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t la vie! (그것이 인생)[1]
인생을 달관한 것처럼 체념조로 내뱉는 말이 나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는 말로 들린다.
1986년 유럽 연수(암스테르담 대학교 대학원의 European Integration 과정)를 준비할 때 읽었던, 대구의 어느 의사가 펴낸 프랑스 여행기 책 제목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파리의 하늘 밑"(Sous le ciel de Paris)이라는 샹송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고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해외여행 체험담은 김찬삼 교수의 책이 거의 전부인 시절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프랑스의 낭만주의 음악가인 가브리엘 포레가 작곡한 "시실리안느"[2]가 떠오른다. 웬지 프랑스적이고 유럽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고 느꼈던 까닭이다.
바로 '프랑스 근대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포레가 작곡한 프랑스 가곡 "물가에서"(Au bord de l’eau)를 우연찮게 듣게 되었다.[3] 그 가사는 1901년 노벨 문학상을 제1호로 수상한 프랑스 시인 프뤼돔이 쓴 시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불어로 된 원시와 영역된 시[4]를 바로 찾을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나름대로 번역해 보았다.
Au bord de l’eau - written by Sully Prudhomme and composed by Gabriel Fauré
S’asseoir tous deux au bord d’un flot qui passe,
Le voir passer;
Tous deux, s’il glisse un nuage en l’espace,
Le voir glisser;
À l’horizon, s’il fume un toit de chaume,
Le voir fumer;
Aux alentours si quelque fleur embaume,
S’en embaumer;
Si quelque fruit, où les abeilles goûtent,
Tente, y goûter;
Si quelque oiseau, dans les bois qui l'écoutent,
Chante, écouter. . .
Entendre au pied du saule où l’eau murmure
L’eau murmurer;
Ne pas sentir, tant que ce rêve dure,
Le temps durer;
Mais n’apportant de passion profonde
Qu’à s’adorer,
Sans nul souci des querelles du monde,
Les ignorer;
Et seuls, tous deux devant tout ce qui lasse,
Sans se lasser,
Sentir l’amour, devant tout ce qui passe,
Ne point passer!
시냇가에서 - 쉴리 프뤼돔
시냇가에 둘이서 앉아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네.
둘이서,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면
그것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네.
지평선 위로 어느 집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네.
근처에 꽃향기가 나면
그 향기에 흠뻑 취하네.
과일이 자라며 꿀벌이 좋아하면
그대로 익어가겠지.
숲속에서 새들이 지저귀면
새 소리를 귀 기울여 듣네.
버드나무 아래로 시냇물이 졸졸 흐르면
물 흐르는 소리를 듣네.
이 꿈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새가 없네.
깊은 열정은 없어도
서로 사랑하는 것 말고는
세상 다툼에 신경 쓸 것도,
알려고 할 것도 없네.
오직 둘이서만, 지치게 하는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서로 지치게 할 일이 없어야겠네.
흘러가는 모든 것에서 사랑만 느끼도록
결코 떠나 버리지 않게끔.
어느 화창한 봄날 시냇물가에 앉아 있다고 상상을 해본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도 보고 멀리 외딴집에서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도 본다. 이름 모를 들꽃에서 풍겨오는 향기, 꿀벌이 잉잉거리는 소리, 숲속의 새 지저귀는 소리,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내 옆자리에 사랑하는 이가 함께 있다면, "저 모든 것들은 언젠가 사라지고 말겠지만, 우리는 서로 다투지도 말고 사랑도 변치 말고 흘러가는 모든 것에서 사랑만 느끼며 살자" 서로 다짐하는 마음이 절로 생길 것 같다.
불현듯 우리나라에도 이것 못지 않게 강변 풍경을 노래한 아름다운 시와 가곡이 있음을 알았다. 바로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이다.
프랑스 시가 자연에서 인간관계로 관심을 돌렸다면, 소월의 서정시 아니 동요는 강변의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 식구끼리 잘 살자는 소박한 꿈을 노래하고 있다. 민요조의 가락과 소박한 감정의 직정성(直情性), 반복적인 운율의 묘를 최대한으로 살려 강과 금모래, 갈대숲 같은 자연에 대한 동경을 정감있게 노래하였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 김소월 시 (1922), 안성현 작곡[5]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Mom and Sis by Kim Sowol
Mom and sis, let's live by the river.
We can see, in the yard, glistening golden sands.
We can hear, outside the back door, songs of reeds.
Mom and sis, let's live by the river.
Repeat
Note
1] "C'est la vie"는 본래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밴드인 Emerson, Lake and Palmer가 1977년에 발표한 팝송의 제목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어 라디오 심야방송의 신청곡으로 널리 애청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 Gabriel Urbain Fauré (1845-1924)의 "Sicilienne"는 본래 몰리에르의 극음악 "평민귀족"에 쓰기 위해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곡으로 1893년 작곡되었다. 그 후 비극적인 스토리의 극음악 "Pelléas et Mélisande" (Suite op. 80, 10분경에 시작)에 사용되면서 플루트 연주곡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3] 포레가 작곡한 프랑스 가곡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꿈을 꾼 후에"(Après un rêve Op.7, No.1)이다. "물가에서"(Au bord de l’eau Op.8, No.1, 1875)는 Elly Ameling을 비롯한 여러 소프라노가 불렀는데 프랑스의 성악가 Gérard Souzay가 부른 음반도 아주 훌륭하다.
4] 영어 버전은 여러 개가 있는데 불어 원시처럼 라임(押韻)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다음은 옥스퍼드 리더에 게시된 Richard Stokes의 영역본이다.
By the Stream - written by Sully Prudhomme; English Translation by Richard Stokes
To sit together by a flowing stream,
To watch it flow;
Together, if a cloud glides by,
To watch it glide;
On the horizon, if smoke rises from thatch,
To watch it rise;
If nearby a flower smells sweet,
To savour its sweetness;
If fruit is growing and bees love to taste it,
To let it grow ripe;
If birds are singing while the forest listens,
To hear their song pipe;
To listen at the foot of the willow, where water murmurs,
To the murmuring water;
Not to feel, while this dream passes,
The passing of time;
But feeling no deep passion,
Except to adore each other,
Not to care for the quarrels of the world,
To know nothing of them;
And alone together, seeing all that tires,
Not to tire of each other,
To feel that love, in the face of all that passes,
Shall never pass!
5] 평안북도 정주 출신인 김소월의 시는 남도땅, 나주 남평의 드들강변에서 나고 자란 음악가 안성현을 만나 노래로 다시 태어났다. 안성현(安聖絃 1920~2006)은 아버지를 따라 함흥에서도 살다가 일본에 유학, 성악을 공부한 후 목포 항도여중(현 목포여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때 시인 박기동을 만나 시와 음악으로 단짝이 되어 둘의 처지에 딱 들어맞는 가사와 곡조로 "부용산"을 만들었다. 이 노래는 남북대결의 무대에서 산에 들어간 빨치산들에게 애창되었고, 1997년에야 안치환에 의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안성현은 북으로 갔고 남에 남은 박기동은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 임영열, "'엄마야 누나야' 원조 작곡가의 기구한 삶", OhMyNews, 2018.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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