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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제설작업과 애프터 서비스 정신

Onepark 2021. 1. 15. 18:50

지난 1월 6일 오후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큰눈이 내렸다. 그 시간이 마침 퇴근시간과 겹쳐 많은 사람이 큰 고생을 했다. 자연히 주요 간선도로의 제설작업에 늑장대처한 시청과 구청에 비난이 쏟아졌다. 기상청 특보가 여러 차례 전달되었음에도 담당공무원들은 스마트폰에 나오는 우리 동네 강설예보에 더 신경을 썼다는 해명에 시민들이 어처구니 없어 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국민들로부터 거둔 세금을 가지고 여기 저기 크고 작은 길을 만들고 성대한 개통식까지 연다.

하지만 파손된 노면을 복구하고 가을엔 가로수 낙엽, 겨울엔 눈 치우는 애프터 서비스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하겠다. 애프터 서비스란 말 그대로 물건을 만들어 이용자들에게 판매한 다음에 약속한 품질보증(warranty) 서비스를 하는 것(after sale or follow-up service)을 하는 것을 말한다. 

 

* 올겨울 아파트 단지에 처음 등장한 눈사람 가족과 우리집 강아지 쁘띠

 

어느 아파트 경비원이 한 말이 생각났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다 우리 일거리입니다, 빗물만 빼고."

하지만 가울에 울긋불긋한 단풍과 낙엽이 없다면 그 계절이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겨울에 첫눈을 기다리는 이유는 소담스럽게 내리는 눈은 우리 마음도 포근하게 감싸주고 흰눈에 덮인 설경은 모든 사물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펄펄 날리는 눈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도 해준다. 

 

If we have no snow in winter,
The season must be much more freezing.

이 계절에 흰눈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White snow embraces everything.
It does so until the snow fades away.

흰눈은 모든 걸 감싸네, 비록 한 때이긴 해도

 

Winter blizzard takes us to somewhere
Love Story’s snow frolic scene.

한겨울 눈보라,
영화 속 눈싸움을 소환하네

 

나도 연말 연시에 애프터 서비스 큰 작업을 했다. 정확히는 온라인 법률백과사전인 KoreanLII에 올린 기사의 보수공사에 매달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KoreanLII 편집 (edit) 화면에서 하이퍼링크시킨 인터넷 URL 주소를 일일이 수정하여야 했다. 하루 종일 키워드를 이용한 주요 법령의 연결주소 변환작업을 하였음에도 이것저것 수정하다 보면 50개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교수 시절에 논문 쓸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기에 식구들이 의아해 할 정도였다.

 

당초 'Korean Legal Information Institute'라는 명칭에 걸맞게 외국인들이 한국의 법률제도를 쉽게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였기에 해당 법률조문을 소개하거나 해당 법조문을 영문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이퍼링크로 연결해 놓았다. 그것을 클릭하면 법제처에서 운영하는 국가법령정보센터의 해당 영문법령 또는 그것이 포함된 목록이 열리는 식이다. 사실 우리는 한국 법령이나 그 해설을 인터넷에서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사전지식이 별로 없는 외국인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딘가에는 있을 텐데 법령의 영문 제명도 모르는 데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법령이 가장 최근 것인지 여부를 확인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1]

 

그러나 문제는 위의 웹사이트 주소가 기술적인 이유로 너무 자주 바뀐다는 점이었다. 오래 된 자료는 클릭을 해도 해당사항 '없음'이 뜨기 일쑤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경로로 알아본 결과 법제처에 영문 법령을 제공하는 한국법제연구원[2]의 법령번역센터에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침 2020년 11월 하순부터 보안성을 강화(https 주소)한 해당 사이트의 API를 공개한다는 것을 알고 KoreanLII 기존 사이트의 법령정보센터 URL 주소를 모두 법제연구원의 새 API 주소로 수정하기로 했다.

 

일단 착수하고 보니 첩첩산중이었다. 2000개가 넘는 KoreanLII 항목의 대부분이 각주에 해당 법령이 나오는 사이트의 주소를 달아놓았기에 이것을 전부 일일이 수정해야 했던 것이다.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이 민법(Civil Act)과 상법(Commercial Act) 조항이었는데 마치 호미로 김매듯이 일일이 찾아서 바꿔놓아야 했다.

아이고~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는고? 후회막급이었지만 나밖에는 할 사람이 없으니 50일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을 내어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기서 위에 말한 것처럼 폭설이 내릴 때 도로관리의 애프터 서비스 정신을 떠올렸던 것이다.

폼나게 길만 만들어 놓으면 뭐하나? 차를 몰고 가는 길이 막혀 있으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용하는 사람이 원하는 곳에 쉽게 갈 수 있게끔 친절한 안내판도 세워놓고, 낙엽도 쓸고 눈도 치워야 하지 않겠는가! 

 

* 일광욕 하는 올라프. 출처: 겨울왕국 2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지만 KoreanLII의 업데이트 작업을 일단 마무리하고 보니 성과가 적지 않았다.[3] 

오래 전에 만들어 놓아서 체계가 맞지 않은 것은 발견하는 대로 시정했고, 아직 설명이나 번역이 덜 끝난 미완성 항목은 따로 모아서 Unfinished Article에 전부 올려 놓았다. 시간이 나는 대로. 또한 영어와 법률을 잘 아는 동역자[4]를 구하는 대로 수정ㆍ보완할 작정이다.

이렇게 하다보니 처음에는 해변에서 일광욕하는 Snow Man (영화 겨울왕국의 한 장면)의 꿈처럼 허황되게 여겨졌으나 경사면을 구르는 눈덩이 같이 내용이 충실한 한국의 법률문화 백과사전이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9년 전에 뭣 모르고 시작했기에 망정이지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할, 아니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1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외국정부를 당사자로 하는 국제소송, 주권면제 등의 용어가 튀어 나왔는데 모두 KoreanLII에서 주요 항목으로 다루고 있는 사항들이었다. 그래서 며칠간은 Google과 Naver로 검색해 가면서 우선 언론보도에 나온 자료를 차곡차곡 정리하였다. 그 다음엔 KoreanLII 체제에 맞게 "Litigation staged by comfort women for damages"라는 항목을 새로 만들어 올렸다. 나중에는 관련 논문이나 해설을 찾아 추가하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한두 가지 KoreanLII의 PR을 하자면, 점잖은 신사들이 자칫 망신 당하기 쉬운 '성인지감수성'이 영어로 뭐지? 이게 문제된 사례나 관련 판례가 있는가?에 대한 답이 다 들어 있다. '소시민'(小市民)이라는 쁘띠 부르주아지(Petite bourgeoisie) 항목에서는 소상공인법의 취지와 자영업자가 겪는 어려움을 함께 설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4.19 세대인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실었는데, 이 시에서처럼 4.19 때 거리에 나섰던 젊은이들이 이젠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버렸다는 자조 섞인 고백을 중산층이 된 소시민들이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이런 식으로 법률개념과 관련 있는 국내외 시를 수백 편 국ㆍ영문으로 병치해 놓았다.[5]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즐겨 쓰는 속담(Proverb)이나 금언(Maxim), 4자성어를 영어로 풀이해 놓고, 또 한국인의 애송시나 "고향의 봄", "학교 종", "반달" 같은 동요, "가고파", "보리밭" 같은 가곡을 영어로 처음 번역해서 실어 놓은 거의 유일무이한 사이트가 아닐까 자부하고 있다.

 

Note

1] 국제회의에 참석해 보면 외국 학자나 전문가들이 외국에서는 유료 서비스가 대부분인 법령과 판례가 한국에서는 모두 무료로 인터넷에 올려져 있다는 점에 놀라곤 한다. 그러나 그들이 직접 영문으로 된 법령이나 판례를 해당 사이에서 직접 찾는 게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영문으로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령이나 판례를 검색할 때 외국에서는 'data protection' 또는 'privacy'라고 하는 용어가 한국에서는 유독 'personal information protection'이 아니면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외교부 사이트에서 대한민국이 가입한 조약이나 협정문의 원문을 찾아보는 것도 그 경로가 한글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외국인들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해준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UNSW)의 그린리프 교수는 호주에서 이미 1996년에 AustLII라는 무료 법령ㆍ판례 검색 사이트를 만든 분이어서 필자에게도 그와 비슷한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라고 적극 권유하셨다. 호주의 AustLII는 원천자료가 모두 영문이므로 다중언어 검색 엔진을 개발한 컴퓨터 공학자와 법률 전문가들이 이용자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분류ㆍ정리하고 안내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사업을 하는 외국의 LII 기관에 서버를 빌려주는 등 기술협력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 한국법제연구원(KLRI)은 2009년 그동안 회원들에 한해 유료로 제공해오던 영문 법령정보 서비스를 무료로 개방하고 Free Access to Law Movement (FALM) 국제기구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필자가 2011년 9월부터 운영해 온 KoreanLII도 2015년 11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린 Law via the Internet 국제회의에서 호주 그린리프 교수의 추천으로 FALM의 정식 회원이 되었다.

FALM 회원의 자격요건은 법령ㆍ판례를 생산하는 국가기관이 아니면서 무상으로 법률정보를 인터넷 등에 제공하고 이러한 취지의 선언문(Declaration on Free Access to Law)에 동참할 것을 서약해야 한다. 회원의 의무사항이나 회비는 따로 없고 매년 열리는 Law via the Internet (LvI)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정보와 의견을 교환할 것을 요청받는다. LvI 국제회의를 개최하거나 후원하는 것은 권장사항이다.

 

* 2011 LvI 홍콩회의 당시 오른쪽부터 김기표 한국법제연구원장, 그린리프 호주 UNSW 교수, 김평우 대한변협 회장과 필자

 

[3] 한 가지 특기할 것은 KoreanLII가 Wikipedia 영어판이나 한글 위키백과와 같은 위키 플랫폼을 사용하기에 Wikipedia와 한글 위키백과에 나름대로 기여(Contribution)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실학자임에도 정약용만큼 서양에 알려져 있지 않은 김육(Gim Yuk)과 서유구(Seo Yu-gu)를 Wikipedia에 상세히 소개하였다. 또한 KoreanLII에 시를 게재한 것을 계기로 미국의 퓰리처상 수상 시인인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시 "볼놀이" 시를 쓴 주요한(Chu Yo-han)에 대해 각각 한글 위키백과와 Wikipedia의 기존 토막글에 그들의 생애와 업적을 추가하여 대표작의 일부와 함께 올려놓았다. 이를테면 KoreanLII로부터의 '파급효과(Spill-over effect)'라 할 수 있다.   

 

[4] KoreanLII를 시작할 때부터 동역자(collaborator)를 구하는 일이 초미의 과제였다. 학회에서 만나는 신진 학자들에게도 간곡히 부탁하였고 필자가 재직하는 로스쿨 학생들에게도 강권하다시피 참여를 독려한 바 있다. 그 취지를 설명하고 미국의 로스쿨 졸업생 중에는 변호사로서 WestLaw 같은 법령ㆍ판례정보 데이터베이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다고 이야기했다. 나아가 필자가 담당하는 법률정보조사 시간에는 우리나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례변경 케이스를 일정한 양식의 보고서로 제출하도록 과제를 부여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Nothing at all!). 신진 교수들은 강의준비하고 자기 논문 쓰느라 바쁘다며, 또 우리 학생들은 3년간 변호사시험 준비하기도 벅찬데 Pass/Fail 과목에서 무슨 리포트냐며 대놓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때 학생들이 지금 변호사가 되어 이 블로그나 KoreanLII 사이트에 들어와 본다면 자기가 제출했던 리포트가 게재되어 있으니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든가, 자기 관심분야의 기사를 새로 만들어 올리고 필자에게 연락해주면 정말 고맙겠다.

 

5] 법률백과사전에 해당 법개념과 관련이 있다 해도 시를 함께 올려놓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렇긴 하지만 한국인의 정(情, Affection)과 한(恨, Sorrow)을 설명할 때 김소월의 "진달래꽃"만큼 좋은 예가 없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정의(Definition)를 설명할 때에는 김춘수의 "꽃"을 소개하면 제격일 것이다. 고려시대의 삼국유사를 정사(正史)가 아니라고 소홀히 대하지 않고 오히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까닭은 단군신화와 "제망매가(祭亡妹歌)" 같은 신라 향가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KoreanLII의 Migrant worker(이주노동자) 항목에는 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집트 땅에서는 히브리인들이 이방인이었던 것처럼 너희 중에 있는 이방인 일꾼을 억압하지 말라"(Exodus 23:9)는 모세의 발언이 각주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