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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2] 아크로폴리스에서 받은 충격

Onepark 2018. 6. 29. 22:00

그리스 여행 첫 날 우리 일행은 아테네 공항에서 가이드 곽동훈 씨와 현지에서 합류한 여성 두 분과 만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착륙 전에 카타르 항공에서 제공한 아침식사로 소고기죽(beef porridge)과 과일을 먹었기에 따로 점심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입국수속도 EU시민이 아닌 非솅겐 (Non-Schengen) 라인이었지만 아주 간단히 끝났다.

 

* 항공사의 기내식은 식재료와 메뉴가 중동에서는 일상적인 쿠란 율법을 따르고 있다.

 

첫 코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Parthenon Temple)이었다. 나 역시 이번 여행의 목적을 파르테논 유적 앞에서 독사진을 찍고 산토리니에서 저녁노을을 감상하는 것으로 정하였으니 가슴이 설레었다.

가이드가 사서 나눠준 입장권은 1인당 20유로였다. UNESCO 세계문화유산 1호로 등재되었지만 관광객을 위한 특별한 편의시설도 없었다. 그저 지붕도 없이 기둥 여러 개가 서 있고 여기저기 돌무더기만 널려 있는 황량한 유적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테나 여신을 위해 BC432년 아크로폴리스의 높은 언덕 위에 세운 높이 13.7m, 폭 30.8m, 길이 69.5m의 이 거대한 대리석 구조물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곳을 찾아 우러러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곳이 세계적인 문화유적지라는 것은 UNESCO의 세계문화유산 표지와 그 동안의 발굴ㆍ복원 작업을 설명한 게시판이 고작이었다. 온전하였을 당시 파르테논 신전의 축소 모형(replica)과 건축 및 고고학적인 설명을 전시해 놓은 기념박물관과 기념품 매장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유적지 한 쪽에는 복원사업 사무실과 공방이 있을 뿐이었다. 중국 시안의 병마총에서 유물을 전시해 놓은 한쪽에 현장을 체험해보고 사진까지 찍을 수 있게 해놓은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줄이 쳐진 안쪽으로 사람들이 들어가기라도 하면 경비원(이들도 공무원 신분이라 함)이 지체없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 신전 기둥은 배흘림, 양끝은 안쪽으로 기울어지게 하여 안정감 있는 조화와 균형미를 보여줬다.

 

이 신전을 결정적으로 파괴한 것은 1687년 베네치아 군대였다는 가이드 설명을 듣고 크게 놀랐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리스와 원수지간인 터키 군대가 파르테논을 포격하여 그리 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2년 전 이란 탐방여행 때 호화스러움의 극치 페르세폴리스가 폐허가 된 것도 페르시아 군이 아테네를 불지른 것에 대한 보복으로 알렉산더 군대가 고의로 방화를 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를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신앙심 깊은 베네치아인들이 이러한 만행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나중에 사정을 알아보니 실상은 이러했다.

당시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건립 당시에는 아테나 신을 모신 신전이었지만 이 지역을 누가 지배하느냐에 따라 기독교 교회, 이슬람 모스크로도 사용되었다.

베네치아가 대터키 전쟁(Great Turkish War 1683-1699)을 벌일 당시 신전의 일부는 터키군의 탄약고로 사용되었고 주민들의 거처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1687년 9월 26일 터키 전쟁을 지휘하던 베네치아의 지도자 모로시니(Doge Francesco Morosini 1688-1694 재위)는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고도 포격을 명령했다고 한다. 그로서는 이 건물의 문화적 가치를 고려하기 전에 이교도에 의해 유린 당하고 있는 현실이 못마땅했음에 틀림없다. 사실 그 보다 앞서 베네치아를 다스렸던 권모술수의 대가 엔리코 단돌로는 이집트를 상대로 제4차 십자군 전쟁(1202-1204)을 벌일 때 방향을 돌려 같은 기독교 국가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다. 종교나 신앙심보다 국가이익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베네치아 포병이 쏜 박격포탄은 터키 군의 탄약고를 명중시켜 신전의 지붕이 날아가 버리고 신전 은 돌기둥 열주만 남긴 채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모로시니의 베네치아 군대는 잔재 속에서 포세이돈 신상 등 조각상을 약탈하고 파괴하였다. 그 이듬해 오스만 튀르크 군대가 인근에 집결하자 수적으로 열세인 베네치아 군은 아테네에서 철수하였다.  

 

 

아크로폴리스에는 기둥만 남은 신전과 돌무더기 뿐이었으나 동영상을 찍으며 자세히 바라보니 파르테논 신전 앞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바로 아테나 여신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선물로 준 올리브 나무라 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이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내기를 했다. 각자 내놓은 선물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아크로폴리스를 차지하기로 한 것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포세이돈이 선사한 바위틈에서 나오는 짠물 샘보다 여신이 건네준 올리브 나무를 택했다. 정말 현명한 선택었다 올리브 열매는 먹거리와 불을 밝히는 기름으로, 나무는 목재와 땔감으로 소중하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480년 아크로폴리스가 페르시아의 공격을 받고 불에 탔을 때에도 가지 하나가 살아남아 잎을 피웠다고 한다. 그때 아테네 시민들은 신성한 나무가 소생한 것을 기뻐하면서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격퇴할 것임을 굳게 믿었다.

 

* 파르테논 신전 옆에 서 있는 에렉티온 신전(Erecthion Temple)
* 위 사진은 아테네 학술원 앞에 세워진 아폴론과 아테나 신상

 

야니(Yanni)를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그리스 출신 뉴에이지 뮤지션이 1993년 역사적인 공연 "Yanni Live at the Acropolis"을 펼쳤던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Herodes Atticus Odeum)도 꼭 살펴볼 곳 중의 하나였다.

그 때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사람은 그러니까 옛날 그리스의 숙적 페르시아(이란)의 작곡자 겸 지휘자인 샤다드 로하니(Shahrdad Rohani)였으니 야니는 세계 무대 진출에 즈음하여 "화해와 평화"를 도모한 셈이었다.

 

* 신전에서 내려오면서 보니까 대리석 건축물의 위용이 더욱 웅장하였다.
* 파르테논 신전 옆의 아레오바고 언덕(Areopagos Hill)
* 사진 중앙에 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곳이 아고라

 

파르테논을 방문한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또 있었다. 바로 사도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던 아레오바고라는 언덕이다. 저 아래로 아고라 광장이 보이는 이곳에서 바울은 복음을 외쳤다. 

 

"아테네인들이여, 곳곳에 신상을 세워놓을 정도로 종교심이 많음을 보았소. 어느 곳에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쓴 단이 있는 것도 보았소.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자이시지만 사람이 만든 신전에 계시는 분이 아니오. 또 무엇이 부족하여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도 아니오.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 만물을 베풀어주시는 분입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들어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이 사는 연한과 거주하는 경계를 정하셨으니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었소. 우리는 그를 힘입어 살고 그를 통해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을 금이나 은, 대리석에 조각한 것으로 여겨서는 아니되오. 그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으나 이제는 어디서든지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하십니다. 이는 그가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주신 것이오." (사도행전 17:22-31)

 

 

사도 바울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아레오바고 자리에 십자가가 서 있었다.

그 아래 바위에는 사도행전의 해당 구절을 그리스어로 석판에 새겨 놓았다.  

 

 

아크로폴리스 아래 언덕에는 아테네의 철인 소크라테스가 잠시 수감되었던 감옥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아고라에서 젊은이들과 토론하기를 즐겨 했는데 시민법정에서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다른 종교를 믿게 했다는 죄목으로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당시 도시국가에서는 질서문란자는 추방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소크라테스가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는 바람에 독배를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에서 연금되어 있었는데 제자들이 이곳을 찾아와 다른 도시로 피신할 것을 거듭 종용하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가 아테네에서 재산을 갖고 편히 살아온 것은 아테네의 법 덕분이었으므로 그 법이 자신을 배척한다고 아테네를 떠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구설(口舌)이 문제돼 재판을 받고 사형이 언도된 소크라테스
그가 감옥에서 바라본 파르테논의 위용은 대단했을 터
포격을 명한 베네치아 지도자는 소크라테스 제자였을까?

 

* 소크라테스가 갇여 있던 감옥이라는 표지

 

아테네의 하늘은 지중해의 전형적인 여름날씨로 우리를 괴롭히던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고 푸르렀다. 해변에 위치한 숙소로 가기 전에 전통 양갈비 요리로 저녁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꿀을 듬뿍 부은 그리스 요거트를 먹었다.

숙소에서는 WiFi가 잘 통했다. 그래서 알렉산더의 등장을 예견한 다니엘서도 다시 읽어보고, 그리스와 페르시아(터키)가 서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쟁패를 벌인 것,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기독교(유대교)에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지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서양 문화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혼합된 것이라 배웠는데, 파르테논에서는 헬라인들의 신전을 기독교인들이 박살을 내버린 것을 목격했다. 파르테논의 폐허를 바라보면서 과연 '조화와 절충의 묘'는 살릴 수 없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 숙소 앞 해변에서 본 저녁놀보다 며칠 후에 경험하게 될 산토리니 석양은 더 훌륭하리라 확신했다.

 

Post Script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몇 편의 영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 영화 Promakhos (The Front Line, 2014) :  그리스의 젊은 변호사가 영국 정부에 대해 엘긴이 반출해간 대리석 조각의 반환을 요구하며 런던에서 소송을 제기한다.

* British Museum의 Elgin Marbles 전시

* Dolce & Gabana의 패션쇼  Valley of the Temple (2019.7) :  저녁 해질 무렵 파르테논 신전에서 100여명의 모델이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한 옛날 여사제의 복장을 하고 석양을 받으며 패션쇼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