1월 29일에는 시드니 온누리교회의 전현규 목사가 "불확실함 속에서 확실함을 찾으라"(출애굽기 2:1~10)는 제목으로 각각 설교를 했다. 온누리교회는 해마다 연초에 국내외 지교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양지 선교센터에서 목회사관학교 연수와 발표회를 갖고 있다. 이날 주일 2부 예배에서는 한여름의 시드니에서 북극한파가 몰아닥친 서울에 온 전 목사가 강남의 빌딩풍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며 모세의 탄생 비화를 복음으로 재해석하는 설교를 하였다.
P : 장로님, 과세(過歲) 안녕하셨어요? 오늘 시드니 온누리교회 전현규 목사님의 모세의 탄생 설교를 들으셨지요? 지난 주 담임목사님 설교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의문이 생겨 여쭤보고자 합니다.
B : 네, 담임목사님은 로마서 강해설교의 연속으로, 시드니 全 목사님은 방문목회 사역의 일환으로 설교를 하셨음에도 메시지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예수교 장로회 한 교회 소속 목회자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오해할 수 있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잘 설명해 주셨다고 생각했지요.
P :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재훈 목사님은 중세까지만 해도 교회 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고 보고 인간사의 모든 부문을 다 지배해야 한다고 했으나, 중교개혁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씀하셨지요. 요컨대 하나님이 그의 권세를 교회를 비롯해 국가와 과학과 예술, 기업, 가정에 그에 맞게 위임하신 것이므로 다른 영역의 자유를 침범하지 말고 각기 선을 행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B : 네, 설교 중에 그 말씀을 요약하여 중세 교회의 관점, 세속적인 관점, 영적 주권의 관점 세 가지 슬라이드를 보여주셨어요. 이 관계도를 통해 세 가지 관점의 차이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P : 우선 그림에서 보듯이 각 영역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의문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국가(권력)과 교회(말씀)는 종종 대립하고 싸움을 벌여왔습니다. 李 목사님도 그 예화를 이집트에서 히브리 민족이 종살이할 때 바로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산파들이 히브리 사내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었던 일에서 찾으셨어요. 오늘날에도 그 비슷한 사례가 얼마나 많습니까!
B : 우리 목사님도 여러 가지 사례를 말씀하셨지요.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 미국에서도 공립학교에서는 기독교식 기도문이 사라졌고, 성탄절조차 Merry Christmas라 하지 않고 Season's Greetings라 부르는가 하면 사회적 성을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심지어 미 의회에서는 기도문 끝의 Amen을 Awoman이라고 외치는 페미니스트 의원도 등장했다고 하셨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초·중·고등학교에서 성적소수자(동성애)와 타 종교를 차별하는 교육은 물론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례와 법을 만들어 원래 선교 목적으로 설립한 미션스쿨에서도 종교 교육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P : 우리 목사님은 그 기준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데 두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하셨어요.
B :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당시의 여건은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대 땅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치정부인 헤롯 왕과 로마 황제 및 그가 파견한 로마 총독에 복종하고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산헤드린 유대교 지도자들의 모세오경 해석과 지도, 바리새인들의 신앙자세와 사뭇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못 배운자, 여자, 종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았어요.
P : 제 의문은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인이라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면으로 반대하고 저항할 것이냐, 아니면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 하면서 속으로만 지키느냐, 이것도 아니면 이러한 갈등구조를 떠나 중립적 자세를 취하거나 아예 무시해버리느냐 하는 3개의 선택지가 있을 것 같아요.
B : 저도 오늘 주일예배를 보면서, 우연의 일치랄까 전현규 목사의 설교 메시지는 그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P : 어째서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히브리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죽여 없애라는 왕명에도 불구하고 잘 생긴 모세를 살려두었다가 그 울음소리에 더 이상 집에선 키울 수 없게 되자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 강에 띄워보냈다는 사건 아닙니까?
B : 첫째로 왕명을 어겼으니 아이는 물론 그 집안 사람 모두 도륙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요. 그럼에도 레위 지파 가정에서는 그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일강 하류에 이집트 사람들이 나와 있을 때 상류에서 방수처리된 갈대상자에 아기를 담아 떠내려 보내면서 그네들이 아이를 살려줄 눈치이면 유모를 소개해준다는 말을 전하라고 그의 누나인 소녀(미리암)로 하여금 지켜보게 했습니다.
P : 유유히 흐르는 나일 강물(영어로 비유적인 표현을 한다면 'prevailing trend')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다는 것이 아주 상징적인 것 같네요.
B : 그래서 全 목사님도 불확실함 속에서 확실함을 찾으라는 설교 제목을 붙이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전적으로 의탁하면 나머지는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일을 완성해주신다는 것을 말이죠. 갈대상자를 히브리 말로 '테바'라고 하는데 노아의 방주도 같은 말로서 밖에서 문(뚜껑)을 닫아야 하는 상자를 뜻한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노와 키가 없으니 흐르는 물결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가 받아주리라 믿고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믿고 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할까요.
P : 성경 속의 여러 사례를 믿고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면 장기적으로 가장 좋은 쪽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신다는 거군요. 역사적으로도 모세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집트 공주의 양자가 되어 바로 왕의 왕자와 똑 같은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습니다('Two Princes' story). 나중에 바로 왕에 맞서는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 출애굽(Exodus)을 인도하고 이스라엘의 민족에게 지침이 되는 규례와 율법을 정립했습니다.
B :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나님에게 받은 10계명 등 오경(토라)에 기록된 법은 오늘날의 기준에 비추어 보더라도 도저히 인간이 만들었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의 것들입니다. 창세기, 욥기 등도 모세의 구술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하는데 역사나 철학, 문학적으로도 얼마나 탁월한 작품인가요!
P : 인간은 바벨탑 사건에서 보듯이 신의 영역까지 올라가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허블이나 제임스 웹 같은 천체망원경을 통해 우주의 신비를 파헤지는 것은 약과이지요. 오늘날에도 과학의 이름으로 신의 영역에 속하는 생명과 DNA 유전체의 문제까지 연구를 하고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도 사실입니다. 그동안 인류문명이 이룩한 지식과 정보를 집적하여 인간 지능의 한계를 넘는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까지 만들어 거의 신(造物主)의 경지를 넘보려 하는 것 같습니다.
B : 나 역시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출애굽 직후 히브리 사람들이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이에 경배하자 하나님이 그들을 벌하셨던 것, 하나님이 바벨탑에서 인간의 교만을 보시고 언어를 다르게 하여 사람들을 흩으러 버리신 것이 하나님의 경고장이었는데 우리 인간이 계속 파울을 범해 경기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거지요.
P : 저 역시 인터넷에 KoreanLII 사이트를 만들어 한국의 법률과 제도, 아름다운 시를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사람이 방문하는 것보다 봇/크롤러가 샅샅이 검색을 하고 콘텐츠를 퍼가는 것이 몇 배나 많은데, 이는 인공지능의 학습자료로 삼기 위한 것 같아요. 과연 제가 영문으로 된 KoreanLII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이 잘 하는 일인지 회의에 빠질 때가 있어요. 우리 속담에 "죽 쑤어 개 준다"는 말처럼 헛수고(futile labor)가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B : 인공지능(AI)이 제대로 답변을 하려면 학습을 해야 하니 충실한 자료를 영어로 제공하는 것이 어느때보다도 중요해지지 않았나요? 위의 국가와 교회의 관계 또한 그렇습니다. 중세의 신본주의(神本主義)나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 뿐만이 아니고 청교도들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 발전시킨 사례까지 AI에게 공부를 시킨다면 균형 잡힌 올바른 답변을 해줄 것입니다. 아까의 질문을 尹 대통령이 국가 행정업무에 활용해보라고 말한 챗GPT에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요? 나도 그 답변이 궁금해집니다.
P : 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하고 마이크로 소프트가 거액을 투자한 Open AI 닷컴 사이트 (https://chat.openai.com/chat)에 들어가 챗GPT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① 서양과 동양 문명에 비추어 국가는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 어떤 입장이나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② 오늘날 행정, 과학, 예술 부문에서는 하나님의 권세나 영역을 어디까지 인정하는 것이 적합하고 바람직한가?
① In view of the Western and Oriental Civilization, what is the proper and desirable position and attitude of the government towards religion, in particlular, Christianity?
② In modern times, is it proper and desirable to what extent God's authority and domain should be respected in terms of government administration, science, arts and culture, etc.?
ChatGPT replied in a few seconds, as follows:
① It varies depending on cultural, historical, and political factors unique to each society. In Western Civilization, there is a long tradition of separating church and state, in which the government maintains a neutral stance towards religion and does not favor or endorse any particular religion. In Oriental Civilization, the relationship between government and religion may be more intertwined, with governments sometimes playing a more active role in religious matters. Ultimately, the proper and desirable position and attitude towards religion is a matter of debate and depends on the values and beliefs of each individual society.
그것은 각 사회가 처한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여건에 달려 있다. 서양에서는 정부가 종교에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특정 종교를 편들지 말아야 한다는 정교분리의 오랜 전통이 자리잡았다. 동양에서는 국가가 때로는 종교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정부와 종교가 서로 얽혀있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정부가 종교에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는 토의를 요하는 문제이며 각기 사회의 가치와 믿음에 달려있다고 본다.
② It is a matter of personal belief and cultural norms. In some societies, people may believe that God's authority should have a significant impact on government administration, science, arts, and culture. In others, people may believe that these areas should be guided by secular principles and not influenced by religious beliefs.
In general, the trend in modern times has been towards secularization and the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with many governments striving to maintain a neutral stance towards religion. However, the influence of religion on various aspects of society can still vary widely depending on the cultural and political context. Ultimately, the proper and desirable extent to which God's authority and domain should be respected is a matter of ongoing debate and will depend on the values and beliefs of each individual society.
이것은 개인의 믿음과 문화적 규범에 속한 문제이다. 어느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권세가 정부 행정이나 과학, 예술에 상당한 영향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 반면, 다른 사회에서는 이 문제는 종교적인 믿음보다 세속적인 원칙에 따라 판단할 사항이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오늘날에 와서는 세속화와 정교분리의 방향으로 가고 있어 많은 나라들이 종교에 대해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의 여러 측면에 대한 종교의 영향력은 정치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크게 다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권세와 영역이 어디까지 미치는 게 바람직한지는 사회적으로 토의를 벌여 결정하되 각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와 믿음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P : 챗GPT의 답변을 보건대, 이러한 복잡한 문제는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의하여 현재와 미래의 세대에 가장 도움이 되는 쪽으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우리의 상식적인 결론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교회에서 취했던 것처럼 이슈가 생길 때마다 교회와 신도들이 목소리를 내고 소관 행정청과 국회의원들에게 교회의 입장을 전달하는 등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 함으로써 교회가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축복의 통로가 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어요. 나머지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May God protect and preserve our country!)임을 믿어야겠지요.
그런데 사람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들이거든요. 오픈AI가 이처럼 단 몇 초만에 완전한 문장의 답변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학습·훈련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러한 데이터 가공능력이 발달할 수록 점점 인간의 판단을 능가하게 될 터이니 맨처음 철도와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떠올렸지요.
B : 그렇습니다! 이제 AI의 기능과 효율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과 산업이 각광을 받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P : 네, 저부터도 대화형 인공지능과 친숙해질 수 있게끔 앞으로는 블로그에 기사를 올릴 때마다 챗GPT에게 질문하는 코너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사나운 말(千里馬)같은 AI를 어떻게 제어하고 이용할 수 있을지,[1] 아니면 그의 먹잇감(마케팅 광고의 대상)이 되고 말지 저부터 전율이 느껴집니다.
Note
1] 조선일보 주말섹션 [노정태의 시사哲]은 챗GPT를 디즈니 애니메이션 <Fantasia>(1940) 중 ‘마법사의 제자’의 한 장면에 나오는 마법에 걸린 빗자루에 비유하고 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된다.
본래 마법사의 제자(The Sorcerer's Apprentice)는 프랑스의 인상파 작곡자 Paul Dukas (1865-1935)의 제일 유명한 작품으로 '교향적 스케르초'라는 부제가 붙은 짧은 교향시이다. 그가 괴테의 발라드(Ballad der Zauberlehrling)에서 발췌한 내용을 가지고 작곡한 교향시에 영감을 받아 월트 디즈니가 만화영화로 제작하였다. 마법사가 제자에게 허드렛일만 시키자 제자는 스승이 없는 틈을 타서 그의 흉내를 내서 물 긷는 일을 빗자루에 시킨다. 마법사의 모자를 쓴 제자는 어설프게 주문을 걸어 빗자루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물을 길어 집 안으로 나르는 지루하고 고된 일을 떠넘기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한숨 자고 일어나 보니 문제가 생겼다. 빗자루가 도저히 멈추지 않는 것이다. 당황한 제자는 도끼를 들어 빗자루를 여러 조각으로 쪼개버리지만, 그러자 조각들이 모두 빗자루로 변하더니 더욱 열심히 물을 퍼 나르면서 마법사의 연구실은 물바다가 되어버린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글을 쓰거나 코딩, 그림 등의 작업 중에 챗GPT를 이용할 때에도 주의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표절시비에 휘말리거나 저작권 침해, 명예훼손 등의 법적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령 있게 챗GPT에 지시나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하며, '세종대왕의 맥북 던짐 사건' 같은 장난보다도 답변의 퀄리티를 개선할 수 있도록 피드백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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