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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우리 시를 영어로 번역하는 이유

Onepark 2020. 7. 20. 07:00

은퇴 후에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시를 번역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내가 비록 전문 번역가나 문학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의 아름다운 시를 외국인들이 모른다는 게 안타까웠다.

구글로 세상의 모든 지식이 검색되는 시대에 우리가 즐겨 불렀던 동요나 가곡이 제대로 번역되어 있지 않다는 데 놀랐다. 예를 들면, "고향의 봄", "학교 종", "가고파", "어머니의 마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누구는 인공지능(AI) 자동번역의 시대에 스마트폰으로 번역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만, 자동번역된 시의 퀄리티를 누가 보장한단 말인가! 그래서 이 블로그에서는 비록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지속적으로 번역작업의 결과물을 보여주기로 했다.  

 

정부에서도 노벨 문학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유명 시인ㆍ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번역해서 출간하고 있다. 그러나 풀뿌리 집단지성(grass roots artificial intelligence)을 이용하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본다.

지금은 누구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해상왕 장보고(張保皐, 791~841)가 정사(正史)에서는 철저히 외면 당했던 인물이다. 통일신라의 군벌이었으나 자기 딸을 왕비로 만드는 데 실패하고 암살 당한 뒤 역적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장보고가 우리 역사의 전면에 재등장하게 된 것은 1950년대 하버드 대 라이샤워 교수가 장보고를 해양상업제국의 무역왕(trade prince of the maritime commercial empire)으로 기술한 데서 비롯되었다. 라이샤워는 일본 천태종의 구법승 옌닌(圓仁)이 당나라에 유학가고 귀국할 때 장보고의 상선을 이용하고 법화원에서 머물렀던 기록을 바탕으로 그의 논문(Ennin’s Travels in Tang China)에서 그렇게 묘사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무시되었던 인물이 일본 승려 옌닌(圓仁)의 수기(일본어)와 이것을 토대로 분석한 학술논문(영어)에서 되살아나 지금은 '해신'(海神: 최인호의 장편소설 및 KBS 드라마의 제목)으로까지 불리며 해군 잠수함의 이름으로도 쓰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번역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 7월 직접 목격한 산토리니 해넘이 광경

필자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Santorini란 지명을 처음 들은 것은 그리스 출신의 월드뮤직 작곡가/연주자 야니(Yanni)의 1993년 아크로폴리스 라이브 공연의 PBS 방송 때였다. 야니의 "산토리니"라는 연주곡이 들으면서 꼭 가보고 싶은 지명으로 탈바꿈했던 것이다.

아래 Annex 참조

 

그러므로 한국의 시를, 비록 서투르지만,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면 그 글을 읽은 누군가가 새롭게 창조적인 작업을 벌일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딱딱해보이는 법률 개념도 아름다운 시어(詩語)와 함께 이해하면 한없이 말랑말랑해지는 것도 경험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수십년 간 전공한 법학 분야는 변화가 빨라 특히 상법 논문은 그 유효기간이 짧게 마련이고 새롭게 공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좋은 시는 잘만 번역해 놓으면 번역시도 원시(原詩)와 더불어 영원히 남을 수 있음을 알았다.  "가을이 되니 원숭이 울음소리 슬프다"고 한 당나라 두보의 등고(登高)라는 시는 우리도 종종 읊조리지 않는가! 같은 시대 설도의 춘망사(春望詞) 역시 감동적인 선율을 타고 동심초(同心草)라는 가곡이 되어 널리 애창되고 있다.

 

얼마 전 이웃 동네에 사는 최정애 시인으로부터 시집(푸른 낙타, 2016)과 에세이집(바람 무지개, 2019)을 받았다. 최 시인의 시가 영역되었다는 말은 못 들었기에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푸른 낙타"를 번역해볼 엄두를 내었다. 그 시를 몇 번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중동 사막에서 땀흘려 일한 우리 해외건설 업체의 기능공, 엔지니어, 기업인들이 연상되었다. 이와 같은 번역 작업을 몇 단계 거치다 보면 사라졌던 장보고가 해신으로 되살아 난 것처럼 메르스 바이러스의 숙주이기도 한 사막의 낙타가 산호초를 머금은 환상의 동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키타로가 NHK TV 다큐의 배경음악으로 쓰기 위해 신씨사이저로 연주한 "실크로드" 테마가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 사진출처: 다음 블로그 (kgj815) <낮게, 작게 그리고 아름답게>

 

푸른 낙타 - 최정애

 

물 흐르는 소리로 덮여 있다
별들은
모래 능선이 쌓인 발아래
무수한 비늘을 켜켜이 켜고 있다

 

밀려가는 다리 위로
저녁이 쌓이고
물방울들이 뒤척이고 있다
실루엣 가장자리로

 

흘러넘친다 멈추어 선 태양의 입자들, 뜨거운 숨소리를 게워낸다  그때, 그의 등에서 수백 겹의 물결이 구르기 시작한다  출렁이는 해안같이 모래알같이 돋아나는 별빛 속에서 

 

낙타 한 마리
산호초 만발한 혀를 내밀고 있다
울퉁불퉁한,
그의 발에 누가 사막을 매달았나

 

어깨 위로 모래가 흩날린다
그늘에 흔들리는
새벽, 쏘아 올린 조명탄 불빛을 향해
푸른 그림자 하나 치솟고 있다

 

Blue Camel written by Choi Jeong-ae, 

Translated into English by Prof. Park Whon-il 

 

Covered by the sound of flowing waters,
Stars,
On sand hills beneath feet,
Are playing repeatedly plenty of scales. 

 

Over the legs plodding forward
The evening is lying down and
Water drops are intermingled
To the edge of silhouette.

 

They're overflowing. The particles of the sun stand still, and vomit the sound of hot breathing sound.

At that time, hundreds of layers of waves are rolling down on his back.

They're in the starlight springing up like grains of sand or fluctuating coasts.

 

One camel is
Putting out its tongue filled with blooming coral reef
Rugged and bumpy,
Feet are hung by desert, whodunnit?

 

Sands are scattered over the shoulder.
At dawn, being swayed in the shade,
Toward the light of star shell shot upward,
One blue shadow is rising high. 

 

Annex

1. 필자가 번역을 마친 우리 시와 동양 고전시, 외국시는 찾아보기 쉽게 KoreanLII에 시인별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다.

그 중에서 위에서 말한 설도의 춘망사와 우리의 가곡 동심초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 원시를 영어로 번역한 것은 黑瘋驄, 우리말 번역은 스테파노 블로그를 참조하였음.

 

위의 한시는 소월의 스승 안서 김억(岸曙 金億)이 동심초(同心草, 풀 이름이 아니라 연인들이 정표로 풀잎을 서로 묶은 것을 뜻함)라는 제목으로 1930년 처음 발표하였다. 청주대 이정식 교수에 따르면 김성태가 곡을 붙인 '동심초'의 2절은 1959년 신상옥 감독이 최은희, 김진규 주연의 영화 "동심초"를 만들 때 안서 시인이 1943년에 마지막으로 다듬었던 시를 토대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출처: KoreanLII 참조.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은 덧없어
만날 날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2. 필자가 미국 유학 중이던 1993년 PBS 채널에서 야니(Yanni)의 아크로폴리스 공연실황을 보고 느꼈던 감동은 곧바로 지리적인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산토리니가 그리스의 유명 관광지 섬이라는 것과 여러 차례 엄청난 해저화산의 폭발과 지진으로 대부분 바다 속에 잠기고 산의 정상부분만 남아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후 가보고 싶은 곳으로 손꼽고 있다가 2018년 현장에 가서 보고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플라톤이 말하는 '아틀란티스 재난'의 모형, 크레타섬 미노스 문명의 멸망 원인 같은 새로운 지식을 추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국적인 풍광과 어우러져 그지없이 아름다운 석양과 땅바닥에 깔리는 포도로 만드는 산토리니 와인이 유명하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다시 말해서 음악에서 비롯된 관심사가 지리와 역사, 문화, 관광으로 뻗어나가면서 나로 하여금 몇 시간 동안 해넘이 광경을 보기 위해 그 곳에 꼼짝없이 서있게 만들었던 것이다(아래 동영상과 관련기사 참조). 학문의 영역, 장르 별로 적절한 번역 전환(translation)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 산토리니 해넘이 명소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서너 시간 전부터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