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age of coronavirus pandemic, most of the Korean people are ready to separate themselves into two groups - liberal/progressive or conservative - in determining who are blame to spread the virus
Here is a borderline man called Kim Su-young. With a poetic sentiment, he used to blame himself as an intellectual reluctant to criticize the real world.[1]
What's the perspective of a borderline man who experienced the Japanese rule, the Korean war, April 19 revolution and the military coup in 1961? While they stood in the line of pro-/against Japanese rulers, pro-/anti-Communist, or pro-/anti-government groups, some of them were imprisoned and others fell victim to fierce strifes of those camps.
Below, you may see what the poet was saying between the lines.
These days, we're ready to read this kind of difficult poems for emotional understanding.
To this end, fortunately, I found the superb English translation of Brother Anthony (전 서강대 안선재 교수).[2]
사랑의 변주곡/變奏曲
Variations on the Theme of Love written by Kim Su-young[2]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Open your lips, Desire, and within
I will discover love. At the city limits
the sound of the fading radio’s chatter
sounds like love while the river flows on,
drowning it, and on the far shore lies
loving darkness while dry trees, beholding March,
prepare love’s buds and the whispers
of those buds rise like mists across yon indigo
mountains.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기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Every time love’s train passes by
the mountains grow like our sorrow and ignore
the lamplight of Seoul like the remnants of food in a pigsty.
Now even brambles, even the long thorny runners
of rambling roses are love.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Why does love’s grove come pushing so impossibly near?
Until we realize that loving is the food of love.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Just as water in a kettle boiling on a stove
nearly spills over but not quite, love’s moderation
is a torrid thing.
Interruption is love, too.
I know nights when love persists
like the green eyes of a cat shining in
death-like darkness, from this room to that,
from grandma’s room to the room of the errand-boy.
And I know the art of producing such love.
눈을 떴다 감는 기술 – 불란서 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The art of opening and closing eyes ― the art
of the French Revolution, the art we learned on April 19,
but now we never shout.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Lovely firmness of peach seeds, apricot seeds,
dry persimmon seeds.
Wicked faith of the storm stirred up by silence and love,
the same in Pompeii, New York, and in Seoul.
Compared to the vast city of love I am burying,
greater even than faith,
aren’t you a mere ant?
아들아 너에게 광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 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이 아닐 거다
My son, this is not designed to teach you fanaticism.
Grow up until you come to know love.
Humanity's final moments,
the day you drink your cup to the dregs,
the day America's oil dries up:
before you reach such distant times, the words
you will register in your heart are words you will learn
from the city’s fatigue.
You will learn this firm silence.
You will wonder whether
the peach seed is not made of love!
Sometime the day will come
when peach seed and apricot seed
will leap up, maddened by love!
And that will not be the false meditation
of a mistaken hour like your father's.[3]
(February 2, 1967)
Note
1] 3.1 운동 직후에 태어난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은 어려서 가세가 기울긴 했어도 지주 집안의 장손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선린상고 재학시에는 오스카 와일드의 시를 원문으로 낭송할 정도로 영어를 잘 했다고 한다. 도쿄 히도쓰바시 대학을 다니다 징집을 피해 만주로 갔으며, 8.15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4학년에 편입했다. 그러나 활발한 시작(詩作)과 공연 활동을 벌이면서 학교를 중퇴하고 1950년 이화여전 출신 김현경과 결혼했다.
6.25 발발 후 서울에 남아 있다가 의용군으로 끌려갔으나 가까스로 탈출하여 서울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부역자로 체포되어 거제도 수용소에서 좌익과 우익의 대립 현장을 몸소 체험하고 3년 만에 석방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의용군으로 끌려간 후 김현경이 대학 선배와 동거 중인 것을 알고 절망했으나, 1954년 김현경과 재결합하고 부인은 의상실을 운영하며 생계를 도맡고 그는 잡지사, 신문사를 전전하며 시작과 번역 일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4.19를 거리에서 목격하고 지식인의 사회참여에 경도된 이후로는 시ㆍ시론ㆍ시평을 통해 우리 사회의 후진성과 허위 의식을 비판하고 진정한 참여를 하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는 글을 다수 발표하였다. 1968년 6월 번역료를 받고 문우들과 술자리를 가진 후 밤늦게 서강 집으로 걸어가다가 차에 치여 중상을 입고 그 이튿날 적십자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의 사후 김현경은 그의 시를 알리고 시집을 간행하는 한편 김수영을 그리는 자서전을 남기기도 했다. 출처: 나무위키(김수영); 남녘하늘
2] English translation from Korean poetry translated by Brother Anthony available online > 2. Complete volumes of poetry by individual poets
3] Once a Japanese band, Harvard, sang a song 'Clean and Dirty', which says "There's tear for all the dreams that I left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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