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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백야기행] 장엄한 자연미: 노르웨이 베르겐

Onepark 2013. 7. 16. 20:30

6월 30일 (일) 서울 출발 1주일을 맞아 우리는 본격적으로 힐링을 테마로 한 노르웨이의 제2도시 베르겐과 피요르드 관광을 할 참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창 밖으로 크루즈선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으나, 우리는 버스로 피요르드를 건너는 페리선을 탈 예정이었다.

이곳에도 개발 바람이 불어 배로 건너던 곳에 거대한 현수교가 건설되어 곧 완공을 볼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버스를 탄 채로 페리 철선을 타고 피요르드를 건넜다. 그 다음은 터널과 도로, 그리고 터널이 잇달아 나타났다. 

 

* 바위산의 터널 안쪽에는 로타리식 교차로까지 있다.

호반의 관광도시 보스(Voss)에서는 관광안내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지붕에 자작나무 껍질 위에 흙을 깔고 잔디를 뿌려 보온 보냉 효과를 거둔다고 한다. 테이블 위의 재떨이도 화분을 엎어놓은 것처럼 특이했다. 여기 조용한 호수도 한여름이면 피서객과 관광객들로 붐빌 것이다.

유럽 각지에서 온 여러 가지 형태의 캠핑카들이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오고 갔다. 

 

10시 50분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Bergen, 현지에서는 '바르겐'으로 발음)에 도착했다. 어시장도 둘러보고 노점에서 홍합도 사 먹었다.

그리고 베르겐의 구 시가지와 3-400년 전 독일 한자동맹의 해운상업기지였던 브리겐(Bryggen)을 구경했다. 전성기 때는 1천 명도 넘는 독일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해상무역의 도제수업을 받았다고 전한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브리겐 구역은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베르겐 항구는 2차대전 개전 초 독일의 어뢰 공격을 받고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 과거 한자동맹의 해운상업기지였던 브리겐 부두의 상가와 창고
* 히틀러는 러시아 침공의 우회로로서 이곳의 전력적 가치를 중시하고 항구마다 어뢰를 설치했다.

우리 일행은 베르겐 역 부근 호텔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점심식사를 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광객들도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포도주라도 함께 하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산악열차를 타고 플롬으로 내려갈 작정이었으므로 오전에 들렀던 보스로 이동하였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베르겐 출신의 세계적인 유명인사 그리그의 삶과 음악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열차 대신 버스편으로 보스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현지 가이드와 인솔자가 뮈르달(Myrdal)행 열차표를 구하는 동안 역 밖에 나와 현지 사람들이 휴일을 즐기는 모습을 구경했다. 하늘 위에는 앞 산에서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뛰어내린 사람들이 상공을 날고 있었다.

뮈르달 역에서는 플롬(Floam)행 산악열차로 옮겨탔다.

 

해발 866m의 뮈르달에서 피요르드 선착장이 있는 해발 2m의 플롬까지 내려가는 산악열차는 승객들이 내려서 주변의 폭포를 구경할 수 있도록 5분간 정차하기도 했다. 바위 산을 나선형으로 뚫는 난공사에서는 적잖은 희생자가 나오기도 했다 한다.

우리가 20.2km의 급경사 구간을 이처럼 편하게 내려가는 것은, 또 이곳에 우리 같은 외국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것은 몇 세대 전의 사람들이 피땀을 흘린 결과인 것이다. 

 

우리 일행은 플롬 역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뛰다시피 역전에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저녁 8시까지 오늘 묵을 호텔에 도착하지 아니하면 운전기사의 11시간 복무규정을 위반하기 때문에 내일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련한 리투아니아인 기사의 운전 솜씨 덕에 우리는 시간 내에 유서 깊은 스톨하임(Stalheim) 호텔에 당도하여 여장을 풀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 밖으로 나오니 테라스에서는 기가 막힌 전망이 펼쳐졌다. 바로 이러한 절경 때문에 서부 노르웨이의 피요르드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