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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故 최승환 교수의 영전에

Onepark 2022. 11. 6. 18:40

※ 경희대 최승환(崔昇煥, 1965~2022) 명예교수가 11월 4일 밤에 별세하셨다.

오래 전에 수술을 받고 식사와 운동, 심지어는 호흡법까지 신경써서 건강관리에 힘쓰고 있다고 하셨다. 방배동 우리집과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셨지만 코로나 팬데믹에 서로 조심하며 자주 만나진 못하던 참이었다.

최 교수님은 연초에 정년을 맞으셨고 나는 이미 4년여 전에 캠퍼스를 떠났기에 지난 5월 학교 앞 레스토랑에서 정년퇴직 축하 모임을 가진 것이 마지막이었다.

 

* 서울 경희의료원 장례식장의 빈소

최 교수님,

이게 어인 일입니까?

건강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계셨는데, 정년퇴직한지 1년도 안되어 우리 곁을 떠나시다니요?

그와는 달리 교수님의 학문적 업적은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국제법 중에서도 통상분야로서 우리나라가 국가이익을 확보하는 데 크게 이바지 하셨지요. 서울대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가 국내 최초의 수출통제 분야 논문이었으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유전자변형생물체(GMO)로 제조된 식품을 둘러싼 통상규제와 식량안보에까지 연구분야의 폭이 아주 넓으셨습니다. 
최 교수님의 전문가로서의 역량은 정부 요로와 국제기구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어, WTO 보조금 및 상계조치위원회의 중재전문가, WTO 농업 위원회 특별회의 한국대표단 법률자문, 바이오안전성 의정서 관련 작업반회의 한국대표단,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정법대학 국제법학원과 홍콩대학 로스쿨에서 강의도 하셨지요.   

 

학자로서의 역량은 국제법 분야의 주요 학회장을 모두 역임하심으로써 입증되었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것만 열거하더라도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2007년에는 한국국제경제법학회의 2대 회장으로서 학회의 조직과 체계를 확립하셨고, 2013년에는 대한국제법학회의 회장에 선임되어 학회 60年史를 발간하고 창립 6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하셨지요. 무엇보다도 법학분야에서 가장 연륜이 깊은 학회로서 만일 교수님이 「대한국제법학회 60년사」를 펴내지 않으셨더라면 귀중한 자료들이 유실되고 우리나라 국제법학의 발전사를 공식적으로 기록한 것 없이 지낼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2012년과 2014년에는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지부의 회장으로 두 차례 연속 선출되어 2014년 「한국국제법연감(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을 창간하여 각종 국제규범의 국내이행 현황을 소개하신 바 있습니다. 영문으로 매년 발행되는 국제법 연감이기에 위안부, 일제하 강제노동, 독도 영유권 등과 같은 한국 관련 국제현안들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전 세계에 홍보하는 유력한 창구가 되었습니다.
또한  2016년부터는 한국안보통상학회를 맡아 학술지인 「안보통상연구」를 통해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 긴박한 국제정세 하에서 전략물자 수출통제에 관한 논문과 정보를 국내에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한중법학회를 창립하여 두 나라 간에 학문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힘을 쏟으셨습니다.

 

고인은 떠났어도
학문적 업적은 영원하리

Prof. Choi lay speechless.
He's left great academic
Achievements behind.

 

* 고인이 학문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시절의 근영

여기서 저와 교수님과의 인연이 실로 각별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전 직장에서 펴냈던 《국제거래법》 책의 서평이 경제신문에 크게 실렸을 때 그것을 최 교수님이 보시고 저에게 연락을 주셨었지요. 1996년 신학기에 경희대에서 국제법무대학원을 개원할 예정인데 국제거래법 강의를 맡을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강사를 찾고 있다면서 새 학기부터 저녁 강의를 해줄 수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강좌가 개설된 후에도 매 시간 직접 수강을 하면서 제 강의와 학생들의 반응을 모니터링하여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결과는 합격이어서 저는 매 학기 국제거래법 강의를 할 수 있었고 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에는 최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의 응원 하에 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캠퍼스에서 가까이 뵈었던 교수님의 언행은 교수생활이 처음인 저에게 중요한 전범(典範)이 되었습니다. 강의나 학생지도, 교내 보직 수행에 있어서나 교수회의에 있어서도 최 교수님은 항상 기준점을 보여주셨습니다.

학교 사랑 대학발전기금이나 장학금을 기부하는 일에 있어서도 최 교수님을 따라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생들의 학위논문 심사도 자청해서 같이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저로서는 퇴직하는 날까지 경희대로 이끌어주신 崔 교수님과 박사 과정을 지도해 주신 鄭 교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초심(初心)을 유지하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 최 교수님이 사랑한 경희대학교. 그 설립자가 강조하신 "문화세계의 창조" 교시탑

최 교수님을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뵙고 경희대 캠퍼스를 한 바퀴 돌 때 옛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습니다.

교시탑의 "문화세계의 창조"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토론한 적도 많았고, 경희대에도 법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되었을 때 각자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했던 경험을 살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은퇴한 후의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에 이렇게 황망히 떠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2016년 초 최 교수님의 화갑기념 논문집에 제가 소개했던 미국 시인 롱펠로우의 “生의 찬가(A Psalm for Life)” 의 다음 구절이 떠오릅니다. 교수님의 발자취가 후학들에게 용기와 의욕을 북돋아주는, 위인의 발자국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장에서 유명한 플루티스트이자 디지털전환 시대 자녀교육 전문가이신 김수윤 사모님, 영재로서 학업을 마치고 지금은 선물업계에서 두각을 발휘하고 있는 따님 최은우 양을 보았습니다. 최 교수님을 향해 이 이 세상 일은 잊어버리고 저 세상에서 맘껏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시라고 축원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마음이 울컥 해졌지요.

그 만큼 최 교수님이 가정에서 남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얼마나 헌신적으로 애쓰셨는지 위로하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비록 건강 때문에 고생은 하셨지만 이제 하늘나라에서 한없는 위로를 받으시고 부디 평안을 누리소서.

 

2022년 11월 7일

 

발인에 즈음하여

박 훤 일 올림

 

Post Script

2022. 12. 14 오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대한국제법학회에서 주관하는 추모 학술대회가 열렸다.

고인의 별세를 안타까워하는 학계와 친지, 고교동창, 외교부 대사, 제자 등 여러분이 참석하였으며 유가족은 점심 식사와 간식을 정성껏 준비해 오셨다. 지방에 거주하거나 건강 때문에 참석 못하는 분은 Zoom을 통해 참석하고 발언도 했다.

특히 국제거래법학회장을 역임한 손경한 전 성균관대 교수, 변호사는 을지로 6가 스칸디나비아 클럽에서 열리곤 했던 국제거래법학회 모임에 고인이 꼭 참석하고 여러 학술활동에도 앞장섰다며 수석부회장을 마치고 회장을 맡아야 할 시점에 건강상의 이유로 고사하였던 비화를 소개했다.

 

* 고인과의 일화를 소개하는 외교부 장동희 전 대사와 박정원 경희대 법학전문대원장(맨 왼쪽)
* 손경한 변호사. 아래 썸네일은 Zoom 화상회의로 참석 중인 이용호 학회장과 김대원 시립대 교수.

나도 시를 애송하였던 고인을 추모하여 랄프 왈도 에머슨의 What is Success? 詩 한 구절을 인용하고, 고인은 "세상을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 단 한 사람이라도 편하게 숨쉴 수 있게 한" 진정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가셨다고 말했다.

이어 3시부터는 김대순 연세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주로 국제안보통상 이슈를 중심으로 고준성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박언경 경희대 교수, 김대원 서울시립대 교수, 정찬모 인하대 교수, 이세련 전북대 교수가 고인과의 길고 짧은 인연을 소개한 다음 각자 주제 발표를 하였다.

 

* 사진 왼쪽부터 사회를 보는 박언경 경희대 교수, 박훤일 전 경희대 법전원 교수, 강호 전 전략물자관리원 본부장.
* 고인과의 일화를 소개하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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