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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9] 지베르니의 모네 정원, 파리

Onepark 2023. 5. 2. 21:50

5월 1일 메이데이를 앞두고 파리는 긴장에 휩싸였다. 해마다 메이데이에는 노동자들이 축제를 벌이곤 한다지만 금년에는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에 반대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예고하였기 때문이다.

길벗 인솔자는 파리의 현지 가이드가 경험 많고 노련한 분이므로 그와 상의하여 일정을 일부 조정하였으므로 우리는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노동자단체의 시위가 예고된 지역을 하루 전에 미리 다니는 등 대비를 했다는 말이었다.

 

사실 프랑스 여행을 몇 번 했든지간에 파리는 참으로 볼 것, 할 것(쇼핑도 그중의 하나이다), 먹을 것이  많은 도시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의 주제에 걸맞게 파리에서 맨처음 할 일은 지베르니의 모네 집과 정원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나로서는 전에 파리에 출장을 왔다가 일본 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들에 섞여서 1일 관광으로 지베르니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래서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오는지는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에서 빈센트 반고흐, 폴 세잔, 마크 샤갈 같은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던 만큼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호텔에 투숙한 관광객들을 실어나를 관광버스가 수도 없이 대기 중이었다.

 

라데팡스의 Mercure 호텔은 오늘 밤에도 하루 더 묵을 예정이므로 짐을 꾸릴 필요 없이 아침 식사만 하고 버스를 타러 나왔다. 라데팡스 구역은 파리에서도 고층건물을 세울 수 있는 지역이어서  대기업의 사옥과 오피스 빌딩, 대형 호텔들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여러 대의 관광버스가 서 있는 주차장에서 현지 가이드 황 선생의 안내로 오늘 일정을 시작했다. 2005년에 파리에 조형미술을 공부하러 왔다가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으나 이렇게 여행 가이드하는 것이 체질에 맞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자기소개가 있었다. 전에 스페인에서 만난 허봉도 가이드의 말처럼 유럽에서는 국경이 없고 각종 비즈니스 기회가 많아 관광 목적 이외의 여행 안내, 통역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크다고 한다. 

 

지베르니(Giverny)는 파리에서 1시간 거리의 노르망디 지역의 센 강 유역에 위치하며, 목적은 오직  클로드 모네가 살았던 집과 그가 가꾸었던 정원을 보러가는 것이었다.

한 인물의 존재와 그가 이룬 업적이 외국 관광객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나는 버스에서 가이드 뒷자리에 앉아 갈 수 있었다.

 

* 고요히 흐르는 센 강
* 유독 파리 지역에 많은 지하차도
* 철로와 나란히 달리는 지베르니 가는 길. 모네도 기차를 타고 가다가 센 강변의 이곳에 꽂혀버렸다.
* 지베르니를 흐르는 센 강
* 모네 덕에 인구와 학교가 늘어나 주말이면 이렇게 클럽 축구가 경기를 벌인다고 한다.
* 모네의 집을 찾는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전기 셔틀버스와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꼬마열차
* 주차장에서부터 모네의 정원으로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들어가고 있다.
* 모네의 정원으로 가는 길목의 수로
* 방문객들은 입장권을 사서 윗쪽 수련이 있는 연못을 구경한 다음 아래의 정원과 스튜디오, 살림집을 차례로 둘러볼 참이다.
* 센 강을 끌어들인 연못 한쪽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잘 가꿔져 있다.
* 모네 정원의 만발한 꽃을 찍기 전에 우선 인증샷부터!
* 모네가 우키요에에서 영감을 받아 저 앞에 일본식 아치형의 다리를 놓고 등나무 덩쿨을 올렸다.
* 일본 다리 위에서
* 연못에서 모네의 정원으로 이동하기 위한 지하통로
* 모네 식구가 살았던 집 앞의 튤립 꽃밭
* 정원에 서 있는 노년의 모네

 

잘 알려진 대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이다.

인상주의 화가는 그 말고도 피사로, 바지유, 르누아르, 시슬리, 반고흐 등 여럿이 있다. 그들은 살롱전에서도 외면 당한 인기없는 화가들이었지만 햇빛 아래 야외에서 그림 그리기를 즐겨했다.

과연 모네는 어떤 점이 위대하였기에 오늘날 멀리 한국에서도 만사 제치고 그가 그림을 그렸던 현장을 찾아온 것일까?

 

우선 그는 그가 세운 원칙에 투철하였다. 빛과 대기에 의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대상을 보이는 대로 그렸다. 지베르니의 정원에서는 꽃과 식물을 가지고 색채를 실험하곤 하였다. 햇빛 아래서 그림 그리는 것을 고집했기에 말년에 백내장으로 고생했다.

둘째, 세잔, 반고흐처럼 성격이 까칠하지 않고 푸근한 성격이었다. 무명 시절 그의 모델이 되어준 카미유 동시외(Camille Doncieux, 1847~1879)의 내조 덕에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모네의 그림을 많이 사주었던 금융가가 파산하고 잠적해버리자 모네는 그의 부인 앨리스와 여섯 자녀를 돌봐주었다. 모네는 카미유 간병도 하고 집안일을 돌보아준 앨리스와 1893년 제베르니로 함께 이사하였는데 남편이 죽은 뒤 1892년 그녀와 재혼하고 두 집을 합쳤다. 

셋째, 모네는 참을성 있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비록 그의 그림이 인기를 끌진 못했어도 그의 그림을 좋아하고 구입하는 사람이 있었다. 보불전쟁을 피해 가족을 데리고 런던으로 이사했을 때에는 영국의 화가 터너, 콘스터블과 교유하며 풍경화기법을 배웠다. 마흔이 넘어 그의 그림이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팔리기 시작하고 재정형편이 나아지면서 지베르니에 집과 정원을 마련하고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

 

* 모네의 집 현관 앞에서. 그러나 집안에 들어가 보니 발디딜 틈이 없었다.

 

모네의 집은 생전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다.

모네의 사후 유가족이 이 집과 정원을 더 이상 관리할 수 없게 되자 50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모네의 유산 상속인이 미술협회에 유산을 전부 기부하였고, 미국 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1977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원 작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3년에 걸쳐 옛 모습을 되찾은 후  1980년 일반에 공개되었다. 모네의 집과 정원을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해 클로드 모네 재단(Fondation Claude Monet)을 설립하고 현재 모네 재단을 통해 운영하고 있다.

⇒ 세잔과 모네의 아틀리에 P.S. 기사 참조

 

* 모네 생전의 스튜디오. 화가는 밖에 나가서 그림 그리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 모네는 그와 친분이 있는 베르테 마네가 외동딸 줄리를 그린 그림을 선물로 받고 그의 침실에 걸어 두었다. 줄리 마네와 강아지 라르테 (1893) 원화는 파리 Musee Marmottan-Monet 소장.
* 모네의 침실 창밖으로 내다 본 정원 풍경
* 세면대
* 일본 여인들의 우키요에 그림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모네 부인의 침실인 듯하다.
* 모네 생전의 주방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 식구도 많고 손님이 많이 왔을 테니 주방기구도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 모네의 정원 마지막 코스인 화장실과 기념품 숍. 벽에는 수련 복제화가 걸려 있다.
* 많은 인파를 헤치고 숨가쁘게 모네의 집과 정원 투어를 마쳤다.

 

수많은 인파 속에 말 그대로 주마간산 격으로 모네가 살았던 집과 그가 공들여 가꾼 정원을 구경한 후 파리로 돌아왔다.

모네가 지베르니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것은 전원풍경이 그림 그리기에 적합했을 뿐만 아니라 센 강에 가까워 수로를 내면 작은 연못을 만들고 수련(water lilies)을 가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지베르니 시당국에서는 개인적인 목적의 수로 변경을 불허하였고 모네는 법원에 청구하여 그의 뜻을 관철했다고 한다. 그 결과 모네는 물이 흐르는 이 연못에서 정성껏 수련을 가꾸었고 그의 대작 수련 그림을 맘껏 그릴 수 있었다.

규정에 얽매인 행정관료보다 화가의 호소를 받아들인 법관의 현명한 판단이 장차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된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 정부는 그의 연작 그림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튈르리 궁전의 온실 건물을 전시공간으로 개조하였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면 그의 수련 그림 8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에도 모네의 수련 한 점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음악가 윤이상과 통영, 화가 이중섭과 서귀포 등 유명 예술가의 연고지에 그의 기념관 또는 미술관이 서 있다. 또한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자기네 고장 출신 문인들의 시비(詩碑)를 세워놓았다. 그러나 K-팝이나 K-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외국의 팬들이 그 음악, 드라마의 산실을 찾는 일은 있어도 모네의 지베르니처럼 외국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명소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예술가들의 작품을 해외에 널리 소개하고 차세대 유망 작가를 발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 파리로 돌아오는 길. 프랑스 고속도로의 노견은 차들이 다니는 갓길이 아니라 유사시에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 베르사이유 일대의 숲은 본래 프랑스 왕실의 사냥터였다.

 

지베르니에서 난 보았네
붓 한 자루로 세상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할 수 있음을

We saw at Giverny
how a man could make the world
better and rich.

 

* 파리 시내에 들어올 때 우리를 반겨준 센 강변 상공의 애드벌룬
* 버스가 센 강 강변도로에 접어들자 저 멀리 에펠탑과 파리의 오리지널 자유의 여신상이 보였다.
* 센 강 다리 중에서 제일 크고 화려한 알렉상드르 3세교
* 프랑스 국회의사당
* 파리 시청사

 

우리 일행의 다음 행선지는 퐁피두 센터 6층의 레스토랑이었다.

파리 시청사 앞을 지나 현대미술 전시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는 퐁피두 센터로 갔다.

좋은 날씨에 파리 시민과 관광객들이 주말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파리 퐁피두 센터
* 파리 도심은 층고가 5층으로 제한되어 있어 저 멀리 에펠탑이 어디서나 똑똑히 보인다.
* 퐁피두 센터 루프탑 레스토랑의 아방가르드한 실내 분위기
* 이태리 파스타 메인 요리와 전식, 후식에 모두 바질이 꽂혀져 나왔다.
* 더욱 아방가르드한 레스토랑 바
* 화재로 크게 손상이 된 노트르담 대성당의 측면
* 파리를 찾은 관광객들이 노트르담 사원 쪽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 파리 관광의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센 강 유람선(bateau)를 타는 것이다.

 

이번 프랑스 일주 투어의 주제는 반고흐, 세잔, 모네 등 19세기에 활동했던 화가들의 발자취를 찾아가 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루브르 박물관 센 강 건너편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19세기 미술품을 집중 감상하는 것은 그 결산이 될 터이다.

일행 중 일부는 미술관보다는 백화점 구경하기를 원하였므로 희망자에 한해 오르세 미술관으로 갔다.

내부에서는 가이드가 해설을 할 수 없으므로 롯데관광 측은 한국어로 설명해주는 오디오 헤드셋을 빌려 주었다. 

우리 일행은 일단 5층의 인상주의 작품 전시실로 올라갔다. 

 

* 종전에는 기차역으로 사용되었던 오르세 미술관 입구의 청동 준마상
* 기차역의 필수시설인 대형 시계는 지금도 가동되고 있다.
* 드가의 조각작품 발레리나를 자세히 뜯어보는 관람객들
* Gustave Caillebotte, Sunflowers at the garden in Petit-Gennevilliers (1885)
* 오늘 오전 모네의 정원에서 보았던 일본교가 이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 Paul Cezanne, Portrait of Gustave Geffroy (1895). 얼굴과 두 팔이 정확히 삼각형 구도이다.
* 액상프로방스의 세잔 아틀리에에서 보았던 사과 등의 정물
* 이젠 눈을 감아도 알아볼 수 있는 빈센트 반고흐의 그림. 아를의 침실
* 우리가 받은 오디오 가이드에서 한글 버전은 작품 기준 100% 해설이 되지 않았다.
* 만원사례 오르세 미술관 휴게실에서 작품 감상평을 서로 나누어도 좋겠다.
* 다산(多産)의 만족감? 여러 상품광고판에 이 조각상의 모티프가 활용되었음을 알고 놀랐다.
* 용인 호암 미술관에서도 볼 수 있는 활 쏘는 헤라클레스
* 마르세유 이프 섬을 보며 떠올렸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쓴 알렉산드르 뒤마의 흉상
* Leon Bonnat, Portrait of Jules Jules Grevy.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1879~1887)을 지낸 정치인의 초상화
* Portrait of Mme Edouard Debufe
* 프랑스 정부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에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의 뭔형.

 

제한된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것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 뿐이었으나 나는 들어온 김에 다른 유파의 화가 그림, 초상화와 조각 작품까지 돌아보느라 집합시간에 10여분 지각했다.

사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샅샅이 보자면 하루 이들 가지고도 부족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1시간으로 끝내려 했으니 너무 아쉬웠다.

미술품 감상파 일행은 사마리텐 백화점에서 쇼핑파 일행과 합류하여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여행 일정 중 처음으로 한식집에 가서 모처럼 얼큰한 순두부 찌개와 김치 등 한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튿날 파리 아니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날 짐을 모두 챙겨 버스에 싣고 일단 개선문 앞으로 갔다.

거기서 현지 가이드를 만나 메이데이 시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으로 다니며 파리 관광을 하기로 했다.

현지 가이드가 제시한 코스는 샹젤리제 거리를 산책하고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유리 피라밋과 팔레 로얄 정을 구경한 다음 에펠탑을 멀리서 또 가까이서 구경하는 것이었다.

점심은 에펠탑이 보이는 한국 식당에서 달팽이요리를 먹고 남은 시간은 앵발리드, 센 강의 다리 등을 구경한다고 했다. 그 후 희망자에 한해 한국에 들고 갈 선물로 건강보조제 기능식품을 살 수 있는 드럭스토어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 화창하게 개인 날씨에 나폴레옹이 건립하기 시작했던 개선문이 빛나 보였다.
* 샹들레제 거리의 루이뷔통 숍(오늘은 휴무). 그 옆에서 리모델링 공사 중인 디오르 숍이 훨씬 커보였다.
* 샹젤리제에서도 경찰차량이 계속 순찰을 다니고 있었다. 이 광고 모델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그림과 같은 포즈네!
* 전방의 콩코드 광장에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때 실어온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 루브르 박물관은 휴관일이어서 유리 피라밋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읽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밋에 대하여 나눌 이야기가 참 많았다.

며칠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군함과 군대를 이끌고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원하러 떠난 라파이에트 후작에 관한 책도 샀었다.

9.11 테러 사건이 벌어지기 며칠 전 나는 바로 유리 피라밋 아래의 넓은 홀에서 프랑스 육군합창단의 공연을 보며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프랑스 개인정보보호위원회(CNIL) 주관 국제회의에 정부대표로 참석했기에 누렸던 혜택이었다.

그래서 영화 <다빈치 코드>에서 첫 장면인 루브르 박물관 살인 사건과 여주인공이 할아버지에 대해 실망하고 집을 떠났던 사건(Hieros Gamos) 등을 더욱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프리메이슨에 대해서는 다른 블로그 기사 참조.

 

* 이태리의 조각가 베르니니가 제작한 루이 14세의 기마상
* 팔레 로얄의 정원. 미국 드라마 <Emily in Paris> 에서 이곳에 촬영했던 몇 장면이 생각 났다.

 

* 에펠탑 공원 잔디 위에서 한가로움을 만끽하는 젊은이들. 잠시 후 소나기가 내려 이들의 평온은 깨지고 말았다.
* 나폴레옹 전쟁 당시 부상병 치료 병원으로 설립된 앵발리드는 나중에 나폴레옹 황제도 이곳 성당에 묻혔다.
* 알렉산드르 다리 밑에서
* 솟구치는 게 아니라 내리쏟는 보면 볼수록 이상한 분수대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맨처음 출발했던 파리 CDG 공항 터미널로 다시 돌아왔다.

 

* 파리로 갈 때 비행했던 항로를 되짚어 편서풍 덕에 조금은 빨리 날아갔다.
* 그동안의 피로가 쌓인 탓인지 한숨 자고 일어나 흰쌀죽을 먹었으나 이것도 거르고 내쳐 자는 승객도 있었다.
* 우리가 탄 비행기는 인천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

 

8. 니스와 코트다쥐르

10. 프랑스 일주 여행을 마치고

세잔과 모네의 아틀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