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in this Blog, I've never seen any other poem that is frequently visited by Netizens than "Dreaming of a Beautiful Friendship"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Jiranjigyo ).[1]
Virtual Travel
One day I came across the verses of this poem, as stated below:
When I traveled around many places of foreign countries,
I tried see as many things as I could
saving meals and sleep.
But now, of those many exotic sights,
I can remember few breathtakingly beautiful scenes.
If I chose a couple of things
to see and feel thoroughly,
they would make my unforgettable assets.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는 것은 거의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길 자산이 되었을 걸
In this COVID-19 pandemic era, however, some exotic places in this Blog usually remind me of the old good days when we were traveling freely as we wanted to go.
In this context, poet Kim Gwang-gyun also remembered an exotic village in his poem "The Village for Foreigners". I have no idea which village he mentioned or described in this poem.
In view of the geographical distance from Seoul,[2] I'd like to take two examples of Kitano Gaijinkan at Kobe (고베 기타노가이진칸/北野外人館) and Gulangyu Island at Xiamen (샤먼/廈門 고랑서/鼓浪嶼).
The Village for Foreigners by Kim Gwang-gyun
외인촌 - 김광균
하이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馬車)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룻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電信柱)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Into the solitary picture of a mountain valley village
showing up in the white dusk,
a horse-driven cart with blue~~ station lamps was sinking. And
above a utility pole standing alone
on a mountain road looking forward at the sea,
a passing-by cloud was imbued by bright red evening glow.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少女)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었다.
While the windows of small houses were shut down because of wind,
a little creek was rolling waters
under the stone bridge swamped by a field of reeds.
On the benches of the flower garden shrouded by dense~~ mist,
light laughter and a bunch of withered flowers were scattered
being left behind by a group of girls during the daytime.
외인묘지(外人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다란 별빛이 내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村落)의 시계(時計)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위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오리지널 6연을 문장 단위의 3연으로 나누었음)
Behind the dark forest of the foreigners' graveyard,
thin rays of stars were falling down throughout the night.
When a clock of the village hung over the empty sky
pointed ten o'clock with its thin hands,
above the discolored roof of a holy church
standing high on a hill like an old tower pinnacle,
blue bell sound was scattering like a fountain.
Yes, it looks like a lively picture!
Surprisingly enough, the first-mentioned poem describes the beautiful friendship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like this:
To mention friendship,
they usually say Gwanpojigyo is first.
But since I don't want to put my friend in trouble,
I cannot bear to show endless mercy toward him/her.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We are in need of a faithful friend to help each other
so that we may dream of eternity in the absence of eternity.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A Poet's Hidden Contribution
Likewise, Kim Gwang-gyun started to perform such faithful friendship since his twenties. Actually, poet Kim lived what the above-mentioned Jiranjigyo has taught to us.
As he wrote poems just like an image, poet Kim was fond of pictures. Always he was friends with a number of painters -- Kim Man-hyeong, Choi Jae-deok, Lee Kwai-dae, Yu Yeong-guk, Kim Hwan-ki and Lee Jung-seop, most of whom were introduced by journalist Kim Gy-rim in the late 1930s.[3]
At that time, poet Kim ran his own business and afforded to buy their pictures. In particular, during the Korean War, it is said that he provided financial support to poverty-stricken painters at Busan. In January 1955 when Lee Jung-seop's pictures were on exhibition at Gallery Midopa, both Kim Gwang-gyun and Kim Hwan-ki helped Lee in financial difficulties, who was longing for seeing his family in Japan. Two Kims bought Lee's paintings including "Cow" and "Moon and Crow". When Lee died helplessly in September 1956, Kim Gwang-gyun took care of his funeral.[3]
See other poems written by Kim Gwang-gyun, with English translation:
• '와사등'(瓦斯燈, Street Gas Lamp) and
• '설야'(雪夜, Snowy Night).
Note
1] 유안진 교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는 그 분량이나 동명의 수필집에 실린 것에 비추어 수필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내재적 운율을 갖추고 있고 내용이 함축적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시인 주요한의 "불놀이"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산문시(散文詩)라고 하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2] 한국에도 외인촌이라면 서울의 이태원이나 용산, 대구의 청라언덕 같은 곳이 있다. 그런데 시에서 언급한 산골짜기, 갈대밭과 돌다리, 언덕 위의 교회당이 있는 곳이라면, 이 시가 쓰여진 1930년대에 시인의 체험 또는 상상력이 미치는 곳임을 고려할 때, 일본의 고베 기타노 지역, 중국 샤먼 앞바다에 있는 고랑서 섬의 외인촌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3] 시인 김광균(金光均, 1914~1993)은 “시를 그림처럼” 썼다. 항상 서양화집을 끼고 살았던 그는 그림을 무척 좋아해서 언제나 화가들과 어울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30년대 시는 음악이라기보다 회화이고자 했다. 시는 운율과 리듬이 있는 음악인 것이 당연한데, 김광균은 시가 ‘회화’이기를 의식적으로 추구했던 것이다.
군산 경성고무회사에서 일하던 김광균이 서울로 발령이 나서 상경한 때가 1938년이었다. 이 무렵 김광균은 조선일보 기자를 하던 시인 김기림을 통해 여러 화가를 소개받았다. 김만형, 최재덕, 이쾌대, 유영국, 김환기, 이중섭 등이 그의 친구였다. 김광균은 한국전쟁 중 부산에서 모두가 피란 생활을 할 때도 건설실업주식회사를 운영하며 사무실을 두고 사업을 했다. 전쟁 통에 돈 없는 화가들이 그의 주변에 몰렸을 것은 자명하다. 그 무렵 찍은 김광균의 사진 뒤에는 김환기의 1951년작 ‘달밤’이 걸려 있다. 전쟁 통에도 부산에 있던 뉴서울다방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김환기, 그의 작품을 김광균이 또 사주었나 보다.
김광균과 김환기는 함께 후배 화가 이중섭을 살뜰히 챙기기도 했다. 1955년 1월 서울 미도파 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만 성공하면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날 꿈에 부풀어 있던 이중섭을 도와준 선배가 이 둘이다. 전시 브로슈어도 만들어주고, 나란히 축사도 써주었다. 잘 안 팔리는 이중섭의 그림들도 사주었다. 김광균은 ‘황소(울부짖는 붉은 소)’에서부터 ‘흰 소’, ‘달과 까마귀’ 등 대표작을 다 사주었다. 김환기는 홍익대 학장을 하면서 ‘흰 소’를 홍익대 돈으로 사게 했다. 현재 그 소는 홍익대박물관 소장품이다. 당시 기준으로 제값을 주고 이중섭 그림을 산 이는 김광균, 김환기뿐이었다는 말이 있다. 이 작품들이 지금은 점당 50억원 정도 한다. 이중섭이 1956년 9월 적십자병원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장례 비용을 가장 많이 부담한 이도 김광균이었다. 김인혜(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 "‘와사등’ 시인 김광균이 가장 아꼈던 화가 - 이중섭과 최재덕",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20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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