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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춘] 새 봄 벚꽃나무 아래에서

Onepark 2021. 3. 30. 18:00

옛사람들은 입춘이 지났어도 날이 쌀쌀하고 꽃도 필락말락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춘래 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어도 봄같지 않다)이라거나 "춘설이 난분분하니 [매화가] 필동말동하여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요즘은 봄꽃들이 거의 동시에 피는 것 같다.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2021년 새 봄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매화나무가 제일 먼저 꽃을 피웠다.

아직 나무들이 앙상한 채로 있는 뒷산에서도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십여년 전만 해도 매화 진달래 개나리 등 봄꽃이 피는 순서가 있어서 남녘의 화신이 며칠 간격으로 도착했었다.

 

* 아파트 정원의 활짝 핀 매화꽃. 거두는 사람은 없어도 해마다 5-6월이면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요즘은 초특급시대
화신(花信)도
시차(時差) 없이 도착

Now it’s time of rocket speed
Floral news arrives
with no interval.

 

 

아직 4월이 며칠 남았음에도 아파트 단지 안팎의 벚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남부 지방에서 벚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전해진지 불과 며칠만이었다. 그야말로 시차도 거의 없이 순식간이었다.

공식적으로 서울에서 3월 24일에 벚꽃이 핀 것은 벚꽃을 관측하기 시작한 1922년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예년보다
일찍 핀 봄꽃
살 같이 흐르는 세월

Spring flowers come early this year
’cause time goes away
with little remorse.

 

 

단조로운
집콕 생활
날마다 모험을 떠나네

Each morning,
out of monotonous life,
I set sail to a new world.

* 이상 17음절의 자작시는 My haiku에 목록을 올려 놓았음

 

* 뒷산에 오르는 계단 주변에 핀 꽃들. 목련은 벌써 지기 시작했다.
* 1주일 전에 비해 연두빛이 많이 눈에 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멀리 여행을 떠날 수도 없고 집에 머물러 있는 ('집콕')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요즘은 강아지를 데리고 뒷산에 오르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산에 오르는 계단 옆에는 목련과 벚꽃이 활짝 피었다. 하루하루 오솔길 옆의 나무들이, 산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연두빛 새싹이 움트는가 하면 분홍빛 진달래와 샛노란 개나리가 우리를 맞아준다.

아파트 사잇길에도 벚나무 꽃터널이 생겼다. 그러나 정년 후에는 새봄을 맞는 감회가 매년 달라짐을 느낀다.

작년에 어지럼증으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일까. 며칠 전 중고등학교 동창들의 부음을 들어서일까. 그보다는 올해 열네 살 된 우리집 강아지의 건강상태가 해마다 달라짐을 옆에서 보고 있기에 그럴 것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나보다 더 많은 셈이니 우리 강아지한테는 철따라 산에 다니는 것이 전과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어느 해 캠퍼스에 벚꽃이 만발했을 때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낭송해 주었던 이기철 시인의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을 다시 소환하였다. 그리고 영어로 번역된 시의 구절을 한 자 한 자 음미하듯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Far away from anxious mind of challenge" (도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얼마나 벗어 던졌는지(평정심, Equanimity) 자신을 돌아 보았다. 비대면 수업의 강의자료를 준비하는 것도, 연구논문이나 세미나 발표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제는 자유로운 몸인 것이다.

그동안 "흐렸던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는" 때가 지금이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이기철

Under the Shade of Cherry Blossom Trees   by Lee Ki-cheol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도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보렴

For a few days in the shade of cherry blossoms,
You're advised to sit down with your heart-beating life left behind.
Let go of your mind filled with sorrow or longing for someone,
Let it go out of love and hate,
Please sit down being naked by the wind.
From home which is far off from here,
From today when it may be completed by being scattered,
Far away from anxious mind of challenge,
Far away from near-empty bank accounts,
Please sit down cleanly like the shade of cherry blossoms.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해지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Then our life, which has nothing to forgive or not to be forgiven,
Will become generous and fresh
Like cherry blossoms which invite buzzing bees.
If you want your gloomy life to be changed into a joyful song
Like a song of wind passing by cherry blossoms,
Would you come to the shade of cherry blosso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