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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unter] '박하' 시인을 만나다

Onepark 2017. 2. 17. 18:00

2016년 7월 이란 여행을 같이 하였던 박하(薄荷 박원호) 시인을 다시 만났다.

그 당시에도 여행하는 틈틈이 상호관심사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 후 남북물류포럼의 밴드를 통해 박하 시인의 자작시와 번역시, 여기에 첨부된 예술사진(예컨대 아래의 '그림 같은 설경' 사진)이나 디지털 그림을 접하고 있는 터였다.

 

남북물류포럼의 밴드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일찍 다음과 같은 시와 사진이 올라온다. 

2월 16일 아침의 경우 이색적으로 이동순 시인의 "멍게 먹는 법"이 멍게 사진과 함께 등장했다. 포장마차에 앉아 멍게와 소주 잔을 앞에 놓고 생각에 잠기는 사람은 '시인'임에 틀림없다. 

 

나는 갯것이 좋다 - 이동순

 

갯것들 중에서도 멍게가 좋다 
왜냐하면 
멍게는 깊은 바닷속 바위 틈에서 
긴긴날 혼자 생각에 잠겼던 
기막힌 고독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통한 알맹이 
그 속살을 반으로 갈라 
통째 입에 넣고 씹지 말 것 
그저 차분히 멍게를 머금은 채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지그시 눈만 감을 것 

 

그때 은은히 감도는 멍게 향기는 
필시 고독의 내음일지니 
이윽고 입 속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사태 
소주와 멍게는 서로 부둥켜안고 블루스를 춘다

 

스텝을 맞추며 빙빙 돌아가는 
나의 입 안은 바로 녀석들의 무도장 
그들의 블루스가 끝날 때쯤 언제든지 멍게를 삼켜도 좋다

 

시와 그림, 여행 등 관심사가 비슷함에도 박하 시인이 부산에서 토목 엔지니어로 활동하고 있어 우리는 서로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박하 시인의 책에 실린 저자 소개도 "시인, 기술사. 건설 엔지니어의 눈과 시인의 가슴을 가진 별난 경력의 소유자. 부산대 건축공학과 박사과정 수료. 사우디아라비아 '마카타이프 담수플랜트' 현장 근무" 만으로 아주 간단하다.

그러던 차에 2월 17일 남북물류포럼의 월례 조찬모임에 박하 시인의 참석 소식을 듣고 모처럼 환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우선 박하 시인의 창작시와 번역시를 필자가 운영하는 KoreanLII 사이트에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데 대하여 감사를 표했다.

이를테면 조선조의 화가 최북의 그림을 시로 묘사한 신광수의 한시 "崔北 雪江圖歌"를 박하 시인이 우리말로 번역해 밴드에 올렸는데 이것을 내가 다시 영어로 옮겨 최북의 그림과 함께 Korean paintings (한국화) 항목에 올려놓았었다. 

 

KoreanLII 가 한국의 [법규범] 문화에 관한 백과사전인 만큼 그 콘텐츠에 걸맞아야 하는데 희한하게도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아니 박하 시인이 밴드에 올린 글과 사진을 보고 Satire (풍자)라는 항목을 새로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완도 앞 보길도의 윤선도 세연정(洗然亭)에 관한 KoreanLII의 포스팅을 준비하고 있을 때에는 박하 시인이 "세연정 신선놀음 -- 윤선도의 고백"이란 장문의 시를 포럼 밴드에 올려놓아 곧바로 영어로 번역하여 한영 대역으로 Seyeonjeong Bogildo란 항목으로 올려놓았다. 

 

주역이나 토정비결에서는 내게 '진정으로 도움을 주는 귀인(貴人)'을 만나는 것이라 했던가.

내가 그렇게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다.

우선 박하 시인은 정식 등단한 향토 시인이고 시집도 <찔레꽃 편지>, <하늘나무>, <연장 버리기>, <그래도 도시예찬> 등 4권이나 펴냈다.

또 건설 분야에서는 <초고층빌딩 홀로 도시를 꿈꾸다>, <건설 엔지니어의 도전>, <인프라의 걸작들>, <건설 명품 100선>(공저) 같은 저서도 있다.  

 

그리고 박하 시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여행가이다. 동남아 국가들은 배낭을 메고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넘게 돌아다녔으며, 중국 여행은 지역 별로 도합 서른여섯 번에 이른다고 한다.

2016년 8월에는 <실크로드 차이나에서 일주일을 - 비단길의 꽃들, 新 오아시스 견문록>을 출간하였으며, 페르시아 여행기도 조만간 출판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나의 관심사는 시에 첨부된 디지털 그림을 공사다망한 가운데 어느 시간에 그리느냐였다. 

뜻밖에도 답변은 매우 간단했다. 

"평소에 스마트폰에 소재를 준비해 두었다가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의 36칼라 크레용 앱을 이용하여 스타일러스 펜으로 직접 그립니다."

건축 설계를 했기에 기본적인 드로잉의 바탕은 되어 있으므로 디지털 아트 스킬은 동호인 모임에 나가서 프로 화가로부터 배운다고 말했다.

 

내년에 정년을 앞두고 무슨 생산적인 일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던 나한테는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미술반 친구들과 함께 화판을 메고 그림 그리러 다녔으므로 일단 어렵다고 생각되는 인물화에 도전하기 위해 인체 해부학 일러스트레이션 책 <석가(Stonehouse)의 해부학 노트>부터 구입했다.

그리고 스마트폰보다 큰 태블릿에 그림 그리는 연습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 영국의 디지털 아티스트 Hockney의 개로비 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