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People

People

[추모] 故 박익환 교수의 영전에

Onepark 2017. 10. 27. 16:58

* 2017년 10월 26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의 박익환 교수가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다음은 같은 학교의 학술지 「글로벌 기업법무 리뷰」 제10권 2호(2017.12.30)에 실린 박훤일 교수의 추모사이다.

 

아니 이럴 수가…….

 

한창 나이의 박익환 교수가 숙환으로 세상을 떴다는 비보(悲報)를 들었다. 연구실이 같은 층이어서 마주칠 일도 많았는데 식사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이렇게 영영 헤어지다니 만감이 교차했다. 갈대숲이 장관이던 안양천변 이대 목동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와서 고인(故人) 앞으로 편지를 썼다.

* * *

박 교수,

 

생전에 종종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도 같이 하고 그럴 것을 뒤늦게 용서를 구하는 심정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누가 보아도 훤칠한 키에 인물 좋고 아는 지식 많고 여행 다닌 곳 많고 부러움을 한 몸에 지녔을 것 같았지요. 그런데 작년 1월 상배(喪配) 후에 상심이 얼마나 크셨을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같은 연배의 남성들에게는 배우자를 잃은 후의 스트레스가 치명적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나중에 박 교수의 연구실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면서 신간 독일 원서를 구해 손때 묻혀가면서 연구의욕을 불태우던 모습이 그려졌어요. 집에는 연구실보다 더 많은 책이 쌓여 있어 그 처리가 문제라는 누님의 말씀도 전해 들었습니다.

 

心堂 선생님과의 인연

 

나에게 10년 후배인 박 교수는 81학번으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서울대 대학원을 마쳤고(법학석사),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미국 UCLA 로스쿨에 가서 공부를 더하여 미국 변호사 자격까지 따셨지요. 더욱이 동문들한테는 완벽주의자이신 심당(心堂) 송상현 교수(전 국제형사재판소장)님의 애(愛)제자로서 심당 선생님과 공동으로 민사소송법 교과서를 2008년부터 여러 차례 개정판(2014.4. 신정7판)을 낸 것이 놀라움과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러므로 박 교수는 심당 선생님과 학문적 깊이, 문체 스타일 등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 아닌가 추측하게 되었지요.

박 교수가 심당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법대 3학년 1학기 때의 민사소송법 강의시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송상현 교수님의 인상은 무척이나 엄격하셨고 매사 자신감에 넘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학생들은 법대과목 중에서 민사소송법을 가장 난삽한 과목으로 일컫는다.
그러한 민사소송법을 엄청 쉽게 강의하셨다.
당시 동기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서울대 법대를 대표할 만한 교수님으로 송 선생님을 언급하곤 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송 선생님에게도 훨씬 부드럽고 자상한 면모를 점점 발견하게 된 듯싶다.
원래 이러한 측면도 있었는데 내가 처음에는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는 것이 아닌지!
어쨌든 대학원과정을 통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도교수님으로서 많은 학은(學恩)을 주셨다.
나아가 개인적으로 송 선생님은 나의 정신적인 멘토였다고 생각한다."

 

박 교수는 우리 학교가 로스쿨 개원 준비를 하면서 민사소송법과 지재권법 담당교수로 인하대학교에서 모셔왔지요.

박 교수는 학회활동도 열심이어서 한국민사소송법학회, 한국비교사법학회,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한국저작권법학회, 한국디지털재산법학회, 한국산업재산권법학회, 한국중재학회, 한국지적재산학회 등에서 임원을 역임하셨습니다.

또 특허청, 서울중앙지방법원, 대한상사중재원, 법무부,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서울시 등 여러 기관에서 자문교수를 지내셨지요. 당연히 민사소송과 저작권관련 연구논문도 여러 편 쓰셨습니다.

 

그러나 미국 로스쿨에서 수학했던 박 교수는 우리나라의 로스쿨 제도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하곤 했습니다. 미국식 로스쿨 제도가 신림동 고시법학을 정상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법학계를 고사시키고 법률서적의 출판시장은 아예 무너져버렸다며 안타까워했지요.

 

"2009년에 시작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예정된 계획으로부터 한참 벗어나서 운영되고 있다.
교수들도 학생들도 민사소송의 전반적 체계를 파악하기보다는

부분적 지식을 해석법학적 틀 안에서 암기하는 데 주력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기본법 영역에서는 엄청난 분량의 지식을 암기하고, 이를 엄격하게 검증, 시험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전문법 영역의 강좌는 개설조차 쉽지 않다.
아마도 주된 원인은 제도의 변경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에 있을 것이다.
힘든 과제는 법학전문대학원 체제에 대한 기성 법조계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다.
원래의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오는 봄의 왈츠가 우리에게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

 

뮌헨의 영국 정원

 

박 교수는 여행이 취미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먹을거리는 약간 가리지만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여행은 가리지 않았다고 하면서 여행을 통해 각종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겪었다고 술회했지요. 어느 수준이냐 하면 상세지도를 보고 있으면 마치 현지에 있는 듯한 여행의 즐거움을 느낄 정도였다니 여행가로서는 초ㆍ중ㆍ고를 넘어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신 것 아니었던가요?

 

박 교수가 뮌헨에 갔을 때에는 슈바빙(Schwabing) 거리와 영국 정원(Englisher Garten)도 거닐었을 것입니다. 우리들 대학 동문은 헬렌 실빙 교수와의 로맨스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고 형법총론 책 서문에 적어놓으신 Y 교수님 못지않게 역대급 캠퍼스 커플이었던 K 교수님의 첫사랑 전혜린 씨를 머리에 떠올리기 때문이지요.

 

* 뮌헨 영국정원 내 일본 티하우스
* 영국정원의 너른 잔디밭
* 젊은이들의 서핑 연습장소로 인기가 많은 영국정원으로 급류가 흐르는 개천 

나 역시 짧은 뮌헨 체류기간 중에도 일부러 영국 정원을 찾아가서 젊은이들 서핑 하기 좋게 급류가 흐르는 개천(Eisbachwelle), 숲 속의 오솔길, 고즈넉한 연못 속의 일본 찻집과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중국 탑, 그리고 일광욕하기 좋은 명소(?)라는 널찍한 잔디밭을 돌아보았습니다. 마치 선각자의 발길을 따라가는 순례자처럼.

이곳에서 뮌헨 대학을 다녔던 한 사람의 시인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재기발랄하였고 루 살로메 등 많은 여성들과 교제를 나누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박 교수도 좋아하지 않았던가요?

 

세상 어디선가 지금 울고 있는 사람,
까닭 없이 울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우는 것이다.

 

세상 어디선가 지금 웃고 있는 사람,
까닭 없이 웃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비웃는 것이다.

 

세상 어디선가 지금 걷고 있는 사람,
덧없이 헤매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세상 어디서 누군가 죽고 있다.
까닭 없이 죽어가는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엄숙한 시간”

 

빈소에는 박 교수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고인의 부모님과 매형)이 조문객들을 맞고 계셔서 조금 민망했습니다.

릴케와 비슷한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인을 생각하면 세상 어디선가 까닭 없이 슬피 우는 사람은 고인을 위해 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늘나라에서 한없는 위로를 받으시고 부디 평안을 누리소서.

 

2017.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