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메이데이를 앞두고 파리는 긴장에 휩싸였다. 해마다 메이데이에는 노동자들이 축제를 벌이곤 한다지만 금년에는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에 반대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예고하였기 때문이다.
길벗 인솔자는 파리의 현지 가이드가 경험 많고 노련한 분이므로 그와 상의하여 일정을 일부 조정하였으므로 우리는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노동자단체의 시위가 예고된 지역을 하루 전에 미리 다니는 등 대비를 했다는 말이었다.
사실 프랑스 여행을 몇 번 했든지간에 파리는 참으로 볼 것, 할 것(쇼핑도 그중의 하나이다), 먹을 것이 많은 도시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의 주제에 걸맞게 파리에서 맨처음 할 일은 지베르니의 모네 집과 정원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나로서는 전에 파리에 출장을 왔다가 일본 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들에 섞여서 1일 관광으로 지베르니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래서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오는지는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에서 빈센트 반고흐, 폴 세잔, 마크 샤갈 같은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던 만큼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라데팡스의 Mercure 호텔은 오늘 밤에도 하루 더 묵을 예정이므로 짐을 꾸릴 필요 없이 아침 식사만 하고 버스를 타러 나왔다. 라데팡스 구역은 파리에서도 고층건물을 세울 수 있는 지역이어서 대기업의 사옥과 오피스 빌딩, 대형 호텔들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여러 대의 관광버스가 서 있는 주차장에서 현지 가이드 황 선생의 안내로 오늘 일정을 시작했다. 2005년에 파리에 조형미술을 공부하러 왔다가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으나 이렇게 여행 가이드하는 것이 체질에 맞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자기소개가 있었다. 전에 스페인에서 만난 허봉도 가이드의 말처럼 유럽에서는 국경이 없고 각종 비즈니스 기회가 많아 관광 목적 이외의 여행 안내, 통역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크다고 한다.
지베르니(Giverny)는 파리에서 1시간 거리의 노르망디 지역의 센 강 유역에 위치하며, 목적은 오직 클로드 모네가 살았던 집과 그가 가꾸었던 정원을 보러가는 것이었다.
한 인물의 존재와 그가 이룬 업적이 외국 관광객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나는 버스에서 가이드 뒷자리에 앉아 갈 수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이다.
인상주의 화가는 그 말고도 피사로, 바지유, 르누아르, 시슬리, 반고흐 등 여럿이 있다. 그들은 살롱전에서도 외면 당한 인기없는 화가들이었지만 햇빛 아래 야외에서 그림 그리기를 즐겨했다.
과연 모네는 어떤 점이 위대하였기에 오늘날 멀리 한국에서도 만사 제치고 그가 그림을 그렸던 현장을 찾아온 것일까?
우선 그는 그가 세운 원칙에 투철하였다. 빛과 대기에 의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대상을 보이는 대로 그렸다. 지베르니의 정원에서는 꽃과 식물을 가지고 색채를 실험하곤 하였다. 햇빛 아래서 그림 그리는 것을 고집했기에 말년에 백내장으로 고생했다.
둘째, 세잔, 반고흐처럼 성격이 까칠하지 않고 푸근한 성격이었다. 무명 시절 그의 모델이 되어준 카미유 동시외(Camille Doncieux, 1847~1879)의 내조 덕에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모네의 그림을 많이 사주었던 금융가가 파산하고 잠적해버리자 모네는 그의 부인 앨리스와 여섯 자녀를 돌봐주었다. 모네는 카미유 간병도 하고 집안일을 돌보아준 앨리스와 1893년 제베르니로 함께 이사하였는데 남편이 죽은 뒤 1892년 그녀와 재혼하고 두 집을 합쳤다.
셋째, 모네는 참을성 있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비록 그의 그림이 인기를 끌진 못했어도 그의 그림을 좋아하고 구입하는 사람이 있었다. 보불전쟁을 피해 가족을 데리고 런던으로 이사했을 때에는 영국의 화가 터너, 콘스터블과 교유하며 풍경화기법을 배웠다. 마흔이 넘어 그의 그림이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팔리기 시작하고 재정형편이 나아지면서 지베르니에 집과 정원을 마련하고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모네의 집은 생전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다.
모네의 사후 유가족이 이 집과 정원을 더 이상 관리할 수 없게 되자 50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모네의 유산 상속인이 미술협회에 유산을 전부 기부하였고, 미국 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1977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원 작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3년에 걸쳐 옛 모습을 되찾은 후 1980년 일반에 공개되었다. 모네의 집과 정원을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해 클로드 모네 재단(Fondation Claude Monet)을 설립하고 현재 모네 재단을 통해 운영하고 있다.
⇒ 세잔과 모네의 아틀리에 P.S. 기사 참조
수많은 인파 속에 말 그대로 주마간산 격으로 모네가 살았던 집과 그가 공들여 가꾼 정원을 구경한 후 파리로 돌아왔다.
모네가 지베르니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것은 전원풍경이 그림 그리기에 적합했을 뿐만 아니라 센 강에 가까워 수로를 내면 작은 연못을 만들고 수련(water lilies)을 가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지베르니 시당국에서는 개인적인 목적의 수로 변경을 불허하였고 모네는 법원에 청구하여 그의 뜻을 관철했다고 한다. 그 결과 모네는 물이 흐르는 이 연못에서 정성껏 수련을 가꾸었고 그의 대작 수련 그림을 맘껏 그릴 수 있었다.
규정에 얽매인 행정관료보다 화가의 호소를 받아들인 법관의 현명한 판단이 장차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된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 정부는 그의 연작 그림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튈르리 궁전의 온실 건물을 전시공간으로 개조하였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면 그의 수련 그림 8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에도 모네의 수련 한 점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음악가 윤이상과 통영, 화가 이중섭과 서귀포 등 유명 예술가의 연고지에 그의 기념관 또는 미술관이 서 있다. 또한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자기네 고장 출신 문인들의 시비(詩碑)를 세워놓았다. 그러나 K-팝이나 K-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외국의 팬들이 그 음악, 드라마의 산실을 찾는 일은 있어도 모네의 지베르니처럼 외국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명소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예술가들의 작품을 해외에 널리 소개하고 차세대 유망 작가를 발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지베르니에서 난 보았네
붓 한 자루로 세상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할 수 있음을
We saw at Giverny
how a man could make the world
better and rich.
우리 일행의 다음 행선지는 퐁피두 센터 6층의 레스토랑이었다.
파리 시청사 앞을 지나 현대미술 전시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는 퐁피두 센터로 갔다.
좋은 날씨에 파리 시민과 관광객들이 주말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이번 프랑스 일주 투어의 주제는 반고흐, 세잔, 모네 등 19세기에 활동했던 화가들의 발자취를 찾아가 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루브르 박물관 센 강 건너편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19세기 미술품을 집중 감상하는 것은 그 결산이 될 터이다.
일행 중 일부는 미술관보다는 백화점 구경하기를 원하였므로 희망자에 한해 오르세 미술관으로 갔다.
내부에서는 가이드가 해설을 할 수 없으므로 롯데관광 측은 한국어로 설명해주는 오디오 헤드셋을 빌려 주었다.
우리 일행은 일단 5층의 인상주의 작품 전시실로 올라갔다.
제한된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것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 뿐이었으나 나는 들어온 김에 다른 유파의 화가 그림, 초상화와 조각 작품까지 돌아보느라 집합시간에 10여분 지각했다.
사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샅샅이 보자면 하루 이들 가지고도 부족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1시간으로 끝내려 했으니 너무 아쉬웠다.
미술품 감상파 일행은 사마리텐 백화점에서 쇼핑파 일행과 합류하여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여행 일정 중 처음으로 한식집에 가서 모처럼 얼큰한 순두부 찌개와 김치 등 한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튿날 파리 아니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날 짐을 모두 챙겨 버스에 싣고 일단 개선문 앞으로 갔다.
거기서 현지 가이드를 만나 메이데이 시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으로 다니며 파리 관광을 하기로 했다.
현지 가이드가 제시한 코스는 샹젤리제 거리를 산책하고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유리 피라밋과 팔레 로얄 정을 구경한 다음 에펠탑을 멀리서 또 가까이서 구경하는 것이었다.
점심은 에펠탑이 보이는 한국 식당에서 달팽이요리를 먹고 남은 시간은 앵발리드, 센 강의 다리 등을 구경한다고 했다. 그 후 희망자에 한해 한국에 들고 갈 선물로 건강보조제 기능식품을 살 수 있는 드럭스토어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읽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밋에 대하여 나눌 이야기가 참 많았다.
며칠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군함과 군대를 이끌고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원하러 떠난 라파이에트 후작에 관한 책도 샀었다.
9.11 테러 사건이 벌어지기 며칠 전 나는 바로 유리 피라밋 아래의 넓은 홀에서 프랑스 육군합창단의 공연을 보며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프랑스 개인정보보호위원회(CNIL) 주관 국제회의에 정부대표로 참석했기에 누렸던 혜택이었다.
그래서 영화 <다빈치 코드>에서 첫 장면인 루브르 박물관 살인 사건과 여주인공이 할아버지에 대해 실망하고 집을 떠났던 사건(Hieros Gamos) 등을 더욱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프리메이슨에 대해서는 다른 블로그 기사 참조.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맨처음 출발했던 파리 CDG 공항 터미널로 다시 돌아왔다.
⇒ 8. 니스와 코트다쥐르
⇒ 10. 프랑스 일주 여행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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