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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지란지교를 꿈꾸며 - On Friendship

Onepark 2020. 8. 28. 13:00

필자가 운영하는 온라인 법률백과사전 KoreanLII에서는 법률개념을 감성적인 시어(詩語)로 풀어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를테면 Definition (정의/定義)이란 개념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이라는 김춘수 시인의 "꽃"과 견주어 설명하는 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을 대표한다고 소개할 만한 시를 찾다가 1차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골랐다. '기다림'이나 '인내'라는 Endurance의 개념과 어울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유명한 시임에도 일제(日帝) 문화유산의 잔재가 들어 있다는 지적[1]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로 1980년대, 그러니까 나의 사회생활 초년 시절에 큰 인기를 모았던,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에 눈길이 갔다. 더욱 놀란 것은 이 작품이 시가 아니라 수필이라는 주장과 함께 제대로 영어로 번역된 것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시인이 서울대 생활과학대 교수로 정년퇴임한 시인이자 수필가, 소설가라고 The Guardian 같은 외지나 Wikipedia에도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지란지교를 꿈꾸며"는 제목만 "Dreaming of a Beautiful Friendship"[2]으로 영역되어 있을 뿐 번역된 전문은 어디에도, YouTube에도 없었다.[3]

 

다른 한편으로는 이 시가 영역된 것이 없다는 게 이해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우리 시가 영역된 것은 국문학 작품 중에서 시대적으로 대표작, 문제작은 강의교재 또는 논문을 통해 번역 소개되었다. 우리나라의 산문시(散文詩)로서는 근대 자유시의 효시이기도 한 주요한의 '불놀이'(1919)가 첫 번째로 꼽힌다.

외국의 독자들에게 많이 읽힐 만한 작품은 상업적 출판을 위해 번역되기도 했다. 정부기관에서 노벨상 같은 해외 문학상 수상을 위해 번역 출판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 시는 수필[4]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상당한 분량인 데다 1980년대 중후반 출간되자 마자 청소년 독자층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까닭에 당연히 누군가 번역해 놓았겠지 생각하기 쉬웠다. 마치 아마추어 야구나 배구 경기에서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코트 중앙에 떨어지는 볼은 아무도 잡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격이었다.

따지고 분석할 게 별로 많지 않으니 대학 교재용으로 쓸 수도 없고, 통속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니 누군가는 번역해 놓았을 거라는 핑계로 세월과 함께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시를 외국인들도 한 번쯤 접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KoreanLII에서 법 개념과 관련있는 국내외 시를 곧잘 인용하는 것처럼  Friendship (우정/友情)이라는 항목을 만들고 "지란지교를 꿈꾸며" 시의 전문을 번역해서 한영 대역으로 올렸다. 일종의 산문시(散文詩)로서 편의상 연을 나누고, 원문에 충실하게 '여행과 관포지교 우정'에 관한 대목, '눈물과 추억, 음식'에 관한 대목, '애증의 인간관계와 교양미'에 관한 대목을 포함하여 최대한 시적(詩的)인 함축미를 살려 영어로 옮겼다. 앞으로 어느 분이 잘 다듬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번역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이러한 친구를 언제 사귀었던가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5]

 

지란지교를 꿈꾸며

Dreaming of a Beautiful Friendship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I wish I had a friend
whom I can ask a tea time of
after supper without any formality.
The friend had better live near my house 
never caring about my casual wear 
nor smell of garlic food.
Anyway, he/she'll never find fault with me.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은 친구가 . . .

In a rainy afternoon or at snowy night,
I will be welcomed by him/her anyhow.
Till late at night, I can show him/her
my empty heart without hesitation.
I'll never worry for him/her to speak ill of me
after sharing innocent gossips about others.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If a person loves his wife or her husband,
brothers and sisters or
children of his/her own,
how can he/she be happier?
We are in need of a faithful friend to help each other
so that we may dream of eternity in the absence of eternity.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친구와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It doesn't matter the friend in need is female or male.
It's okay the friend is older than I,
no problem with younger or same age.
But I insist on his/her personality like a clear river
that is calm, sustaining, deep and fresh.
The friend has to be mature enough
to regard art and life as important.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는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쳐 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He/She need not be nice looking 
but behaves himself/herself 
as plain and simple, but elegant and stately.
Sometimes my friend may show caprice or temper,
which can be accepted as lovely.
That's okay to some extent, but
my caprice and groundless excitement
could be responded in a proper way.
When I recover calmness after a while,
my friend must be ready to give me
necessary advice in a soft and refined manner.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I don't want to love numerous people.
Neither I want to get acquainted with many.
I hope one or two persons in my life
will have a beautiful and fragrant relationship
with me incessantly
throughout until the death.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는 것은 거의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길 자산이 되었을 걸.

When I traveled around many places of foreign countries,
I tried see as many things as I could
saving meals and sleep.
But now, of those many exotic sights,
I can remember few breathtakingly beautiful scenes.
If I chose a couple of things
to see and feel thoroughly,
they would make my unforgettable assets.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6]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道)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聖賢) 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리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To mention friendship,
they usually say Gwanpojigyo is first.
But since I don't want to put my friend in trouble,
I cannot bear to show endless mercy toward him/her.
As I don't want to live a life training endurance,
I don't want to see my friend look like a saint.
Insofar as I want to live as honestly as I can,
I hope my friend has a flash of wit
to speak of a white lie which proves itself instantly
just for fun or comfort.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More often than not, I want to eat more delicious food
and look more handsome than my friend.
But I'll change my mind right after the moment.
Sometimes, I prefer a thawing creek in early spring,
or crying wild geese in reed forest of autumn,
to my friend.
At last, I'll take my friendship first and foremost.

우리는 흰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We have the integrity
like the green bamboo tree in white snow.
We may be feeble as a wild flower,
but hate flattering concession.
Sometimes we would be
tolerant enough to suffer losses.
We would not respect fame, power and wealth, 
nor envy nor despise them.
Rather, we'll try to be prompted
to live in our own way.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진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Although we are not always wise,
we'll not make use of
others to escape from our difficulties,
no matter how it's true.
We'll resort to foolishness
to remain silent and self-confidence
in case of being misunderstood.
Even though we are not looking good,
we'll keep our fragrance for good.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 듯이 몰두하게 되길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묵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We'll talk about other's success
without jealousy and competition-driven mind.
While we're doing what we want to do,
we have to be indulged in it madly.
We'll regard friendship and affection as important,
but we avoid to be brave at the risk of our lives.
Thus, our friendship is like affection,
and our affection amounts to friendship.
We'll get away from flashy colors and loud noise.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 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While dusting off a small chest,
I'll think of my friend.
When giving water to flowers, or
opening widows in the misty morning, or
looking at white clouds in the autumnal sky, or
feeling dizzy with no reason,
suddenly, I miss my friend.
At the very moment, he/she calls in me.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Sometimes, he/she feels like crying,
I also have some tears and
memories to weep.
For us, such good memories may revive our youth,
but we're willing to make laughter
not to be anxious of aging.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보다 품위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We're fond of our tears but not so easy.
We prefer fragrant beauty to possessive beauty.
When eating cold noodle, we'll have it like a peasant.
When cutting beef steak, we'll do it politely like a queen.
We like to eat roasted chestnuts like a child, and
to drink tea more elegantly than a countess.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은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We'll not do what we dislike to do
to earn a small amount of money, but
grow like paulownia wood[7]
which keeps latent melody in it for thousand years,
Like plum flowers
which didn't sell fragrance in cold winter,
we'll exert ourselves to keep our free style intact
and encourage each other.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 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We don't hate anybody.
Even though we love one or two persons,
we'll avoid to dislike many people around them.
As we're not able to produce superb writings,
we do not regret the profession as a writer.
As such, we feel sorry for other's weak point.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책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꼽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When I walk along the way,
I would buy a bundle of flowers to him/her.
Even so, he/she won't scold me as silly.
When I cross the road not in a crosswalk,
he/she would not ridicule my sense of public order.
Also, I won't suspect his/her refined manner
as a gentleman or a lady, but rather humanity
even when I notice some sleep in the eye, or
a chili dust between the teeth.

우리의 손이 작고 어리나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Although our hands are small and frail,
we'll become a reliable pillar to support each other.
Even though we have bloodshot eyes,
we do not lose intelligence.
As our eyesight becomes dimmer and weaker,
we'll be a light each other to take care of.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壽衣)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 . .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芝蘭)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Then some day,
like an unexpected blessing,
we'll be clad in shroud like a wedding dress
on a same day or different day.
At the graves after a long time passing away,
good and fragrant plants will grow
and meet again each other
with clear and lofty fragrance.

 

Note

1]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황국(黃菊)=친근한 누님", "거울=관조의 경지"로 등식화 시켜 비유적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노란 국화꽃=일본황실의 문양", "거울=일본신화에 나오는 검, 구슬(曲玉)과 같은 삼종신기(三種神器)의 하나"라는 시각도 있는 만큼 그 상징적 의미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부지불식 간에 일본문화제국주의에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창비사(創批社) 온라인 게시판, 2001.6.24∼7.3.

2] 지란지교(芝蘭之交)란 지초(芝草, 영지버섯), 난초(蘭草) 같이 향기로운 벗과의 사귐을 뜻하며 아름다운 우정을 일컫는 말이다.

 

3] 페이스북에 전 안동대 이상주 교수가 영역한 것(Poems in English by Sangjoo Lee)이 게재되어 있으나 일부 내용이 다르고 산문 형식으로 번역되어 있다.

4] 유안진 교수가 기고한 글은 수필이라 하기에는 함축적이고 운율이 강해 연(聯)을 나누어 시로 보는 견해가 많다. 처음 발간된 수필집에는 이향아, 신달자 등 다른 여류 문인들도 수필을 기고하였는데 책의 제목이 "지란지교를 꿈꾸며"(1986)였다. 

YouTube에 들어가 보면 시처럼 낭송한 동영상이 부지기수이고, 처음 두 연에 안효영이 곡을 붙인 가곡을 아주남성합창단이 혼성 합창곡으로 부른 것도 있다.

 

5] 나란히 한 곳을 바라보는 사진속 두 여성의 우정에 관해서는 다음 블로그 기사 참조.

6] 여기서 친구를 괴롭히고 한없이 베푼다는 말은 관중과 포숙이 젊어서 함께 장사를 할 때 관중이 더 많은 이익을 취한 것, 그가 벼슬을 하다가 쫒겨난 것, 또 싸움터에 나갔다가 도망친 것을 포숙이 나무라지 않고 그가 가난해서, 때를 못 만나서, 모친을 돌보기 위해 그랬다고 대신 변명해주었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7] A gayageum, a Korean zither, has twelve silken strings over a soundboard made of paulownia w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