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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양론] 관광지 마차와 '동물학대' 논란

Onepark 2020. 11. 15. 18:00

최근 한 신문에 관광지의 꽃마차가 '동물학대' 논란에 휘말려 해당 지자체는 결국 꽃마차 운행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실은 전기모터로 구동하는 전기차이고 말은 기수역할만 하며 왕복 1.5km 코스를 20여분 운행하였다고 한다. 관광지에서 꽃마차를 운행해오던 마부는 말 4마리를 두고 평일은 한 마리, 주말은 2마리를 번갈아 일을 시켰다면서 말한테는 미안하지만 이제 '동물학대'라는 스트레스는 그만 받고 싶다고 말했다.[1]

 

"말한테 미안하다'는 마부의 말에 가슴이 턱 막혔다. (테마파크의 일감도 사라졌으니 마차 끄는 말들에게 더 이상 사료를 주기도 어렵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경마장승마장 등에서 부상이나 고령으로 퇴역하는 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동안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비슷한 처지의 말과 당나귀를 많이 보았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를테면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관광마차를 끄는 말, 중국 차마고도의 짐 나르던 당나귀,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승용 당나귀 등등.

 

* 뉴욕시는 센트럴파크의 관광마차를 공원 내부로 옮겨 운행 중이다. 출처: 人民网 2014.2.11

 

우선 윤동주의 "서시"에 등장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프랑스의 농촌시인 프랑시스 잠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2]라는 시를 썼다. 시인은 구구절절이 유순하면서도 힘이 세어 아주 힘든 일에 동원되는 당나귀를 옹호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들 순한 짐승을 불쌍히 여기시고 천국으로 받아주십사고 기도하였다.

 

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 - 프랑시스 잠

 

오 주여, 제가 당신께로 가야 할 때에는
축제가 벌어진 들판에 먼지가 이는 날이 되게 하소서.
제가 이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 마음에 드는 대로 천국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그곳은 한낮에도 별들이 빛나겠지요.
내 지팡이를 짚고 큰 길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내 친구인 당나귀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 나는 프랑시스 잠이야. 지금 천국으로 가는 길이지.
하느님 나라에는 지옥이 없으니까-
저는 그들에게 말하겠습니다.
- 이리 오게, 푸른 하늘의 순한 친구들이여,
갑작스레 귀를 움직여 파리와 등에와 벌들을 쫓는
내 사랑하는 가여운 짐승들이여 -

 

아주 유순하게 당신께서 불쌍히 여기시도록
가만히 머리를 숙이고 조그만 발들을 모으며 멈춰서는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이 짐승들 속에 끼어
당신 앞에 나타나게 해주소서.
그들의 수천 개의 귀가 나를 뒤따르게 하며 당신께 가겠습니다.
옆구리에 바구니를 걸친 당나귀들이,
곡마단의 마차를 끄는 당나귀들이,
깃털이나 양철로 만든 마차를 끄는 당나귀들이,
등에 우그러든 물통을 실은 당나귀들이,
가죽부대처럼 뚱뚱한 암탕나귀들을 업고 절뚝이는 당나귀들이,
둥글게 떼 지어 달려드는 악착스런 파리들이 만들어놓은
진물 나는 푸르죽죽한 상처 때문에 조그만 바지를 입혀놓은 당나귀들이
저를 뒤따르게 하겠습니다.
하느님, 제가 이 당나귀들과 함께 당신께 가게 해주십시오.
평화 속에서 천사들이 우리를 인도하게 해주십시오.
어린 소녀들이 좋아하는 피부처럼
매끄러운 체리들이 떨고 있는 울창한 시냇가로.
영혼들의 이 거처에서 몸을 굽히면
당신의 천상 수면 위로 겸손하고 유순한 그들의 가난을 비춰보는
당나귀들을 제가 닮게 하소서.
영원한 사랑의 투명함을 제가 닮게 하소서.[3]

 

* 차마고도를 오가던 마방(馬幇)의 행렬. 출처: 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중국 차마고도(茶馬古道)에 갔을 때 비좁은 산길에 더이상 짐을 가득 실은 당나귀는 다니지 않았다.

중국 남부지방의 소수민족인 나시(納西)족은 일천수백 년 동안 티베트 고산지대를 오가며 중국의 차와 소금, 약재, 티베트의 말 같은 것을 차마고도를 통해 나르며 무역을 했다. 좁고 험한 산길을 나귀나 야크 양쪽에 25kg에 달하는 짐을 지우고 사람은 걸어다녔다고 한다. 그러니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바위돌에 맞아 죽거나 발을 헛딛어 다치기도 하는 위험한 행로였다.

이렇게 험한 길을 다녔던 나시족이나 당나귀 야크 같은 짐승들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나귀나 야크도 험한 일을 하던 그때가 좋지 않았을까? 지금은 도로와 철도가 놓여 있어 당나귀는 화장품 원료나 식용으로 쓰기 위해, 야크는 극히 소수만 관광용으로 사육되고 있을 뿐이다. 동물학대에 가까운 험한 일을 면하는 대신 종족유지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차마고도/ 새 길이 생기니/ 옛것도 사라졌네

Ancient Tea Route gives way to new traffic road.
Old things also disappear.

 

* 선토리니 칼데라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선. 석양은 건너편 이아 마을에서 구경하는 게 좋다.

 

당나귀에 관한 놀라운 장면은 산토리니 섬에서 목격했다.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은 오래전에 화산이 폭발하여 테라 산의 정상 부위만 바다 위에 남고 중앙의 분화구는 칼데라 호수(Santorini caldera)로 변한 모습이다. 그 옛날 지구를 뒤흔들 정도로 대폭발이 일어나, 플라톤이 묘사한 아틀란티스 대륙은 바닷속으로 가라 앉았다. 그로 인한 해일이 크레타 섬을 비롯한 주변 지역을 덮치는 바람에 고대문명이 소멸하거나 주체와 내용이 바뀌고 말았다.

 

그러므로 산토리니의 석양을 구경하는 이아(Oia) 마을 건너편에 있는 피라(Fyra) 마을에서는 쇼핑을 마친 후 거의 낭떠러지 수준의 칼데라 호 부둣가로 내려간다. 바로 호화 크루즈선이 멀리 정박해 있고 승객들이 소형 보트로 오가는 부둣가이다. 피라 마을의 관광객들이 통상 내려갈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하고 올라올 때는 당나귀를 타는데 모두 편도 6유로였다.

케이블카가 설치될 때 오랫동안 나귀로 관광객들을 나르던 마부들이 크게 반발했다. 그래서 사업자 측은 당나귀가 오르내리는 길을 잘 만들어 주고 케이블카와 똑같은 요금을 보장했다.

그날 오후 일행들이 재미로 당나귀 등에 올라타는 데도 나는 가파른 길에서 육중한 내 몸을 맡기는 게 불쌍해 뙤약볕 아래 588계단을 허덕이며 올라갔다. 그리고 당나귀들은 일행을 태우고 늘상 오르내리는 길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나는 오후 일정이 헝클어질 정도로 그로기가 된 반면 당나귀들은 넉넉한 수입을 올린 마부로부터 사료와 물을 충분히 공급받았을 것이다.

 

* 피라 마을로 올라가는 당나귀 스테이션. 덩치는 크지만 아주 유순해서 무섭지 않다.
* 당나귀가 불쌍한 생각에 588계단을 걸어서 올라갔다가 한참을 후회했다.

 

일부 관광객이나 동물보호단체에서 이들 짐승을 불쌍히 여긴 나머지 힘든 일을 면하게 해준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결코 그림같은 푸른 초장에 방목되는 게 아니다. 되레 그 동물의 존재이유를 없애버리는 결과가 되어 도축장으로 팔려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4]

우리나라에서도 더 이상 당나귀가 할 일이 없어지자 농촌에서도 아예 당나귀 씨가 말라버리지 않았던가!

참으로 역설(逆說 Paradox)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의 생태계(natural ecosystem)는 인간의 계산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신의 영역에 속한다.[5] 미국 와이오밍 주에 있는 엘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는 사슴과 버팔로를 잡아먹는 늑대가 커다란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사냥꾼들을 풀어 늑대들을 소탕했다. 그 결과 사슴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자 생태계 복원을 위해 1995년 캐나다에서 다시 늑대를 들여와야 했다.[6]

로마법에서는 정의(正義)란 "각자에게 그의 것을(Suum cuique)"을 주는 것이라 했다. 태초에 말이나 당나귀가 지구상에 등장했을 때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와 기능이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것을 인간적인 기준으로 더하거나 빼서는 안될 것 같다. 앞서 소개한 시에서 프랑시스 잠은 당나귀를 바라보면서 당나귀처럼 유순하고 선량한 불쌍한 사람들을 먼저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Note

※ 이 그림은 화가 사석원의 "꽃짐을 진 당나귀"이다. 오랫 동안 월간 《샘터》의 표지화를 그렸고 2013년엔 샘터사에서 《서울연가》 책을 펴내기도 한 사석원은 유순하고 인내심 강한 당나귀가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짊어질 바에는 꽃짐을 지게 하려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출처: Altan House

 

1] 유종헌, "'전기로 끄는 마차'가 동물학대라고? … 합천 꽃마차에 무슨일이", 조선일보 아무튼주말, 2020. 11. 14.

 

2] Francis Jammes (1868~1938)의 "Prière pour aller au Paradis avec les ânes"을 곽광수 교수가 번역한 "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를 인용하였다. 프랑스어 원문과 Richard Wilbur가 영어로 번역한 "A Prayer to go to Paradise with the Donkeys" 시는 KoreanLII의 Paradox 기사 참조.

 

3] 프랑시스 잠의 이 시는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안겨주어 마리 라포레는 "Priere pour aller au paradis"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로 개사하여 샹송으로 만들어 불렀다.

 

4] 2021년 초 당나귀와 비슷한 상황이 강원도 화천의 산천어에게도 닥쳤다. 해마다 한겨울 1월에 강원도 화천천에서 열리던 산천어축제가 종종 동물학대 논란에 휘말렸다. 2020년 이러한 고소장을 받은 춘천지검에서는 애초 식용을 목적으로 양식된 산천어는 동물보호법에서 보호하는 동물이라 보기 어렵다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만반의 준비를 해온 화천군은 2021년 1월 코로나 확산 우려에 행사 자체를 취소하고 말았다. 이 축제를 위해 강원도와 경상도의 산천어 양식장 16곳에서 키우던 산천어 22만5천마리(75t 상당)의 뒷처리가 또 다른 문제가 되었다. 아무리 산천어가 귀한 어종이라도 이런 행사가 아니면 사료를 주어가며 키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 화천 2008 산천어축제에서 얼음낚시를 즐기는 가족. 출처: 파이낸셜뉴스

 

5] 이를테면 우리가 완벽한 위생수칙을 세우고 이것을 철저히 따른다면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을까? 답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이다. 이것은 아직 정설이 아닌 위생가설(hygiene hypothesis)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보았듯이 주변환경을 너무 위생적으로 관리하려다간 오히려 우리 신체가 세균 같은 미생물에 노출되지 못해 면역력이 저하되거나 유해한 화학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주장에도 수긍이 가는 점이 많다.

 

6]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는 늑대 재도입 20년을 맞아 그 성과를 여러모로 분석한 자료집 Yellowstone Science를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