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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 유붕이 자원 방래하니

Onepark 2022. 10. 19. 09:05

공자님의 세 가지 즐거움[군자삼락/君子三樂]  중 두 번째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하는 교유(交遊)의 즐거움이다.

지난 주말[1] 실로 간만에 고교동창들을 부부동반으로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문과 이과로 나뉘었던 데다 정기 동창회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취소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해졌고 더욱이 부부동반으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한 친구가 부부동반으로 만날 것을 고집하여 나 역시 아내와 함께 참석하였다.

 

* 의정부역 행복로의 연인상

전철 도봉산역에서는 다소 철이른 단풍구경을 기대하고 도봉산에 오르려는 등산복 차림의 나이든 사람들이 우루루 하차를 했다. 그들과 섞여서 도봉산역에서 1호선 전철로 갈아타고 의정부역 앞에 있는 호스트 친구의 성형외과를 찾아갔다.

사실 언제 만났는지 기억할 수 없을 만치 오랜만에 만나는 고교 동창들이었지만 이내 서로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우리는 친해졌다. 주말이라서 클리닉 문 닫을 시간이 되었기에 오늘 회동하는 동창 넷은 부부가 함께 점심 약속장소로 이동했다.

편의상 오늘의 고교동창 참석자들은 A, B, C, D로 표기하고, 부인들의 코멘트는 각기 부군의 말에 포함시키기로 한다.

 

A : 어서들 오시게. 오늘 역전에서 의정부시 문화행사가 열리는 바람에 주차하기가 많이 힘들었을 거야.

B :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이곳 주변에 구경거리가 아주 많겠어. 우리는 전철을 타고 와서 아무 문제가 없었어.

C : 아유 말도 마라. 이 앞 환승주차장은 이미 만원이고 S백화점 주차장도 겨우 한 자리 비어서 냉큼 주차하고 왔다.

D : 오늘 따라 주차금지구역만 눈에 띄더라. 간신히 식사할 곳의 주차장에 비집고 들어가 차를 세우고 왔다.

 

A : 사람들이 우리같은 Plastic Surgeon을 보고 어느 사람이나 몇 마디 나누면 "견적이 나온다"고 말하지. 그런데 오랜 친구들, 친구부인들을 만나니 그런 직업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너무 즐겁다. 마침 이중의 한 분이 내일 생일을 맞게 되어 내 아내가 생일 케이크를 준비했다.

C : 나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는데 너무 고맙다.

D : 단, 촛불은 한 개만~!

B : 이렇게 서로 와이프 생일까지 챙겨줄 정도라면 그 인연이 보통이 아니구나!

 

C : 은퇴 후에 하루 일과가 대폭 줄어드니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친구들 '모닝 루틴'이 궁금해졌어. 병원 문을 열어야 하는 A나 여전히 왕성하게 비즈니스를 하고 매일 출근하는 D는 빼놓고 말이지.  

D : 몇 십 년 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다른 직원들에게 권한위양도 많이 했고 일정에 얽매이지는 않아. 다만, 취미생활로 하는 Daily Stoic (스토아 철학자들의 어록) 번역 작업이 시간이 꽤 많이 걸리지.

 

B : 그런 일은 누가 옆에서 Proof-reading만 해줘도 큰 도움이 되는데, 혼자서 하고 있다니 놀랍다. 무역업을 하기에 영어 잘 하는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철학용어까지 정확하고 유려하게 번역하는 솜씨에 감탄했어.

나도 사정이 비슷하거든~. 아침에 일어나면 조간신문을 보면서 영문 법률백과사전(KoreanLII)에 새로 고치거나 업데이트할 항목이 없는지 검토하는 게 중요한 일과야. 우리나라 법률은 하도 빈번하게 제ㆍ개정이 되니까 말이야. 만일 KoreanLII 나 '여행(Travel & People)', '영화(Law in Show & Movie)'를 주제로 하는 두 곳의 Tistory 블로그 기사에 오류가 발견되면 더 이상 꾸물댈 수가 없어. 인터넷에서 누가 들어와 볼지 모르는데 웹페이지의 성격상 오류를 그대로 방치해 두는 건 도리가 아니거든.

C : 다분히 사서 고생인 게로군~.

D : 하지만 해 본 사람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뿌듯함'이라고 할 수 있어.

 

* 의정부 이기룡 성형외과의원의 이 원장(오른쪽)과 필자

A : 네가 동창들 밴드나 카톡방에 올리는 블로그 기사를 종종 읽어보는데 어떻게 한국의 시와 노랫말[詩歌]을 영어로 옮길 생각을 했지?

B : 나도 처음부터 그렇게 마음 먹진 않았어. KoreanLII를 운영하면서 좀더 재미있게 (for fun) 한국의 법률이나 제도에 관해 이해하도록 기왕에 한두 편 번역해 놓은 것을 올렸을 뿐이야.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여태 아무도 번역하지 않고 있었다니~! 나아가 "이런 시는 영어로 옮겨 외국인들도 알아야 돼"로 발전하여 그에 맞는 KoreanLII 항목을 만들어 올렸고, 지금은 유행가, 동시, 시조까지 영어로 옮기고 있어.[2] 누군가를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일단 내가 길을 닦아 놓으면 후학들이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고 확신해.

C : 그것은 영어 실력을 떠나 영문학 외에 인문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운율이 있는 문장[韻文]을 다듬는 솜씨까지 요하기에 아무도 엄두를 못내는 일인데 놀랍다.

D : 오늘 아침에 호스트가 페르시아 시인의 4행시를 카톡방에 올려서 나 또한 놀랐다.

 

A : 그래? "이러쿵 저러쿵 (정치나 종교 문제로) 토론하느니 빵을 뜯고 와인을 마시며 유쾌하게 지내는 게 훨씬 낫다"는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Waste No Time!) 한 구절이었어.

B : 나도 정년퇴직하기 몇 년 전에 페르시아 여행을 하면서 하이얌의 시 구절이 쿠란(이슬람 경전) 만큼 여기저기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놀랐어. 이란에서 귀국한 뒤에 오마르 하이얌의 4행시가 1천편[3]이나 된다는 것을 알았어. 그것을 추리고 추려서 영국의 피츠제럴드가 압운을 맞춘 4행시로 번역한 것을 인터넷에서 발견해 KoreanLII에 영한 대역으로 올려놓았지.

C : 사행시(quatrain)를 그것도 압운(rhyme)을 맞춰가며 번역한 사람이 있었다니 놀랍다.

D : 오마르 하이얌이 본래 수학자, 천문학자였는데, 이런 자리처럼 친구들이 모여서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며 지적 유희 삼아 4행시를 읊었다[3]는 거야. 옛날 선비들도 경치 좋은 정자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시조를 읊고 그랬지. 그래서 그런지 루바이야트 중에는 조금은 가볍고 유쾌한 내용으로 비슷비슷한 시가 많이 전해지고 있단다.

 

B : 큰 부담 없이 지을 수 있는 짧은 시에 우리의 시조, 일본의 하이쿠(俳句)가 있어. 예능 프로에 나오는 3행시 말고 정식 운문으로서 말이야. 일본의 하이쿠는 17음절로 계절을 나타내는 말을 넣어서 그 자리의 감흥을 일본말처럼 '앗사리(あっさり, '깔끔하게' '산뜻하게'란 뜻)'하게 표현하는 게 정석이야. 나는 영국과 미국에서도 영어 하이쿠가 유행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말과 영어로 하이쿠를 지어보곤 해.[4] 17음절의 제약 때문에 하이쿠 짓는 게 쉽진 않지만 그럴 듯한 한 편을 짓고 나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어.

C : 언제 네 하이쿠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해주라.

D : 두뇌체조로도 그만이 아니겠는 걸~. 치매 예방에도 좋을 것 같다. 

 

* 하이쿠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죽림(竹林)

A :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사람이 또 그런 나그네 생활을 동경한다고 들었는데 ……

C : 바로 나같은 사람이야. 나는 외국에 나가서 한 달 살기 이런 걸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를 위해 체력단련도 하고 후보지 몇 군데 조사도 해두었는데, 와이프가 극력 반대야. "꼭 해외로 나가야 하느냐, 코로나가 아직 진정되지 않았다, 정 가고 싶으면 제주도나 강원도에 가서 한 달 살기 해보아라" 이렇게 반대하는 거야.

D : 일리가 있는 말씀이지. 우리 나이에 여성 문제(love affair)가 생길 수는 없고, 문제는 만의 하나 병원에 갈 수도 있는 상태에서 가족들이 바로 손을 쓸 수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야.

 

A : 의학적인 견지에서는 평소 건강관리와 체력단련,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에 대비한 Contingency Plan과 보험을 들어두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봐요. 

B : 흔히 75세까지는 돈 있고 건강상태가 좋다면 누구 눈치 보지 않고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하지. 그 이후엔 건강 리스크가 커서 여행사에서도 기피한다고 들었어.

C : 과거 해외생활을 많이 해서 그런지 Exotic한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어. 문제는 와이프가 자기 하는 일도 있고 절대로 같이 나가고 싶진 않다는 거야. 나도 관광을 다니거나 사람들을 사귀는 게 목표가 아니야. 혼자서 독서를 하고 명상을 하다가 그 동네 식당에 가서 주민들과 가볍게 담소를 즐기고 싶거든.

D : 이미 마음이 들떠 있는 상태이니 어디든 아니 갈 순 없겠다.

 

* 소심하던 월터는 사진작가를 찾아서 화산 대피령이 내린 아이슬란드 마을로 롱보드를 타고 찾아간다.

B : 문득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가 생각난다. 폐간하는 잡지의 마지막 표지사진 필름을 분실한 소심한 회사원 월터 미티가 괴퍅한 사진작가를 세계 곳곳으로 찾아 헤매는 스토리야. 그 중에도 아이슬란드의 화산 마을을 찾아가는 대목이 아주 인상적이었어.  비탈진 아스팔트 도로를 롱보드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었지. 그 장면을 보면서 나도 대리만족이랄까 Healing을 받는 느낌이었거든.

C : 나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도 어느 누구보다도 길게 900km를 완주했었다.

D : 맞아. 그런 경험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어. 준비를 한 만큼 결실을 볼 수 있을 테니 한 번 추진해봐. [C의 부인을 향해] "앞으로 이런 기회를 다시 얻기 어려우니 큰 맘 먹고 허락해주세요~. 잉글런드나 스코트랜드 어딜 나가 있든지 카톡을 하고 화상통화를 할 수 있으므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하고 통사정해야지~.

영화 속의 월터 미티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SNS에 자신의 탐방기를 올리면서 인기있는 블로거가 되었어. 그리고 짝사랑하던 회계과 여직원과도 사진작가의 소재지를 알아보느라 자주 연락을 하면서 친해졌잖아?

 

A : 이제 코로나 팬데믹이 진정되는 듯 하니 국내든 해외든 여행계획을 세워야겠다. 우리 와이프는 어디든 나 혼자서는 못 간다는 것을 알아.

B : 나도 마찬가지야. 전에 해외 학술회의 참석차 여러 곳을 다녀보았는데 혼자 다닐 때는 먹는 것이나 탈 것을 아끼게 되어 결국은 손해였어. 좋은 경치는 옆에서 감탄을 하고 같이 사진을 찍을 사람이 있어야 진정한 가치[眞價]를 발휘하는 것 같고 ……

C : 내 생각에 공감을 해주어 고맙다. 나 혼자 와이프를 설득하기는 아주 힘들었거든~.

D : 그럼 월터 미티처럼 뭔가 목표를 정하고 떠나는 게 필수적이겠다.

 

Note

1] 2022. 10. 15. 하오 카카오 데이터센터에서의 화재는 국민 메신저 카톡을 비롯해 카카오 플랫폼을 이용하던 온 국민을 혼란에 빠트렸다. 필자도 이날 모임에서의 사진을 여러 장 찍고 친구들과 카톡으로 공유하고자 했으나 계속 불통이었고 10. 17 월요일 아침에야 사진을 전송할 수 있었다. Tistory 블로그는 수요일 아침에 복구되어 마치 잃었던 자식 찾은 것 같았다.  

 

카톡 불통에

온갖 소통도 마비

그 답답함은 ~ 

A fire at Kakao data center caused
Nationwide fiasco,

Shutting down all kinds of communications.

 

2] Wikipedia식 온라인 영문 법률백과사전 KoreanLII.or.kr은 본래 로스쿨에 외국인 학생을 위한 LL.M. 과정이 개설될 경우 한국법을 소개하는 강의자료로 쓰기 위해 만들었다. 여기에 Poetry 섹션을 추가한 것은 다음과 같이 몇 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쳤다. 적절한 시 구절과 법 개념을 연관짓는 아포페니아(Apophenia) 지적(知的)인 노력를 요하였다. 이 모든 한영 대역 시가의 목록은 이곳을 클릭.

① KoreanLII의 기사와 직접 관련이 있을 것. ex) 김소월 "담배"

② 직ㆍ간접으로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인 시일 것. ex) 이은상 시 박태준 곡 "동무생각 [思友]" 

③ 영어로 꼭 소개할 필요가 있고 외국인도 알아두면 좋은 것. ex) 박목월 "4월의 노래"

④ 시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은 그에 해당하는 법개념을 따로 만들어 올릴 것. ex) 주요한 "불놀이",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⑤ 한국 시의 스펙트럼을 넓혀 고시가(古詩歌), 동시, 유행가. ex) 김억 "동심초[春望詞]", 윤극영 "반달", 이문세 노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3] 이란 이스파한의 체헬 소툰궁 그랜드 홀에 걸려 있는 페르시아 풍속벽화(위 사진)는 아래의 오마르 하이얌 시와 너무 잘 어울린다.

 

나무 그늘 아래 시집 한 권,
빵 한 덩이, 포도주 한 병을 벗삼아 
그대 또한 내 곁에서 노래를 하니
오, 황야도 천국이나 다름없구나!

A Book of Verses underneath the Bough,
A Jug of Wine, a Loaf of Bread—and Thou,
Beside me singing in the Wilderness,
And oh, Wilderness is Paradise now.

 

4]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관계가 있다. 실제로 같이 생활한 기간은 얼마 안 되어도 누구보다도 친한 형제ㆍ자매, 중ㆍ고등학교 동창이 그러하다. 그 이유는 DNA나 환경요소를 많이 공유하는 Gemeinshaft적인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날 만남을 계기로 다음과 같은 국ㆍ영문 하이쿠를 지어보았다.

 

사춘기적 친구는

언제 봐도

어제 본 것 같네

The friends in their puberty
need no more words 
when meeting each 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