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은 더 맑고 푸르렀다.
오늘은 메테오라 기암절벽 위에 세운 수도사들의 수도원, 기도처를 방문하는 날이다.
기독교는 외부의 핍박이 닥치면 신자들이 지하로 숨어드는 전통이 있다.
중세 터키와 그리스를 지배한 무슬림 정권의 탄압을 피해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지하나 동굴 속으로 숨어들었다. 초기 기독교 사회의 카타콤처럼 굴을 파고 예배 공동체를 지켰다.
'메테오라(Meteora)' 지명은 무슨 뜻인가.
수도자들이 은둔생활을 하던 메테오라는 별볼 것 없는 칼람바카 지역을 '유성(流星)'이라는 이름 그대로 관광의 포인트로 만들었다.
중세의 타락한 교계 지도부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따로 은신처를 마련해야 했다.
이러한 견지에서 평지에 돌출해 있는 높은 바위산은 수도사들이 기도처를 마련하기에 적합했다.
일단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힘들었기에 그곳에 고립되어 살면서 자신을 연단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는 일에 힘썼다. 생존에 필요한 물품은 후원자들이 정기적으로 두레박 같은 데 실어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수도생활의 전통은 사도 바울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체포하러 떠난 다마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후 그는 아라비아의 광야로 들어가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될 때까지 수 년간 홀로 기도하고 수도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이집트의 안토니(Anthony), 파코미우스(Pachomius)에 의하여 각기 은둔적인 금욕생활, 수도원의 공동체생활로 발전하였다.
루니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가 창도한 베네딕트 수도회는 기도와 묵상 속에 독거생활을 하면서 수도원장의 권위를 존중하고 그의 지시에 따라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철저한 금욕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St. Patrick)은 수도원에서 매일 시편을 낭송하고 개인적 죄를 고백하며 특정 죄에 대해서는 보속행위를 하는 규칙을 세웠다.
동양의 불교가 연중 일정 기간을 정해 놓고 개별적인 참선을 통해 도를 깨우치려고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 일행은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메테오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메갈로 메테오른 수도원(Megalo Mateoro)에 들어갔다. 여성들은 다리를 감추게끔 하체를 보자기로 둘러써야 했다.
이곳 전시실에는 수도사들이 노동할 때 사용한 각종 연장과 도구, 성찬식에 쓸 포도주를 저장한 통, 그리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수도사들의 해골과 뼈가 보존되어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잠깐 동안의 수도원 체험이었지만 바깥으로 나와서 보는 세상은 전과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은 스스로 금욕하고 육체노동을 하는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수도원에서 돌아 나오는 계단은 높고 가파랐지만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바위 절벽 위의 기도처
하늘의 아버지와 가까워진 대신
번뇌를 가져오는 세상서는 떨어져 있네
다음 행선지는 페르시아 대군이 길을 잘못 들어 고전했던 테르모필레였다.
해안선이 멀어지는 등 당시와는 지형이 많이 바뀌었지만 페르시아 군의 진격로를 따라서 갔다.
BC480년 테르모필레에서 페르시아 대군에 맞써 싸운 그리스 연합군은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과 그가 이끄는 스파르타 정예 300용사는 그리스 지원군 500여 명을 합쳐도 페르시아의 210만 대군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험준한 절벽(카리모도로스 산)과 바다(마리아코스 만) 사이의 좁은 길은 그리스 연합군이 지형지세를 이용하여 방어전을 펴기에 적합했다.
영화 "300"에서 잘 보여준 것처럼 스파르타 군은 분전했고 그들이 사흘을 버텨주는 바람에 그리스 폴리스들은 임전태세를 굳힐 수 있었고 결정적으로 아테네가 살라미스 대첩을 이끌어냈다. 바로 성경에 나오는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비유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테르모필레 부근에는 'thermo'라는 어원에서 보듯이 예나 지금이나 뜨거운 유황온천이 흐르고 있었다. 족욕을 하기에 적합하였으므로 그리스-페르시아 전적지 구경을 마친 우리 일행은 뜨거운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피로를 풀었다.
한국이나 중국 같았으면 주변에 상가와 숙박업소가 즐비했을 텐데 이곳에는 one Euro money" 손 벌리는 꼬마들 외에 인적이 드물었다. 시간이 나면 바다로 가지 온천을 찾지 않는 것이 그리스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그래서 인근에 주유소를 세웠다가 사람들이 찾지 않아 망했다고 말했다.
아테네로 돌아온 우리 일행은 간만에 한식을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크레타 섬이었다.
저녁 식사 후 버스를 타고 피레우스 항으로 이동하여 3만톤급 페리선에 승선했다.
Anek Superfast Lines의 대형 페리선은 9시 정시에 출항했다. 서머타임 중이어서 바다는 아직도 훤했다.
불이 한두 개씩 들어오는 피레우스 항구는 나가고 들어오는 배들로 여전히 부산하였다.
2층 침대가 있는 선실에서 나이 순으로 침대를 쓰기로 하고 우선 간단히 샤워를 한 후 우리 일행은 다시 라운지에 모였다. 지중해 밤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은 규칙적이고 단조로운 엔진 소음 외에는 거의 미동도 없었다.
이 밤을 재미있게 보내기 위해 각자 머리를 짜내 화제거리를 만들었다. 지중해의 밤바다 여객선 라운지라는 분위기에 취하여 나는 영화 "Out of Africa"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메릴스트리프에게 만년필을 선물하면서 스토리 잇기를 제안했던 것을 상기했다. 나의 제안에 따라 이번 여행 중 우리로 하여금 계속 신경 쓰이게 만드는 물건 '휴대폰'을 주제로 하여 각자 체험담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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