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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우림과 폭포가 장관인 밀포드 사운드

Onepark 2016. 12. 21. 11:00

뉴질랜드에 가기 전까지 몰랐던 사실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목가적인 전원풍경만을 상상하고 갔는데 서해안 지역에는 높고 험한 산이 줄지어 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수증기를 머금은 바람이 이 일대에 엄청난 비를 뿌린다는 사실이었다.

남반구의 피요르드 지형으로 유명한 밀포드 사운드(이 일대가 피요르드랜드 국립공원)는 바다에 면한 협만으로서 이렇게 내리는 호우성 강우가 연중 엄청난 수량의 폭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채 사진에서 보았던 대로 그저 좋은 날씨에 멋진 선유(船遊)를 기대하고 밀포드 사운드로 떠났다. 일정표에 따라 아침 일찍 지정장소에 나가 밀포드 사운드 행 코치 버스를 기다렸다.

 

코치버스의 티켓은 따로 없고 버스 드라이버가 회사로부터 받은 명단과 승객의 이름을 일일이 체크해가며 태워준다.

필자가 예약한 그레이트 사이츠 버스는 정류장에 두 번째로 도착하여 함께 기다리고 있던 인도인 가족이 올라탔다. 단체손님이 있는 경우에는 큰 짐을 멀리 끌고 갈 필요 없도록 지정 호텔 앞으로 가서 태워준다.

그제서야 뉴질랜드 시스템이 이해가 되었다. 철저한 예약문화와 고객에 대한 배려(hospitality)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니 정원초과나 일정변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시가지를 벗어나자마자 버스 드라이버가 헤드셋을 쓰고 능숙하게 관광안내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뉴질랜드에도 최고 시속 100km로 달리는 고속도로가 있지만(시내 구간은 80km) 경사로에 저속차선이 있는 것 외에는 대부분 2차선 도로였다. 중앙분리대는 없었고 흰색 파선이 대부분이어서 반대방향으로 오는 차량이 없으면 얼마든지 추월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추월금지 구간은 위의 사진처럼 노란 실선이 그어져 있다.

대부분 신호등은 없고 로타리(roundabout)나 좌/우회전하는 차량을 위한 대기차선을 만들어 놓는 식이었다. 근본적으로 차량통행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이윽고 중간 기착지인 테아나우(Te Anau)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도 가고 커피나 음료수를 사 마셨다.

 

휴게소 건너편 상가로 갔다. 아직 오전 9시라서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윈도우에 진열된 상품을 보다가 어느 가게에서 페이퍼바운드 헌책을 파는 것을 보고 소설책 한 권을 골랐다.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판된 [Santus(거룩)]라는 책인데 몇 페이지를 훑어보는 동안 짤막짤막한 챕터 구성과 작가의 묘사력이 탁월한 것을 보고 N$12(1만원)를 주고 샀다.

나중에 마운트 쿡에서 "이 책이 없었더라면" 하고 생각할 만큼 잠깐 사이에 '탁월한 선택'을 한 셈이어었다.

 

* 버스 옆에 붙어 있는 뉴질랜드 식 액티비티를 홍보하는 젊은이들의 점프 사진

얼마 전에 비가 왔었는지 아침해를 받아 호수 위에 무지개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또 실개천이 흐르는 강변에는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들이 컬라이도스코프 같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쉬운 점은 이런 감탄사를 교환할 수 있는 여행의 동반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버스 드라이버는 미러 레이크(Mirror Lake)에서 정차를 하고 승객들을 내려주었다. 물이 유리면처럼 맑아서 흰눈을 이고 있는 산을 거울처럼 비춰준다고 했으나 오리 몇 마리가 노닐 뿐이었다. 이색적인 것은 큰 둥걸의 나무마다 이끼(moss)가 잔뜩 끼어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사진을 찍으려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한국 학생이 전역을 한 후 복학하기 전에 배낭여행을 하는 것을 발견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간만에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위 45도의 지역에 우림(rain forest)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현상이었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연중 180일은 많은 비가 내려 강수량이 5-6m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곳 도로 건설에는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차량 통행량도 많지 않아 대부분의 고속도로가 중앙선이 없는 2차선이었다. 심지어 난공사 구간이나 교량은 1차로로 만들어 놓고서 양쪽 진입차량에 우선순위(right of way)를 두어 자율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호머 터널(Homer Tunnel)은 1차로이기 때문에 양쪽 입구에서 신호등을 보고 기다렸다가 진입해야 한다.

밀포드 사운드 지역의 물자 교역에 종사하던 호머가 터널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였으나 워낙 날씨가 나쁘고 바위 틈으로 얼음 녹은 물이 스며 나오는 난공사 구간이라서 여러 차례 중단된 끝에 1954년에야 개통이 되었다고 한다.

"으음, 내 나이보다 1년 적은 역사를 가지고 있구나!" 총 연장 1270m의 터널은 시속 30km로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건너편 출구로 나오니 터널 진입을 기다리는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었다"는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雪國) 첫머리의 글처럼 터널 건너편에는 화창한 날씨가 펼쳐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산산이 무너졌다.

 

간간이 비를 뿌리는 비구름의 날씨는 밀포드 사운드 협만에서 크루즈를 마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미 점심 도시락까지 예약해 놓은 데다 하루를 더 기다려도 날이 개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기에 두 시간 동안 배를 타고 협만을 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지금도 어항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한다. 이 궂은 날씨에 카야크 훈련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뭐니뭐니 해도 이곳의 스팩태클한 풍경은 시야를 압도하는 온갖 형태의 폭포수이다.

실타래처럼 여러 가닥으로 흘러내리는 여성적인 폭포에서부터 큰 물줄기를 쏟아내는 남성적인 폭포까지 가지가지였다. 높이도 수십 미터에서 백 미터 넘는 것까지 있었다.

이 엄청난 규모의 수량은 연중 풍부하게 내리는 비 덕분일 터였다. 수증기를 가득 머금은 태평양 공기가 산맥을 넘으면서 많은 비를 뿌리기 때문이다. 산 너머에는 공기가 건조하고 강수량이 부족해진다. 목장지대에 이동식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는 장면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본래 밀포드 사운드가 물개잡이 어부들이 기항하는 항구였다는데 지금도 물개들이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위 사진 속의 물개는 미끄러운 저 바위 위에 어떻게 올라갔나 싶게 비박하는 산악인처럼 바위 위에서 쉬고 있었다.

밀포드 사운드는 바로 태평양 바다로 통해 있기에 돌고래가 배 주변에서 뛰어 놀았다. 왼쪽 배의 멀리 앞쪽으로 돌고래가 수면 위로 헤엄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폭포 아래를 지나는 크루즈 선실의 관광객들 표정과 반응도 갖가지였다.

바깥 경치에는 관심이 없고 둘이서 이야기만 하는 커플, 노모를 모시고 온 호주의 효녀, 셀피 봉을 들고 꼭 자신이 들어가는 사진을 찍는 중국인 여행자, 선실의 앞뒤로 다니며 연신 사진을 찍는 나 같은 사람 등등. 

신부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초여름의 뉴질랜드로 신혼여행을 왔다는 한국의 신혼부부는 "이곳이 너무 춥다"면서 서로 찍은 사진을 들여다 보고 즐거워했다.

 

다행히 크루즈를 마칠 때쯤 구름이 걷히면서 흑백 사진이 점차 칼라 사진으로 바뀌었다.

밀포드 사운드 당일관광 코스이므로 우리는 다시 코치 버스를 타고 호머 터널을 지나 퀸즈타운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터널을 지나자 푸른 하늘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언제 비가 왔냐?" 싶게 화창한 날씨에 초록색 목장지대의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떠 있었다. 

 

호머 터널을 지나 도중에 트레킹을 마친 등산객들을 4명 태웠다.

옆자리에 앉은 청년에게 물어보니 독일에서 와서 2박 3일 동안 멋진 피요르드 지형 트레킹을 마친 일가족이었다. 리더는 경험이 많은 80세의 할머니라고 했다. 

뉴질랜드에서 특별히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휴게소의 남자 화장실 변기는 인해전술(?)도 가능한 중국식이다. 주말의 테아나우 다운타운은 오전과는 달리 관광객과 주민들로 붐볐다. 농촌지대임에도 겉보기에 집들이 예쁘고 아담했다. 

 

* 뉴질랜드의 사철 푸른 목초지대도 본래 자연상태에서는 자갈과 덤불이 많은 지형이었을 것이다.

좋은 경치를 보고 감동하는 한계효용이 체감된 탓일까 돌아오는 길은 훨씬 감흥이 덜하였다.

목장지대가 지루하게 계속될 때쯤 버스기사는 관광안내를 멈추고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비디오를 한 편 틀어주었다.

주착 없이 이웃과 자주 충돌하는 일흔 넘은 뉴질랜드 영감님에게는 꿈이 있다. 자신의 모터바이크를 타고 미국 네바다주의 인디언 마을에서 열리는 모터바이크 경주대회에 출전하는 일이다.

미국 헐리우드에 도착해 "다운언더 키위 컨트리"(뉴질랜드의 별칭)에서 왔다고 큰소리치는 영감님은 반대 차선으로 주행하는 등 실수 연발이다. 하지만 처음에 이 영감님의 무모함에 놀라던 호텔 종업원, 자동차 딜러, 하숙집 할머니, 모터바이크 대회 관계자와 참관자들이 영감님의 서포터즈가 된다.

그는 마침내 모터바이크 경주대회에서 세계에서 제일 빠른 인디언(The World's Fastest Indian, 영화 제목)이 되어 신기록을 세우고 금의환향한다.

 

뉴질랜드의 실존인물을 다룬 영화임에도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풍광이 별로 없어 아쉬웠다. 하긴 헐리우드 영화이니까.

퀸즈타운에 가까와 오자 하늘은 높고 푸르고 낮은 구릉지대(rolling hills)가 이어지면서 일부 목장에는 간간이 스프링클러 시설이 되어 있음을 새롭게 발견했다. 서해안 지역에는 그처럼 비가 내려도 내륙 지방은 '푄 현상' 때문에 건조한 탓이었다.

가도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와카티푸 호수(Lake Wakatipu)는 눈이 시리도록 파랗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